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slayer's Class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91
191화
지크는 성의 정원 앞에 늘어져 있는 클로네를 발견했다.
축 늘어져 있는 클로네는 상당히 지친 얼굴이었다.
“클로네.”
지크의 목소리를 들은 클로네가 겨우 몸을 일으켜 그에게 손을 흔들었다.
지크가 그녀에게 다가갔다.
“임무가 만만치 않았나 보군.”
그 말에 클로네가 인상을 팍 찡그렸다.
“수도원에 빌어먹을 팔라딘 새끼들이 쫙 깔려 있더라고. 보리스랑 새로 온 신입 아니었으면 아슬아슬할 뻔했어.”
“루베른의 혈족들은 무사히 구해 왔나.”
클로네가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신성왕국. 그 개 같은 새끼들이 애들을 어떻게 다뤘는지 알면 당장 가서 교황 놈의 목을 비틀고 싶을걸.”
클로네가 흥분하는 걸 보니 수도원에 갇혀 있던 아이들의 처우가 꽤나 심했던 모양이었다.
“아리나 왕녀님은 어디 계시나.”
“그 시온인가? 네가 잡아 놨다던 패밀리 놈. 그 녀석 치료하러 지하로 내려가셨어.”
데커가 아리나에게 지크의 말을 전한 듯싶었다.
지크는 성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호들갑을 떠는 아슬란을 시종에게 맡긴 후, 에이런을 끌고 성의 지하 감옥으로 내려갔다.
“으으으으!”
영혼 봉쇄술에 묶여서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에이런이 이리저리 몸을 비틀며 반항했다.
파지지지직!
움직임에 방해를 받자 지크가 사슬을 통해 전격을 흘려 넣었다.
“끄으으으으!”
전격의 충격에 에이런이 바들거리며 그대로 쓰러졌다.
“얌전히 따라와라.”
지멘스에게 세뇌되어 광신도나 다름없는 에이런이었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빠져나가려고 온갖 수를 다 쓰려 했다. 하지만 지크의 손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지크는 지하 감옥 중 하나에 에이런을 처박아 두고 시온이 있는 곳으로 갔다.
우우우웅!
시온이 있는 방에서 빛의 마법이 번쩍이는 것이 보였다.
지크가 조용히 방 안으로 들어갔다. 아리나가 시온을 향해 빛의 마법을 쓰고 있었다.
“후우.”
한참 동안 마법을 쓰던 아리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그제야 뒤에 서 있던 지크를 발견했다.
“지크 경!”
“아리나 님.”
아리나는 지크를 보고 여느 때와 같은 미소를 지었다.
지크가 그녀를 보며 말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시스터 클로네에게 들어 보니 꽤나 격한 임무였던 것 같더군요.”
아리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수도원 안쪽까지는 잘 위장해서 잠입했는데 아이들을 데려오는 과정에서 추격대에게 들켰어요. 팔라딘들이 어찌나 많던지. 다행히 펠릭스 님의 활약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어요.”
“펠릭스가 말입니까?”
“네. 자신의 몸을 내던져서 아이들을 구하려는 모습이 오래전 이야기 속 신성 기사의 모습 그대로였답니다.”
아리나의 말에는 진심이 느껴졌지만, 지크의 머릿속에서 신성 기사 펠릭스의 모습은 영 그려지지 않았다.
“어쨌든 무사히 귀환하셔서 다행입니다. 아이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저희가 마련해 둔 안가에 우선 숨겨 뒀어요. 신성 왕국 쪽의 움직임이 잠잠해지면 아가멤논 성으로 데려갈 생각이에요.”
“좋습니다. 미케네라면 신성 왕국도 함부로 들이닥칠 수 없을 겁니다.”
부활한 아가멤논 가문은 드레이커의 혈맹으로 다시 인정받은 상태였다. 게다가 중부 유력 가문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는 곳이기도 했다.
그 때문에 신성 왕국이라 하더라도 함부로 미케네에 들이닥치는 것은 불가능했다.
