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3515
Chapter 283화.
사사삭.
서둘러 멈춰서며 군용 모르핀 주사를 그대로 환자 엉덩이에 찔렀다.
“NGO입니다. 모르핀부터 투여하겠습니다.”
이건 선 조치 후 보고와 같은 개념이었다.
피폭 환자일 경우는 특히나 모르핀 주사가 우선이었다.
수류탄 조각은 살을 파고들뿐만 아니라 엄청난 열을 동반한다.
그 열에 중증화상의 2차 피해가 발생한다.
그러니 통증부터 줄여야 다른 치료가 가능했다.
모르핀의 효과는 즉시 나타났다.
“끄으, 으으, 으으으…….”
환자의 신음소리가 확연히 줄어들었다.
태수는 재빨리 상처의 흔적을 역추적해 피폭 거리를 추측했다.
‘오른팔에 파편이 하나 보이는 걸 봐서……. 최소 30미터, 6시 방향?’
휙.
태수는 가늠과 동시에 반사적으로 시선을 돌렸다.
역추적한 계산이 얼추 맞았는지 폭탄이 터진 흔적이 선명하게 보였다.
확인했으면 됐다.
다시 환자에게로 돌아오던 태수의 시선이 한 곳에 멈췄다.
“…….”
지금 눈에 담은 모습에 태수는 그대로 굳어졌다.
이렇게 여유를 부릴 시간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곳을 응시하던 태수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빌어먹을.”
분노하면서도 시선을 잡아끌고 있는 건 어느 모녀의 모습이었다.
엄마는 수류탄에 정면으로 피폭을 받았는지 온몸이 엉망이 되어 사망했다.
아이는 살아있었다.
5살 정도로 보였다.
얼마나 놀랐는지 멍한 표정이었다.
상처도 상당했다.
그러나 아이는 엄마의 품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엄마가 죽었단 사실도 믿지 못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심지어 아이는 울지도 않았다.
피범벅이 된 엄마의 손을 하염없이 붙들고 있었다.
태수만 처참한 광경을 목격한 게 아닌 모양이다.
곧 김혁권의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가 인이어를 통해 들려왔다.
– 띠릭. 사망자 두 명 발견……. 부부로 추정. 서로 부둥켜안고……. 갔습니다.
– 띠릭. 진짜 엿 같다. 이쪽은 일가족이야. 중년 부부와 형제로 추정되는 남자들……. 서로 보호하려다가……. 사망한 거 같아.
정민수의 목소리에도 비통함이 들끓었다.
컨테이너를 열며 발견한 모양이었다.
지금 각자 확인한 죽음이 끝이 아닐 거다.
이제 시시각각 발견 될 거다.
그 수가 얼마나 될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태수의 가슴이 거칠게 요동쳤다.
두근 두근 두근.
피가 얼마나 쏠리는지 머릿속이 어질어질할 정도였다.
총알이 주는 공포는 될 것도 아니었다.
전쟁의 한복판에서 느껴지는 무기력함과 비참함이 엄습했다.
“왜, 도대체 왜.”
왜 이들이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갑자기 모든 게 다 싫어지고 있었다.
이 지옥도 속에서 자신들이 무엇을 얼마나 할 수 있을지 의심까지 들었다.
코를 찌르는 화약 냄새와 피 냄새가 더욱 혼란을 재촉하는 거 같았다.
이잠바크, 네팔 ABC, 사하드…….
지금까지 거쳐 온 모든 마을들은 맛보기 축에도 끼지 못했다.
이 순간, 이 자리, 이곳이 진짜 야전이었다.
점점 혼란에 젖어들 무렵이었다.
“…….”
으득.
태수가 돌연 입술을 깨물었다.
그저 잘근 씹는 정도가 아니었는지 입술 틈으로 핏물이 얼핏 보였다.
이어서 허리춤으로 가늘게 떨리는 손을 뻗었다.
그리고 버튼을 쥐어짜듯이 누르며 한마디 씩 씹어뱉었다.
“사람이,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 살리는데……. 무슨 이유가 필요합니까.”
– 아니지.
“그럼 덮어놓고 살립시다.”
띡.
태수가 무전기 버튼을 놓고 숨을 크게 쉬었다.
혼란을 날숨에 담아 다 쏟아냈다.
“후우우.”
