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222
0221 사올라(1)
우뚝 멈춰 선 사올라의 모습에 안도하며, 우리는 곧장 사올라에게 다가갔다.
처음에는 우리가 다가오는 것에 두려워하는 듯한 기색이 느껴졌지만, 이내 나와 소은이를 발견하고서는 도망칠 생각 자체를 지운 듯했다.
조금씩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음에도, 녀석은 도망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덕분에 우리는 금세 사올라의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 있을 수 있었다.
“조금 신기하게 생겼네.”
그리고, 사올라에게 가까이 다가간 누나는 흥미가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신기하다고 이야기했다.
머리 부분을 보자면 사슴처럼 생기기는 했지만 머리에 달린 뿔이 염소의 것과 비슷했다. 머리 뒤로 뾰족하고 곧게 뿔이 나 있었다.
단순히 그 정도였다면 신기하게 여기는 일은 없었을 것이었다. 사올라에게서 가장 신기한 것은 머리와 많이 차이가 나는 ‘몸’이었다.
마치 소의 몸처럼 제법 다부진데, 다리가 조금 짧다고 느껴지며 복부에서 위쪽이 조금 더 발달해 있었다.
한 마디로, 사슴과 염소와 소를 섞어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안녕!”
하지만 신기하게 생겼든 말든, 소은이는 도도도도- 달려가서 사올라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덩치가 좀 있긴 하지만, 눈 높이 자체는 소은이와 비슷했기에 눈을 마주하고 인사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런 소은이의 모습에 눈만 끔뻑이던 사올라가 슬그머니 고개를 숙였다. 마치 인사하는 소은이에게 인사를 해주는 것 같았다.
“이히히! 압빠! 사올라가 인사해줘써!”
그 모습에 소은이가 무척 좋아하며 웃음을 터트렸다. 대부분의 동물들은 인사를 해주면 좋다고 달려들었지, 지금처럼 인사를 받아주는 경우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이 차카다!”
제 인사를 받아준 것이 그리 좋았던 건지, 소은이가 사올라의 얼굴을 부드럽게 쓸어주었다.
사올라는 그런 손길이 좋은 것인지, 더 쓰다듬어 달라는 듯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하지만 소은이는 그런 사올라를 더 쓰다듬어 주는 대신, 다른 행동을 보였다. 사올라의 곁으로 살짝 이동하더니, 그대로 녀석의 위로 올라타기 위해서 낑낑거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가볍게 폴짝 뛰어올라, 녀석의 등허리에 배를 걸친 다음, 팔다리를 버둥거리며 올라타기 위해 애를 쓰는 것이었다.
덩치가 어느 정도 되는 4족 보행 동물이라면 일단 타고 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의 보유자였기 때문이다. 지금 사올라는 소은이가 타고 싶어 하는 동물의 조건에 부합하는 녀석이었다.
다만, 조건에는 부합하더라도 털이 조금 미끄러웠는지 소은이가 좀처럼 올라타지 못하고 미끄러지고 있었다.
“……타요.”
제게 올라타려 하는 것임을 눈치챈 사올라는 슬쩍 다리를 굽히며 몸을 숙여주었다.
그제야 소은이는 폴짝 뛰어오르는 것으로 녀석의 등허리 위에 안착할 수 있었다.
“야호!”
사올라의 몸에 올라탄 것에 해맑은 미소를 지은 소은이는 주먹을 불끈 쥐며 소리쳤다.
하지만 그 해맑은 표정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잉.”
“왜 그래?”
“미끄러!”
“미끄러워?”
“웅. 떨어지게써.”
사올라라는 종 자체가 그런 건지, 아니면 소은이가 입고 있는 옷의 재질과 맞지 않았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소은이는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애를 쓰고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아코!”
제 등허리 위에서 꼼지락거리는 소은이의 행동에, 무슨 일인가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던 사올라의 행동이 문제였다. 머리 위로 나 있는 길쭉한 뿔이 소은이의 옷을 긁어버린 것이었다.
뾰족한 뿔이 몸을 찔렀으면 큰일이었겠지만, 옷을 가볍게 긁은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 무척 다행이었다.
나는 사올라의 등에 소은이를 타게 내버려 두었다간 상처나기 쉽겠다는 생각을 하며, 소은이를 내려주었다.
“뿔 때문에 사올라한테는 타면 안 되겠다. 내리자, 소은아.”
“잉.”
사올라에게서 내려오게 된 소은이는 아쉽긴 하지만, 녀석에게 올라타겠다고 떼를 쓰지는 않았다.
소은이도 자기가 다칠 수 있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동물들에게 올라탈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더군다나, 자기가 제법 아끼는 옷에 살짝 구멍도 났으니 더더욱 탈 생각이 없어 보였다.
