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3559
Chapter 328화.
김혁권이 왼쪽 2층 침대 위층에 슬쩍 걸친 모습으로 시선을 마주하고 있었다.
“그렇게까지 놀랄 줄은 몰랐습니다.”
“인기척이란 단어에 대해서 생각 좀 해보십시오.”
“나중에 시간되면요. 으?!”
풀쩍!
김혁권은 멀쩡한 계단을 놔두고 2층에서 뛰어내렸다.
높이가 낮아 부상을 염려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 사이 태수가 소파에 쓰러지듯이 주저앉았다.
“으. 심장 벌렁거려.”
턱.
가슴을 짚은 태수가 앓는 소리를 했다.
다가온 김혁권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주먹으로 한 대 처요.”
“명쾌한 해결책 감사합니다.”
“별 말씀을. 그런데 전에도 이런 비슷한 일이 있었던 거 같지 않습니까?”
그의 질문에 태수가 가슴을 두드리다 멈칫했다.
“첫날 이랬던 거 같은데요.”
“시간은 반복된단 말이 괜한 건 아니었나 봅니다.”
“역사가 반복된다고 하는 거고요. 언제 퇴원하셨습니까?”
태수가 정정해주며 물었다.
김혁권은 확실히 환자복을 벗어던진 상태였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환자였기에 더더욱 의아했다.
반면 김혁권은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조금 전에요.”
“축하드리는데, 별책부록 같은 녀석은 어디 갔습니까?”
“어디 갔겠습니까.”
“PX?”
태수가 묻자 김혁권은 뚱하게 반응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걸 굳이 묻는 습관은 잘못된 겁니다.”
“격하게 반성하고 있습니다.”
“그보다 닥터 행크스를 찔러보겠다던 그쪽은 환자복 차림으로 여기까지 어쩐 일입니까?”
“많은 우여와 다채로운 곡절을 헤치며 온 길입니다.”
태수가 장황하게 운을 떼자 김혁권은 바로 경계했다.
“난 별로 궁금하지 않습니다.”
“궁금하셔야할 텐데요.”
“아니요. 닥터 최썰 듣다가 지쳐 잠드는 건 한 번이면 족합니다.”
“후후.”
척.
태수가 환자복 주머니에서 수당봉투를 꺼내 내려놓았다.
본부 사무실까지 다녀왔는데 빈손일 리가 없었다.
그걸 본 김혁권의 태세는 너무도 자연스럽고도 당연하게 바뀌었다.
“그래서 차는 뭐로 준비할까요. 커피 아니면 음료수?”
“천천히 준비하셔도 됩니다.”
“그럼 듣는 내 목이 마를 때까지 실컷 떠들어 봐요.”
“두 분과 헤어지고…….”
태수는 불과 한 시간 남짓한 사이에 일어난 일을 말하기 시작했다.
태수가 으름장을 놓았지만 그 시간은 그렇게 길지 않았다.
기껏 10분 정도였다.
그리고 그 시간이 지나자 김혁권의 손엔 당연히 수당이 쥐어져 있었다.
그는 두툼한 수당을 세기 바빴다.
삭삭.
“어허, 어허허!”
실없는 웃음소리가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다.
오죽하면 태수가 물을 정도였다.
“그렇게 좋으십니까?”
“그걸 말이라고 합니까. 닥터 최, 우리 다음에도 전쟁터로 출동합시다. 생명수당이 참 짭짤하니 좋네요.”
“그게 마음대로 됩니까.”
“안 되면 말고. 으하하!”
삭삭.
돈을 헤아리는 순간 웃음꽃이 얼굴에 가득했다.
지금 그에게 뭘 말해도 다 들어줄 터였다.
그 만큼 넉넉해 보였다.
가만히 보고 있던 태수는 순간 꾀를 냈다.
김혁권.
그저 머리만 좋은 인물이 아니다.
NGO본부는 물론 PKO의 군인들까지 암암리에 인맥을 다져 놓고 있었다.
한인 마을에서 된장찌개 끓일 때 준비한 조리도구들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 만큼 정보력도 좋을 터였다.
그때 휴대폰 문자 소리가 울렸다.
띠링.
이어서 김혁권이 안타깝단 표정으로 태수에게 알렸다.
“닥터 정 문자입니다. 브레드한테 잡혀서 응급수술 들어간다네요.”
