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415
00418 418화
태수는 그들을 보자마자 얼굴이 환하게 피어났다.
“얘들아.”
“자식, 너 너무 컸더라.”
삐쭉거리는 목소리와 달리 밝은 얼굴로 반기는 건 역시나 동기들이었다.
악수와 포옹 등.
각자 개성대로 인사를 마친 후에야 차분히 이야기할 수 있었다.
역시나 관심사는 태수의 일화였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그 위험한 카슈미르에도 갔고 네팔 지진 현장에도 있었다니.”
“신문으로 다 봤다며.”
“그래도 당사자한테 이야기 듣는 거랑 같아?”
“다들 일 안 하냐?”
태수가 묻자 다들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였다.
“1시간 정도는 여유 있어.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네가 왔는데 어떻게든 시간 빼야지.”
“아무리 레지던트 막바지라도 마무리는 잘해야지.”
“안 그래도 네 덕분에 겁나게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전문의들이 무슨 일만 터지면 너랑 비교하는데 가끔은 환장하겠다니까.”
한 동기의 말에 태수가 머쓱한 미소를 지었다.
“그건 좀 미안하네.”
“왜 미안해? 우리가 남세스러운 거지. 똑같이 배워서 똑같이 의사 면허 땄는데 지금은 이렇게 차이가 나잖아.”
“그건 아니지.”
“아니기는. 진짜 우리는 네가 자랑스럽다. 그래서 더 열심히 뛰어다녀서 그런지 가끔은 칭찬도 받고 그런다고.”
동기들은 태수를 칭찬하기에 바빴다.
그 어떤 동기도 시샘의 눈길을 보내지 않았다.
태수 덕분에 그들의 입지가 올라갔다.
그것만으로도 태수에게 감사한 눈치들이었다.
다음 날 아침.
태수는 교수 회의실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떨리는 건 없었다.
설립 취지도 확실하고 레지던트 대우도 획기적인 신속대응센터다.
그에 대해 어필하는데 긴장할 이유가 없었다.
더구나 석정현 이사장이 전권을 일임한다고 했다.
그렇기에 태수의 눈빛은 더욱 다부졌다.
“들어오시랍니다.”
병원 직원이 그를 안내했다.
끼익.
회의실 문이 열렸다.
“흠흠.”
태수는 가볍게 헛기침으로 목을 풀고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
회의실 안에는 40대 이상 중년인들이 가득했다. 교수 회의라 교수만 참석한 줄 알았는데 나이 지긋한 학장들도 보였다.
태수는 그들의 주목을 받으며 단상으로 향했다.
턱.
단상에 도착한 태수는 우선 깊이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의대 졸업생 최태수입니다.”
씩씩한 인사말이었다.
학장들과 교수들은 마음에 드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중 병원장이 대표로 태수의 인사를 받았다.
“이렇게 직접 보니까 더 훤칠하네. 오랜만에 학교에 방문한 소감은 어떤가?”
“모두 환영해 주셔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최 선생 소식을 눈과 귀가 즐겁게 듣고 있었으니까.”
“큰일처럼 부풀려진 거 같아 민망합니다.”
태수는 겸손하게 대화를 이끌었다.
그 이후로 여러 교수들과 인사가 이어진 후였다.
병원장이 다시 말했다.
“듣자 하니 신속대응센터를 대표해서 왔다던데.”
이제부터 본론이다.
태수의 분위기가 서서히 바뀌어 갔다.
지금까지는 졸업생 입장에서 말했다.
그러나 이제부턴 달랐다.
석정현 이사장과 박완용 센터장을 대신해 선 자리였다.
-당당하게, 꿇릴 거 없어.
하석준 팀장의 격려가 한 번 더 태수의 마음을 단단하게 조여 줬다.
그렇다고 딱딱하게 진행할 필요는 없었다.
부드럽게.
하지만 진심을 담아.
태수는 본론을 꺼냈다.
“어제 저희 측에서 보낸 공문을 받아 보셨을 겁니다.”
“음, 전과 다르게 상당히 소상하게 적혀 있더군.”
“그사이에 조율된 사항들이 포함된 내용입니다. 앞으로도 더 조율해야겠지만 커다란 가닥은 모두 알고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
태수가 당당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사이 학장들과 교수들은 복사된 공문들을 슬쩍슬쩍 뒤적거렸다.
자연히 질의응답 시간이 이어져야 했다.
그러나 누구도 먼저 시작하지 않자 이정민 교수가 질문의 포문을 열었다.
“최 선생, 공문을 보아하니 레지던트를 다수 요청했는데 그렇게 많이 필요한가?”
“그건 동성종합병원과 신속대응센터, 양쪽에 인원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모든 레지던트가 같은 대우를 받는 건 아닐 거 같은데. 그럼 메리트가 떨어지지 않을까?”
이정민 교수는 생각보다 날카롭게 물어 왔다.
태수의 은사이기도 하지만 많은 레지던트를 거느리고 있는 흉부외과 교수다.
