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slayer's Class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336
336화
대륙의 절반을 지배하는 위대한 황제는 언젠가부터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며 점차 미쳐 갔다.
죽고 싶지 않다는 열망에 집착하며 대륙에 존재하는 모든 고대 유적지를 조사하고 그 유물을 모아 불로불사의 방법을 찾겠다며 자신만의 비밀 부대까지 조직했다.
대륙의 유일무이한 황제가 광기에 빠지자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던 일도 현실화됐다.
이번 원정 역시 그런 황제의 광기가 불러온 기행 중 하나였다.
‘병은 이겨 내고 있으나 광증은 그대로인 건가.’
어찌 보면 긍정적인 상황은 아니었으나, 칼리토는 비록 앞에 있는 이가 광인이라 하더라도 자신에게 이익이 되기만 한다면 무엇이든 할 자신이 있었다.
“폐하, 신 칼리토. 폐하를 위해서라면 그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나이다.”
그 말에 황제가 시원한 웃음을 터뜨렸다.
“칼리토, 역시 그대만 한 충신이 없군.”
칼리토는 자신의 발언이 황제를 만족시켰다 여기고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그때 뒤에 있던 사교도 마법사들이 그에게 달려들었다.
“뭐, 뭐 하는 거냐!”
칼리토가 필사적으로 저항하며 몸에 잔뜩 차고 있던 아티팩트를 발동시켰다.
파지지지직!
그런데 아티팩트들이 스파크를 일으키며 전혀 작동하지를 않았다.
마력 발동 방해 장치가 막사 전체에 깔려 있는 듯했다.
칼리토가 옆에 있는 길리언을 향해 외쳤다.
“다, 단장! 여기서 빠져나가야 합니다!”
다급하게 옆으로 고개를 돌린 그때 칼리토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봤다.
“으으으으.”
길리언의 몸을 무형의 무엇인가가 쥐고 옴짝달싹 못 하게 하고 있었다.
그가 아무리 저항하려 해도 빠져나갈 수 없는 듯 보였다.
길리언은 온몸에 힘줄이 돋을 만큼 강하게 힘을 주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으아아아아아!”
길리언이 어떻게든 빠져나가기 위해 오러를 일으켰지만, 무형의 힘은 더더욱 그를 옭아맬 뿐이었다.
칼리토는 믿고 있던 길리언마저 붙잡힌 것을 보고 바들바들 떨었다.
어느새 마법사들이 칼리토의 머리를 잡고 뒤로 젖혔다.
그러자 뒤쪽에서 마법사 한 명이 금색 대야를 들고 왔다.
대야에서는 기괴한 색의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놔라! 놔라!”
마법사들이 칼리토의 입을 잡고 억지로 벌렸다.
“으으으으읍!”
대야를 들고 온 마법사가 칼리토의 입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액체를 들이부었다.
꿀렁! 꿀렁! 꿀렁!
칼리토는 마법사들에게 붙잡힌 채 정체를 알 수 없는 액체를 모두 먹을 수밖에 없었다.
“으으으으.”
그는 머리가 빙빙 돌고 시야가 흔들리며 환청과 환각에 시달렸다.
그러는 사이, 마법사들이 서로 손을 잡고 옴짝달싹 못 하는 길리언과 쓰러진 칼리토 주변을 빙빙 돌며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기괴한 언어로 주문을 외우는 사교도의 목소리가 두 사람의 귀를 파고들었다.
“으어어억!”
칼리토는 몸을 새우처럼 구부린 채 의문의 액체가 자신의 혈관으로 퍼져 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의 손발이 덜덜 떨리고 눈알이 터질 것 같은 고통이 몸을 가득 채웠다.
“크아아아악!”
마법사들의 주문 소리와 비명 소리가 막사를 가득 채웠다.
장막 저편에서 황제는 얕게 숨을 쉬며 킬리토와 길리언의 비명 소리를 듣고 만족스러운 듯 목소리를 냈다.
“그대들의 충정이 제국을 더욱 강하게 하리라.”
* * *
“신성 왕국 내의 비밀 결사 집단이라.”
베아트리체가 설명한 황금여명회는 다름 아닌 신성 왕국의 부정부패를 타파하고 잘못된 점을 바로잡고자 결성된 혁명 조직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조직이 파브와 로라가 활동했던 여명회로부터 이어져 내려왔다는 것이었다.
베아트리체는 어렸을 때 루베른의 아이들과 함께 노예 상인들에게 잡혀 넘겨질 뻔했다가 파브 경에 의해 구출되어 수도원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고 했다.
