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503
00506 506화
태수의 황당한 표정을 본 원무과장이 굳어진 얼굴로 물었다.
“뭐가 이상해?”
“아닙니다. 제가 착각했나 봅니다.”
“진짜 별거 없지? 이사장님이 다른 건 몰라도 의사들 월급은 무조건 뒷말 나오지 않게 하라고 했다고.”
원무과장이 걱정하자 태수는 크게 고개를 저었다.
“진짜 문제없습니다. 문제가 된다면 월급이 많은 거죠.”
“뭐야, 그거였어?”
“하하. 네. 예상보다 많은 거 같아서 확인하려고 온 겁니다.”
“하긴, 1팀 월급이 다른 팀에 비해서 조금 많은 편이긴 하지. 응급이나 난해한 환자들이 대부분이니까.”
원무과장도 이제야 내심 긴장된 표정을 지웠다.
푸근하게 변한 원무과장이 이어서 말했다.
“이쪽에서는 진짜 전산대로만 하는 거니까 앞으로도 문제는 없을 거야.”
“알겠습니다.”
“그보다 최 선생, 그거 알아?”
원무과장이 다른 주제를 이야기하려 했다.
하지만 태수는 짐작되는 게 전혀 없었다.
“어떤 걸 말씀하시는 겁니까?”
“전에 최 선생이랑 친구랑 같이 수술비 기부했었잖아.”
“그랬죠.”
태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원무과장이 다음 말을 이어 갔다.
“그 후에 한 달에 10명씩 선별해서 공짜 수술을 해 주고 있어.”
“공짜 수술이요?”
“동성 재단에서 후원해 주고 있어.”
원무과장의 말에 태수가 황당한 얼굴로 변했다.
“이사장님이 다 하시네요.”
“그 발단이 최 선생이고 말이야.”
“저요? 저는 그냥 친구를 돕기 위해서 꼼수를 부린 건데요.”
태수가 솔직하게 말하자 원무과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지. 그거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겠어. 웃기는 건 이번에는 이사장님이 움직인 게 아니고 석재민 사장이 움직였더라고. 물론 이사장님이 전폭적으로 지지해 주셨고.”
“그랬습니까?”
“뭐가 어찌 되었건 간에 앞으로도 기부 수술은 쭉 이어진다니까 병원 이미지에도 상당히 도움이 될 거 같아.”
원무과장의 말에 태수가 동조했다.
“어려운 사람들이야 기부 수술 받아서 좋고, 재단에서는 홍보 효과로 좋죠.”
“그런 거 보면 참 부자들이 머리가 좋은 거 같아. 돈 조금 쓰고 왕창 긁어모으는 법은 타고나는 건가 봐.”
“서로 도움이 되면 좋은 거죠. 그보다 의사들도 뭔가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태수의 말에 원무과장이 한쪽 입꼬리를 진하게 올렸다.
“안 그래도 센터장님하고 병원장님하고 의견을 냈는데, 이사장님이 아주 멋진 대답을 하셨다던데 말이야.”
“뭐라고 하셨는데요?”
“의사들이 얼마나 번다고 그걸 넘보냐고. 내가 그 말 듣고 얼마나 황당하던지.”
원무과장은 다시 생각해도 어이가 없는지 표정부터 바뀌었다.
그건 태수도 마찬가지다.
의사라면 상당히 고소득 직종에 속한다.
게다가 동성종합병원과 신속대응센터는 다른 병원에 비해서도 월급이 높은 편이다.
의사들뿐만 아니라 간호사와 일반 직원들까지도 많이 번다.
그런데도 석정현 이사장이 그렇게 이야기했다니 태수도 황당했다.
그러나 석정현 이사장이라면 또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게 당연하다고도 생각됐다.
보통 사람들과는 생각하는 게 달라도 너무 달랐다.
갑자기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태수는 반가운 마음으로 통화했다.
“어머니, 어쩐 일이세요?”
“네 앞으로 편지가 온 게 있어서.”
“집으로요? 누가요?”
“국방부라고 적혀 있는 거 같은데.”
어머니의 말에 태수가 멈칫했다.
국방부?
그렇다면…….
태수의 생각이 이어지는 사이였다.
갑자기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영장 나왔다.”
“…….”
태수의 얼굴에 씁쓸한 미소가 떠올랐다.
드디어 군대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가야 하는 곳이다.
이른바 신의 아들은 아니라지만 태수가 거기에 해당될 리가 없었다.
“가야지. 그럼, 가야지.”
해야 할 일이라면 얼른 해치우고 싶었다.
태수에게 입영 영장이 나왔다는 소식은 빠르게 신속대응센터에 퍼졌다.
“최 선생, 영장 나왔다며.”
“전문의 단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영장이야.”
