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ing the World Tree RAW novel - Chapter 186
이도원 (5)
하나 둘씩.
이 근방을 돌다 보니 몇 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튀어나와 내 근처를 포위하기 시작했다.
“…….”
이상하게 흐릿한 마력이 존재하고 사람도 꽤 많아서 의심 단계에만 있었는데.
이렇게 직접 나와주니 고마울 수 있을까.
발자국을 뒤로 빼기는커녕 앞으로 더 내딛는다.
보관하는 컨테이너가 수십 군데에 존재하고. 무슨 물건인진 모르겠으나 하역에 쓰이는 꽤 거대한 트럭들이 보인다.
살갗을 찔러오는 상대의 시선에는 적의가 가득하다.
-저벅, 저벅.
더 깊은 곳으로 걷는다.
주변에서 몰려오는 자들의 눈매가 서서히 변화하고, 내 신경이 그들의 주머니에 쏠렸다.
흔들리는 마력의 형질은 지금까지 잘 보지 못한 형질.
탁류처럼 일정한 방향을 가지고 있다가도 어색하게 흔들리는 부분이 보인다.
플라워에게서만 볼 수 있는 이상한 마력이다.
-저벅.
걸음을 지속해 놈들의 정 중앙에 섰다.
나를 중심으로 벽에 숨거나, 대놓고 나를 보고 있는 플라워의 남자들.
누구냐고 물어볼 법도 하고, 정상인인 척 나에게 다가와 나가라고 한마디를 할 생각은 없어 보인다.
뭐 그렇게 하더라도 죽이는 건 마찬가지였겠지만.
내 생각이 끝나기 무섭게 한 사람이 컨테이너 쪽에서 걸어 나왔다.
보기에는 정말 건실해 보이는 청년의 얼굴.
그러나 눈이 맥아리가 없고 희미하게 연초를 태운 냄새가 났다.
나는 그 남자가 나온 문 쪽을 향해 걸어갔다.
손만 뻗으면 닿을 정도로 남자와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누구지? 헉- 큽!”
남자가 말을 꺼내는 순간-
그의 안면을 잡고, 그대로 밀어붙이며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그 안에 서 있던 로브를 입은 사람들을 보곤 입가에 절절한 미소가 흘러나왔다.
“많네.”
-쾅!
컨테이너의 반대쪽 벽으로 남자를 던진다.
큰 소리가 일어나고, 부닥친 남자는 두개골이 함몰된 채 눈을 까 뒤집고 벌벌 떨다 그대로 벽 아래로 떨어졌다.
-끼이익 쿵!
거칠게 문 닫는 소리가 번개처럼 울렸다.
나는 손에 쥐고 있는 문 고리를 흘기곤, 그것을 말없이 그들의 앞에 던져주었다.
-탁, 그르르르.
쥐어 뜯겨 손 자국이 남아있는 문 고리. 회전하며 구르다 정지한다.
-끼기기기.
경첩이 떨어져 나간 문이 넘어가고.
-쿵!
작살난 문이 땅에 닿음과 동시에 로브를 입은 사람들의 안색에 경계심이 깃들었다.
“플라워.”
눈가에 파노라마처럼 비치는 미래의 형상.
굳은 피. 차가운 피부. 한 올 한 올씩 떨어져 나가는 속눈썹.
왜인지 모르게 사라진 전화번호부.
남아있는 미래의 나의 애틋한 문자, 제발 연락해달라고. 스승님께 보내었던 마지막 톡.
미소로 굳어버린 그 사람의 얼굴은 죽었는지조차 깨닫기 힘들다.
“맞냐?”
탁, 탁.
눈에 실 핏줄 터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차갑게 가라앉은 정신은 이때를 위해서라는 듯, 서서히 심장을 가동 시켰다.
쿵쿵쿵. 귀에 시끄럽게 울려오는 심장 소리.
장례식 때 들었던 이명이 스치듯 깨어나고.