설사 그런 것을 무릅쓰고 들어온다 하더라도 성을 지키고 있는 흑검 기사단이 그들을 그냥 둘 리가 없었다.
지크는 잠들어 있는 시온을 보며 아리나에게 물었다.
“저 녀석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아리나는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누가 어떤 식으로 끔찍한 실험을 했는지 몰라도 저 아이의 몸은 서서히 붕괴되어 가고 있어요.”
“지속적으로 발작을 해서 힐링으로 회복을 시켰는데도 나아지지가 않더군요.”
“그럴 거예요. 지크 경의 힐링은 엄청난 위력을 가지고 있지만 결국 자가 회복력을 극대화시키는 능력이에요. 저 아이처럼 이미 붕괴가 시작된 육체에는 아무리 힐링을 써도 현재에서 최선의 상태로 돌아갈 뿐 근본적으로 무너지는 몸을 치료할 수는 없어요.”
지크는 자신의 힐링으로 고칠 수 없는 것도 있다는 걸 처음 깨달았다.
그만큼 시온의 몸 상태가 정상적이지 않다는 뜻이기도 했다.
지크는 아리나를 보며 말했다.
“노스트라 패밀리의 고위층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중요 인물입니다. 어떻게 살릴 방법이 없겠습니까.”
지크의 말에 아리나가 고민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빛의 마법 중에 ‘리커버리’라는 마법이 있어요.”
“어떤 마법입니까.”
“망가진 신체나 영혼을 복구하는 마법이에요. 그 힘이라면 저 아이의 육체를 수복하는 게 가능할지도 모르겠어요.”
“좋군요. 당장 써 보도록 하죠.”
그러자 아리나가 고개를 저었다.
“안타깝게도…… 저는 그 마법을 쓸 수가 없어요. 제가 주로 쓰는 마법과 방향이 달라서요. 다만 한 가지 방법은 있어요.”
“어떤 방법 말씀입니까.”
아리나가 지크를 가리키며 말했다.
“지크 경이 그 마법을 쓰면 됩니다.”
“제가요? 저는 마법사가 아닙니다만…….”
지크의 말에 아리나가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리커버리 마법을 쓸 수 있는 아티팩트를 만들게요. 그럼 지크 경이 그 아티팩트를 이용해서 리커버리 마법을 쓰시면 돼요. 마법이라고는 하지만 지크 경이 평소 쓰는 힐링을 사용하면 될 거예요.”
지크는 아리나의 말에 깜짝 놀랐다.
“그게 가능합니까?”
“한번 시도는 해 봐야죠. 정 안 되면 앨리스가 리커버리 마법을 익힐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어요.”
“최대한 빨리 제작하는 것이 좋겠군요. 아티팩트를 제작할 때 어떤 것이 필요하십니까.”
그러자 아리나가 웃으며 말했다.
“이전에 가지고 계셨던 오리하르콘 검. 그 검이라면 충분히 리커버리 마법을 새길 수 있을 거예요.”
지크는 고개를 끄덕이며 보석검 롤랑을 꺼냈다.
보석으로 화려하게 치장된 롤랑을 보며 아리나가 깜짝 놀랐다.
“이건 완전히…… 옛 루베른 양식이네요.”
“루베른 양식이요?”
“예. 루베른 양식은 엄청나게 화려하고 세밀하거든요. 일부 학자들은 이런 루베른 양식을 보고 사치가 심해서 결국 제국을 세우고도 밀려났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기도 하죠. 하지만 실상은 달라요.”
“설마 보석의 힘을 그때부터 이용했던 겁니까?”
“잘 알려지지 않은 내용인데 알고 계셨군요. 맞아요, 루베른은 빛의 마법 말고도 보석을 이용한 ‘보석 마법술’을 개발해서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어요. 지금으로써는 실전된 기술이지만요.”
보석의 힘을 이끌어 내 마법을 사용하는 보석 마법술은 현재는 사라진 기술이었다.
몇 백 년 전 소실된 보석 마법이 지크가 강화한 보석검 안에 담긴 셈이었다.
하지만 지크는 별다른 말 없이, 아리나가 검에 리커버리를 새기도록 맡겼다.