파브 경에 대한 존경심을 담아 스스로 발렌시아라는 성을 붙이고 성장해, 황금여명회의 일원으로 활동하다가 신에게 기도를 드리던 중 태양의 증표가 나타나 교황의 자리에 오르게 된 것이었다.
그녀의 말을 들은 지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놀랍군요. 성하께서 파브 경과 인연이 있으실 줄은 몰랐습니다. 황금여명회라는 곳이 신성 왕국 내부에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루베른의 혈족들을 구출하던 여명회의 활동은 장미회가 이어받았고, 신성 왕국 내부에는 황금여명회라는 이름으로 결사대가 명맥을 이어 왔습니다.”
그녀가 벽에 붙어 있는 상황판을 보며 말했다.
“지크 경께서도 아시다시피 신성 왕국의 상황은 좋지 못합니다. 가장 청렴해야 할 성직자들이 신민들의 안위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자신들의 잇속만을 채우려 하는 상황입니다.”
지크가 베아트리체를 보며 말했다.
“이해합니다. 항구를 거쳐 이곳에 오면서 저희는 끔찍한 현실을 마주해야 했습니다. 성국의 보호를 받지 못한 신민들은 오르크 무리의 희생양이 되었고, 영토를 침범한 제국군에게 끌려가 사악한 마법의 제물로 바쳐지고 있더군요.”
베아트리체는 지크의 말에 깊은 슬픔과 분노를 느낀 듯 잠시 눈을 감았다.
다시 그녀가 눈을 떴을 때, 그 눈에는 순박해 보였던 여린 눈빛은 사라지고 어느새 맹렬하게 불타오르는 투사의 눈빛만이 자리 잡고 있었다.
“황금여명회는 이번 기회에 썩어 빠진 성국을 쇄신하여 신민들을 지킬 것입니다.”
그녀의 단호한 결의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지크가 베아트리체에게 물었다.
“성하. 앞에서는 오르크 군단이, 측면으로는 제국군이 시시각각 성국을 향해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권력을 쥔 추기경과 주교들이 성하의 의도를 눈치채고 내분을 일으킨다면 바도카는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단단한 성벽이 있다 해도 안에서 내분이 일어나면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 말에 베아트리체의 표정이 굳었다.
당장이라도 저들을 모두 처리하고 싶었지만, 상황적으로 쉽지 않았다.
베아트리체가 머리를 감싸 쥐고 말했다.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저 작자들을 어찌하지 못하고 지금처럼 이렇게 가만두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시간이 길어질수록 성국이 곯을 대로 곯아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까 그것이 걱정이에요.”
바도카 성국의 복잡한 구조는 이리저리 얽히고설킨 정치 세력의 구도를 만들어 냈다.
황금여명회가 지금 권력을 잡고 있는 이들을 일부 처단한다 해도 기회를 노리고 있던 다른 탐욕스러운 이들이 그 자리를 곧바로 채울 것이 분명했다.
지크가 베아트리체를 보며 말했다.
“성하, 제게 성국을 구할 방법이 있습니다.”
그 말에 베아트리체가 고개를 퍼뜩 들었다.
“지크 경, 어떤 방법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러자 지크가 베아트리체를 보며 말했다.
“이 방법을 위해서는 성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성국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베아트리체의 굳건한 목소리에 지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그녀에게 다가가서 귓가에 뭔가를 속삭였다.
지크의 말을 들은 베아트리체의 얼굴이 굳어졌다.
“지크 경. 이 방법이 그들에게 통할까요?”
“욕심 많은 자들이니 분명 덫에 걸려들 겁니다.”
베아트리체가 입술을 깨물며 고민했다.
그러더니 그녀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지크 경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베아트리체의 결정에 지크가 인벤토리에서 뭔가를 꺼냈다.
볼품없어 보이는 잔.
다름 아닌 성유물 중 하나인 ‘성배’였다.
지크는 성배를 들고 말했다.
“이 성배가 바도카 성국에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줄 겁니다.”
* * *
의장인 피에르는 다른 추기경과 주교들에게 급한 연락을 받고는 부랴부랴 의사당의 대회의실로 향했다.
그곳에 추기경과 주교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소식을 전해 들은 피에르 역시 비슷한 얼굴이었다.
그가 자리에 앉자 추기경 중 하나가 피에르에게 말했다.
“의장, 지금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상황입니까.”
피에르는 골치가 아프다는 듯이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그에게 전해진 소식은 다름 아닌 지크 드레이커가 요정왕에게서 받은 성배를 교황에게 바친 뒤 이를 이용해 이번 성전에 참여할 팔라딘들에게 더 강한 힘을 부여하도록 했다는 것이었다.