“축하한다고 전해주세요.”
“이미 문자 받을 시간은 지났겠죠.”
툭.
이제 김혁권은 그런 패턴 정도는 가볍게 읽고 있었다.
태수도 자신의 일이 아니라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환자 아니면 의사니 응급수술에 들어가는 게 대단한 건 아니었다.
태수도 내일 아침에야 병실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길게 생각할 거 없이 바로 김혁권을 찾았다.
“혁권씨. 닥터 행크스에 대해서 조사 좀 해주세요.”
그 소리와 동시였다.
파라락!
김혁권의 주변에 수당이 나풀거렸다.
얼마나 놀랐는지 생떼 같은 수당도 뒤로하고 눈을 크게 뜬 채 물었다.
“지금 닥터 최가 나한테 남의 뒤를 캐란 겁니까?”
“뒷조사가 아니라 그냥 조사요.”
“그러니까 몰래 하라는 거잖아요.”
“좋은 일입니다.”
태수가 애써 말했으나 김혁권이 인상부터 구겼다.
불법적인 부탁이라고 못 박아두고 있었다.
그럴 때 눈빛은 참 초롱초롱 했다.
태수는 태연한 척 다음 말을 이었다.
“의뢰 내용은 닥터 행크스가 보인 무력증의 원인을 알아봐 달란 겁니까?”
“팩트는 맞는데 기본 바탕부터 꼬여 있는 느낌인데요.”
“가만히 있어 봐요. 그렇게 뒤로 정보를 캐서 의욕을 키울 소스를 찾겠다라.”
김혁권은 역시 예리했다.
태수는 차분하게 주의부터 끌었다.
“저기요. 혁권씨, 제 말 들리세요?”
“그런 방법이라면 아무래도 내가 활용도가 높겠죠. 뒷동네가 확실히 다양하게 알아볼 수 있으니까요.”
“앞에서 대놓고 조사해 달라는 겁니다.”
태수는 딱 잘라 정정해줬다.
그러나 김혁권은 그런 말이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닥터 최 손까지 더럽힐 생각 없으니까 안심해도 됩니다.”
“아무튼 저는 그의 과거를 통해서 힌트를 찾고 싶단 겁니다.”
태수는 포기하고 그냥 할 말만 했다.
그때 김혁권이 잠시 생각하더니 황당한 얼굴로 말했다.
“잠깐만, 닥터 행크스는 NGO소속이잖아요. 그럼 사무국에 얘기하면 안 되나?”
“제 말이 그 말입니다.”
“흐음, 하지만 그 정도 정보로 만족할 닥터 최가 아니지.”
“저기요. 여보세요.”
태수는 이젠 허탈하기까지 했다.
곧 김혁권이 홀로 납득하더니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이거 오랜만에 실력 발휘 좀 해야겠습니다.”
“그냥 제가 할게요.”
“후후, 이쪽 일을 만만하게 보시나 보네.”
“됐다니까요.”
태수는 그냥 손을 저어버렸다.
그릉. 그릉.
수액거치대를 다시 움직이며 무거운 몸을 이끌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사삭!
침대에 있던 김혁권이 어느새 코앞에 나타났다.
무척 차갑고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으스스하게 말했다.
“고객님, 서로 얼굴 붉히지 맙시다.”
“제가 언제 고객까지 된 겁니까?”
“날 찾았으면 고객이시지. 그리고 의뢰내용 다 알아버렸는데 내가 뒤통수치면 어쩌시려고.”
김혁권의 스산한 말투와 표정이 참 압권이었다.
그러나 태수는 뚱한 얼굴로 말했다.
“세상이 전부 알아도 되는 아주 깨끗한 내용입니다.”
“그건 당신 생각이고, 아무튼 그 일은 내가 접수하는 걸로 합시다.”
“그냥 제가 좀 힘들어도 사무국 다녀오고, 여기저기 물어보고 다닐게요.”
스윽.
태수가 지나치려는 찰나였다.
김혁권이 다시 앞을 가로 막으며 스산하게 으르렁거렸다.
“이런 식으로 나오면 재미없지.”
“또 뭘요.”
“이 동네가 어둡다고 해도 상도덕은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막나가시면 곤란하지.”
“그래요. 그냥 의뢰라고 합시다.”
태수가 입씨름하기 싫어 슬렁슬렁 승낙함과 동시였다.
빙그레.
