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ing the World Tree RAW novel - Chapter 191
첫 번째 격돌 (5)
“정상화 됐습니다.”
믿기지 않는다는 듯, 모니터를 바라보는 헌터가 이마를 짚고 읊조렸다
“빨리 복구시켜. 사망자 확인하고.”
유족들에게는 못할 말이지만, 도시에는 정말 최소한의 피해만이 남았다.
물론 이조차도 타격이 심각해. 한동안 도시는 이후의 테러를 걱정하며 불안에 벌벌 떨 것이었다.
그리고 어느 한 곳에서는 유족들이 시위를 하겠지.
헌터 협회가 일을 잘못 처리했다고.
배상하라는 등. 정부과 협회에 빠른 보상안을 독촉할 것이다.
물론 그것은 자신들이 결정할 일이 아니다.
저 높이 있는 누군가가 해결할 문제지.
민간인들은 모르겠지만…… 이 정도도 충분히 잘 막은 편에 속했다.
그들은 지금 당장의 피해만을 바라본다.
그게 잘못되었다는 게 아니라, 사실이 그렇다.
그런데.
“……대체 누구였던 거지?”
그때 그 로브를 입었던 남자.
얼굴을 보기는 했지만 전혀 모르는 얼굴이었다.
그만한 마력을 지닌 헌터였다면 이미 전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렸을 텐데.
정체를 숨기는 고수가 없는 건 아니지만…… 아무 것도 없는 마른 땅에서 갑자기 그러한 존재가 튀어나오는 경우는 적었다.
그것도 이런 어려운 때에 갑자기 나타나서.
엔트들을 정리하고 플라워를 상대했다.
혹시나 이곳에 다시 들리지 않을까 했는데 결국 그 사람은 찾아오지 않았다.
-끼익.
문이 열리며 한 여성이 들어온다.
흰색의 머리카락에 전신 라텍스.
기품이 뿜어지는 발걸음으로 주변을 둘러본 그녀가 눈가를 좁혔다.
백도.
최대한 빨리 한국에 돌아온 것은 당연히 그녀였으나, 이미 사건은 해결된 지 오래였다.
*****
가면을 벗은 즉시 기숙사에 들어와 로브를 벗었다.
피가 묻은 티셔츠는 아직 벗지 않고, 그대로 방을 나오니 이전에 보냈던 두 여인이 탁자 위에서 말없이 앉아 있었다.
“삐….”
진달래의 품에 안겨 울적하게 가슴에 얼굴을 묻은 시바.
문 소리가 들리자마자 귀를 쫑긋 세우더니, 동그란 눈망울로 나를 바라봤다.
“아…빠.”
어깨를 들썩이다가, 차마 참지 못했는지 진달래에서 떨어져 나에게 달려왔다.
“…삐에에엥.”
다리에 찰싹 붙어 우는 시바. 어떻게 해주고 싶은데, 옷에 피가 잔뜩 묻어서 뭘 하기가 힘들다.
“…피, 피! 뭐야 진짜…. 뭘 하고 온거야 대체. 괜찮아요?”
진달래는 다급하게 수건에 물을 묻혀 가져와 내 얼굴이 가져다댔다.
나는 수건을 받으며 아직 탁자에 앉아 있는 신혜영을 가리켰다.
“……그.”
복숭아 차를 눈앞에 두고 멍을 때리다, 뒤늦게 나를 보고 애써 눈웃음을 한다.
“아, 안녕하세요. 몸은….”
“괜찮아요.”
아….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인 그녀가 애써 활기차게 말했다.
“고, 고마워요. 제가 정신을 깜빡해서….”
“그럴만 하죠. 진정 좀 됐어요?”
“그럼요!… 그렇고 말고요.”
자신이 본 광경이 충격이 큰 걸까.
원장이라는 사람을 돌이키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정말 가끔 있는 순하고 착한 사람. 한 번 본 광경을 눈앞에서 잊지 못하는 모습이다.
진달래는 이미 충격을 훨훨 털어낸 모습이었다.
“시바 이리와. 아빠 방해하면 안 돼.”
“삐엥, 삐에에!”
흐릿한 눈망울에서 방울진 눈물이 떨어진다.
나는 피가 묻지 않은 손으로 눈물을 닦다가, 볼을 살살 문질러 주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제야 시바가 좀 진정한 듯 했다.
“……저도 많이 시바랑 친해진 것 같은데. 아빠 없으면 여전히 불안한가 봐요.”
”흐흐 그래?“
이상하게 좋으면 안되는데 좋네.
울고 있는 시바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약간 화끈거리는 것이 머리에 피가 쏠린 듯하다.
