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3465
Chapter 233화.
그런 태수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이 기장 목소리가 한 번 더 들려왔다.
“샘 분대장에게 개인적인 감정은 없습니다.”
“…….”
아무도 반응하지 않았다.
기장은 상관없었는지 태수를 정확히 호명하며 물었다.
“그보다 닥터 최, 다시 묻겠습니다. 직접 내려간다고 하셨습니까?”
“네.”
“진심이십니까?”
기장이 재차 물어오자 태수의 눈썹이 바짝 올라갔다.
‘아, 진짜.”
들이 받아?
태수의 표정이 확 굳어졌다.
참을 이유가 없으니 참지 않았다.
“지금 시간이 남아돌아서 헬기 내부 구경하는 줄 압니까?”
“방금 1차 작전을 막아선…….”
기장이 뭔가 말하려 했다.
그런데 태수의 귀에 신경 거슬리는 단어가 딱 꽂혔다.
태수는 기장의 말을 끊고 쏘아붙였다.
“작전? 무슨 작전.”
“환자 이송 작전 중입니다.”
“실패해도 문책 몇 마디, 가벼운 징계로 넘어갈 그런 대외비 작전말입니까?”
“PKO는 어떤 생명도 가볍게 여기지 않습니다.”
기장의 목소리에 힘이 가득 실렸다.
그 순간 태수의 머리끝까지 화가 치솟았다.
“방금 억지 하강은 저 아랫마을과 무관한 일이었습니까?”
“그 부분은 죄송합니다.”
“그러니까……. 네?”
강하게 쏘아붙이려던 태수는 순간 귀를 의심했다.
모두 똑같은 표정이었다.
“…….”
헬멧 무전기는 저절로 고요해졌다.
기장은 스스로 나서야할 때란 걸 아는지 짤막하게 덧붙여 말했다.
“방금 문제 지점을 확인했습니다.”
“그랬겠죠.”
“닥터 최의 행동이 틀리지 않았습니다. 살피지 못한 제 불찰입니다.”
“그, 그러니까요.”
태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답했다.
상대가 잘못을 시인하는데, 거기에 대고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그보다 갑작스런 분위기 전환에 다들 얼떨떨해 했다.
기장은 뒤통수에도 눈이 달렸는지 그 분위기를 정확히 읽고 이어서 말했다.
“오랜만에 민간인 구출 작전이라 마음이 급했습니다.”
“사정은 피차 아니까 뭐…….”
“다시 하강하려 장소를 살폈지만 여의치 않습니다. 그래서 물은 겁니다.”
기장이 깔끔하게 상황설명까지 마무리 지었다.
이쯤 되면 태수가 목소리를 높이는 게 부적절해진다.
기장의 진심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은 서로 협조해야 할 사이란 걸 인지하고 있었다.
그 하나만 분명해도 나머지는 상관없었다.
태수는 앞선 그의 질문을 상기시켰다.
뜬금없지만 지금 대답했다.
“내려갈 겁니다. 진심으로.”
태수가 대답한 직후였다.
스윽.
기장이 뒤를 돌아봤다.
부기장에게 잠시 조종간을 넘긴 모양이었다.
그는 빠르게 샘 분대장을 찾았다.
“분대장, 거기 천장에 홈이 하나 보일 거야.”
“찾았습니다.”
“당겨.”
“썰.”
샘 분대장은 기장의 말에 따라 홈에 손을 넣어 아래로 당겼다.
철판이 하나 열리며 뭔가 와장창 떨어졌다.
후두둑.
바닥에 쏟아진 걸 들어 보인 라이언 병장이 깜짝 놀랐다.
“카라비너, 하강기?”
“로프도 떨어졌습니다.”
안토니 일병이 기다란 줄을 들며 답했다.
마지막으로 천장을 주시하고 있는 샘 분대장이 말했다.
“전동 와이어도 있어.”
놀란 그들의 반응에 기장이 나지막이 말했다.
“응급수송헬기에 그 정도도 없을 거 같았나.”
“기장님.”
“말 걸지 마. 기류가 심상치 않으니까.”
스윽.
