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slayer's Class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63
63화
잉그리트 단장은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막사 안을 계속 왔다 갔다 했다.
그때 수정구가 깜박였다.
단장은 수정구의 연락을 받았다.
“그래서. 어떻게 됐나.”
수정구 반대편에서 구금된 지크의 상황을 전달했다.
“페이넌 그놈이 드레이커 쪽의 제안을 거절했다고?”
단장의 표정이 밝아졌다.
현재 흑야차가 도주한 상황이었기에 지크 혼자서 델포아 상부 측에 뭔가를 고발하기에는 증거가 부족했다.
그가 드레이커를 통해 델포아 측에 항의를 할 수는 있겠지만, 증거도 없는 상황에서 자신과 흑야차 사이에 뭔가가 있었다는 걸 밝혀내기는 불가능했다.
거기에 상부 측에서는 이 부대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싶어 했다.
잉그리트로서는 돈과 경력을 함께 쌓을 수 있는 유리한 고지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1년만 더 버티면 중앙으로 올라갈 수 있다. 운이 좀 더 붙으면 마탑주 후보로도 나갈 수도 있고 말이야.’
페이넌이 지크의 제안을 거절했다는 말에 금세 자신의 장밋빛 미래를 그리는 잉그리트였다.
그가 한창 상상에 빠져 있는 그때, 막사 안으로 부관이 들어왔다.
“단장님. 요새 공격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가 수정구를 집어넣으며 말했다.
“요란한 거 몇 번 터뜨리고 철수하도록 한다.”
그의 부관 역시 이 유착 관계에 연계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는 단장의 명령에 의문을 품지 않고 곧장 막사 밖으로 나갔다.
잉그리트는 씨익 웃으며 전투에 나설 준비를 했다.
‘상황 봐서 흑야차 놈에게 다시 돌아오라고 해야겠군. 올해까지 버티다가 내년에는 다른 곳으로 옮기라고 하고 말이야.’
꼬리가 너무 길면 잡히는 법이었다.
이번 일도 있고 하니 더는 위험할 수 있었다.
자신이 필요한 경력을 딱 채우면 그대로 끝낼 생각이었다.
잉그리트는 부관에게 명령한 대로 마법사 부대를 정비하자마자 그들을 이끌고 요새 쪽으로 올라갔다.
요새를 향해 화려한 마법 몇 번을 터뜨리고 위쪽에서 공격을 퍼부으면 못 이기는 척 뒤로 빠져 병영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책임은 호르헤 놈이 지도록 하면 되겠지.’
평소와 같은 곳에 자리를 잡은 후, 잉그리트가 마법사 부대에게 마법을 사용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화르르르륵!
콰콰콰쾅!
퍼퍼퍼펑!
소리가 요란하고 화려하게 터지는 마법들 위주로 요새 쪽으로 날아갔다.
하지만 교묘하게 요새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가지 않는 방향 위주로 공격이 날아가도록 했다.
공격이 어느 정도 들어간 후, 잉그리트가 병력을 향해 명령을 내렸다.
“뒤로 물러나라!”
이제 요새 쪽에서 반격이 올 타이밍이었다.
하지만 안쪽에서는 평소처럼 화살이나 돌이 날아오지 않았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요새에서 반응이 없자 잉그리트는 당황했다.
그때였다.
요새의 정문이 열리는 것이었다.
“다, 단장님.”
옆에 있던 부관 역시 당황해 그를 불렀다.
그리고 정문 쪽으로 누군가가 나왔다.
잉그리트가 눈을 부릅떴다.
“네, 네놈은!”
놀랍게도 가장 앞에서 지크가 말을 탄 채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 뒤로는 지크의 일행들과 페이넌까지 함께 있었다.
잉그리트가 페이넌을 가리키며 말을 더듬었다.
“페, 페이넌! 도대체 네가 어떻게? 부, 분명……!”
그러자 지크가 잉그리트의 말을 가로채며 말했다.