퉁명스런 감정이 목에 턱 걸렸다가. 멈추지 않고 입 밖으로 터져버렸다.
“맞지?”
널브러진 각목 중 하나를 발로 찬다.
공중을 휘돌 듯 날아오른 각목이 그대로 내 손안에 들렸다.
-스스스슥.
품 안에서 검과 짧은 완드를 꼬나 쥔 플라워의 조직원들.
마치 그것이 생명의 동앗줄이라도 된 것 마냥 나를 향해 겨눠 온다.
그럼에도 내게 덤벼드는 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눈치를 보거나 내 안색을 살필 뿐.
“…….”
우리의 주위에 말은 없었다.
정체가 누구인지 묻는 자도 없었고. 그저 서로를 적으로 인식했을 뿐이었다.
-덜덜덜.
눈앞에 수 놓인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칼날이 벌벌 떨린다. 그 모습이 퍽 우습게 느껴졌다.
‘너희도 사람은 사람이구나.’
그래.
이런 놈들도 가족은 있을 것이고. 형제도 있으며. 이런 녀석을 낳아준 부모님도 자기 자식은 사랑으로 키웠겠지.
고아일지언정 우정을 품은 존재도 있을 것이고. 사랑이나 비슷한 감정으로 잠시나마 행복한 꿈을 꿨을지도 모르겠다.
삶이란 게 그런 거고.
최악의 테러리스트에 가담하는 자들도 다르진 않다.
알고 있다.
아버지가 그랬거든.
막 인터넷 기사와 신문에 이야기가 돌기 시작했을 때 짓던 아버지의 표정이다.
-저벅.
나는 앞으로 한 발자국 걸었다.
모든 로브를 입은 사람들이 나를 향해 걸어온다.
넓게 확장되는 시야에는 그들의 얼굴 하나하나가 너무도 평범하게만 보였고.
비틀린 그들의 얼굴에는 원색적인 살의가, 평범함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었다.
-저벅.
한 발자국.
-촤학!
각목을 내려놓는다.
창문에 피가 패턴 없이 흩날린 꽃잎처럼 난잡하게 튀었다.
실이 끊어진 목각인형같이 와르르 쓰러지는 사람들.
팔과 다리가 반대로 뒤 꺾인 채, 그들이 서있던 그 자리에서 죽어 있었다.
음지에 발을 담근다.
피비린내나는 깊은 바다에서 눈을 떴다.
잠수하여 눈을 뜨기 직전의 공포감.
하지만 막상 떠보면 그리 아프지는 않다.
어두운 사회를 맛볼 때의 감정을 비유하자면 그것이 딱 알맞다.
보통이었다면 천천히 적응해나갔겠지만, 나는 이미 천마의 아래서 살인을 수십 번이나 저질렀으니.
나는 각목을 컨테이너 바닥에 내던졌다.
-쿵!
바닥이 찌그러지며 각목이 산산조각난다.
고까운 감정은 가슴 속 깊은 어느 한곳에 집어 넣고, 부서진 문 바깥으로 걸어 나갔다.
바람이 의외로 시원하다.
컨테이너의 안에서 발이 떨어지자 몸이 가볍게 진동했다.
그 안에 있었던 소동은 그렇게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철컥.
소음기가 달린 권총과, 굳은 피를 닦지 않은 검이 이번에도 어김없이 나를 향해온다.
심상치 않은 상황이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도망가는 사람 하나 없다.
범인의 얼굴들임에도 정신력은 박수를 쳐줄 만 하다.
아마도 교육을 단단히 시켰거나.
…아니면 플라워가 이들의 정신을 꽉 쥐고 있거나. 둘 중 하나겠지.
“누구지?”
한 남자가 말한다.
“알아서 뭐하게.”
그 물음을 비웃어 준다.
“…….”
이름이니 뭐니 떠벌리면서 다닐 만큼 내가 바보는 아니다.