돌연 김혁권의 얼굴이 환하게 피어났다.
목소리까지 친절하게 바꾸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성심을 다해 뒤처리까지 깔끔하게 모시겠습니다.”
“마음대로 하세요.”
“그런데 고객님. 이런 건은 원래 의뢰비가 좀 셉니다.”
삭삭.
손가락을 가볍게 문지르는 김혁권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제야 태수는 그가 왜 이러는지 알았다.
이번엔 태수의 수당이 더 많았다.
그것도 개인적으로 따로 지급된 수당이었다. 부상의 정도와 입원 기간을 고려한 책정이라 분배 대상에서 제외됐다.
그런데 마침 좋은 건수가 생기자 바로 영업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태수는 아직 회복 중이다.
입씨름도 힘들었다.
차라리 그 장단에 맞춰주기로 했다.
“그래서 얼마?”
“크흠……. 이 정도.”
“따불.”
“따, 따불!”
김혁권의 눈이 찢어질 정도로 크게 떠졌다.
반면 태수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이상한 어감을 바로 잡았다.
“어디 은근슬쩍 뺑튀기를 하십니까. 따따불 말고, 따불.”
“칫. 안 통하네. 조건은?”
“지금부터 24시간 내에 제 손에 쥐어져야겠죠.”
태수가 제시한 조건에 김혁권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에이, 그 조건에 그 가격은 힘들지.”
“그럼 패스.”
“에헤이. 얼마까지 알아보고 오셨는데 배짱이실까. 뭘 급해. 차근히 얘기하면 되지.”
김혁권이 바로 꼬리를 내리자 태수가 확정지으려 했다.
“그래서 콜?”
“장사 하루이틀 하는 것도 아니고…….”
“셋.”
태수가 돌연 숫자를 세자 김혁권이 멈칫했다.
“이게 밝은 일만 손을 대는 게 아니라서…….”
“둘.”
“딱 두 장만 더 얹읍시다.”
“하나. 그럼 파기하…….”
역카운터를 모두 센 태수가 협상결렬을 말하려 할 때였다.
다급했는지 김혁권이 얼른 먼저 소리냈다.
“거 성질 하고는.”
“…….”
“알았어요. 알았다고. 요새 일감이 없어서 내가 그 가격에 해주는 겁니다.”
김혁권이 한껏 앓는 소리를 했다.
그 순간 태수가 시계를 가리키며 말했다.
“한 시간 당기는데 한 장씩 추가.”
“사랑합니다. 호갱. 아니, 고객님.”
“대신 마감 10분 늦어지는데 한 장씩 차감.”
“그렇게 등 떠밀지 않아도 갑니다. 이래서 어린놈들이 돈 쥐고 있으면 싸가지 없단 소리 듣는 겁니다.”
김혁권은 투덜거리면서도 점퍼를 챙겨 움직였다.
태수는 그런 그의 등에 질문 하나를 건넸다.
“몸은 괜찮으신 겁니까?”
“으, 으윽. 갑자기 관절통이……. 이러면 일에 지장이 생기는데, 아니야. 혁권아. 고객과의 신뢰가 재산이라고 했잖아.”
“멀쩡하시네요. 잘 다녀오세요.”
“고객님. 제가 사실 부상을…….”
“패스.”
휙!
태수는 매정하게 돌아섰다.
그 순간 뒤에서 김혁권의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요즘 애들은 하여간…….”
들리지도 않는 험담을 이어가며 숙소를 나갔다.
탁.
문이 닫히자 태수의 얼굴이 퀭하게 변했다.
온전하지 못한 몸인데 몇 시간 동안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여파였다.
얼른 자기 침대로 어기적거리며 향했다.
풀썩.
“아그그. 이런 재미라도 있어야 살지.”
태수가 빙그레 웃었다.
태수는 팔을 이마에 올렸다.
툭.
주변이 고요하니 닥터 행크스에 대한 생각이 다시 차올랐다.
“분명 반응이 있었는데.”
태수의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스르륵.
몇 마디 중얼거리다 눈이 감겼다.
그 만큼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피곤한 하루였다.
다음날 아침.
눈을 뜬 태수는 주변부터 확인했다.
“아, 숙소지.”
살짝 몸이 뻐근했다.
어제 생각보다 더 많이 움직였던 여파다.
알지만 그럴만했으니 어쩔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