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slayer's Class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334
334화
신성 왕국의 현 교황인 베아트리체 1세.
지크도 교황을 직접 본 것은 처음이었기에 기분이 묘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경건한 자세로 베아트리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성하께 인사 올립니다. 드레이커 가문의 기사이자, 아가멤논 가문의 후계자, 쿠스코 왕국의 공작 위를 가진 지크 드레이커입니다. 성국 바도카를 지키는 검이 되고자 이렇게 성하를 찾아뵈었습니다.”
베아트리체는 따스한 미소를 지으며 지크에게 다가갔다.
“지크 경. 태양신의 가호가 그대와 함께할 것입니다.”
그녀가 직접 지크의 손을 잡고 그를 일으키며 말했다.
“로반을 무사히 데려와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지크 경. 그 아이가 무사히 바도카로 돌아올 수 있도록 매일 신께 기도를 올렸는데 제 기도에 응답하시어 이렇게 경을 보내 주신 모양입니다.”
지크가 베아트리체를 보며 말했다.
“마땅히 해야 할 의무를 하고자 할 뿐입니다.”
그녀는 후광이 비치는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지크에게 말했다.
“귀한 손님들께 식사를 대접하고 싶어요. 곧 준비할 테니 함께 드셔요.”
“성하와 함께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큰 영광은 없을 것입니다.”
지크 일행은 베아트리체와 함께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런데 식당으로 간 지크 일행은 마력 등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아 곳곳에 촛불을 켜 두고 심지어 난방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상황을 보고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베아트리체는 낡은 원형 탁자에 자리를 마련하고 지크 일행에게 앉도록 권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그녀가 자리에 앉지 않고 어딘가로 가는 것을 보고 의아하게 생각하던 지크는 곧 로반과 함께 빵과 음식들을 직접 옮기는 베아트리체를 보고 깜짝 놀랐다.
“어찌 성하께서 직접 식사 준비를 하십니까. 다른 고용인들은 무엇을 하고요.”
능숙하게 빵과 수프를 탁상 위에 올려 둔 베아트리체가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제가 원래 하던 일인 걸요.”
그녀는 삶은 감자와 직접 키운 채소로 만든 샐러드까지 가지고 왔다.
그러고는 자리에 앉아서 기도를 올렸다.
“오늘도 일용할 양식을 주신 태양신께 감사하며…….”
역대 교황 중에서는 베아트리체보다 더 검소했던 이도 분명 존재했다.
하지만 그들은 지금의 경우와는 달리 교황으로서의 권위를 가지고 있음에도 자신의 신념을 위해 일부러 검소한 생활을 유지했던 것이다.
또한 사생활은 그렇게 보낸다고 하더라도 외부에서 사절이나 손님이 오면 그 격에 맞는 식사 등이 나오는 것이 관례였다.
하지만 베아트리체의 경우에는 애당초 교황청에 배정된 예산이 없어서 그녀가 직접 자급자족해서 채소를 키우고, 직접 빵을 굽는 일을 맡아서 하고 있었다.
다른 주교나 추기경들이 베아트리체를 교황으로 취급하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아크 팔라딘의 후예인 펠릭스의 표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심각했다.
교단의 상징과도 같은 교황이 이런 취급을 받고 있다는 것 자체가 믿기지 않았다.
지크는 식탁을 바라보다가 묵묵하게 빵과 수프를 먹기 시작했다.
하나하나 꼭꼭 씹어먹고 그 맛을 음미하며 정성껏 음식을 다 먹었다.
그의 그런 모습에 펠릭스와 데커 역시 지크와 마찬가지로 차분히 음식을 먹었다.
식사를 마친 지크가 냅킨으로 입을 닦으며 베아트리체에게 말했다.
“성하, 정말 귀한 식사였습니다.”
진심 어린 지크의 말에 베아트리체가 웃으며 기뻐했다.
“정말요? 지크 경께서 맛있게 드셨다니 다행입니다.”
지크가 그녀에게 말했다.
“제가 성하께 차를 한잔 대접해도 되겠습니까.”
그녀가 맑은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요. 아, 오늘은 날이 좋으니 함께 정원에 나가서 차를 마실까요?”
일행은 교황청 뒤편으로 나갔다.
그러고는 다시 놀랄 수밖에 없었다.
말이 정원이지 버려진 땅을 그녀가 직접 가꿔서 만든 텃밭이 있는 곳이었다.
지크는 텃밭을 보며 말했다.
“작물들이 싱싱하게 잘 자랐군요. 성하께서 정성을 다해 기르셨나 봅니다. 저 작물은 특히나 벌레가 잘 생기는데 말입니다.”
그 말에 베아트리체가 깜짝 놀라 물었다.
“지크 경도 작물을 키워 보셨나요?”
