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3318
Chapter 086화.
이미 수술 준비는 끝났는지 케이시 간호사와 다른 간호사는 조용히 대기하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뭐가 준비 됐는지 모를 모습이었다.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될 무렵이었다.
드륵.
문이 열리고 닥터 쿠엔틴과 두 사람이 같이 들어왔다.
한 사람은 손목을 붙들고 있는 노년의 여성이었고, 또 다른 인물은 그녀를 부축하는 자원봉사자였다.
닥터 쿠엔틴은 사람 좋은 미소로 환자를 수술대로 안내했다.
“여기 누워서 손을 이쪽으로 놓으시라고 하세요. 수술시간은 30분 정도고 간단한 수술이니까 너무 걱정 마시라고 전해주시고요.”
“네. 자 이리로.”
자원봉사자가 통역을 하며 환자를 수술대로 안내했다.
이어서 간호사들이 수술 준비를 돕기 시작했다.
그사이 닥터 쿠엔틴이 태수에게 다가와 물었다.
“너무 아무것도 없죠?”
“그……. 그러네요.”
“설마 이런 환경에서 vertebralnerve(척추신경)수술 이나 cerebrovascular(뇌혈관)수술을 하겠습니까. 말도 안 되죠.”
“어려울 거 같습니다.”
태수가 동의하자 닥터 쿠엔틴이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이어서 말했다.
“그래서 여기서는 간단한 수술을 위주로 합니다.”
“그렇군요. 그럼 저 분은?”
“혹시 carpal tunnel syndrome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그의 질문에 태수가 눈빛을 살짝 반짝였다.
“네. 손목터널증후군이요.”
“다행이네요. 역시 아는 병부터 배우고 익히는 게 접근하기 쉽죠.”
“그런데 보통 rehabilitative therapy(재활 요법)를 많이 권하던데요.”
태수가 슬쩍 아는 지식을 꺼내 묻자 닥터 쿠엔틴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 경우는 그런데 너무 심해지면 감각이 떨어져서 수술을 하는 게 좋습니다.”
“아, 그렇군요.”
“Carpal 속에 좁아진 median nerve(정중신경)을 확장시켜주는 방법으로 진행될 겁니다.”
닥터 쿠엔틴이 간단히 브리핑하자
태수는 머릿속에 담기 바빴다.
“Median nerve라고요.”
“수술은 같이해볼 거고 난이도는 낮은 편입니다. 그리고…….”
닥터 쿠엔틴의 설명이 계속 이어지려할 때였다.
“준비 됐어요.”
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닥터 쿠엔틴은 바로 말을 돌렸다.
“자세한 건 수술하면서 말하도록 하시죠.”
“잘 부탁드립니다.”
“그런 자세, 너무 좋습니다. 그럼 준비합시다.”
닥터 쿠엔틴은 힘차게 말하고 수술대로 몸을 돌렸다.
태수도 새로운 수술에 대한 설렘과 열정을 안고 움직였다.
환자는 수술대에 누워 있었고 팔을 길게 펼쳐 놓은 모습이었다. 그 가운데를 자그마한 커튼으로 가려 시야를 차단해 놓았다.
수술포의 위치로 보니 수술부위는 손목 안쪽이었다.
태수는 그 위치를 보며 수술 장갑을 착용했다.
수술가운은 생략했는데, 그 만큼 수술이라기보다 시술에 가까운 분위기였다.
닥터 쿠엔틴이 자리를 잡자마자 바로 선언했다.
“시작합시다.”
스윽.
동시에 메스로 국소마취된 손목 안쪽을 조심스럽게 가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태수에게 주의사항도 말해줬다.
“이 부분은 알다시피 정맥이 지나갑니다. 그러니까 여기를 피해서 여기, 이쪽으로…….”
“그럼 이렇게 잡으면…….”
스윽.
태수가 후크로 살짝 피부를 걸어 젖혀 보조했다.
닥터 쿠엔틴은 상당히 만족스레웠는지 마스크가 풀럭거리게 칭찬했다.
“역시 수술을 다수 집도해본 센스가 있습니다. 바로 그겁니다.”
“좀 쑥스럽네요.”
“사소한 부분에서 실수가 생기는 법이잖습니까. 아무튼 이제 이렇게 젖히면 median nerve가 보이게 되고…….”
“음. 아, 네.”
닥터 쿠엔틴은 하나 씩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얼마나 자세한지 수술 진행과 설명이 5 대 5로 동일했다.
오죽하면 태수의 귀가 아파올 정도였다.
그러나 태수는 한 번도 내색하지 않았다.
