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slayer's Class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246
246화
‘용을 죽인 용이라고?’
용은 현상계에서 단일로는 가장 강한 힘을 가진 생명체다.
카이시르는 그렇기 때문에 용들은 힘을 쓸 때 많은 제약을 받는다고 했었다.
그리고 그중 하나가 용과 용은 서로를 죽일 수 없다는 것이었다.
만약 용이 인간처럼 영역 다툼을 시작하면 현상계에는 그 어떤 생명체도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런 절대 맹약을 어긴 용이 존재했을 것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반대로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던 건가.’
지크는 확실하게 하기 위해 쟈밀라에게 되물었다.
“검은 강의 은둔자가 다른 용을 살해했다는 겁니까.”
쟈밀라는 의외로 지크가 별로 놀란 기색을 보이지 않자 본인이 더 움찔했다. 그녀는 애써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영웅왕 시대 그 이전부터 검은 강의 은둔자는 이곳에 갇혀 있었다.”
2천 년을 넘는 시간 동안 이곳에 있었다는 뜻이었다.
지크는 쟈밀라를 보며 말했다.
“용을 살해했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어차피 어떤 용이든 인간과 비교하면 초월적인 능력을 갖춘 위험한 존재인 건 마찬가지입니다.”
그러자 쟈밀라가 혀를 차며 말했다.
“내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군. 검은 강의 은둔자는 ‘용은 용을 죽을 수 없다’는 절대 명제를 어긴 존재다. 계약의 당사자가 아닌 이가 맹약을 깨겠다고 했다가 어떤 불똥이 튈지 알 수 없다는 뜻이야.”
지크는 침착한 목소리로 대응했다.
“그러니 더욱 제가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희생을 당할 거라면, 어차피 죽이려 하셨던 제가 당하는 게 나을 테니까요.”
지크의 논리적인 답변에 쟈밀라가 순간 말을 잃었다.
그때 옆에 있던 옐린이 말했다.
“지크 경, 나 역시 함께 미궁으로 내려가겠습니다.”
그 말에 쟈밀라가 기겁했다.
“너, 너! 네가 가긴 어딜 간다는 거냐!”
옐린이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가문의 숙원을 풀어야 하는 자리인데 어찌 외부인인 지크 경 혼자 그곳에 보내겠습니까. 함께 내려가겠습니다.”
옐린까지 이렇게 나오자 쟈밀라는 이마를 짚고 고개를 내저었다.
“하, 진짜…… 네녀석들 마음대로 해라!”
쟈밀라가 손짓을 하자 본궁 곳곳에 숨어 있던 전사들의 기척이 일사불란하게 사라졌다.
그녀가 지크에게 말했다.
“지크 드레이커, 만약 네가 정말로 맹약의 족쇄를 끊고 이슈타르 가문의 숙원을 풀어 준다면 너는 우리의 은인이 될 것이다.”
“그럼 더 이상 암살자들을 보내지 않으실 겁니까.”
“그래. 율법을 걸고 맹세하지.”
“좋습니다.”
쟈밀라는 마뜩잖은 표정으로 지크와 옐린을 본궁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그녀는 일단 만찬장으로 그들을 데려간 뒤, 음식을 내오도록 했다.
이전 식사가 떠오른 지크는 순간 긴장했지만, 다행히 매운 수프가 아닌 담백한 식사가 나왔다.
‘하마터면 미궁에 들어가기도 전에 기력을 잃을 뻔했군.’
쟈밀라가 지크에게 말했다.
“먹어라. 어찌 되었든 본궁에 두 번이나 초청받은 사람은 네가 처음이구나, 지크 드레이커.”
그녀가 포크로 연근을 푹 찍으며 그를 노려봤다.
“아니군, 한 명 더 있었지. 가증스럽기 짝이 없는 테라칸 드레이커. 그 빌어먹을 종자도 본궁에 두 번이나 왔었다더군.”
