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ing the World Tree RAW novel - Chapter 414
왕의 ‘인자’ (1)
이시헌 이단의 토벌전.
사건의 해결이 닿을 듯 말 듯 하다가, 결국 걷잡을 수도 없이 커져 나갔다.
─전국에 5단계 재해를 발령된. 오늘 14일, 헌터 협회와 계약한 용병단 도원향의 수장인 천마가….
대한민국은 이미 국운을 논하는 비상사태.
교단의 군사가 서울에 밀집했고, 사상자의 수는 천 단위를 오갔다.
―‘천마’는 이시헌 이단자와 사제 관계를 맺은 인물로….
메스컴의 보도는 빨랐지만 이런 정보 교환도 언제까지 이루어질 수 있을까.
결계의 시야가 차단됨으로써 천마에 대한 정보는 끊겼다.
그 탓에 서울 시민들은 마냥 기도만 해야하는 상황이 되었지만.
엎친데 덮친 격으로 또 다른 재해들이 들고 일어섰다.
─삼재(三災) 목랑, 모습 감춰…. 다시 나타날 가능성도.
─전국 재해 등급 풀리나? 정부, ‘아직 때는 아니야.’
이시헌의 죽음이 공표되며 이번 재해도 마무리 되구나, 안도하기도 잠시.
천마와 삼재의 연이은 테러 행위로 혼잡해졌고 그 뒤로 소재를 알 수 없는 마물이 나타났다.
─목귀(木鬼).
대서특필로 써놓기는 했다만. 목귀가 맞는지도 모르겠다.
머리의 중심을 기점으로 솟아오른 무수한 나무 줄기들.
잎이나 꽃도 찾아볼 수 없다. 몸의 갑피는 쩍쩍 갈라져 그 사이로 핏물이 새어 나왔다.
몸집만큼이나 거대한 두 팔은 사람을 집어삼켜도 충분할 정도로 두꺼웠고.
몸을 뒤덮은 수피(樹皮)의 색은 꼭 그을린 듯 새까맸다.
마구잡이로 뿔이 난 머리 부분은 용 같기도, 사람 같기도 하다.
눈은 완전히 가려져 있었다.
생기랄 것이 없고, 그저 의지 없이 움직일 뿐인 거대한 마수.
이성을 잃고 배회하는 목귀에 대한 무수한 목격담이 잇따르고, 짧은 시간 이내에 수회의 토벌 과정이 있었다.
아무도 그 목귀가 어디서 탄생했는지 모른다.
바닥에서 올라온 온갖 수목의 형태를 빗댄 괴물이 탄생한 순간.
목귀의 근방 사람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의식을 잃었고.
한국의 가정 중 절대 대다수가 한동안 정신적인 후유증을 호소해야만 했다.
이러한 혼란의 와중에도 민간을 구제하려는 노력은 이루어졌다.
“짹!”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어느 한 곳에 모였다.
보기 힘든 권위적인 자세로, 팔짱을 낀 채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콧김을 흥 내뿜은 어린 소녀.
“빨리빨리 안 가?”
재해로 도망친 사람들의 혼란을 진정시키는 최상급의 정령이 되렷다.
알 수 없는 적이 튀어나오면, 누군지 모를 영웅도 태어난다고 하던가.
이름 없는 정령사의 정령이 무수히 많은 목숨을 구해내고 있다며, 인터넷에 목격담들이 가득했다.
가끔씩 ‘짹’이라고 소리치는 두 여성이 있다고 말이다.
“흥! 하여간 주인님이었으면, 내가 빨리~ 빨리~ 가라고 소리도 지르기 전에 콱 그 목을 떨어뜨려 버렸을 텐데.”
-웅성웅성.
“누구야…?”
“보면 몰라? 정령이잖아.”
구호품을 들고 벙커로 이동하는 사람들을 보며, 엘레오노르가 짹 소리쳤다.
“뭘 봐!!!! 하여간 이쁜 건 알아가지구!”
천마와 협회, 교단의 싸움으로 사람이 살기 힘들 정도의 위압감이 퍼진 서울.
정령이나 마법사가 중화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면 정말 무수한 사망자가 발생했을 것이다.
마력의 여파만으로 사람이 죽는다.
경지에 다가갈 것도 없이, 게이트 사건이 터지면 어디서나 들려오는 피해 소식이다.