닥터 쿠엔틴의 설명이 그 만큼 자세하고 정성이 담겨 있던 탓이다.
어제의 일이 많이 미안했던 모양이다.
또 무의미한 설명은 없었다.
간단한 수술이라지만 그 속엔 신경외과의 기본이 담겨 있던 탓이다.
태수도 그 점이 좋았다.
손목터 널중후군 수술은 간단하게 끝이 났다.
하지만 태수와 닥터 쿠엔틴의 시간은 끝이 아니었다.
앞서 말한 대로 남은 오전 시간을 모두 함께했다.
특히 닥터 쿠엔틴은 어딜 가던 태수를 데리고 다니며 직속 후배처럼 살뜰하게 챙겼다.
같이 한 시간이 점점 길어진 만큼 말투도 편안하게 바뀌었다.
“닥터 최, 방금 그 환자는 장기간 spondylodynia(척 추통증)에 시달려…….”
“어떤 치료법이 있습니까?”
“수술, 약물, 재활이 있는데, 각각 어떻게 되냐면…….”
“아, 네. 그러면 어떤 경우에…….”
“통증정도에 따라…….”
닥터 쿠엔틴은 끊임없이 태수에게 무언가를 알려줬다.
입속에 모터가 들어 있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신기한 건 그 모터가 과열되지 않는 튼튼한 내구성을 갖고 있단 점이었다.
그가 그렇게 열정적으로 떠드는 건 역시 태수 탓이 컸다.
경청하는 태수의 눈빛이 학구열로 활활 타올라 있었다.
조금이라도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이해가 될 때까지 물었다.
그저 병명과 증상에만 치우치지 않았다.
증상이 시작되는 원인부터 캐물으며 병의 개념을 명확하게 잡길 희망했다.
그저 대화에만 치중하는 것도 아니었다.
대화의 시발점은 항상 환자였다.
환자를 진찰하거나 간단한 수술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그 틈틈이 나누는 대화가 쉬지 않을 따름이었다.
같은 진료실에 자리한 의료진들이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 질릴 정도였다.
시간이 흘러 점심시간이 됐다.
식사를 마친 태수는 숙소 마당의 테이블에 자리하고 있었다.
잠시 한숨 돌릴 법도 한데 종이에 무언가를 끊임없이 적어 내려가고 있었다.
“그러니까 척추는…….”
필기하는 내용은 닥터 쿠엔틴과 나눈 대화 요점이었다.
그 범위는 상당히 광범위했다.
뇌혈관과 뇌신경 관련, 또 척추 관련 약물 치료 및 재활 치료 방법. 간질과 말초신경 분야 등등.
거짓말을 조금 덧붙인다면 신경외과의 개요를 써내려간다고 해도 될 정도였다.
이 모든 게 몇 시간 사이 닥터 쿠엔틴에게 들은 내용들이었다.
정말 엄청난 양이었다.
태수가 그렇게 정리에 매진하던 중이었다.
탁.
반대쪽에 누가 다가와 앉았다.
고개를 들어 상대를 확인한 태수가 빙긋 미소 지었다.
“닥터 쿠엔틴.”
“오, 노. 닥터 최. 내 별칭은 그게 아니라니까.”
닥터 쿠엔틴이 삐쭉거리며 투덜거렸다.
단시간이지만 그 만큼 친해졌음을 의미하는 표현이었다.
태수도 그가 더 섭섭해 하지 않게 별칭으로 불렀다.
“꾸띠.”
“그렇지. 그런 의미에서 여기 음료수.”
탁.
닥터 쿠엔틴은 감춰뒀던 음료수를 테이블에 올렸다.
태수는 그걸 받아들며 부드럽게 인사했다.
“고맙습니다.”
“별말씀을. 그런데 정리는 잘 돼가고 있어?”
“한 번 보시겠습니까?”
스윽.
태수는 노트를 거침없이 돌려 보였다.
중간중간 한글로 적어 놓았지만 의학용어의 기본은 영어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래서 닥터 쿠엔틴은 노트 속 정리된 의학용어를 보는 게 큰 무리가 없었다.
곧 닥터 쿠엔틴이 고개를 들고 엄지를 내밀었다.
“굿. 엄청 깔끔하게 정리했네. 핵심 단어도 제대로 적혀 있고.”
“꾸띠의 설명이 그 만큼 자세했다는 거죠.”
“그런 면도 있지만 닥터 최의 습득력이 상당한 거 같아.”
“하하. 그건 아무래도 신경외과도 외과 계열이라서 그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태수가 너스레를 떨며 보다 자세한 이유를 말했다.
그때 닥터 쿠엔틴은 조금 의아한 표정으로 변하더니 성격답게 직설적으로 물었다.