우리 딸 많이 놀랐겠네.
…역시 유치원을 다시 보내는 건 재고를 해봐야 겠다.
갈수록 날 적대하는 사람들이 늘어날텐데.
앞으로 책임은 점점 늘어가고 있다.
이번에는 깔끔하게 끝났지만 앞으로 시바가 그런 일을 또 겪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막말로. 납치라도 당할 수 있다.
그러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시바가 힘들어 보이면.’
나는 아빠라 좋지만.
아빠 곁에 있다는 게 불행할 수도 있다.
그럴 바에 잠시, 어디 먼 곳에.
진달래 혹은 그녀와 비슷한 사람에게 일이 끝날 때까지 맡기는 것도 나쁘지 않을까.
평범한 삶도 시바에겐 필요하다.
언제까지나 아빠가 사라지고, 그런 위험 속에 노출되는 건 이런 어린애한텐 너무 버겁다.
【 ‘순결의 세계수’가 애타게 당신을 바라봅니다. 】
순결의 세계수의 반응을 확인한 나는 가라앉은 정신이 팍 들었다.
‘이 시발. 생각해보니까 너만 좀 제대로 뭔가 했으면 이런 일도 없었잖아.’
【 ‘순결의 세계수’가 침묵합니다. 】
‘진짜 세상에서 하등 쓸모 없는 년.’
【 ‘순결의 세계수’가 울면서 방 안에 들어갑니다. 】
단적으로 말해 그거다.
난 아빠가 처음이니까.
통하는 건 많은데 뭐가 최고의 선택인지는 잘 모르겠다.
보고 배울 아버지란 존재도 없었고.
어머니도 사랑을 주기엔 어색한 부분이 많았다.
누구를 죽이는 건 쉬운데… 이상하지.
나도 많이 바뀌었다.
“…당신.”
“응?”
나와 같은 생각을 진달래도 한 걸까?
그녀는 어딘가 결연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시바… 아무래도 바깥 유치원에 보내는 건 좀 그런 거 같아요.”
“나도 그 생각했어.”
“그, 그래서 그런데-”
시바를 껴안은 채 눈을 이리저리 굴리는 진달래.
“저번에 말했던 거… 기억 나세요?”
아… 그러니까.
같이 살자고 했던 거?
내 물음에 진달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된 거… 같이 살아요. 그게 더 마음이 편할 것 같아요.”
혹시 내가 없을 때 시바를 보호해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고.
유치원은 어디까지나 교육 목적이었으니까.
사회성을 기르지 못한다는 건 좀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다.
*****
일주일이 지났다.
어쩌다보니 일이 이렇게 되었는데. 이미 진달래는 몇날 전부터 이 계획을 떠올리고 있었나 보다.
내가 먼저 말을 꺼내기도 전에 그녀는 최고의 주택을 골라, 내 기숙사 퇴사 신청서까지 뽑아둔지 오래였다.
“사인, 사인! 사인만 하면 돼요.”
“…왜 그렇게 신났어?”
“몰라요. 후후.”
얼굴에 신이 가득해 보이는 건 기분 탓이 아니리라.
아카데미의 근처에 집은 널려 있었고. 굳이 멀리 갈 필요도 없이 근방에 집을 살 수 있었다.
엘 아카데미 자체가, 아카데미의 용도보단 학원 도시의 성격이 강해서. 편의점이라거나 단순 가게 운영을 용도로 이곳에 사는 사람도 많았다.
물론 집과 빈방도 넘친다.
그래서 결국 기숙사를 퇴사하게 된 바.
나는 시바와 진달래와 함께 새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어차피 숲지기 선발전 되면 멀리 갈텐데.”
“얼마 안 가 떨어지니까… 그러니까 더 빨리 이사해야죠.”
태양이 가장 위에 뜬 시간대. 신이 난 발걸음으로 팔짱을 끈 진달래가 웃음을 머금었다.
빛을 머금은 분홍색 머리는 예전에 정신병 약을 먹을 적의 칙칙하기만 했던 머리와는 전혀 딴판이었다.
기분이나 컨디션에 따라 외모가 바뀌는 걸까?
하얀 백옥같이. 시바랑 비슷할 정도로 어린아이 같은 피부가 반짝인다.
그 흔한 선크림도 바르지 않았는데 이런 피부다.
“여기에요.”
도착한 집은 그리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았다.
방 세 개와 주방, 거실, 화장실과 욕실이 따로 있는… 중산층에서 살법한 집.
집 안에 들어가니 가구같은 것도 이미 옮겨진 상태였다.
여기다 그냥 옷과 짐만 가져다 놓으면 된다.