이글이글 불타는 쟈밀라의 눈빛에 지크는 영 밥이 넘어가지 않았다.
그래도 어쨌든 차려 준 밥이니 꾸역꾸역 다 먹었다. 식사가 끝나니 기다리던 이슈타르의 차가 나왔다.
차향을 음미하던 지크에게 옐린이 말했다.
“지크 경,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뭐가 말입니까.”
“본궁의 미궁은…… 한 번도 보지 못한 마물들과 용이 만들어 놓은 기괴한 골렘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악취미를 가진 용인가 보군요.”
“단순히 용의 악취미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 위험한 곳입니다. 혹시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시다면…….”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해야 할 것이라면 빨리 처리하는 게 좋지요.”
그 말을 들은 쟈밀라가 코웃음을 쳤다.
“드레이커 놈 주제에 말은 잘하는구나.”
지크는 그녀의 비웃음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는 쟈밀라에게 물었다.
“가주님은 이전에 아서 드레이커와 만난 적이 있으십니까?”
그 말에 쟈밀라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만난 적 있지.”
“어떤 이유로 만나신 겁니까?”
지크의 질문에 쟈밀라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내가 그걸 네놈에게 말해 줄 이유는 없다.”
그녀가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지크와 옐린을 보고 말했다.
“내일 바로 미궁으로 떠나라. 만약 제대로 된 결과를 가져오지 못하면 율법에 의해 엄히 다스릴 것이다!”
그대로 쟈밀라가 나가자 옐린이 지크에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지크 경. 뭔가 저 때문에 일이 더 커진 것 같습니다.”
“괜찮습니다, 개의치 마십시오. 옐린 님.”
“필요하신 게 있다면 무엇이든 말씀해 주십시오. 준비를 해 두겠습니다.”
지크가 그 말을 듣고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옐린을 향해 몸을 기울였다.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예, 말씀하십시오.”
지크가 마시던 찻잔을 들고 말했다.
“이 차 어디서 살 수 있는지 좀 알려 주시면 안 됩니까?”
“…….”
* * *
이튿날 지크와 옐린은 장비를 모두 갖추고 이슈타르 본궁 지하의 공동 앞에 섰다.
공동 안쪽에는 검은 문이 굳게 닫혀 있었는데 그 위에 단단한 사슬이 칭칭 감겨 있었다.
뒤에서 이를 바라보던 쟈밀라가 팔짱을 낀 채 날카로운 목소리로 외쳤다.
“미궁의 문을 개방해라!”
대기하고 있던 이슈타르의 전사들이 문에 감긴 사슬을 풀었다.
촤라라라라락!
사슬이 풀리자, 전사들이 그것을 힘껏 잡아당겼다.
쿠구구구구!
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문 안쪽은 완전히 새카만 어둠뿐이라 한 치 앞을 볼 수가 없었다.
옐린 옆에 붙어 있던 에즈기가 덜덜 떨며 말했다.
“아, 아가씨 그냥 안 가시면 안 돼요?”
그러자 옐린이 에즈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너무 걱정 말거라. 금방 다녀오마.”
지크와 옐린은 머뭇거리지 않고 곧장 문 안으로 들어갔다.
쿠구구구!
두 사람이 미궁에 들어가자 문이 다시 닫혔다.
완전한 어둠이 깔렸다.
그때 옐린의 몸 주변에서 밝은 빛무리가 올라왔다. 그러더니 그것들이 이내 주변을 환하게 비춰 줬다.
지크는 심해족의 섬에서 그와 비슷한 것을 봤던 기억이 있었다.
포세이돈이 신위를 되찾은 뒤 섬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고 나자 이 빛무리들이 숲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냈었다.
지크가 옐린에게 물었다.
“이게 무엇입니까?”
그러자 옐린이 손을 들어 빛무리들을 부드럽게 매만지며 말했다.
“이들은 대지의 정령들입니다.”
“대지의 정령이라. 신기하군요.”