“왜, 도청한 내용과는 다른 결과라서 놀란 건가.”
잉그리트의 말문이 막혔다.
지크는 이미 자신들의 숙소를 감시하고 도청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페이넌과 대화를 할 때 마법 스크롤을 사용해 도청이 되지 않도록 얘기를 나눴다.
그리고 잉그리트와 마법사단의 비리를 깨달은 페이넌은 곧장 지크에게 협력을 하겠다고 결정을 내린 상태였다.
“그렇게 되면 교수님은 더 이상 델포아에서 경력을 쌓기 어려울 겁니다.”
“부끄럽게 경력을 쌓을 바에는 그냥 포기하는 게 더 나아.”
유약해 보이는 인상과 달리 페이넌은 심지가 굳고 확고한 사람이었다.
그는 도청에 대비해 지크의 제안을 거절하는 척하고 곧장 가서 상부 쪽에 이 비리 사실을 알린 것이었다.
곧 페이넌 뒤로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잉그리트는 그들의 로브에 새겨진 문양을 보고 사색이 됐다.
‘저울과 검. 가, 감찰 부대……!’
델포아는 남부대륙처럼 국가 전체가 부패와 비리로 얼룩진 곳은 아니었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강력한 감찰 기관이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델포아의 감찰 부대는 혹독한 조사와 처벌로 유명했던 것이다.
그런 감찰부대의 대장이 앞으로 나와 잉그리트를 체포했다.
“잉그리트 학센. 너를 대륙 공적과의 유착 및 내통, 비리 범죄로 체포한다.”
잉그리트를 비롯한 마법사단의 마법사들의 손에 마력 제어 수갑이 채워졌다.
그가 감찰부대장을 향해 외쳤다.
“이, 이건 모함이오! 나는 내통을 한 적이 없소!”
그러자 감찰부대장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를 노려봤다.
“이미 요새 안에서 내통 증거들을 모두 확보했다. 발뺌할 생각은 버려라.”
완전히 외통수에 걸렸다는 걸 깨달은 잉그리트가 악을 쓰며 외쳤다.
“빌어먹을! 잡히면 내가 혼자 죽을 줄 알아! 나한테 줄 댄 상부 놈들이 몇 명인데! 내가 입 열면 다 다치는 거야! 델포아 전체가 들썩일 거다!”
그때였다.
지크가 잉그리트에게 다가가서 뺨을 후려쳤다.
“커헉!”
지크의 한 방에 잉그리트의 입 안이 완전히 터져 버렸다.
그가 이빨 몇 개를 피와 함께 뱉어 내고는 악을 질렀다.
“네, 네 녀석이!”
지크가 잉그리트를 차가운 눈빛으로 내려다보며 말했다.
“네놈은 물론, 네놈과 연관된 다른 쓰레기 놈들도 전부 줄줄이 엮어서 들어갈 거다. 연줄이 많다고? 마음껏 써 봐라. 나는 드레이커의 직계 혈족이자 순혈 각성자이고, 과거 흑색 기사였던 듀크 드레이커의 유일한 전인이다. 한번 내기해 보는 것도 재밌겠군. 누구 연줄이 더 많을지.”
지크의 말에 잉그리트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자신이 건드린 사람이 누구인지 그제야 깨달은 것이었다.
잉그리트가 무너지듯 지크 앞에 털썩 무릎을 꿇고서 빌기 시작했다.
“자, 잘못했습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발! 요, 용서를……!”
지크가 잉그리트를 노려보며 말했다.
“용서는 내가 아니라 네놈 때문에 무의미하게 죽어 간 기사단원들에게 빌어라. 이 쓰레기 새끼야.”
결국 잉그리트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감찰부대에게 끌려갔다.
감찰부대장은 안드레이에게 와서 감사의 인사를 표했다.