“나 없으면 당장 깨꼬닥 할 얘들이 말이야…. 주인님한테 고마워나 하라지.”
밤색의 머리를 살랑살랑 검지손가락으로 꼬아대며, 소화전 옆 벤치에 앉아 새침하게 중얼거리는 전직 나무발바리.
그런 그녀의 앞에는 희생과 번영의 세계수의 대리자인 아젤린과 페르파투아가 발에 땀이 나게 뛰어다니며 부상자를 치료하고 있었다.
‘…저 애는 대단하네.’
자신과 같은 밤색 머리의 여성.
아젤린의 신체에서 솟아나오는 마력이 상당하다. 깨나 사람 좀 구해본 년일 게 분명하다.
옆에 있는 페르파투아도 그에 못지않았다. 성녀 출신의 대리자다운 행보다.
저 둘이 없었다면 구호 활동도 제대로 해내지 못했겠지.
자신의 몸은 끽해야 참새… 나무발바리니까 말이다.
“아가씨!”
지루하단 표정을 짓고 있던 엘레오노르에게 어떤 금발의 여성이 다가왔다.
“…?”
새가 아닌데, 익숙한 얼굴과 머리색.
정령계의 루시를 완전히 빼다 닮았다.
“너 뭐야. 왜…”
“아가씨 접니다.”
“……잉?”
눈을 동그랗게 뜬 엘레오노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령이 현세에 직접 모습을 드러내려면 정령사의 기질과 자질이 최고에 다다라야 한다.
은빛 갑주를 입은 루시의 모습에 많은 이들의 눈이 다시 한 곳에 모였다.
엘레오노르는 그제야 자기 몸을 보았다.
분홍색 아기자기한, 양이나 토끼같은 자수가 놓인 드레스.
루시와는 달리 침실에서 과자나 먹다가 소환된 엘레오노르다.
“짹?”
“무슨 짹입니까.”
“이게 머선 일이야.”
“…주인님 말투에 옮지 마십쇼. 아가씨. 아무래도… 주인님의 적성이 갑자기 크게 띄었다고 하는 걸로 밖에는…. 답이 없는 거 같습니다.”
긴 머리를 귀 뒤로 넘긴 엘레오노르가 눈을 몇 번이나 깜빡거렸다.
상급의 나무발바리가 아닌 최상급의, 정령 왕국의 엄연한 공주.
루시 또한 위치에 맞는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다.
계약 자체에 굉장한 변화가 있던 걸수도.
“…알아보러 가실 겁니까?”
루시의 말에 엘레오노르는 잠시 고민했다. 고민이라기 보단, 일단 지금의 상황을 살폈다.
엘레오노르는 볼을 슬그머니 붉히며, 옷에 붙여둔 귀여운 정령 스티커들을 정리했다.
“일단은 주인님이 말한 대로 계속해.”
몸을 웅크린 엘레오노르.
손가락에 붙은 스티커가 잘 떨어지지 않는지 팔을 휙휙 흔들어댄다.
“이쒸!”
“아가씨….”
그런 황녀를 연민의 눈동자로 바라보는 루시.
하지만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명령은 어디까지나 구제 활동. 아무리 주인의 기척이 사라졌다고는 하나, 지금 당장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해야만 했다.
자그마한 새에서 왜 갑자기 본신으로 바뀌었는지는 몰라도….
그 순간.
-움찔!
도시 전체에 찾아온 떨림.
“…읏!!”
“읍!?”
멀리서 느껴진 광대한 마력의 폭주에 엘레오노르와 루시가 놀라 어깨를 떨었다.
‘뭐지?’
하마터면 겨우 만든 결계가 무너질 뻔했다.
결계 안의 사람들도 이를 느끼고 몸을 움츠렸다.
-꿀꺽.
저도 모르게 넘어가는 침.
“저… 혹시. 정령님.”
그 와중에 한 헌터의 눈치 없는 발언에, 엘레오노르의 집중이 깨져버렸다.
“아 왜?”
“어느, 정령사와 계약했는지 알 수 있을까요?”
알아서 뭐 하게.
눈빛에서 느껴진 감정에 헌터가 최대한 아부했다.
지금 같은 재해에서 나타난 영웅의 이름을 알고 싶어하는 건 당연한 노릇.