“이들이 머무르는 곳에는 숲이 울창해지고 생명력이 충만해집니다. 저와 같은 하이 엘프들은 이 대지의 정령을 불러낼 수 있습니다.”
심해족인 네리사가 물의 정령을 다룰 수 있는 것처럼 하이 엘프인 옐린은 대지의 정령을 소환하는 것이 가능한 듯싶었다.
그녀가 대지의 정령으로 앞길을 비췄다.
“이쪽입니다.”
지크는 옐린이 안내하는 길을 따라 미궁 안으로 들어갔다.
* * *
쿵!
문이 열리고 아벨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 뒤를 윌리엄 지멘스가 따랐다.
아벨의 표정은 굳어져 있었고, 윌리엄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가 복도를 걸어가 가주 집무실 앞에 섰다. 아벨의 앞을 전략본부의 요원이 막아섰다.
“가주님께서 아무도 들이지 말라 하셨습니다.”
아벨이 손을 들어 옆으로 가볍게 휘둘렀다.
그러자 전략본부 요원이 마치 종이 인형처럼 힘없이 벽을 향해 날아갔다.
쿠궁!
집무실을 지키던 전략본부 요원들이 아벨을 향해 경계하며 무기를 뽑아 들려 했다.
그들을 둘러보는 아벨의 눈동자가 붉게 물들었다.
“그걸 뽑는 순간 네놈들은 다 죽는다.”
온몸을 죄는 압박감에 전략본부 요원들은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들이 멈칫하는 사이, 아벨이 손을 뻗자 굳게 닫혀 있던 가주 집무실의 문이 흔들렸다.
드드드드―
진동을 일으키던 집무실 문이 터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열렸다.
아벨이 거침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집무실 안에는 라몬 지멘스가 책상에 앉아 서류 업무를 보고 있었다.
아벨이 바로 그의 자리 앞까지 걸어왔음에도 그는 묵묵히 서류에 서명을 하는 중이었다.
아벨이 그런 라몬을 보며 말했다.
“저에게 말도 하지 않으셨으면서 잘도 제가 준비해 놓았던 덫을 사용하셨더군요.”
아벨의 말에 서명을 하던 라몬의 펜이 순간 멈칫했다.
하지만 그건 잠시일 뿐, 그의 펜이 다시 움직였다.
아벨이 책상을 짚고 라몬을 노려보며 말했다.
“해적왕 건은 내가 준비했던 거란 말입니다. 칼리 드레이커를 잡을 절호의 기회를 노리며 묵혀 두고 있던 건데 그걸 마음대로 써먹다니.”
라몬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그러자 아벨이 손바닥으로 라몬의 책상을 내리치며 외쳤다.
“뭐라 말을 좀 해 보시라는 말입니다!”
쾅!
라몬의 책상이 그대로 쪼개지며 부서졌다. 그로 인해 라몬이 서명하던 서류들 역시 바닥으로 모두 쏟아졌다.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던 윌리엄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지멘스 가문에서 가주는 신과 같은 존재나 다름없었다.
그의 말을 거스르는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심지어 소가주인 윌리엄조차 말이다.
라몬은 부서진 책상과 쏟아진 서류를 보더니 그제야 고개를 들고 아벨을 바라봤다.
감정 없이 담담한 라몬의 눈빛을 마주하며 오히려 아벨이 서늘한 기분을 느꼈다.
라몬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아벨에게 손짓을 했다.
그가 옆쪽에 마련된 자리로 가더니, 상석에 앉은 뒤 아벨에게 맞은편 자리를 권했다.
아벨은 라몬과 마주 앉고 윌리엄은 그 뒤에 섰다.
라몬이 아벨을 향해 입을 열었다.
“세례를 받고서도 칼리가 그리 신경이 쓰이더냐.”
아벨이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그런 말이 아니잖습니까. 칼리를 잡기 위해 오랫동안 준비해 놓은 함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걸…….”