“도움을 주신 드레이커 가문과 발할라 쪽에 정식으로 감사 공문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델포아 측에서 빠르게 대응해 주셔서 무사히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감찰부대는 요새에서 잡은 흑야차 무리와 마법사들을 압송하고 현장을 정리했다.
그것들을 지켜보는 그때 지크 쪽으로 누군가가 다가왔다.
“기사님.”
호르헤를 비롯한 8기사단원들이었다.
그들은 이번 비리와 관계없다는 지크의 증언으로 감찰 대상에서 제외됐다.
하지만 마법 부대인 8사단이 없으면 그에 속한 기사단 역시 존재할 수가 없다.
그 때문에 다른 마법사단에서 이들을 데려가지 않으면 8기사단은 그대로 해체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소속되어 있던 마법사단을 배신한 이들이라고 낙인이 찍힌 기사단을 받아 줄 곳은 없었다.
지크가 호르헤를 보며 말했다.
“후회하지 않나, 호르헤.”
이전과 달리 명백한 반말이었지만 호르헤는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고는 뒤통수를 긁적이며 말했다.
“후회랄 것도 없습니다. 억울하게 죽은 동료들에게 미안할 따름입니다. 못난 단장을 만나서…….”
결국 목이 멘 호르헤의 말에 다른 기사단원들도 눈물을 훌쩍였다.
생긴 건 다들 산도적 저리 가라 싶을 만큼 우락부락했는데 눈물이 참 많았다.
그들을 보고 있던 지크가 호르헤에게 말했다.
“자네들이 괜찮다면 새로운 일자리를 권해 주고 싶은데 말이야.”
그 말에 호르헤가 깜짝 놀랐다.
“새, 새로운 일자리 말입니까?”
지크가 품에서 계약서를 하나 꺼냈다.
계약서를 받아 든 호르헤가 입을 쩍 벌렸다.
“기, 기사님. 이건…… 조건이 너무 좋습니다. 단위가…… 잘못된 거 아닙니까?”
“나랑 같이 일하려면 이 정도는 받아야지.”
“기, 기사님과 함께라고요?”
“그래. 내가 이번에 만든 상회가 하나 있다. 그곳에 호위단이 필요했는데 그쪽에서 일을 좀 해 줬으면 좋겠군.”
“마, 맙소사. 저희 기사단 전원을 모두 고용하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왜 싫은가.”
호르헤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럴 리가요! 뭣들 하냐, 주군께 인사 올리자!”
호르헤를 비롯한 기사단원들이 일제히 지크를 향해 무릎을 꿇고 절을 했다.
지크가 혀를 차며 호르헤에게 말했다.
“뭐, 가면 꼭 좋은 일만 있지는 않을 거야. 무서운 교관이 있거든.”
지크는 이들을 한동안은 남부로 보내 시몬에게 교육을 맡길 생각이었다.
겸사겸사 새롭게 지어질 공장의 호위도 맡기고 말이다.
8기사단의 거취를 정리한 지크가 페이넌에게 말했다.
“페이넌 님께서는 델포아의 일이 정리되는 즉시 아틀라스로 오십시오. 앞으로 함께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페이넌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마스터.”
교수와 학생의 관계에서 새롭게 주종 관계가 된 지크와 페이넌이었다.
지크는 델포아에서의 일을 마무리 짓고 일행들과 함께 아틀라스로 돌아갔다.
특별 졸업 임무의 결과가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말았기에 어떤 평가가 나올지는 알 수가 없었다.
* * *
쿠궁!
미들랜드에 마련된 모처에 검은 제복을 입은 자들이 모여 있었다.
이들이 입은 제복은 드레이커와 같은 모양이었지만, 용살패 대신 두 쌍의 흑익을 달고 있었다.
드레이커지만 드레이커가 아닌 이들.
그럼에도 가장 드레이커 다운 이들이 바로 흑무대원들이었다.
원형 탁자에 흑무대장이 앉아 있었고, 오른쪽과 왼쪽에는 부대장들이 앉아 있었다.