구호 활동에 적극적인 정령이, 심지어 최상급의 재능을 가지고 있다니.
S급 헌터들 중에서도 필히 최고에 다다랐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엘레오노르는 그런 헌터의 모습을 빤히 바라보더니 혀를 내밀었다.
“꺼져.”
이런 놈에게 주인님의 이름을 알려줄 수 없다.
도끼눈을 뜨며 쏘아붙이자, 헌터는 결국 무안함에 고개를 숙였다.
‘주인님 말 잘들어야만 해!’
너무 교육을 잘 받은 탓일까.
길들여진 공주의 모습을 보고 있는 루시에겐 한숨만이 늘어날 뿐이었다.
* * * * * * * *
-저벅.
붉은 기운이 저문 내 머릿속 세계는 생명체가 하나 없어 아주 고요했다.
-쿵. 쿵.
눈을 감고 집중하면 바깥의 시야가 아주 반짝하고 나타났다 사라졌다.
덤벼오는 헌터, 어떤 기술을 써도 택도 없어, 되려당하기 일쑤다.
괴물이 된 주제에 어째 나보다 더 잘 싸우는 것 같았다.
‘그래서, 여긴 어떻게 나가냐.’
힘이 돌아왔다.
움직일 정도는 되고 이대로 눈을 뜨면 몸 하나쯤 감추는 것은 일도 아니다.
나에게서 목령왕의 힘을 뺀다면 아마 이쯤 되지 않을까.
오른팔을 들어 손을 쥐여본다.
무공을 펼칠 수는 있겠지만. 마기를 감당할 정도는 아니다.
목령왕으로 얻어낸 특성과 능력치가 모조리 빠져나간 기분이다.
오직 내 성취로 이루어낸 것들을 제외하고 모두 빼앗겼다.
“…….”
머리 위의 가시관은 유지되는 상태.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스스슥.
50m쯤 되어보이는 위치에서, 잔해들이 들썩거리는게 보인다.
키가 작은 무언가가 재빠르게 도망치고 있었다.
-쾅!
발을 움직여 모래 바람을 일으킨다.
【 진각 】
발을 구르자 일어난 바닥 균열이 놈을 향해 다가갔다.
-쿠구구구구!
쾅. 북극여우가 쥐를 골라내듯, 흙무더기 사이에서 무언가 검은 게 튀어나왔다.
폴짝, 진각에 휘말린 녀석이 공중에 떠오르더니. 바닥에 머리로 떨어졌다.
-악!
일어나자마자 양손으로 정수리를 쥐어 감싸는 녀석. 주변을 둘러보며 안절부절 못한다.
다리를 동동 구르더니 나에게서 거리를 벌리기 시작하는데.
‘여자?’
하다 하다 이젠 내 머릿속에 애도 뛰어다니는구나.
파밧!
몇 번의 발길질로 이동하니. 머리를 잡고 있던 녀석이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큭.”
나와 같은 가시관을 쓰고 있는 웬 년 하나.
설마설마하지만, 아니길 바란다.
“네가 왕의 인자냐?”
“…….”
거의 뭐 산맥만 한 덩치로 날 집어삼키려 했던 괴물이 그럴 리 있나.
가만히 노려보니 얼굴을 와락 찌푸린 녀석이 양 손으로 싸울 준비를 했다.
“…너에겐 절대 힘을 넘기지 않을 거야!”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조졌다.
맞나보다.
하기야 천마도 여자고, 헌터 협회 부협회장도 여자고, 세계수도 여자인 세계에 뭘 더 바랄까.
편견을 가져야 좋을 건 없다.
나에겐 시간이 없고, 당장 이곳에서 나갈 필요가 있다.
나는 몸을 아래로 숙여 녀석과 눈높이를 맞추었다.
키 차이가 많이 나서 무릎을 굽혀야만 했다.
“졌으면 풀어줘.”
“……웃기지 마라!”
고막이 터질 뻔했다.
목청 한 번 우람하다.
‘인자’는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며 바닥에서 쇠창살 하나를 꺼내 휘둘렀다.
-깡!
힘이 돌아오니 반항도 쉽다.
한 손으로 잡아 가볍게 꺾어주자, 근력이 없는지 쇠창살에 여성의 몸이 사은품마냥 딸려왔다.
“읏, 크흑!”
