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740
00743 743화
태수는 그런 유병태에게 빙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사람이 멀쩡할 때도 있고 힘들 때도 있는 거지.”
“이보다 몇 배는 더 힘든 수술을 해 놓고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던 의사가 갑자기 이러니까 내가 황당하잖아.”
“내가 유 선생을 너무 당황스럽게 했나?”
태수가 묻자 유병태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야. 전에는 뭔가 완벽한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좀 사람처럼 보이니까.”
“그래?”
“뭐 사람이 아니었다는 건 아닌데, 그냥 느낌이 그렇다고.”
유병태의 말에 태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래. 이게 맞아.’
이런 반응이 태수의 마음에 쏙 들었다.
스스로 완벽하고 싶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나자 더욱 상쾌해졌다.
김준혁에게 했던 그 말이 부메랑처럼 돌아온 후의 변화였다.
세상에 완벽은 없다.
특히 의사가 완벽을 논한다면 그건 이미 자격이 없는 걸지도 몰랐다.
성공적인 수술에서도 1퍼센트의 재발 위험을 걱정해야 하는 게 의사고, 99퍼센트로 실패할 수술도 1퍼센트를 갈망하며 진행하는 게 바로 외과 의사였다.
태수는 그런 의사이고 싶었다.
그게 카프레네가 바라는 의사였고, 제임스가 추구하는 의사다.
그리고 태수 자신이 목표로 하는 의사상이기도 했다.
잠깐의 휴식으로 기운을 차린 태수가 유병태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한 번에 끝내자.”
“아자! 해 보자고.”
“그럼 유 선생 쪽부터 간다.”
“드루와. 드루오라고.”
유병태는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그 눈빛은 전혀 장난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긴장감을 풀기 위한 작은 배려일 뿐이다.
전보다 부드러워진 태수였기에 자신도 그에 맞춰 수술실 분위기를 적극적으로 만들고 있을 뿐이었다.
다시 이어지는 수술.
정적으로 보이는 외적인 모습과 달리 손끝은 빠르고 치열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유 선생, 이쪽으로 좀 더 강하게. 더더더!”
“당기고 있다고. 확보 완료!”
“전기메스.”
치직.
태수가 전기메스로 어렵게 확보된 림프관을 자르자 유병태가 빠르게 지적했다.
“최 선생, 이쪽 좀 더 해야지.”
“여기 하고 있잖아.”
“잡고 있을 테니까 얼른 넘어와.”
“이쪽 끝. 그쪽으로 넘어갈게.”
태수와 유병태의 대화 소리가 빠르고 간결하게 오갔다.
때로는 거친 소리도 오가고, 부드럽게 달래는 목소리도 들려왔다.
그러면서 두 의사는 지금까지 이루지 못한 묘한 화합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그 화합은 수술실 분위기를 보다 열정적이고 진취적으로 바꿔 갔다.
어쩌면 완벽을 추구했던 태수의 고집이 이런 화합을 막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의사들이 바빠지자 당연히 이선정 간호사와 최소현 중위의 손길도 빠르게 움직였다.
“잠시만요. washing(세척)할게요.”
“거즈 바꾸겠습니다. 잠시만 멈춰 주시기 바랍니다.”
부드럽고 딱딱한 말소리가 언밸런스했지만 수술은 더욱 힘차게 진행되었다.
한 발자국 물러선 곳에서 살피던 여성현이 중얼거렸다.
“어제 둘이서 술 좀 마셨나.”
그러면서도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주사제를 준비했다.
모두의 열정을 쏟아 낸 수술은 다행히 큰 이상 없이 마무리될 수 있었다.
뒷정리까지 마무리 지은 태수와 유병태는 휴게실에 도착했다.
외과 계열 의사들이 두 의사를 반겼다.
“수술 끝났어?”
“결과는 어때?”
다들 물어 오는 소리에 태수가 대답했다.
“다행히 만족할 정도로 마무리됐습니다.”
“수고했어. 좀 쉬어.”
“그럼.”
가볍게 인사를 마친 태수와 유병태는 빈 소파에 나란히 널브러졌다.
풀썩.
“으아! 힘들다.”
“뻐근하네.”
“최 선생, 우리 이후에 할 거 없지?”
“아마도.”
“그럼 좀 자자. 난 피곤해서 도저히 안 되겠어.”
유병태는 그렇게 말하고는 먼저 눈을 감았다.
태수가 힐끔 쳐다보고는 나지막이 투덜거렸다.
“혼자 자냐?”
“너도 자든가.”
“그래야겠다. 이따 보자고.”
말을 마친 태수도 곧 눈을 감았다.
그런 두 사람을 본 외과 계열 의사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유병태는 원래 그런 성격이었지만, 태수가 휴게실에서 잠을 잔다는 게 놀랍단 얼굴들이었다.
“서혜부 림프절결핵 제거술이 그렇게 힘든 수술이었나?”
“그러게.”
다들 의아한 얼굴이었다.
태수의 귀에도 그 소리가 가느다랗게 들려왔다.