학교와 병원, 레지던트의 미래까지 생각해야 하는 입장이란 뜻이다.
태수는 외려 이렇게 물어봐 주니 좋았다.
“신속대응센터는 철저하게 실력 위주로 인원을 편성할 계획입니다. 열심히 일하는 만큼 많은 수익을 얻는다. 이건 어느 곳에서나 통용되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실력 위주라. 거기 있는 모두가 똑같은 실력을 가져야 한다는 건가?”
“물론 사람마다 장점이 다르고 특기가 다릅니다. 그래서 신속대응센터는 경상자 전담팀, 중상자 전담팀, 중환자 전담팀으로 구성될 겁니다.”
“그럼 경상자 전담팀이나 중환자 전담팀으로 많이 몰릴 거 같은데. 상대적으로 힘든 중상자 전담팀에 가려고 하진 않을 테니까.”
“당연히 월급과 수당은 차등 지급됩니다. 그리고 인사고과에 따라 다른 팀으로 이동도 가능합니다.”
태수의 말에 교수들이 조금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신속대응센터 내에서도 무한 경쟁을 종용하게 되는 거 아닌가.”
“의사는 환자를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갈고닦아야 한다. 교수님들께 셀 수도 없이 들은 말입니다.”
“…….”
질문한 교수가 순간 입을 다물었다.
자신이 했던 말이기에 반박할 여지가 없었다.
태수는 면박을 주려는 게 아니었기에 바로 뒷말을 이었다.
“저희 이사장님과 센터장님도 같은 생각이십니다. 그리고 노력하는 의사에게 그만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 또한 당연하게 생각하시고요.”
“무턱대고 열심히 하라고 하는 건 말이 되지 않지.”
“그렇지만 또 노동 착취를 하겠다는 건 아닙니다. 공문을 통해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레지던트들에게도 따로 쉴 곳을 제공하고 비번 제도를 운영할 겁니다.”
“그러니까 열심히 일하면 그만한 대가를 톡톡히 돌려준다는 이야기군.”
어느 교수의 말에 태수가 바로 화답했다.
“그겁니다. 그리고 대도시인 대전과 주변 도시의 응급 상황을 해결해야 하니 실력이 안 늘 수가 없을 겁니다.”
그 뒤로도 태수와 교수들의 대화가 계속 진행됐다.
“그렇다면 이 문제는…….”
“그 문제에 대해서는 이렇게…….”
문답의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거의 1시간 가까이 지났을 무렵이다.
태수의 얼굴이 조금은 지쳐 있었다.
그런 반면 교수들의 표정은 묘하게 변했다.
충선대학병원에서 포화 상태인 레지던트들을 활용할 수 있는 기회다.
그리고 레지던트들이 자신을 갈고닦아 유명해진다면 자연스럽게 충선대학교 의과대학의 명성이 올라간다.
무엇보다 졸업생인 태수가 직접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중이다.
그가 신속대응센터에서 중요한 위치라는 걸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각종 언론 매체를 통해 유명세를 탄 태수였다. 그로 인해 충선대학병원은 이미 많은 이득을 보고 있는 중이다.
여러 가지를 생각해 봤을 때 결코 손해 보는 일이 아니었다.
물론 어중이떠중이를 보낼 순 없었다.
학교의 명예가 달린 일이기에 그만한 인재들을 보내야 옳았다.
가만히 대화를 듣고 있던 이정민 교수가 태수에게 물었다.
“거기에 우리 학교 OB나 교수도 필요한가?”
“물론입니다.”
“수업 일정도 있는데 말이야.”
“그건 사전에 조율하면 문제가 없을 거 같습니다.”
그 소리에 교수들의 귀가 쫑긋거렸다.
솔직히 당겼다.
일단 보수가 너무도 높다.
게다가 갖가지 응급 환자 케이스를 접할 수 있는 기회다.
단순히 외과 계열만 필요한 게 아니라 내과 계열과 마취과, 영상의학과 등.
모든 의과가 원활하게 맞물려 돌아가야 하는 시스템이다.
게다가 자신의 이력을 좀 더 풍성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그런 생각을 하니 교수들도 회가 동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쉽사리 지원하겠단 말을 하진 않았다.
병원장도 있고 졸업생 앞에서 위신이 떨어진다는 생각 때문이다.
태수는 그걸 눈치채고 슬쩍 흘리듯이 말했다.
“만약 추천해 주고 싶은 선배님이 계신다면 언제든지 메일을 보내 주십시오.”
“음.”
“그럼 레지던트들을 어떻게 하실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태수가 최대한 정중하게, 하지만 당당하게 물었다.
이래도 싫다면?
그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침묵이 흐르는 회의실 내에 병원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문제에 대해서 좀 더 이야기를 해 봐야 할 거 같으니까 먼저 나가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그럼 밖에서 결과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오랫동안 시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태수는 깊이 고개를 숙이고 회의실을 나갔다.