기장은 무심하게 반응하며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바로 앞에서 벌어진 일에 태수와 정민수, 김혁권은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저 기장 대체 뭐야.”
“진작 알려주든가.”
“저래놓고 혼자 시크하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험담은 무조건 한국어였다.
하지만 지금 필요한 걸 떡 하니 제공한 건 사실이었다.
그때 샘 분대장이 천장에 숨겨진 전동와이어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걸로 들것을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굵직하니 잘 빠졌네요.”
“그리고 저 로프를 활용하면 내려갈 수 있습니다.”
“길이가 충분할까요?”
태수가 질문함과 동시였다.
투두두.
헬기가 다시 아래로 하강하기 시작했다.
태수의 시선이 기장에게로 향했다.
방금 사과해놓고 다시 내려가는 게 이상했다.
그때 기장의 뜬금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로프 길이는 대략 350피트, 헬기는 300피트까지 하강한 후 호버링하겠다.”
“…….”
“샘 분대장, 발칸반도 D작전 잊었나?”
기장이 곧바로 이어서 물었다.
휙.
태수와 모두의 시선이 샘 분대장에게로 향했다.
예전부터 왕래가 있던 뉘앙스가 담긴 질문 탓이었다.
로프를 쥔 샘 분대장의 눈빛이 결연하게 반짝였다.
“아닙니다. 분명 기억하고 있습니다.”
“곧 포인트 상공에 도착한다. 서둘러야 할 거야.”
“썰.”
샘 분대장이 묵직하게 답했다.
그리고 라이언 병장과 안토니 일병에게 손짓했다.
휙휙.
군인들끼리 통하는 수신호인 듯 했다.
그 신호에 맞춰 라이언 병장과 안토니 일병은 빠르게 움직였다.
그런 그들을 향한 의료진들 표정은 의아하기만 했다.
“D작전은 뭐야?”
“쟤들은 뭐 말만하면 포인트 타령인지.”
“그래서 어쩌자고.”
아는 게 없으니 답답함만 더해져갔다.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된 느낌이라 더욱 어정쩡했다.
곧 샘 분대장이 세 사람에게 다가왔다.
“잠시 주목해 주시기 바랍니다.”
“말씀하세요.”
“헬기가 호버링하면 제가 먼저 들것과 함께 내려갈 겁니다.”
“네.”
“그리고 근처 나무에 로프를 최대한 사선으로 묶어 놓을 테니까 그걸 타고 내려오시면 됩니다.”
척.
샘 분대장은 태수에게 카라비너 세 개를 건넸다.
받아든 태수는 그 용도를 정확하게 몰라 눈을 끔빽거렸다.
“이게 뭡니까?”
“카라비너라고 레펠할 때 사용하는 겁니다.”
“아, 레펠……. 네? 우리보고 지금 레펠을 하란 말입니까?”
태수가 휘둥그레 눈을 뜨며 물었다.
샘 분대장은 짧고 분명한 목소리로 답했다.
“맞습니다.”
“헬기에서 땅까지 저 로프에 의지해서 내려가는 거요?”
“정확합니다. 그럼 준비 되는대로 진행하겠습니다.”
휙.
샘 분대장은 설명이 끝남과 동시에 돌아섰다.
해야 할 일이 많은 모양이었다.
그때 기장의 목소리가 헬멧 무전기에서 들려왔다.
“당장 내려갈 방법은 그거 밖에 없습니다.”
“하, 하하.”
“건투를 빕니다……. 포인트 도착 10초 전.”
응원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는 목소리에 힘을 줘 상황을 알렸다.
태수의 시선은 어느새 기장 뒤통수를 노려보고 있었다.
‘겁나게 고맙다, 새끼야.’
짜증이 솟구쳤지만 겉으로 표현하지 못했다.
앞서 한 말이 있어 불평불만을 보일 수가 없었다.
그걸 번복하는 건 태수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이젠 오기 문제였다.
레펠?
까짓것.
꽈악.
태수는 카라비너를 야무지게 쥐었다.
그런데 정민수의 두 눈은 흔들리고 있었다.
“이렇게 얇은 비너 하나에 이 육중한 몸을 맡기라는 건 억지 아니야?”