“그래. 오랫동안 준비해 온 것이었지. 다름 아닌 내가 말이다.”
라몬의 말에 아벨이 눈을 부릅떴다. 라몬이 양손을 모아 깍지를 끼고 말을 이었다.
“백은 기사단에 잠입시켜 놓은 세례자들도, 제국의 군단장인 모르간 부폰에게 들어간 뇌물도, 더러운 해적 놈들을 끌어들일 미끼도 다 내가 준비한 것들이었다.”
라몬의 말에 아벨이 주먹을 꽉 쥐고 부들부들 떨었다. 그가 입을 떼려 할 때 라몬이 먼저 말했다.
“그리고 아벨 너도. 내가 공들여 준비한 것 중 하나지.”
라몬의 말에 아벨의 눈동자가 커졌다.
순간 그의 눈동자가 붉게 물들면서 마안으로 변했다.
무형의 힘이 라몬의 몸 주변을 맴돌며 그를 압박하려 했다.
그가 조금이라도 힘을 주면 라몬의 몸은 그대로 으스러질 터였다.
하지만 라몬은 개의치 않는다는 듯 아벨에게 말했다.
“가끔 이런 녀석들이 있더군. 너무 공을 들이다보니 그 본분을 잊고 자신의 위치를 착각하는 것들 말이야.”
라몬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벨이 만들어 낸 무형의 힘에 대한 압박은 전혀 느끼지 못한다는 듯이 라몬이 천천히 아벨에게 다가가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가 감정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메마른 목소리로 말했다.
“아벨. 난 정말 너에게 많은 공을 들였다. 그래서 소중하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네 위치를 착각하면 정말 곤란하다.”
라몬의 손에는 아무런 기운이 깃들어 있지 않았지만, 아벨은 마치 거대한 무엇인가가 자신을 짓누르는 듯한 강한 압박감을 느꼈다.
라몬이 아벨에게 말했다.
“가끔 위치를 망각할 것 같으면, 그때마다 네 어머니를 떠올리거라 아벨.”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아벨의 몸에서 붉은 기운이 솟구쳐 올랐다.
드드드드―
가주 집무실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벨이 고개를 올려 라몬을 노려봤다.
드드드드―
아까보다 더 강해진 진동이 방을 울렸다.
붉게 물들어 있던 아벨의 눈동자는 전혀 다른 모양이 되어 있었다.
마치 파충류의 것을 닮은 눈동자로 변한 아벨이 라몬을 보며 외쳤다.
“다시는! 그 여자에 대해 말하지 마!”
콰드드득!
라몬이 서 있는 자리 주변이 갈라지더니 그를 중심으로 무수히 많은 금이 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작 라몬은 그 어떤 압박도 받지 않는 듯했다.
라몬이 아벨에게 말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면. 네 위치와 역할을 잘 새겨 두도록.”
뿌드드득!
아벨이 이를 갈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분노를 억누르며 가주 집무실을 나갔다.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윌리엄은 굳은 표정으로 머뭇거리다가 이내 아벨을 따라나서려 했다.
“윌리엄.”
라몬이 그를 불러 세우자 윌리엄이 흙빛이 된 얼굴로 그를 돌아봤다.
“부, 부르셨습니까. 가주님.”
“아벨은 아직 불안정하다. 섣부르게 힘을 쓰지 못하도록 잘 감시하도록.”
“아, 알겠습니다.”
윌리엄은 굳어 버려 뻣뻣한 동작으로 인사를 하고는 곧장 부리나케 달려 나갔다.
라몬은 아벨이 앉아 있던 자리를 바라봤다.
“아벨에게서 용안이 발현됐다라…….”
그가 읊조리듯이 말했다.
“슬슬 때가 다가오는구나.”
그가 몸을 돌려 손을 휘둘렀다.
그러니 아까 부서졌던 책상과 흩어진 종이들이 거꾸로 돌아가며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라몬은 다시 책상에 앉아 서류 작업을 이어 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