“국방부는 이럴 때만 빠르다니까. 3년 금방이야. 걱정하지 말고 다녀와.”
이미 군대를 갔다 온 선배 전문의들이 슬쩍슬쩍 태수를 놀려 댔다.
그들에게 시달리다가 벗어난 태수의 표정이 복잡했다. 어머니에게서 연락받은 지 불과 몇 시간 지나지 않았다.
이야기한 사람이라고는 브레드 김이 전부였다. 태수가 알기론 브레드 김은 미주알고주알 떠벌리고 다니는 성격이 절대 아니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소문이 빨리 퍼졌을까?
태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응급실 문을 열었다.
안으로 들어간 순간 그의 귀에 쏙 들어오는 익숙한 목소리가 있었다.
“우리 태수가 군대를 간다니까. 군대 말이야, 군대. 이야, 전문의 취득한 지 얼마나 됐다고 정든 병원을 떠나야 하나 몰라.”
박성민이었다.
뭐가 그리 즐거운지 얼굴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반면, 박성민과 대화하는 전담 간호사 조현정은 안쓰러운 표정이 가득했다.
“정말이에요? 군의관은 3년이라던데요.”
“3년. 아주 끔찍하지. 국방부 시계는 가만히 있어도 흘러간다고? 개소리야. 난 지겨워서 죽는 줄 알았다니까.”
“어머, 어떻게 해요.”
“그래도 남자면 당연히 가야지. 우리 태수가 뭐 빠지게 구르든지 말든지 내 알 바 아니고. 군대는 가야 된다는 말씀.”
“……저기, 서, 선생님.”
조현정 간호사가 갑자기 말을 더듬자 박성민이 눈을 끔뻑거렸다.
“갑자기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아니요. 뒤에…….”
“뭔데 그렇게 귀신이라도 본 표정…….”
말하며 뒤를 돌아본 박성민의 입이 쩍 벌어졌다.
어느새 다가온 태수가 강한 눈빛으로 노려보고 있던 탓이다.
“헉! 태, 태수야.”
“또 선배님이십니까?”
“아아, 아니, 그게 뭐, 사실이잖아. 내가 뭐 거짓말한 것도 아니고. 그게, 그러니까…….”
박성민이 우물쭈물하자 태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뭐 좋은 일이라고 동네방네 소문까지 내고 그러십니까?”
“내가 무슨 소문을 냈다고 그래?”
“그럼 누구누구한테 말씀하셨는데요?”
“몇 명 안 돼. 저기 2팀 박 선생하고 조 선생, 4팀에 임 선생하고 김 선생하고 또…….”
처음에 당당하게 손가락까지 접으며 말하던 박성민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그 전문의들은 박성민과 자주 몰려다니는 인물들이다.
실력은 좋지만 행동보다 말이 더 빠르다고 소문이 자자한 의사들이기도 했다.
태수가 어이없단 투로 한마디 툭 던졌다.
“왜 소문이 퍼졌는지 알 거 같습니다.”
“뭐, 숨길 일도 아닌데.”
“그래도 제 나름대로 생각할 시간은 주셔야죠.”
“자식이. 선배한테 어디 눈깔을 부라리고…….”
박성민이 울컥하려 하자 태수가 나지막이 불렀다.
“선배.”
“……흠흠. 어제 형광등 갈았나? 오늘따라 되게 밝네.”
“에휴.”
태수는 절로 한숨이 터져 나왔다.
그때 하석준 팀장과 브레드 김이 다가왔다.
하석준 팀장이 먼저 말했다.
“최 선생, 영장 나왔다며.”
“팀장님도 들으셨습니까?”
“병원 직원들도 다 알던데.”
하석준 팀장의 말에 태수가 박성민을 한 번 더 째려봤다.
그와 동시에 어깨를 움츠린 박성민이 괜히 조현정 간호사에게 물었다.
“어제 수술한 환자 경과 확인했죠?”
“출근하시자마자 말씀드렸는데요.”
“그, 그게 몇 시간이나 지났는데. 환자한테 그러면 안 되지. 가서 직접 봐야겠네. 먼저 실례합니다.”
박성민이 은근슬쩍 자리를 벗어나려 하자 태수가 한마디 했다.
“술 사세요.”
“하하, 얼마든지. 이따가 봐.”
박성민은 머쓱한 얼굴로 빠르게 멀어져 갔다.
하석준 팀장은 어떻게 된 일인지 대번에 파악하고 태수를 위로했다.
“어차피 알게 될 거였는데, 뭐.”
“그래도 제가 말씀드리는 거랑은 다르죠.”
“박 선생도 아쉬워서 저러는 거겠지. 그보다 이렇게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으니 연기 신청은 못하겠는데?”
“할 생각도 없었습니다.”