“플라워냐?”
대신 똑같은 물음을 그에게 전달했다.
“…….”
침묵으로 일관하는 남자의 모습.
혹시나 녹음기를 틀어두긴 했는데. 제법 괜찮은 생각이다.
이놈들이 플라워를 인정하지만 않으면 나는 그냥 살인자가 되어버리니까. 언론에 퍼뜨리기 참 쉽다.
공장 안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 수십의 시체가 발견 돼 경악.
당연히 그 범인을 찾으려 할 것이고 보통 사람이었다면 바로 걸렸겠지
화상 자국이 남아있는 남자에게 한 걸음 다가섰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상대에게서 총소리가 들려왔다.
-타앙!
화약 터지는 소리와 함께 총에서 들려오는 기합.
붉게 달아오른 총열.
공간에 빗금이 그어진다.
해가 뜬 공장 지대, 인간의 형태를 띤 그림자가 반으로 잘려나갔다.
*****
“……그래서?”
“잇달은 폭발로 사망. 그리 보도가 되었습니다.”
로브를 뒤집어쓴 남자가 담담하게 정보를 전달한다.
폭발 사건. 마력의 흔적과 마력 가공수가 뒤섞이며 그 근방을 풀 한 점 남기지 않고 불태웠다.
이로인한 인적 피해와 재산 피해는 꽤 뼈가 아프다.
“그런가.”
얼굴의 코를 중심으로 원형의 무늬가 새겨진 남성이 썩은 얼굴을 했다.
“혼자라고 들었는데……솜씨 좋은 놈이군.”
플라워가 사용하는 테러 수단.
그러니까 예전에. 엔트 사건때 일으켰던 폭발의 형질과 비슷한 마력의 자흔이 남았다.
어떤 누군가가 강제로 그때 그 폭발을 비슷하게 일으킨 것이다.
경찰은 당연하게 마력의 흔적을 보곤, 이전에 있었던 일과 연관을 지었고.
그 결과 수사를 플라워의 테러로 확정을 지었다.
“크크크. 우리가 우리 밥줄에 불을 질러?”
시스투스. 세 번째 잎새의 부간부.
가축 관리자 튜베로즈.
그는 열이 오른 뜨끈한 머리를 어루만지며 서류를 눈앞의 남자에게 던졌다.
“……그래. 돈은 썩어나니까 괜찮아. 가공수가 거기서 구할 수만 있는 것도 아니고.”
세계의 자본 중 몇 퍼센트가 플라워에 기어 들어가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수준인데, 고작 공장의 화재가 큰 일일까.
그러나 한 명의 적에게 손도 쓰지 못하고 당해버렸다는 것은, 납득을 하려 해도 꿈자리가 사납다.
튜베로즈는 이를 갈며, 남자의 옆으로 다가가더니. 슬쩍 어깨를 밀쳤다.
-쿵!
힘없이 날아간 남자가 벽에 부닥친다.
“컥, 크헙.”
“다음엔 조심해라. 알아서 처리해. 이번에도 체면이 더럽혀지면… 그땐 내가 움직이는 수가 있으니.”
“아, 알겠습니다.”
튜베로즈는 뒷골을 당기며 집무실에 나와 지하로 내려갔다.
쇠로된 열쇠로 문을 열어젖히자. 코끝을 스치는 자욱한 꽃향기에 그는 음심이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돈 주머니 하나가 사라지면, 여기서 벌면 되는 거지.”
쇠 수갑을 차고, 어느 한 곳에 갇혀 정신을 잃은 수많은 여성 목인들.
그들의 머리에는 하나같이 꽃이 달려 있다.
튜베로즈는 근처 책상 위에서 약 두 개를 꺼내 한 여자에게 다가갔다.
적색의 머리가 빛이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다.