“기숙사 짐은 내일 빼고… 아 맞아. 시바 선생님도 구해야하잖아요.”
“어 그렇지.”
진달래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박수를 짝 치더니 내 어깨를 투닥이며 웃었다.
어떤 가구를 살까. 서로 붙어다니며 애정을 뿜고 다니는 신혼의 여성이 떠올랐다.
이제 스무살인데.
이렇게 애 엄마의 기운을 물씬 풍기는 게 가능한가?
“시바…, 하버드 가야지. 그치?”
“하 ? 바드?”
고개를 갸웃이는 시바. 요컨대 대충 시바에게 말과 예의를 가르칠 사람이 필요했다.
“푸흐흐.”
진달래는 우리 부녀를 보며 웃더니 박수를 한 번 더 쳤다.
그러자 문 밖에서 한 여성이 걸어나왔다.
항상 보던 유치원 앞치마와는 다른 평상복.
유난히 스타킹이 눈에 띄던 그 사람이 어색한 듯 나를 보며 고개를 숙여왔다.
“아, 안녕하세요… 시바 아버님.”
시바 선생님.
유치원에 일하던 사람이 여기 왜 있지?
진달래 슬쩍 바라보자 그녀는 어깨를 으쓱이며 시바를 쓰다듬었다.
“…고용했어요. 안 그래도 그 유치원. 사립이기도 해서 다시 못 세운다고 하더라고요.”
“아 진짜? 그래도… 다른 유치원 가실 줄 알았는데.”
그래도 예전에 봤을 때 보다 많이 얼굴이 밝아졌다.
일주일이나 지났으니… 유족 장례식도 끝마치고 온 건가.
어느정도 감정이 정리되어 보여 보기 좋다.
혜영은 뒷머리를 쓸어내리더니 여전히 지금 이 순간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어색하게 웃었다.
“원래는… 친구가 다른쪽 추천해줘서 거기 가려고 했는데… 아내분이.”
“아내분? 아아….”
진달래가 나름 구미가 당기는 제안을 했나 보구나.
그런데 제법 큰 결정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엘 아카데미는 해외. 아는 사람도 가족도 없는 곳으로 일하러 온 셈이다.
“그래도 해외인데. 그냥 받아들였어요?”
“집이랑… 월급도 많이 줘서 헤헤. 그리고 시바도 보고 싶구요.”
혜영은 꿀 떨어지는 눈으로 시바를 바라봤다.
월급 많이 준다니. 고작 그런 걸로 해외에 오는 이유가.
“당신.”
-속닥속닥.
진달래가 내 귀에 이런저런 고용 정보를 알려주었다.
그러니까, 집도 하나 해주고.
월급 충분하고 보험에 퇴직금까지 제대로 챙겨준다라.
“할만하네.”
내가 들어도 나쁘지 않다.
더군다나 우리 시바랑 만나는 게 최고 직원 복지지.
어쩌다보니 혜영도 함께 하게 되었다.
이 근방에 방을 구해서, 자취를 하면서 우리 집에 출근을 하는 형식이다.
한국인이 주변에 적지도 않으니 마음만 먹으면 친구를 사귈 수도 있을테고.
‘……잘 생각하면, 여기 생도들이 남편감으로 최고긴 하니까.’
은근히 인생의 전환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혜영은 그런 것보단, 단순히 시바를 쓰다듬으며 귀여워 할 뿐이었다.
어차피 계약 기간만 끝나면 유치원에 복귀하면 되니까.
집안일도 야무지게 잘 할 것 같다.
나는 혜영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불편한 거 있으면 말해요…… 얘 돈으로 생색내는 것 같아서 좀 그렇긴 한데. 돈 부족하면 저한테 말해요.”
“헤헤. 괜찮아요.”
“말도 편하게 해주세요… 연상인데 뭐.”
“이시헌씨라 부르면 되는 거죠?”
편한 건가?
그거면 되긴 하다.
적당히 인사말을 주고받으니 시바의 배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려왔다.
그 모습에 세 명의 입에서 거의 동시에 미소가 피어났다.
“밥이나 먹으러가죠.”
집 장소기 기가막힌게 이 근방에 가게나, 음식점들이 상당히 많았다.
밥 대신 외식만 한다 쳤을 때 일주일동안 외식으로만 때워도 다른 메뉴로 때울 수 있을 정도로.
그래도 이사를 온 날에는 역시 그게 맞았다.
짜장면에 탕수육.
우리는 새로운 집을 나오며, 시시껄렁한 잡담을 나누며 중국집을 향했다.
시바가 탕수육을 굉장히 좋아했다.
“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