태수의 말에 하석준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미룰 생각은 없다고 했으니까. 그보다 입대가 언제야?”
“한 달 정도 남았습니다.”
“조금 쉬었다가 가야 할 테니까 빨리 이쪽 일을 정리해야겠네.”
“아마도 그래야 할 거 같습니다.”
“그렇게 알고 있을 테니까 언제까지 출근할지 결정하고 바로 알려 줘.”
툭툭.
하석준 팀장이 가볍게 어깨를 다독이고는 다시 멀어져 갔다.
그 빈자리를 브레드 김이 채웠다.
“이거 내가 실수한 거 같은데.”
“그러게 말입니다. 왜 박 선배님한테 말씀하셨습니까?”
“이야기하던 중에 툭 나왔어. 이렇게까지 일이 커질 줄은 상상도 못했고.”
브레드 김이 미안한 표정을 지어 보이자 태수가 싱긋 웃었다.
“벌어진 일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어차피 알게 될 일이기도 하고요.”
“그렇게 이야기해 주면 고맙고. 대신에 술은 내가 살게.”
“진짜 코가 삐뚤어질 정도로 마실 겁니다.”
“그 정도는 각오해야지.”
미안함으로 어깨가 무거웠던 브레드 김이 환하게 웃었다.
태수가 입대한다는 소문이 퍼진 지 2주가 지났다.
그사이 태수는 정말 매일 술을 마셔야 했다.
하석준 팀장, 브레드 김, 박성민과 신창용.
그들이 돌아가며 술을 사는 바람에 1팀은 매일 술파티를 벌였다.
그들뿐만이 아니라 이정민 교수를 포함한 다른 팀 전문의 선배들도 태수에게 거침없이 술을 먹였다.
그리고 도성민과 서강재 등.
전문의 1년 차들도 돌아가며 태수에게 술을 샀다.
1년 차들 중에서 가장 먼저 군대를 가게 된 태수라 위로주를 사 주겠다는 의사들이 많았다.
“으. 속쓰려.”
덕분에 요새 들어 태수가 달고다니는 말투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마지막 출근이 며칠 남지 않은 무렵이다.
태수의 입대와는 관계없이 밀려드는 환자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전문의들과 레지던트, 그리고 간호사들까지 추가로 영입되어 일손이 늘어나자 그만큼 환자도 많아졌다.
태수는 돌아가는 흐름을 살피며 생각했다.
자신이 빠진다고 신속대응센터가 문을 닫을 거란 어이없는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았다.
다만 걱정되는 건 응급 환자가 발생할 때다.
지금까지는 태수와 브레드 김이 있었기에 생명이 경각에 달린 응급 환자를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그런데 태수가 빠지게 되면 그 부담이 브레드 김에게 가중될 터였다.
그런 상황을 깨달은 태수는 곧 한 사람을 떠올렸다.
그 의사는 자신만큼 응급에 강하다.
그라면 브레드 김과도 호흡을 맞춰 봤기에 충분히 대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태수는 자신의 생각을 알리기 위해 하석준 팀장의 방으로 향했다.
곧 태수는 하석준 팀장과 집무실 소파에 자리했다.
차를 한 모금 마신 하석준 팀장이 물었다.
“출근이 언제까지라고 했지?”
“이번 비번 전까지 출근하기로 했습니다.”
“얼마 안 남았네. 군대 간다고 마음이 복잡하지는 않고?”
“다들 가는 건데요.”
태수가 빙긋 미소를 짓자 하석준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막상 가 보면 진짜 별거 아니야. 그보다 어쩐 일로 날 보자고 한 거지?”
“민수를 여기로 데려왔으면 합니다.”
“역시 그랬군.”
“알고 계셨습니까?”
태수가 묻자 하석준 팀장이 빙긋 미소를 지었다.
“최 선생 빈자리를 대신하는 데 가장 적합한 의사는 정 선생밖에 없으니까.”
“이미 생각하고 계셨는데, 제가 너무 나서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건 아니야. 직접 후임을 지목해야 최 선생도 마음이 편하겠지.”
“솔직히 그래서 민수를 추천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태수의 말에 하석준 팀장이 이해한다는 눈빛을 보냈다.
“일정은 조절하고 있으니까 정 선생은 곧 이쪽으로 넘어올 거야.”
“알겠습니다.”
“더 하고 싶은 말은?”
“없습니다.”
“그럼 나가 봐. 며칠 안 남았는데 너무 무리하지 말고.”
“더 열심히 해야죠. 그럼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태수가 일어나려 할 때였다.
하석준 팀장이 말했다.
“왜 최 선생이 군대 간다는데 내 마음이 씁쓸한 걸까?”
“…….”
“돌아올 거지?”
하석준 팀장이 의미심장한 얼굴로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