피에르를 비롯해 성국의 고위 사제들은 요정왕의 성배가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바도카에는 역사 이면에 숨겨진 비사에 관한 기록들이 비밀스럽게 보관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피에르는 이 기록을 볼 수 있는 권한이 있었는데 그중에는 용살자 테라칸 드레이커와 빛의 마법사인 클로디아 루베른에 관한 것도 존재했다.
비사에는 테라칸 드레이커가 성배로 새로운 힘에 눈을 떠 악룡 바하무트를 물리쳤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를 비롯한 다른 고위 사제들은 물론 상급 팔라딘들 역시 이 사실을 알고 있을 테니 성배가 주는 힘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성직자들은 직위가 높아질수록 자금력과 정치력을 통해 더 높은 권력을 쥐게 된다.
하지만 팔라딘들은 상황이 달랐다.
그들은 어쨌든 더 강한 경지를 이룩해야 아크 팔라딘의 이름을 손에 쥘 수 있었다.
팔라딘들이 사병이 되어 더 강한 권력을 가진 성직자 밑으로 들어가는 것 또한 더 강해질 수 있는 여러 가지 조건들을 갖추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교황이 성배를 이용해 이들을 더 빠르게 강해질 수 있도록 만든다면 팔라딘들에 대한 통제권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피에르는 갑작스레 나타나 느닷없이 성배를 꺼내 들어 바도카 성국을 휘저은 지크를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이딴 식으로 뒤통수를 치다니…….’
바도카는 바도카만의 방식이 있었다.
피에르는 지크가 곧 자신을 찾아와 첫날의 무례에 대해 고개 숙여 사죄 하고 차근차근 바도카에 적응하려 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성배를 꺼내 들고 주도권을 잡을 줄은 예상치 못했다.
다른 주교 하나가 벌떡 일어나 피에르에게 소리쳤다.
“내 휘하에 있는 팔라딘들이 벌써 술렁이고 있소! 혹시라도 늦어서 자신은 성배의 축복을 받지 못할까 봐 눈치를 보고 있다는 말이외다!”
그 말에 다른 의원들이 역시 수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로선 팔라딘들이 그들의 진영을 떠나 교황에게 간다고 해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들은 본래 교단에 충성을 맹세한 신성 기사들이었기에 교단의 가장 첫 번째에 있는 교황의 검이 되는 것 자체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성배 하나로 교황은 성국 내 모든 팔라딘들의 마음을 휘어잡은 것이었다.
한 주교의 외침을 시작으로 어느새 회의장은 초조해진 의원들의 성토와 고성으로 소란스러워졌다.
다른 의원들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피에르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떴다.
그러고는 다른 이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조용.”
피에르의 말에 열을 내며 소리치던 의원들이 말을 멈추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사실 가장 심란한 것은 다름 아닌 피에르 의장이었다.
그가 휘하에 두고 있는 팔라딘들의 수가 제일 많았기에 교황 쪽으로 이탈이 시작될 경우 타격을 가장 심하게 받게 될 터였다.
그가 의원들을 둘러보다가 입을 열었다.
“다들 너무 걱정들이 많은 것 같소.”
피에르는 우선 의원들을 진정시키며 말을 이어 갔다.
“설사 성배가 있다 해도 지금의 교황은 그 많은 팔라딘들을 움직일 힘이 없소. 알다시피 팔라딘들은 움직이는 돈 덩이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지. 의회 쪽에서 예산을 승인하지 않으면 교황청에서 어찌 팔라딘들을 유지할 수 있겠소이까.”
피에르의 말에 의원들이 곰곰이 생각해 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팔라딘들을 자신의 진영에 끌어들이기 위해 부정하게 축적한 재산을 이용해 많은 대가를 지불했다.
덕분에 팔라딘은 그 어떤 왕국의 기사들보다 부유했고, 사치스러워졌다.
그런 팔라딘들에게 들어갈 비용을 교황이 감당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성배로 힘을 받는 것은 잠깐이지만 물질이 주는 향락과 사치는 길고 달콤했다.
의원들은 팔라딘들이 그 삶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그때 대회의실로 누군가가 급하게 들어왔다.
사제 하나가 피에르 의장에게 다가와 뭔가를 속삭였다.
그 속삭임을 들은 피에르가 깜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오르드 경이 교황청으로 들어갔다는 말이냐?”
그 말에 다른 의원들 역시 깜짝 놀랐다.
바오르드 코르바치오.
바도카 성국에 존재하는 네 명의 아크 팔라딘 중 한 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