내 힘에 끌려다니는 게 못마땅한지. 치욕스런 신음을 뱉는 ‘인자’놈.
“왜 그러는데.”
“…절대 넌 못 나간다.”
한 대 얻어맞더니 미친걸까. 정신이 나가버렸다.
“넌 이미 한 번 죽은 몸이다. 이시헌. 내 힘 없이는 살 수 없고, 난 절대 너에게 힘을 넘기지 않을 거다.”
나는 녀석의 얼굴을 한 번 훑어보며 생각했다.
내가 나갈 방도는 이 녀석에게서 호의를 사는 방법밖에 없는 모양이다.
알랑방귀를 뀐다고 해서 바뀔 건 없어 보이고.
잠시 기다린 나는 놈에게 물었다.
묻고 싶은 게 없지는 않았으므로.
“넌 뭐냐?”
“……말 안한다.”
애새끼 같더니 성격도 애새끼네.
전대 목령왕도 이딴 년을 데리고 다닌 걸까.
그리 생각하니 ‘인자’가 반응했다.
나를 올려다보곤 눈썹을 역 팔자로 기울이더니, 화난 목소리로.
“내 부모를 욕하지 마라.”
그리 말해왔다.
이제는 생각도 읽는다. 아무래도 같은 몸에 깃든 정신이라 그런 걸까.
목령왕과 목령왕이 가지고 있던 힘에서 튀어나온 ‘인자’.
고로 목령왕이 가지고 있던 힘의 인자는 이 녀석의 부모가 된다는 말씀이시다.
머리로 살짝 이해하기 힘든 말이다.
“…처음부터, 그 여자가 아니었으면 죽었을 놈이. 잘난 척 굴기는.”
“그 여자가 누군데.”
“네가 지금 내 힘을 받아들인다고 살 수 있을 것 같아?”
“못 살 건 뭐냐.”
“넌 아무것도 몰라.”
부들부들거리는 녀석이 하나하나 설명해주었다.
“…너 세계수와의 연결이 끊긴 거 아냐?”
“어.”
내가 죽음으로써 연결은 완전히 끊겼다.
이전처럼 풀고 돌려받고 할 것도 없이 영원히. 상태창은커녕 그 아류의 시스템도 사용하지 못한다.
달리 말하면 이젠 세계수의 시야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는 소리다.
“그 시스템 때문에 네가 나에게 눌리지 않고 살 수 있었어.”
“……그러니까. 누가 나한테 시스템을 준 게 내 목숨을 살렸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아마도 잘 이해한 듯하다.
시스템에 자유로워진 내 몸은, 왕의 인자에 노출되면 목숨이 위험하다는 말이다.
세계수의 힘과 목령왕의 힘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했다고.
‘보아하니 내 몸에 들어온 것도 의도는 아닌 모양이던데…… 순결인가.’
아직까지 한 번도 얼굴을 비추지 않았던 녀석.
나는 인자의 반응을 빤히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내가 죽으면 너한텐 좋은 거 아니냐?”
“바보. 그릇이 깨지면 그 안에 있던 물 또한 새는 게 당연하다.”
“그러니까 네가 자유로워진다는 소리 아니야?”
“멍청이. 그러면 나도 죽어.”
점점 말이 짧아지는데.
나도 잘난 건 없으니 그냥 얌전히 욕을 듣기로 했다.
“아무리 봐도 네가 순순히 나한테 힘을 넘기고, 지금 사달을 넘기는 게 나을 것 같은데.”
“말 못 들었어?! 시스템이 없으면 넌 아무 것도 아니야.”
“내가 상태창을 끊었을 때 괜찮았어.”
“…….”
재빨리 입을 다무는 ‘인자’놈.
“그리고 지금 내 머리 위에 왕관이 있는 걸 보면. 내가 눈치가 아예 없지는 않지.”
순결의 세계수가 남긴 상태창이 내 목숨을 살린 건 맞다.
다만 내 몸도 성장했다는 것.
요컨대 사실과 거짓을 섞어 교묘하게 날 속이려 들었다.
“……쳇.”
‘인자’가 혀를 찼다.
왜 형태가 여자인지는 몰라도, 한 가지는 확실했다.
“그냥 네가 날 인정하면 다 끝날 문제 아니야?”
“…….”
인자는 떼를 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