박수라도 받을 법한 부드러운 프레젠테이션이었다.
그러나 모두 그럴 정신이 없었다.
각자 생각에 바쁠 뿐이었다.
태수가 회의실을 나간 후였다.
병원장이 학장들과 교수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자, 우리도 이젠 결론을 내려야 할 거 같은데요.”
“역시 공문으로만 보는 것과 직접 대화하는 건 받아들여지는 게 다른 거 같습니다.”
“그럼 조 교수님은 어떤 결론을 내리셨습니까?”
“전 찬성입니다. 학교 측에서 손해 볼 일이 없습니다.”
조 교수의 말이 끝나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모두를 보낼 순 없는 거니까 실력 위주로 선별하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저희 병원에도 물론 실력 좋은 레지던트들을 남겨 두어야 하고요.”
“아마 지원을 받는다면 많은 인원이 몰려들 가능성이 큽니다. 그에 따른 적당한 기준부터 만들어야 될 거 같습니다.”
여러 의견이 여기저기에서 들려왔지만 결론은 이미 나 있는 것 같았다.
그래도 병원장은 차분하게 확정을 지으려 했다.
“일단 의견들은 잘 들었고요. 마지막으로 거수로 결정을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업무 협약에 찬성하시는 분들은 손을 들어 주십시오.”
병원장의 말이 끝난 직후였다.
쑤욱. 쑥.
하나둘 머리 위로 손을 올렸다.
참석한 학장과 교수들의 반수가 훨씬 넘어 거의 전부가 손을 들었다.
이미 예상한 결론이었지만 병원장은 다시금 이야기했다.
“그럼 업무 협약을 진행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그에 따른 자세한 인원 선별과 일정 조율에 대해서는 내일 다시 이야기하시죠.”
“네. 수고하셨습니다.”
모두가 인사를 하는 것으로 교수 회의가 끝이 났다.
태수는 이정민 교수의 방에서 그 소식을 전해 들었다.
“모두 찬성해 주셨다는 겁니까?”
“대부분이지만 찬성했지.”
“아자.”
태수는 강하게 주먹을 쥐었다.
이정민 교수가 빙긋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모교 선후배랑 일하는 게 그렇게 좋나?”
“저야 당연히 편하고 좋죠. 솔직히 그보다 신속대응센터가 빨리 문을 열 수 있어서 더 좋긴 합니다.”
“환자를 우선적으로 생각한다는 신문에 났던 말들이 전혀 과장되지 않았어.”
“교수님께 배운 거니까 책임지셔야죠.”
태수가 슬쩍 넉살을 보이자 이정민 교수가 크게 웃었다.
“하하, 그렇지. 내가 그렇게 했지. 그럼 이거 어떻게 책임져 줘야 되나?”
“흉부외과에서 최고 인재들만 보내 주십시오.”
“그렇게 하지.”
“감사합니다.”
태수가 환한 미소로 대답한 순간이었다.
크게 웃던 이정민 교수가 의미심장한 얼굴로 물었다.
“나는?”
“네?”
“나는 필요 없나? 나도 아직 쓸 만한데 말이야.”
이정민 교수가 찡긋거리며 물었다.
태수는 바로 넉살 좋게 대답했다.
“이메일로 지원서 보내 주십시오. 저희도 살펴볼 게 많아서요.”
“뭐? 하하!”
“하하, 농담입니다. 와 주시면 감사하죠. 꼭 오셨으면 좋겠습니다.”
태수는 진심이었다.
의과대학 시절부터 자신을 아껴 준 은사다.
연성대학병원에서 인턴 생활을 하게 해 준 것도 이정민 교수였다.
처음에는 적응하지 못해 원망도 했지만 이젠 아니다.
그렇다고 은사란 이유로 와 줬으면 하는 건 아니다.
이정민 교수는 충선대학병원 흉부외과에서도 손꼽히는 실력자다.
그가 신속대응센터로 온다면 실력 좋은 집도의가 한 명 추가되는 것이다.
교수란 직책 때문에 먼저 이야기를 꺼낼 수 없었지만 상대가 먼저 이야기해 주니 감사할 따름이었다.
신속대응센터와 충선대학병원의 업무 협약이 성사된 후였다.
레지던트 선별이 신속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사이에 전문의들의 스카우트도 원활하게 진행됐다.
개원을 향한 일정이 순풍에 돛을 단 듯이 순탄하게 이어져 갔다.
태수도 밤낮으로 신속대응센터 개원 준비에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정민수가 태수를 찾아왔다.
“손님이 왔어.”
“손님이라니?”
“예종혁 대원. 네 귀국 소식 듣고 온 모양이야.”
정민수의 말에 태수가 빙긋 미소를 지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예종혁 대원이 찾아왔는데 그냥 보낼 순 없었다.
“어디 있어?”
“의사 휴게실에서 기다리라고 했어. 이야기하기 편할 거 같아서.”
“먼저 간다.”
태수는 가볍게 인사하고 몸을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