“생각해보니까 말이야. 보통 자신의 전공 의과에 치중하기 마련 아닌가?”
“그런데 저하고 닥터 정은 왜 그렇게 열심히냐고요?”
“그래. 속된 말일지 몰라도 모르겠으면 다른 의사들에게 넘겨도 되잖아.”
“그렇죠.”
“물론 배워서 나쁠 건 없다지만 너무 광범위하지 않나 싶어서 말이야.”
닥터 쿠엔틴이 말하면서도 뭔가 켕기는지 살짝 눈치를 봤다.
하지만 태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언젠가, 또 누군가는 물어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질문인 탓이다.
예상했던 만큼 진솔하게 대답했다.
“이잠바크에 잠시 머무른 적이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지.”
“거기엔 외상환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도움을 드릴 수 있었죠.”
태수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닥터 쿠엔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 있지.”
“그 외에 마을에서도 운이 좋았는지 별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앞으로는 모른다는 건가?”
“장담할 수 없겠죠.”
태수가 긍정적으로 대답하자 닥터 쿠엔틴은 오히려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왜 따로 움직이는 건데?”
“욕심이 너무 많아서요.”
“대충 무슨 의미로 하는 말인지 알 거 같아.”
닥터 쿠엔턴은 더 이상 깊이 듣길 원하지 않았다.
그도 레지던트 시절이 있었고, 그때 스스로 어떤 욕심을 품었는지 떠올린 모양이다.
그 외에 이유도 있겠지만 태수에게 부담이 될 거라 생각해 더 듣길 원하지 않았다.
태수는 그런 배려가 고마웠지만 그래도 나온 말이라 슬쩍 덧붙여 말했다.
“저와 제 동료들밖에 없었습니다. 거기선 아무도 저희를 원망하지 않았고요.”
“…….”
“차라리 원망이라도 하지. 차라리 쫓아내기라도 하지, 그저 고맙다고 인사하는 그분들 모습에 한없이 작아지기만 하더라고요.”
“음. 그럴 거야.”
“그런데 이곳 파둠에서 많은 분들과 함께할 기회를 얻었으니까 저희 욕심을 채우는 중인 거죠. 하하.”
태수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마쳤다.
그 웃음 한편엔 너무도 무거운 마음이 담겨 있었다.
닥터 쿠엔틴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다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어떤 심정인지 나도 그렇고, 다들 얼추 짐작이 갈 거야.”
“그러실까요?”
“사실 NGO에 올 때 가볍게 오는 의사들이 많아. 그래서 현실을 마주했을 때 좌절하거나 포기하는 의사들도 상당하지.”
“이해합니다.”
태수가 대답한 직후였다.
빙긋.
닥터 쿠엔틴이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반대로 여기서 삶의 이유를 찾은 의사들은 절대 포기하지 않아. 오히려 실력이 급상승하는 경우가 많지.”
“이렇게 환자를 보면 누구라도 그럴 겁니다.”
“하하. 그렇긴 해, 음. 그리고 솔직히 지금 다들 닥터 최와 닥터 정을 간 보는 중이야.”
뜻밖의 말에 태수가 눈썹을 들썩였다.
“간을 보다니요?”
“프내기가 될 건가, 동료가 될 건가. 하고 말이야.”
“음. 꾸띠가 보기엔 어떻습니까?”
태수가 역으로 묻자 닥터 쿠엔틴이 실없는 웃음을 흘렸다.
“후후. 내가 아무나 날 별칭으로 부르게 하겠어?”
“그런가요?”
“다들 알게 모르게 두 사람을 인정하기 시작했어. 살레나 일까지 알려졌으니 이젠 누가 의심을 하겠어.”
그 소리에 태수가 멈칫했다.
“그 일이 알려졌다고요?”
“역시 몰랐나봐. 음……. 잠깐 같이 가지.”
“어디를요?”
“따라와.”
닥터 쿠엔틴은 빙글 미소 지으며 앞섰다.
태수는 일단 노트를 챙겨들고 뒤를 쫓았다.
그렇게 두 사람이 도착한 장소는 살레나가 머무는 병실 앞이었다.
“여긴?”
“쉿.”
드륵.
닥터 쿠엔틴이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저 멀리 살레나가 보였다.
그런데 그 모습이 어제와 너무도 달랐다.
“a, b, c…….”
알파벳?
그럼?
태수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마주한 닥터 쿠엔틴은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닥터 최가 살레나를 살렸어.”
“아…….”
“살레나는 이제 괜찮아. 아니, 전보다 더 좋아질 거야.”
닥터 쿠엔틴이 확답을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