그제야 시선에 흔들림이 사라지고 굳건함이 가득했다.
전에 없을 강인한 눈빛이었다.
고된 훈련을 이겨내며 단련된 건 육체만이 아닌 모양이다.
그리고 태수만 그 훈련을 이겨내지 않았다.
– 띠릭. 나 오늘 말리지 마요. 여기서 조금이라도 감추는 게 있으면 평생 악몽 꿀 거 같으니까.
– 띠릭. 컨테이너 분해는 씨발, 일단 사람부터 살리고 보자.
두 사람의 각오를 들은 태수가 다시 무전기를 눌렀다.
“가자.”
예열?
그딴 건 필요 없었다.
이미 온몸이 불덩이처럼 들끓고 있다.
살리고 또 살리는 일만이 가슴 가득 끓는 속을 달랠 수 있을 터였다.
오늘 만큼은 내일을 그리지 않았다.
이 순간, 이 자리에서 모든 걸 쏟아낼 터였다.
그 각오와 결심으로 태수는 곧바로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태수의 첫 번째 환자는 바로 눈앞에 있었다.
수류탄 간접 피폭을 당했고, 방금전 모르핀으로 통증을 경감시켜 놓았다.
그래서 그런지 신음소리는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
지금도 청년은 다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오른쪽 팔다리가 피로 범벅된 모습도 한 번 더 확인했다.
분명 만만치 않은 상처다.
그러나 많은 시간을 투자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태수는 짧고 굵게 질문부터 던졌다.
“영어 할 줄 아십니까?”
“…….”
청년은 답이 없었다.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고 고민할 거 없었다.
이럴 땐 바디랭귀지가 있었다.
톡, 톡.
태수가 가볍게 청년을 건드렸다.
아픔과 둔탁한 느낌은 다른 터라 청년이 살짝 고개 돌려 바라봤다.
오른쪽 얼굴을 가린 채 왼쪽 눈으로만 세상을 보는 중이었다.
그런 그와 시선이 마주한 순간 태수는 순간 멈칫했다.
청년의 왼쪽 눈에 눈물이 걸려 있었다.
그 물기 가득한 눈빛 속엔 지금이 현실에 대한 원망과 증오, 분노가 담겨 있었다.
아무도 자신을 건들지 않도록 밀어내는 느낌도 함께였다.
“…….”
그 눈빛이 섬뜩할 정도였다.
태수는 그 심정을 100퍼센트 이해할 수 없다.
확실한 건 지금 그는 치료를 받아야할 환자란 점이었다.
기세에서 밀리면 치료를 할 수 없다.
환자를 이기겠단 의미가 아니다.
치료를 위해서라면 다소 강압적으로 행동할 때도 있었다.
안타깝게도 지금이 그때였다.
“…….”
그륵.
외투 지퍼를 내린 태수가 하얀 의사 가운을 내보였다.
출동가방에선 청진기를 꺼내 보였다.
마지막으로 태수는 청년의 눈을 마주 응시했다.
“…….”
“…….”
청년도 태수를 마주 쏘아봤다.
그런데 완강하게 밀어내진 않았다.
의사란 직업에 대해 알고 있단 눈치가 분명했다.
이곳 말노이는 양쪽 진영이 대립하는 경계지역이라고 들었다.
파손된 건물들을 보면 첫 출동한 모하르와 비슷하게 발전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럼 중형급 도시정도 될 테니 의사를 가끔 접해봤을 터였다.
시선을 마주한지 대략 5초 정도지나고 있었다.
눈 몇 번 깜빡할 정도의 짧은 시간이다.
지금은 그 5초가 천금보다 더 소중한 시간이었다.
이쯤 투자했음 됐다.
태수는 지금 인내심이 많지 않았다.
환자가 알아듣지 못한다고 해도 양해는 구했다.
이어서 환자 오른팔 하박을 붙들었다.
“실례합니다.”
“…….”
환자가 버텼다.
그 순간 태수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빨리, 짜샤. 환자 많아.”
“흡……. 음.”
당황한 환자는 자신도 모르게 힘을 뺐다.
그럼 됐다.
태수는 바로 응급처치에 들어갔다.
사삭.
손길이 빨라질수록 환자의 눈이 그렁그렁 거렸다.
덜덜.
환자의 팔은 물론 몸까지 가늘게 떨렸다.