지크가 그 말에 웃으며 대답했다.
“예, 이전에는 저도 직접 작물을 키워서 수확을 하고는 했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현생이 아닌 전생에서 있었던 일이었다.
지크는 어설프게 마련된 테이블 위로 인벤토리에서 차와 다과를 꺼내 준비했다.
순식간에 그럴듯한 티테이블이 만들어지자 베아트리체가 눈을 반짝이며 감탄했다.
“신기해라. 지크 경은 신비한 재주가 많으시군요. 정말 멋져요.”
말하는 것만 들어보면 영락없는 시골 처녀나 다름없었다.
그만큼 순수하고 구김살 없는 그녀였기에 마경과도 같은 바도카에서 어떻게든 버티고 있는 것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크는 베아트리체에게 이슈타르에서 가져온 차를 타서 내주었다.
그녀는 눈을 감고 향긋한 차의 향기를 음미했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향이네요.”
서로 말없이 차를 마시던 중 지크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성하께서는 제가 이곳에 왜 왔는지 알고 계십니까.”
지크의 말에 베아트리체가 순수한 시골 처녀와 같은 미소를 지우고 경직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배움이 짧아서 정확하게 성국의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모르지만…… 들리는 말에 의하면 무서운 몬스터 군단이 바도카로 오고 있다더군요.”
그녀가 찻잔을 내려놓고 말을 이었다.
“지크 경께서는 명예로운 기사시니 바도카 성국을 구원하기 위해 이곳에 오셨을 테지요. 제 말이 맞나요?”
지크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맞습니다. 저는 오르크의 강철 군단에 맞서 바도카와 성하를 지키기 위해 이곳에 온 것입니다.”
베아트리체가 지크를 보며 다소곳이 고개를 숙였다.
“성국 신민들을 지키기 위해 멀고 험한 길을 마다하지 않고 와 주신 지크 경께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립니다.”
그때 지크가 그런 베아트리체를 빤히 바라보다가 목소리를 조금 바꾸어 말했다.
“성하, 죄송한 말씀이지만 이대로는 바도카 성국과 신성 왕국을 지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지크의 말에 베아트리체가 깜짝 놀랐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지크 경의 힘으로 저 몬스터 무리를 막을 수 없다는 뜻인가요?”
지크가 고개를 내저었다.
“바도카 성국의 성은 단단하고 높습니다. 그러니 사실 이곳에 있는 병력으로도 충분히 오르크 군단을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드리는 말은 몬스터 군단의 얘기가 아닙니다.”
그가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신성 왕국을 좀먹는 저 썩어 빠진 성직자들. 바도카를 망치는 것은 바로 그들입니다.”
지크의 말에 베아트리체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바도카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것은 바로 의장인 피에르를 포함해 주요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의원들이었다.
그들이 교황의 권한을 빼앗고 자신들 멋대로 성국을 쥐고 흔들며 자신들의 배만 불리고 있다는 것을 베아트리체 역시 알고 있었다.
하지만 평범한 수녀에서 단순히 태양의 증표가 나왔다는 것만으로 교황이 된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허수아비 역할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지크가 베아트리체를 보며 말했다.
“성하, 저들은 충분히 몬스터들을 막을 병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자신들의 이익을 보전하기 위해 신민들이 죽는 것을 방치한 악인들입니다. 어찌 저 부정한 자들을 신이 내린 성직자라 할 수 있겠습니까. 성하께서 직접 일어나 저들을 처단하셔야 합니다.”
그러자 베아트리체 뒤에 서 있던 앤소니가 참지 못하겠다는 듯 지크에게 말했다.
“지크 경, 성하께서도 매일 밤 신민들의 걱정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십니다. 그런 문제들을 알고 있으시지만, 바도카는 함부로 움직일 수 있는 곳이 아니란 말입니다!”
앤소니는 교황의 근위 대원이면서 속으로 아름답고 순수한 베아트리체를 연모하고 있었다.
그녀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이 마굴에서 그녀를 꺼내 더 편안하게 생을 보낼 수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하지만 바도카는 태양의 증표를 가지고 있는 그녀를 결코 놓아 주지 않을 것이었고, 그것을 알고 있기에 그 역시 숨을 죽인 채 베아트리체를 지키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때 베아트리체가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입을 열었다.
“지크 경.”
엄숙한 목소리를 낸 그녀는 어느새 빵을 굽는 순박한 시골 처녀가 아닌 수백만 신도들을 짊어진 교단의 주인으로 변해 있었다.
베아트리체가 지크에게 물었다.
“그런 말씀을 꺼내신 건 지크 경께서 저 간악한 무리를 벌하고 교권을 되찾을 방안이 있기 때문입니까?”
지크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인벤토리에서 보석검 롤랑을 꺼내 손에 쥐었다.