“아이고… 많이도 썼네. 상품 가치 떨어지니까 작작 좀 쓰라니까 그 새끼들”
그는 주사기를 하나 꺼내 그 안에 첫 번째 약을 담고 흔들어 공기를 짜냈다.
“응응, 그래. 기다렸어?”
주사기를 꽂고, 약을 주입한다.
그 순간 사과나무 목인의 머리에서 꽃이 펑펑 튀어나왔다.
다른 약을 주입하자 이번에는 머리에 과일이 자라난다.
평생 한 번도 피우지 못할 꽃을 몇 번이고 뽑아내는 유일한 방법.
여성 목인의 꽃과 열매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 가치가 컸다.
실제로 재능을 늘려준단 소문이 있고. 꽃의 경우는 달여 마시기만 해도 건강에 좋다.
부자들이 흔히 고액에 사는 이유가 있었다.
‘이상한 년들. 처음엔 단순한 마약으로 시작했는데. 행복을 찾아서 알아서 감금을 당하니.’
약을 연속해서 주입하며 튜베로즈는 싸늘한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이 자리에 있는 목인들 모두. 예전에는 귀한 귀족취급을 받았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 세계의 버려진 떨거지들 중 하나. 이들의 분류는 간단하다.
세계수의 명령에 귀족 신분을 박탈당한 목인이라거나.
아니면 치열한 가문 싸움에 밀려 몰락해, 이곳으로 수용된 이들이라거나.
어린 남자 아이에게 몹쓸 짓을 하여 잡혔다가, 나중에 빠져나와 음지로 숨어들어 잡힌 여자들 등.
이들 모두가 처음에는 현실을 도피하기 위한 ‘고객’으로 시작해. 알아서 ‘상품’이 되겠다고 찾아오는… 존재가 돈인 사람들이다.
한심하고, 벌레같은 여자도 많다.
튜베로즈는 이 축사를 관리하는 시스투스라는 간부의 왼팔이었다.
“튜베로즈.”
“…그렇게 뜬금없이 찾아오십니까.”
튜베로즈의 등 뒤에서 싸늘하게 박히는 어린 유아의 한 마디.
“이번에 일이 터졌다고 하던데.”
“네.”
어리고 어려, 손에 쥐면 꺾여버릴 것만 같은 여아의 얼굴은 차마 보기 힘들 정도의 위압감을 풀풀 풍기고 있었다.
이 조차도 시스투스의 분신이라.
시스투스의 어떤 부하도 그의 본신을 만나본 적은 없었다.
그 떄문에 웃기 힘든 괴담이 돌 때도 있다.
분신 속에 본신을 감추어, 태만함이 발견되는 순간 그 자리에서 명이 끊긴다는 소문.
튜베로즈는 어색하게 웃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할 지는 잘 알고 있겠지?”
“…네.”
“분신을 마련하기 위한 제물을 마련하도록.”
분신을 마련하기 위한 제물.
어린 아이 10명.
아무리 쓰레기라지만 튜베로즈도 일정한 선은 있었다.
산 아이의 우는 얼굴을 보는 건 기분이 나쁘다.
이 가축들이야 지들이 알아서 인생 말아먹고 마약으로 도피하다가 찾아온 년들이라 쳐도.
애들은 거의 빈민가에서 납치해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까.
아니면 창녀 노릇을 하는 놈들의 아이를 쓴다거나.
“그리고- 수틀리면 네놈이 직접 움직여라.”
제 3위 간부, 그 직속 부하가 움직이는 건 헌터 협회에 있어서는 전쟁의 선포를 알리게 될 수도 있다.
그걸 알면서도 시스투스는 그가 나서길 강요했다.
호전적인 간부.
그래서 좋다.
할 줄 아는게 마약 제조와 창녀촌 드나들기밖에 없던 자신을 쓴 것은 이 사람이 처음이니까.
“예.”
튜베로즈는 고개를 주억였다.
광기로 가득찬, 의심하나 없는 굳은 의지의 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