팔을 응급처치 중이라 태수는 그 떨림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음?”
이 느낌.
어딘지 모르게 익숙했다.
아니, 많이 느꼈던 감정의 표현이다.
그건 바로 ‘공포.’ 였다.
동공반응부터 몸의 떨림까지 확실했다.
직감한 태수는 크게 당황했다.
대체……. 왜?
이렇게 난리가 난 도시에 찾아온 자신을 왜 경계한단 말인가.
의사와 환자는 친구다.
적어도 태수의 지론은 그러했다.
그런 자신이 환자에게 무서움의 대상이 된다는 건 충격적인 일이었다.
‘내가 그렇게 무섭게 생긴 것도 아니…….’
속으로 불만을 내뱉던 중얼거림이 끝을 맺지 못했다.
지금 중얼거린 말 속에서 원인을 찾았다.
환자의 문제가 아니다.
태수 자신이 문제를 키우고 있었다.
강인한 기세가 환자를 움츠리게 하고 있었다.
환자의 입장에서 그려본 태수는 자신의 불찰을 확신했다.
환자보다 여유가 없는 의사?
‘제정신이냐?’
최악도 그런 최악이 없었다.
지금까지 환자를 친구라고 생각한 게 머릿속에만 있었음을 지금 깨달았다.
진짜 친구라면 이 순간 어떻게 할까.
확실한 건 지금 태수, 자신과 같이 행동하진 않았을 터였다.
그때였다.
– 우리에겐 전부가 한 명이고, 한 명이 전부가 될 수 있어.
제임스에게 들었던 충고가 문득 떠올랐다.
그제야 태수는 자신이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를 깨달았다.
지금 상황에선 의사가 돌봐야할 환자는 100명이 맞다.
그렇다고 환자에게도 의사가 100명은 아니었다.
환자에게 의사는 단 한 명이었다.
그게 태수의 실수였다.
100명의 환자를 모두 끌어안으려 욕심만 앞세우고 있었다.
그 다급함이 눈앞의 환자가 가진 아픔조차 멋대로 판단하고 있었다.
“후우.”
숨을 내쉬며 마음을 다스렸다.
급했다.
이 순간에도 분명 죽음의 문턱까지 다가간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순간 만큼은 눈앞에 있는 청년만이 유일한 환자여야 했다.
마음이 바뀌니 표정부터 달라졌다.
딱딱하던 태수의 얼굴에 자그마한 여유가 생겼다.
환자를 향한 시선엔 진심어린 안타까움이 녹아 있었다.
태수는 그 표정 그대로 다시 환자를 바라봤다.
“…….”
재촉하지도 않고, 서두르지도 않았다.
환자의 허락을 받지 않은 의료행위는 고통을 주는 거와 다름 없었다.
정말 ‘급할수록 돌아가라.’란 말 그대로 행동하고 있었다.
‘그래, 네가 안심이 되면 신호를 주겠지.’
쓴 생각과 동시에 태수는 한쪽 입꼬리를 살짝 들어 올려 보였다.
별 의미 없이 습관 같이 짓는 표정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환자가 처음으로 반응했다.
“…….”
스르륵.
몸에 힘을 풀어 팔을 내렸다.
그렇게 당길 때는 감췄던 그가 지금은 스스로 내보이고 있었다.
태수는 그 변화가 거짓처럼 느껴졌다.
심지어 모든 걸 내려놓고 자포자기한 느낌이 절대 아니었다.
믿고 맡기겠단 느낌이 강하게 풍겨왔다.
‘어?’
환자의 급작스러운 변화에 태수는 얼떨떨했다.
그건 잠깐이었다.
태수는 어렴풋이 짐작했다.
의사인 자신의 마음에 따라 환자도 달라진다.
아직 완전히 이해되진 않았다.
좀 더 시간을 가지고 생각해야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분명한 건 환자가 행동으로 허락했음을 보여줬다.
이젠 응급처치를 시작할 때였다.
기다린 순간인 만금 태수의 손이 날렵하게 움직였다.
가장 먼저 식염수로 오른쪽 얼굴의 피와 먼지부터 닦아냈다.
쪼르륵. 터덕.
“그렇지, 조금만 참자고…….”
잔잔한 목소리로 설득하는 입과 달리 손길은 조금 빠르고 거칠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