더불어 새롭게 잡아 온 에이런 역시 심문을 부탁했다.
“어머, 저는 심문을 할 줄 모르는데요.”
“……예? 다리오를 고분고분한 순한 양처럼 만들어 놓으신 걸 봤습니다만?”
지크의 말에 아리나가 손뼉을 쳤다.
“아하, 그렇게 하면 돼요? 그건 쉽죠.”
아리나의 심문 방법이 상당히 궁금했지만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에 지크는 더 묻지 않고 그녀에게 맡긴 뒤, 지하 감옥에서 나왔다.
위로 올라가자 씻고 옷을 갈아입은 아슬란이 그를 기다리고 이었다.
“지크 경!”
말쑥해진 아슬란은 여전히 초췌하긴 했지만, 이전보다는 꽤 품위 있는 노기사로 바뀌어 있었다.
지크가 아슬란에게 물었다.
“근데 아슬란 경. 삼십 년 동안 그곳에서 뭘 먹고 버티신 겁니까?”
“주로 벽에 자라난 이끼와 흘러들어 오는 빗물을 먹고 겨우겨우 버텼소이다! 그래도 가끔 들어오는 들쥐를 발견한 날에는 포식할 수 있었지요!”
기사치고는 엄청난 생존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지크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인정하듯 미소 지어 보였다.
그가 움직이는 데 무리가 없음을 확인한 지크는 저주받은 망령의 저택을 해주 완료했다는 보고를 하기 위해, 아슬란과 함께 아틀라스의 사계성으로 향했다.
* * *
쾅!
하워드 드레이커가 집무실의 책상을 내리쳤다.
그 때문에 책상 위에 있던 수정구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냐!”
지지지직―
바닥에 떨어진 수정구에서 노이즈가 새어 나오더니 겨우 다시 상대방의 목소리가 전달됐다.
―“저, 저희도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파견 인원들 쪽에서는 전혀 뭔가 신호가 오지를 않아서…….”
“멍청한 놈들! 그럼 그놈들이 진짜 저택의 망령에게 다 붙잡혀 가기라도 했다는 소리냐!”
―“아직 그 내용까지는 파악이 되지가…….”
퍽!
하워드가 수정구를 발로 밟아서 깨뜨려 버렸다. 그가 거친 숨을 쉬면서 이를 갈았다.
“아벨은 도대체 어떤 놈들을 보냈길래 이따위 결과가 나와? 빌어먹을!”
그때였다.
똑똑.
하워드의 집무실로 비서가 들어왔다.
그가 비서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내가 부를 때까지 들어오지 말라 했을 텐데!”
평소에는 사람 좋은 척을 하던 하워드였지만 계획했던 일이 틀어지자 온갖 성질을 다 부리고 있었다.
당황한 비서가 하워드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의, 의원님께서 말씀하신 지크 드레이커 경이 사계성으로 귀환했습니다.”
“뭐?”
그가 비서에게 다가가 일그러진 얼굴을 들이밀며 물었다.
“지크 드레이커가 사계성으로? 도대체 무슨 일로. 설마 지정 임무를 포기한 건가?”
비서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드, 듣기로는 임무를 완수했다고…….”
“그럴 리가!”
하워드는 비서를 거세게 밀치며 급하게 집무실에서 나와 밑으로 내려갔다.
사계성의 중앙 홀로 가 보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웅성대고 있었다.
중앙 홀의 게시판에는 보안이 필요한 특수 임무를 제외한 완료 임무들이 게시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그 게시판을 보며 떠들어 대고 있었던 것이다.
“와, 그 망령의 저택을 진짜 해주했다는 말이야?”
“거기다가 그곳에 갇혀 있던 십자검 아슬란 솔마 경도 구출해 왔대.”
“장난 아니네. 지크 경은 기사단도 없으니까 혼자서 간 거 아냐?”
하워드가 감탄하는 사람들을 비집고 게시판 앞에 섰다.
지크 드레이커가 가주 지정 임무를 완료했다는 게시글을 확인한 그가 어금니를 꽉 물었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냐.’