흑무대의 주요 인원들이 모두 회의에 참석한 상황.
머리카락과 눈썹이 없는 매서운 인상의 흑무대장은 손에 낀 순혈각성자의 검은 장갑을 매만지며 말했다.
“다들 바쁜데 불러서 미안하군.”
바론 드레이커.
흑무대장은 흑무대 중 유일하게 드레이커의 이름을 허락받은 사람이었다.
그가 흑무대 간부들을 향해 말했다.
“자잘한 문제들은 각자 알아서 잘 처리할 거라 믿고 제일 큰 문제만 짚고 넘어가지.”
흑무대장의 눈빛이 바뀌었다.
“남부 대륙 쪽이 요즘 시끌시끌하더군.”
그의 말에 옆에 있던 좌익 부대장이 말했다.
“대장님. 그래 봐야 마약이나 팔고 다니는 깡패 놈들입니다. 너무 우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흑무대에서도 좌익은 주로 전투 쪽의 상황에 투입되는 부대였다.
그들이 지닌 전투력으로 보면 카르텔은 보잘것없는 깡패 무리에 불과했다.
그때 옆에 있던 우익 부대장이 입을 열었다.
“남부 카르텔은 짧은 시간 동안 빠르게 상장한 곳입니다. 메케인 카르텔의 돈 후앙 같은 경우에는 남부 전체를 모두 휘어잡고 소마의 생산, 제조, 유통을 한번에 독점하면서 어마어마한 부를 축적했습니다. 결코 가볍게 볼 만한 상대는 아닙니다.”
우익 부대는 좌익과 달리 첩보와 정보 수집, 분석 쪽을 담당했다.
그때 흑무대장이 입을 열었다.
“돈 후앙이 죽었다.”
그 말에 부대장들 전부가 깜짝 놀랐다.
대륙의 모든 정보를 쥐고 있는 흑무대원 중 누구도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니, 그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우익 부대장이 침착하게 말했다.
“대장님. 현재 돈 후앙은 파벨라 카르텔의 공세를 피해 모습을 감춘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흑무대장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돈 후앙이 모습을 감춘 뒤 메케인 카르텔은 여러 조각으로 찢어졌지. 그곳과 전쟁 중인 파벨라 역시 보스들이 거의 다 죽어서 마찬가지인 상태고. 그런데 이런 상황에도 돈 후앙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게 이상하지 않나.”
대장의 말에 우익 부대장이 입을 다물었다.
사실 남부 카르텔에 대한 부분은 그리 깊게 생각하지 않았기에 돈 후앙이 단순히 숨어 있겠거니 하고 넘겼던 것이다.
흑무대장이 테이블에 손을 올리자 공중에 마법 영상이 떠올랐다.
“한 달 전 파벨라 쪽에서 찍힌 영상이다.”
영상에는 검은 복면을 쓴 이들의 모습이 찍혀 있었다.
그가 화면을 더 넘겼다.
“이건 메케인 쪽에서 찍힌 영상이고.”
마찬가지로 복면을 쓴 이들의 사진이 찍혀 있었다.
흑무대장이 손을 쫙 펼치자 곳곳에 복면을 쓴 이들의 사진 여러 장이 쭉 배열됐다.
그가 화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가운데 있는 인물. 저자가 메케인과 파벨라 사이를 움직이며 두 카르텔을 무너뜨렸다. 그런데 아직 어느 곳에서도 저자의 정체를 밝혀내지 못했지.”
흑무대장이 날카로운 눈으로 영상을 보며 말했다.
“지금 이 시간부로 저자를 찾는다. 정체가 뭔지. 무엇 때문에 남부의 굵직한 카르텔들을 건드린 건지 모두 알아야겠다.”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방에 있던 흑무대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륙의 가장 강력한 첩보 기관인 드레이커 흑무대.
그곳에서 지크의 뒤를 밟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