“휴……!”
그리고, 소은이가 바닥으로 내려오니 뒤에서 무척이나 안도하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누나가 내는 소리인 줄 알았는데 그 소리를 낸 것은 누나가 아니었다.
“또 라이벌 생기는 줄 알았네.”
안도하는 소리를 낸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뽀니였다. 루돌프 녀석이나 호돌이같이 간간이 소은이가 올라타는 동물들을 라이벌로 여기는 뽀니였기에, 새로운 라이벌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에 안도하는 것이었다.
“히히히힝!”
오히려, 소은이가 제게 다시 올라타는 것을 보며 기뻐하고 있었다. 아니, 도발하는 것에 가까웠다.
사올라를 향해 이것 보라는 듯이 몸을 두둥실 흔들며, 꼬리도 살랑살랑 흔들어대는 것이었다.
마치 ‘너는 못 태우지만, 나는 태울 수 있다고!’라며 자랑하는 듯한 느낌이 물씬 풍겨왔다.
그리고, 그 도발은 아주 잘 먹혀들었다. 그것도 엄청나게.
“뿔……! 뿔 때문이라니……! 이 뿔, 당장!”
자신의 뿔 때문에 소은이가 자기에게 올라타는 것을 포기했다는 것에, 사올라가 폭주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녀석은 제 뿔만 없었더라면 소은이를 등에 태웠을 거라며, 갑자기 근처에 있는 나무를 향해 돌진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뿔이 문제라면, 뿔을 없애버리겠다는 의지가 활활 타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당연하게도 녀석의 그 행동을 보고 있을 수 없었다. 세상에 몇 마리나 남아 있는지 정확히 파악도 되지 않을 녀석이었는데, 스스로 뿔을 부수겠다고 자해를 하는 모습을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지금 일행 중에 수의사가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다치기라도 하면 큰일이었다.
“머, 멈춰!”
다시금 마법의 단어를 외치니, 사올라 녀석이 뻣뻣하게 굳으며 달리려던 자세 그대로 굳어버렸다.
덕분에 중심을 잡지 못한 녀석이 바닥을 향해 쿵- 쓰러졌지만, 뿔이 부러지는 것보다는 낫다고 할 수 있었다. 바닥에 딱히 뾰족한 것이나 돌덩이가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다칠 이유도 없었다.
“임마. 갑자기 뿔을 부순다고 그러면 어떡해.”
“하지만…….”
“하지만은 무슨. 어차피 뿔이 아니라도 소은이는 너 못 타. 미끄러워서.”
내 말에 사올라 녀석이 충격을 받은 듯한 모습이었다. 이번에는 열심히 관리해왔던 털이 문제냐는 것이었다.
한껏 시무룩해진 사올라 녀석은 바닥에 널브러진 상태 그대로 머리를 슥슥 움직였다. 마치 사람들이 쭈그려 앉아, 손가락으로 흙바닥을 헤집는 듯한 느낌이었다. 손가락이 아니라 뿔로 헤집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였다.
녀석의 뿔이 바닥을 슥슥 긁으며 모래를 뒤집고, 살짝 튀어나온 나무의 뿌리를 긁어댔다.
그런 녀석의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나는, 녀석을 툭 건드리며 입을 열었다.
“소은이를 태우고 다니진 못해도, 근처에 있을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어때? 생각 있어?”
“무엇이든!”
벌써부터 소은이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는 듯, 사올라는 언제 자빠져 있었냐는 듯이 벌떡 일어났다.
“어우, 깜짝이야. 하여간, 우리 딸이 동물들한테 참 인기가 좋아?”
“헤헤헤헤!”
내 말에 소은이가 기분 좋다는 듯이 해맑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가볍게 웃음을 지은 나는 다시금 사올라에게 시선을 돌렸다.
“여기가 아니라, 우리가 사는 곳으로 같이 가지 않을래? 거기에서 지낸다면 소은이도 매일 볼 수 있고, 포식자들의 위협이나 굶을 걱정 같은 건 안 해도 될 거야.”
“…….”
내 말에 사올라 녀석이 잠시 고민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소은이가 좋긴 한데, 지금까지 살아온 곳을 떠나야 한다는 것이 걸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잠시 동안 조용히 고민을 하던 녀석은 이내 결론을 내렸다.
“정말 아쉽지만 같이 가지는 못하겠네요.”
“진짜? 아니, 왜?”
나는 소은이를 보고서도 같이 가지 않겠다는 이 녀석의 선택에 의아함을 느꼈다. 무엇이든지 하겠다고 외쳐놓고, 이제 와서 거절하니 이상하게 여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돌봐야 하는 가족들도 있고, 친구들도 여기 있으니까요.”