왠지 웅성거림이 더 커진 것처럼 느껴지는 그때였다.
“의원님.”
하워드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뒤를 돌아봤다.
그곳에 지크가 서 있었다.
그가 하워드를 보며 말했다.
“의원님. 수염을 깎으셨군요. 몰라뵙고 그냥 지나칠 뻔했습니다.”
“지, 지크 경.”
하워드는 자신을 바라보는 지크를 마치 유령 보듯이 바라봤다.
지크가 하워드를 보며 씨익 웃었다.
“덕분에 흥미로운 경험을 했습니다. 해주를 하면서 저택을 둘러보니 꽤 독한 쥐새끼들이 많더군요.”
하워드가 마른침을 삼키며 말했다.
“허허. 그랬나. 고생이 많았겠군.”
“별로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이제 그 쥐새끼들이 어디서 튀어나왔는지를 찾아야 하는데, 그게 더 고생이겠죠.”
지크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말했다.
“쥐구멍을 찾는 대로 다시는 기어 나오지 못하도록 박멸을 해야겠습니다.”
하워드는 지크의 말을 듣고 굳은 얼굴로 애써 미소를 지었다.
지크는 하워드에게 공손히 인사를 하고는 홀에서 나왔다.
아슬란은 테베아로 돌아가기 전 잠시 사계성이 머물며 미궁에서 있었던 일을 증언하기로 했다.
그는 지크에게 꼭 은혜를 갚고 싶다며 반드시 테베아의 가문으로 찾아오라는 말을 남겼다.
지크는 마차를 타고 일단은 아틀라스의 저택으로 향했다.
‘하워드, 그 능구렁이 같은 놈.’
전생에서 하워드 때문에 고생한 걸 생각하면 갈가리 찢어 죽여도 부족했다.
‘조금만 기다려라. 네놈의 약점을 잡아서 꼭 내 손으로 직접 죽여 주마.’
지크는 속으로 중얼거리다가, 마차 좌석 맞은편에 앉아 있는 사람을 보며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군, 샤디아.”
살막주의 제자이자 지크에게 파견된 살막의 살수인 샤디아가 새로운 얼굴로 지크 앞에 앉아 있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보스.”
“그래. 북쪽은 어떻던가.”
샤디아는 지크의 명령으로 북부대륙으로 가서 북부 대공과 그 주변의 상황을 알아보고 돌아온 참이었다.
샤디아는 별다른 말 없이 준비한 서류를 꺼내 지크에게 건넸다.
“북부에 있는 동안 확인하고 모아 온 자료들입니다.”
지크는 샤디아가 건넨 서류를 훑어봤다.
북부 대공이 있는 히모나스를 비롯해 그 주변 영주들과 옛 귀족 가문들의 세력도를 조사해서 정리한 자료였다.
지크는 샤디아가 정리한 자료들을 넘겨보면서 혀를 찼다.
“북부 대공의 상황이 꽤 안 좋군. 북부대륙의 영주들이 언제 들고일어나도 이상하지 않겠어.”
본래 북부대륙은 인간보다 다른 종족들의 수가 더 많았다.
그리고 과거 신성제국 시절에 교황은 북부 대륙에 있는 다른 종족들을 통제하기 위해 여러 가지 강경책을 썼었다.
그때 히모나스의 영주는 이런 신성제국의 압정에 맞서 싸우며 인간을 비롯한 타 종족을 보호했다.
결국 교황은 히모나스의 영주에게 북부대공이라는 지위를 내리며 그들의 자치권을 인정했다.
그때부터 히모나스의 북부대공은 북부의 왕이나 다름없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북부 대공의 자리를 거친 북부의 영주들이 노리는 것은 당연할 터였다.
지크가 샤디아를 보며 물었다.
“그래서 지금 북부대공은 어떻게 하고 있나. 이들 중 누구를 포섭하려 하는지 따로 움직임을 보인 것이 있었나?”
그때였다.
샤디아가 그녀답지 않게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침을 꿀꺽 삼키고는 말했다.
“다 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