“내가 이 세상에서 쫓아다닌댔지, 저 세상까지 따라간 댔습니까?”
천하의 강심장인 김혁권이 완강한 거부를 보였다.
태수는 뭐라 할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두 사람의 심정을 십분 이해하고 있었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터였다.
그런데 그럴 시간도 없었다.
헬기가 허공에 멈추는 느낌이 강하게 다가왔다.
투두두두.
“호버링 포인트 도착, 후문 개방.”
기장의 외침과 동시에 뒷문이 열렸다.
휘이익.
“윽.”
순간 몰아치는 바람에 눈을 뜨기조차 힘들었다.
태수는 한 손으로 바람을 대충 막고 실눈을 떠 봤다.
바깥세상을 본 순간 입이 저절로 떡 벌어졌다.
“헉.”
저 아래 보이는 지상의 모든 게 점보다 더 작았다.
게다가 지상까지 아무것도 없었다.
안정장치란 어달 뒤져봐도 찾을 수가 없었다.
여기서 떨어지면 무조건 이승과 세이 굿바이 해야 할 상황이었다.
정말 끽소리도 못하고 죽을 높이였다.
‘와, 씨.’
절로 속에서 욕지거리가 튀어나오려 했다.
오기를 보이던 태수도 솔직히 다리가 후들거렸다.
저길 로프 하나에 매달려 내려간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었다.
“샘, 우리 다른…….”
태수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샘 분대장을 찾았다.
샘 분대장은 이미 뒷문 끝에서 있었다.
태수와 눈이 마주침과 동시였다.
“분대장 샘, 강하.”
휙.
로프에 의지한 채 뒤로 풀쩍 뛰어사라졌다.
그걸 본 태수는 아찔함보다 울컥한 심정이 더 앞섰다.
“말하는데 가냐.”
소리쳐도 이미 때는 늦었다.
이젠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태수도 암담한 심정으로 물들어갔다.
쿡.
누가 옆구리를 찔렀다.
움찔해 그쪽을 바라본 태수는 얼른 시선을 반대로 되돌렸다.
“…….”
김혁권이 험악한 눈빛으로 노려보고 있던 탓이다.
지금 태수는 시선을 피하고 딴청을 부리는 게 최선이었다.
그런데 김혁권이 그냥 넘어갈리 없었다.
순간 김혁권의 헬멧이 태수 헬멧에 적중했다.
턱.
“읍.”
태수가 움찔한 찰나 헬멧 무전기에서 김혁권의 스산한 한국어가 들려왔다.
“누가 하나 죽어야 끝날 일이라면 솔선수범 합시다.”
“살려……. 주세요.”
“버티지 말고 순순히 움직입시다. 그나마 로프도 없으면 자유낙하가 될 거니까.”
으르렁.
턱밑까지 치받친 김혁권의 표정엔 진심만이 가득했다.
너무 진심이라 문제였다.
태수는 차라리 레펠을 택했다.
버텼다가 자유낙하 하는 거 보다 훨씬 나은 선택이 분명했다.
그래도 한 마디는 했다.
“지금 제가 이 상황을 즐긴다고는 생각하지 마십시오.”
태수 또한 진심이었다.
그때 정민수가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뭔가 골똘히 생각하던 그가 진지하게 물었다.
“분명히 낯선 상황인데, 낯설지 않은 느낌은 뭘까요?”
“닥터 정은 또 뭔 소립니까.”
“헬기에서 레펠……. 아, 맞다. 꿈.”
정민수가 상기시키자 태수가 크게 움찔했다.
“사하드에서 내가 꿨다던 꿈?”
“응. 그 젠장할 꿈.”
“그때 분명히 다들 익숙하고 아주 정확하게 착지를……. 조용히 할게.”
“잘 생각했다.”
정민수조차 태수에게 강한 적개심을 보이고 있었다.
그런데 태수도 조금 어이가 없긴 했다.
그저 꿈인 줄 알았다.
당연히 이뤄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떤 정신 나간 의사가 헬기에서 레펠로 떨어질까.
그런데 그게 자기 자신이었다.
꿈과는 확연히 다른 상황이지만 같은 행동을 해야 하는 건 틀림 없는 사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