그러나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은 그저 잠깐이라도 잠들고 싶을 뿐이었다.
그 바람이 이뤄진 건지 태수는 곧 잠에 빠져들었다.
퇴근 무렵, 박지영은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겨졌다. 수술후 특별한 치료를 요구하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일찍 돌아올 수 있었다.
이선정 간호사에게서 호출을 받은 태수는 501호실에 들어섰다.
병상 3개가 이미 꽉 찬 모습이다. 먼저 수술한 이은진도 박지영과 같이 일반 병실로 돌아온 탓이다.
태수는 주미성과 이은진에게는 가볍게 눈인사만 하고 박지영에게로 향했다.
박지영의 병상은 다른 아이들과 조금 달랐다.
하체 부분에 낮은 틀이 세워져 있고, 그 부분이 안 보이는 천으로 덮여 있었다.
태수가 그 틀 위에 가볍게 손을 얹고 박지영을 내려다봤다.
“기분이 어때?”
“무통주사 때문에 아픈지도 모르겠어요.”
“아마 무통주사 다 맞으면 며칠 더 아플 거야. 그리고 수술 부위가 잘 아물 때까지는 속옷도 못 입는 건 알고 있지?”
태수가 말하자 박지영이 눈을 깜빡이며 긍정을 표현했다.
아직 마취가 완전히 풀리지 않아 몸을 움직이는 게 그렇게 쉽지 않은 탓이다.
그사이 태수는 바이탈부터 확인했다.
그때 박지영이 자그마한 목소리로 말했다.
“선생님, 고마워요.”
“뭐가?”
“선생님이 그렇게 해 달라고 하셨다면서요. 그리고 이 틀도 선생님이 부탁해서 만든 거라고 하던데요.”
박지영은 자신의 하체를 감싸고 있는 틀을 내려다봤다.
반원형이라 안에 공간이 있어 공기가 자연스럽게 통과할 수 있었다. 발끝 쪽은 막혀 있고 두툼한 천으로 덮여 있어 보온도 좋았다.
무엇보다 다른 사람이 환부를 보지 못한다는 장점이 있었다.
태수가 환부를 확인할 때는 주변에 커튼을 칠거고, 중요 부위에 덧댄 패드가 있기에 덜 부끄러울 수 있었다.
그런 모든 경우를 고려해서 만들어진 반원형 틀이다.
턱턱.
태수가 반원형 틀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마침 손재주 좋은 의무병이 있다고 해서 부탁한 거야.”
“그래도…….”
“그럼 이야기는 다음에 더 하고, 오늘 좌우간 수고 많았어. 많이 피곤할 테니까 충분히 쉬도록 해.”
태수는 빙긋 미소를 지으며 돌아섰다.
“은진이는 어때?”
“많이 좋아졌어요.”
“그래. 조금 더 회복하면 퇴원할 수 있으니까 마음 편하게 먹고.”
“감사합니다.”
이은진이 배시시 웃으며 인사했다.
“힘든 수술 견뎌줘서 고맙고.”
“아뇨. 저도 이야기 들었어요. 선생님과 유선생님은 죽을 때까지 잊지못할거에요.”
“……”
태수가 움찔했다.
이 맛이다.
그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수술경험이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이 순간.
이 맛에 의사한다.
미소가 떠나지 않았던 태수는 마지막으로 주미성을 바라봤다. 이선정 간호사가 전담으로 관리해 주고 태수에게 바로 보고했기에 몸 상태는 잘 알고 있었다.
태수는 이젠 자신의 시선을 피하지 않는 주미성에게 물었다.
“미성이는?”
“오늘 저녁부터 밥 먹는다던데요.”
“굿! 3일 내로 퇴원할 수 있을 테니까 조금 갑갑해도 참도록 해.”
끄덕.
주미성이 고갯짓으로 대답했다.
태수는 마지막으로 세 아이들을 둘러보고 말했다.
“지금까지 모두 잘 견뎌 줘서 고맙고, 앞으로도 잘 이겨 낼 거라 믿어. 그럼 내일 보자고.”
태수가 먼저 인사하자 아이들도 화답했다.
“수고하셨어요.”
“감사해요.”
“……조심히 가세요.”
세 아이의 인사를 받은 태수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돌아섰다.
태수가 병실을 나간 후였다.
이은진이 먼저 주미성을 바라봤다. 이은진은 중환자실에서 이제 돌아온 터라 주미성과는 초면이었다.
“저기…… 언니시죠?”
“아마도 그럴 거 같아요.”
주미성은 태수를 대할 때보다 더욱 부드러운 얼굴로 이은진을 대했다.
이은진도 자신을 거부하지 않는 주미성의 모습에 눈을 반짝였다.
“언니, 너무 예뻐요.”
“너도 예뻐.”
“아니에요. 언니에 비하면 전 좀 그래요.”
“무슨 소리야. 그렇지 않아.”
주미성이 아니라며 손을 저을 때였다.
가만히 듣고 있던 박지영이 톡톡 쏘는 말투로 끼어들었다.