앤소니는 지크가 갑자기 검을 빼 들자 놀라서 베아트리체의 앞을 막고 검을 뽑으려 했다.
그러자 베아트리체가 손을 들고 앤소니를 제지했다.
지크는 두 손으로 보석검 롤랑을 잡고 가슴 쪽으로 붙인 뒤, 롤랑에 힘을 주입해 빛의 장막을 펼쳤다.
우우우웅―
빛무리가 퍼져 나가며 주변에 있던 자들은 몸이 따스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에 로반이 멍한 표정으로 지크를 바라보며 말했다.
“초대 성왕의 재림…….”
화려한 검을 들고 빛의 힘을 내뿜는 지크의 모습은 기록 속에 남아 있는 성왕 지오 루베른의 모습과 비슷했다. 지크가 빛무리를 흩날리며 말했다.
“이 검은 50년 전 신성 왕국을 정상화시키기 위해 아크 팔라딘의 지위를 내던진 파브 발렌시아 경의 해머를 녹여 만들어 낸 검입니다.”
파브의 이름을 들은 베아트리체의 눈이 커졌다.
“파브 경이라고요?”
지크가 고개를 끄덕이며 펠릭스를 가리켰다.
“여기 있는 펠릭스는 파브 경의 손자로 그의 진전을 이었습니다.”
지크의 말에 베아트리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녀가 펠릭스를 보며 물었다.
“펠릭스 경. 정말 파브 경의 진전을 이었는지 확인을 해 봐도 될까요?”
갑작스럽게 주목을 받게 된 펠릭스가 놀라 말을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무, 물론입니다 서, 성하! 여, 영광입니다! 아, 아니. 그러니까…… 어떻게 하면 될까요?”
베아트리체가 펠릭스의 손목을 잡았다.
그러자 따듯한 기운이 펠릭스의 손목을 타고 온몸을 돌았다.
베아트리체는 그의 몸에 잠들어 있는 아크 팔라딘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파브 경의 진전을 이은 것이 맞군요.”
베아트리체의 반응을 보니 그녀는 이미 파브가 누군지를 알고 있는 듯싶었다.
그때 지크의 귓가에 목소리가 울렸다.
―지크 경, 따로 보여드릴 것이 있습니다.
지크는 그녀가 전달한 메시지를 통해 베아트리체가 마법 실력을 감추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크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고, 베아트리체는 주변에 사람들을 모두 물린 뒤, 지크와 함께 교황청 지하로 내려갔다.
지하 석실에는 쓰지 않는 집기들과 예배당의 도구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아마도 창고로 쓰이는 공간인 듯싶었다.
베아트리체는 창고의 물건들 사이를 지나 구석의 바닥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그 밑으로 내려갈 수 있는 계단이 나타났다.
“이쪽이에요.”
베아트리체를 따라 지하 계단을 내려가니 놀랍게도 그 아래 성인들의 유해가 묻혀 있는 카타콤이 존재했다.
벽을 파고 그곳에 석관을 넣어 둔 지하 카타콤은 이전에 파브가 숨겨 둔 지하 무덤과 비슷해 보였다.
베아트리체는 그를 데리고 지하 무덤 아래로, 아래로 계속 내려갔다.
그리고 가장 아래에는 관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베아트리체가 그 관을 보며 애처로운 눈빛을 띠었다.
“이전 교황 폐하의 유해예요.”
지크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바오르 성하의 유해가 왜 이곳에 있는 겁니까. 국장이 돼서 지정된 곳에 안치되어야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말입니다.”
베아트리체가 고개를 끄덕였다.
“원칙대로라면 그게 맞습니다. 하지만 이전 교황 폐하는 파브 경과 같이 신성 왕국을 바꿔 보기 위해 오랫동안 치열한 싸움을 하셨던 분이에요.”
지크는 베아트리체가 무슨 말을 하는지 깨달았다.
“폐하에 대한 제대로 된 예후조차 하지 않았군요, 저들이.”
베아트리체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치품은 필요없으니 유해를 화장해서 유골만 안장하자 수없이 말했지만 일단 기다려 보라는 말만 반복하니 어쩔 수가 없었어요.”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이들에게 강직하고 청렴한 교황은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었다.
그때 베아트리체가 석관의 가운데에 새겨진 태양의 표식 위에 손바닥을 대고 마력을 흘려 넣었다.
우우우웅―
그러자 석관이 진동을 일으키더니 옆으로 밀려났다.
석관 밑에는 아래로 통하는 계단이 만들어져 있었다.
“성하 이곳은……?”
“지크 경, 저는 바도카 성국의 교황이기도 하지만 실은 다른 이름도 갖고 있습니다.”
그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는 황금여명회의 회주를 맡고 있는 베아트리체 발렌시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