“그러면……. 걔들 전부랑 같이 가는 건 어때? 싹 다 데리고 가도 돼.”
“오……?”
내 말에 사올라 녀석이 흥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소은이도 무척 좋지만 그보다 더 신경 써야 하는 가족들까지 있다 보니 거절했던 건데, 다 데려갈 수 있다면 거리낄 것이 없는 듯했다.
“네 가족들이랑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 줄래? 같이 가서 이야기해보고 의견도 들어 봐야 할 거 아냐.”
사올라 녀석은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움직였다.
“거기서 뭐하고 있어요? 빨리 가죠.”
오히려 우리 보고 느리다며 재촉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고개를 내저은 나는 가족들과 경호원들을 이끌고 사올라 녀석을 따라 이동했다.
조금 거리가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 있던 건지, 이십여 분 가량을 열심히 걷고 나니 녀석이 멈춰 섰다.
“와! 아기 사올라!”
열심히 보금자리를 조성해둔 건지, 몇 그루의 나무 사이에 두 마리의 새끼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주변으로 넝쿨이나 수풀 같은 것들이 그득했기 때문에 그냥 지나다니는 걸로 발견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다.
그리고, 그런 보금자리에 있는 새끼 사올라들을 바라본 소은이가 호다닥 달려가 녀석들을 쓰다듬었다.
뿔도 은수의 손가락만 한 것들이 나 있는 새끼 사올라들은 낑낑거리며 소은이에게 들러붙었다.
소은이가 동물들에게 정말 인기가 좋다는 감상이 나올 정도로, 새끼 사올라들이 소은이에게 들러붙는 것이었다.
“다른 가족들이랑 친구들을 데려올게요!”
새끼들이 소은이에게 들러붙는 것을 잠시 바라보던 사올라가 호다닥 달려나갔다.
그리고, 녀석이 돌아올 때는 총 다섯 마리의 사올라들이 따라오고 있었다.
“어때? 따라가도 좋겠지? 엄청 느낌 좋지?”
돌아온 사올라는 이곳까지 오며 제 가족과 친구들에게 미리 설명을 했던 건지, 소은이를 가리키며 어떠냐고 연신 질문을 날렸다.
당연한 말이지만, 다른 사올라들은 소은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안 그래도, 요즘 이곳이 시끄럽잖아. 어차피 다른 곳으로 이동할 생각이었으니까, 이참에 저 아이가 있는 곳으로 가자.”
가장 먼저 우리와 마주친 사올라는 소은이를 따라가고 싶은 마음이 꽤나 컸던 건지, 열심히 제 가족과 친구들을 설득했다.
보고 있으면 좋다, 쓰다듬어지면 행복해진다, 따라가면 안전해진다 등등. 온갖 이야기들을 늘어놓는 것이었다.
결국, 그 설득에 이기지 못하고 소은이의 매력에 푹 빠져버린 다섯 마리의 사올라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 같이 따라가기로 했어요!”
마치 춤이라도 추는 듯, 타닥타닥 경쾌하게 움직이는 사올라였다. 온몸으로 기쁨을 표시하는 것 같았다.
그 모습에 피식 웃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녀석들 모두를 데리고 가기로 결정했다.
전 세계에 몇 없다는 사올라였지만, 하루 만에 여섯 마리 성체와 두 마리의 새끼들을 우리 동물원에서 보유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위성을 통해 어디서든 이용할 수 있는 위성폰으로 동물원에 있는 직원들에게 사올라를 위한 우리를 조성해둘 것을 지시한 나는 곧바로 도시로 향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도시로 향하는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사올라를 찾기 위해 생각보다 깊은 곳까지 들어오며 시간이 제법 늦어졌기 때문이다.
“사장님. 야간 이동은 위험할 것 같습니다만……. 이 근처에서 하룻밤 야영하는 게 좋아 보입니다.”
“하긴, 어두우면 위험하긴 하죠. 발밑에 뭐가 있는지도 잘 안 보일 테니.”
어느덧 해가 지며 어둑해지는 주변에, 우리는 야영을 하기로 결정했다. 경호원들이 지고 다니던 일부 짐가방 속에 야영을 위한 장비들이 충분히 있었기에, 어려운 선택은 아니었다.
인간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는 이러한 산맥에서의 야영이라면 야생동물로 인해 위험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우리에겐 해당하지 않는 일이었으니 문제 될 것도 없었다.
“와! 캠뿌!”
더군다나, 오래간만의 캠핑이라며 소은이가 좋아할 정도였다.
“그러면 은수는 태어나서 처음 하는 캠핑인가?”
누나 역시 딱히 야영하는 것에 거부감이 없다는 듯, 주변에서 나뭇가지 몇 개를 주워 은수의 손에 쥐여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