“이 기지배야, 너 예쁘다니까.”
“언니는. 그보다 몸은 괜찮아요?”
“아니, 솔직히 아픈 건지 뭔지 모르겠어. 그냥 몸이 착 가라앉는 거 같아. 네가 어제 말해 준 그대로 느끼고 있는 중이야.”
“전신마취가 원래 힘든 거래요.”
주미성의 대답에 박지영이 살짝 째려봤다.
“그럼 그것도 말해 줬어야지.”
“말했어요.”
“그랬어? 뭐, 좌우간 그렇다고 치고. 최 선생님 진짜 멋지지 않냐. 실은…….”
박지영은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부터 있었던 일을 동생들에게 쭉 이야기했다.
같은 여자라 창피한 건 그래도 적은 편이었다.
그보다 태수가 자신을 배려하기 위해 어떻게 했는지 알려 주는 게 더 급한 것 같았다.
그런 이야기가 이어지는 사이 이은진도 말을 꺼냈다.
“저도 그랬어요. 지영이 언니랑 경우는 좀 다르지만 몇 번씩이나 오셔서…….”
이번에는 이은진이 겪은 이야기도 들려왔다.
반면, 주미성은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여자들끼리 소탈한 이야기는 가능해도 남자에 대한 대화는 아무래도 아직 꺼려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박지영을 위한 태수의 배려에는 조금 놀란 눈치를 보이기도 했다.
회의실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의사들에게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런 배려는 해 줘야지.”
“그것도 그런데 최 선생이 좀 달라진 거 같아.”
“아까 휴게실에서 쪽잠도 자더라고.”
여러 이야기가 섞여 있었지만 그중에서 태수의 일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크게 이슈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
수술받을 아이를 배려해 줬다는 해프닝 정도로 대화가 끝나 갔다.
회의실이 잠잠해질 때쯤 공우혁이 단상에 섰다.
“이런저런 이야기는 모두 나눈 거 같으니까 그만 돌아가도록 하시죠.”
“좋습니다!”
“내일 뵙죠.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의사들 모두 크게 소리 내며 각자의 숙소로 향했다.
그날 이후, 이틀 정도 별다른 일 없이 지나갔다.
외과 수술 일정도 없었다.
다만 흉부외과와 정형외과 등등 다른 외과 계열 수술들이 이어질 뿐이었다.
태수가 담당하는 501호 아이들은 회복이 좋았다.
아이들의 순탄한 회복이 태수를 비롯한 의사들에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람이었다.
며칠 사이 부쩍 즐거운 마음이 계속되었다.
그렇게 오늘 하루도 일과를 마친 태수와 이선정 간호사는 퇴근길에 올랐다.
“바쁜 시간이 지나가니까 좀 한가하기도 한 거 같습니다.”
“그러게요. 그보다 이제 주말인데 뭐 하시나요?”
“별거 있습니까. 방콕이죠.”
태수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자 이선정 간호사가 어이없이 바라봤다.
“집에만 있지 말고 좀 나가라고요. 몸에서 곰팡이 냄새 나겠어요.”
“청소해야 합니다. 송 간호사님이 불시에 들이닥쳤을 때 지저분하면 각오하라고 했거든요.”
“송 간호사님은 진짜 무서워하시네요.”
“무섭다기보다는 큰누나 같아서 저도 모르게 말을 듣는 거 같습니다.”
태수의 말에 이선정 간호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 분은 그럴 만하죠. 그럼 저는 선생님에게 어떤 느낌이에요?”
“그건 갑자기 왜요?”
“그냥 궁금해서요. 대답하기 어려워요?”
“아니요. 이 간호사님은 까칠한 둘째 누나 느낌입니다.”
태수의 말에 이선정 간호사의 눈꼬리가 바로 위로 솟구쳤다.
“거기서 ‘까칠한’이란 말이 왜 붙어요?”
“식사하시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세요.”
“뭐라고요?”
이선정 간호사가 살짝 째려볼 때 차가 서서히 속도를 줄였다.
“도착했습니다.”
“왜 말을 돌리고 그러세요?”
“말이 그렇다는 거지, 절대 까칠하다는 건 아닙니다. 송 간호사님은 편한 느낌이 강해서 상대적으로 비교하려니까 그렇게 말한 거라고요.”
태수가 얼른 변명하자 이선정 간호사가 노려봤다.
“못됐어.”
“그보다 오늘 저녁 메뉴는 뭐로 할까요?”
“전 까칠해서 아무거나 못 먹어요.”
이선정 간호사가 뒤끝을 보이며 툴툴거렸지만 장난기가 느껴졌다.
미소 지은 태수는 이선정 간호사에게 말했다.
“일단 올라가서 생각하시죠.”
그리고 차에서 내린 태수는 이선정 간호사와 빌라 안으로 들어갔다.
계단을 올라 현관문으로 걸어가던 태수와 이선정 간호사의 눈빛이 의아하게 변했다.
현관 앞에 스티로폼 상자가 놓여 있던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