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ing the World Tree RAW novel - Chapter 555
자색 마탑 (2)
적색 마탑의 엘라스티카.
푸른 마탑의 신지훈.
자색 마탑을 노리는 두 사람의 정보는 쉽게 구할 수 있었다.
“형님, 다 구했습니다.”
태양이 내민 두 종이 조각을 살펴본다.
[신지훈, 서울시 강남구 테헤란로…] [엘라스티카, 9 anvenue…]자택의 세세한 주소부터, 전화번호, 간단한 개인 정보와 일하고 있는 마탑의 위치까지.
나 하나만이었다면 이렇게 쉽게 정보를 끌어모으지는 못했을 것이다.
능글맞게 웃는 태양에게 주먹을 내밀어주자, 녀석이 척- 함께 주먹을 맞대어왔다.
“이거면 충분해요?”
“어.”
나는 일머리가 좋은 부하, 태양과 아오리를 불러 정보를 모으게 했다.
정보전의 대가답게 몇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내 부탁을 들어준 두 사람.
아무리 일선에서 물러났다 하더라도, 이 녀석이 구축해놓은 인맥과 정보망은 쓸모가 많았다.
“대체 어떻게 하는 거냐?”
“옛날에 연이 있는 여자들이 좀 많았거든요. 뒷 침대에서 구르다 보면, 가끔 거물이 낚이는데… 뭐, 알죠? 형님도 많이 굴러 봤잖아요.”
“그때 이야기인가.”
“크흐흐. 예.”
한창 내가 집창촌을 드나들었을 적.
감정 없는 섹스에 어느정도 적응하니, 주변의 여건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로비나 그런 종류의 대접, 성행위를 즐기러 오는 돈 많은 작자들이 많았다.
듣기로는 거기서 만난 인연이 계기가 되어, 결혼해 인생역전을 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있다던가,
일본의 게이샤를 연상케 하는 일들이 눈앞에 여러번 펼쳐졌다.
“달리 말하면 음지의 일면을 볼 수 있을 정도로 형님이 다른 여자들에게 인정을 받았다는 거죠. 최고급 남창들을 모두 이겨내고… 캬!”
“그래, 알았어.”
내 몸에 대해서는 무슨 말을 해도 이제는 감흥이 들지 않는다.
주전부리를 씹으며 태양을 한심한 듯 지켜보고 있자니, 킥킥대던 태양이 내 시선을 의식하곤 머쓱하게 사과를 입에 집어 넣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형님.”
“어.”
“이 두 연놈…. 어떻게 하시게요?”
죽일 생각이다.
본심을 꺼내놓으니 태양이 깜짝 놀라 팔짝 뛰었다.
“아니, 형님! 마탑주입니다 마탑주. 이 둘이 끔뻑 죽어버리면 후에 일어날 일이 감당이 힘들어요.”
“우리가 언제 그런 걸 따졌어?”
“제 말은 그러니까, 차라리 힘으로 어르고 달래는 게 낫지 않느냐고요. 남자 쪽이면 몰라도, 엘라스티카는…. 프랑스 패션 잡지에도 나온다니까요? 이것 봐요! 캬, 미쳤다 미쳤어.”
눈에 불을 켜선, 핸드폰에 무언가를 검색해 불쑥 내미는 태양.
녀석의 핸드폰 액정엔 검은 수영복을 입은 엘라스티카가 도도하게 앉아 있는 사진이 띄워져 있었다.
해변가의 악마.
눈으로만 보면 호강이 맞다.
“예쁘네.”
“그쵸? 아깝잖아요.”
내 순순한 답에 해맑게 웃는 태양.
다른 여자를 극찬하는 태양을 보며, 팔짱을 낀 녀석의 마누라는 둘째 치더라도. 딱히 외모는 내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근데 우리 아오리가 더 예쁜 것 같은데.”
나는 내 옆에 앉아있는 아오리에게 팔을 걸며 머리를 기댔다.
사과를 씹어대며 줄곧 우리 이야기를 듣던 아오리가 눈을 반짝이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히히 왕님. 아오리 이뻐요?”
“그래 네가 참 예쁘지.”
날 위해 심장도 바친 애인데 뭘 못해주겠니.
아오리는 내 인생에 있어 여동생이나 다름없다.
이에 태양이 혀를 내밀머 토악질을 하는 시늉을 했다.
“형님 아무리 그래도 쟤가 예쁘다는 건 좀…. 쟤가 성형을 몇 번을 했는데.”
“뭐야, 아오리 너 성형했었던가?”
아오리는 시큰둥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커다란 가슴을 자기 손으로 출렁대면서, 자신감을 표츌했다.
“아오리, 자연산이에요.”
“응~ 팔다리 사이버네틱.”
무슨 성형인가 했더니, 팔다리를 기계로 이식한 걸 보고 왜곡된 해석을 한 모양.
이 두 사람은 안 싸우는 걸 본 적이 없다.
“됐다 됐어. 어쨌든 내 식대로 한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떠날 채비를 마치니, 그제야 태양이 내 팔을 잡으며 한 가지 충고를 남겼다.
“굳이 하기 힘드신 거면, 이번엔 애한테 맡겨보는 게 어떻습니까?”
“뭐, 누구? 설마 아오리?”
나는 아오리를 바라보았다. 아오리가 콧김을 흥 내뿜었다.
안 될 말이었다.
“왕님. 저 잘할 자신 있어요.”
“넌 가만히 있어.”
여동생 같은 애를 조교사로 쓸 순 없다.
심지어 한 명은 남자다.
“아오리를 시키면 오히려 걔들 좋을 일 아니냐?”
“좋을 일이라뇨 형님. 성욕에 지배된다는 게 그리 유쾌한 감각이 아니란 건 잘 알고 있을 텐데요.”
“…알긴 하는데. 아오리가 그럴 수 있다고?”
나는 아오리를 미심쩍게 바라보았다.
할 수…있냐?
-씨익.
저 순수한 얼굴에 음탕한 손짓.
아오리는 로봇 손가락에 손가락을 쑤셔넣으며 음험하게 웃었다.
“물논.”
*****
“제정신이야? 대체 어디서 그런 연구물을 가져 온건데.”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신지훈의 억울한 목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온다.
쓸모없는 남자.
핸드폰을 거칠게 닫은 엘라스티카가 미간을 사뿐히 좁혔다.
“쯧!”
혀를 거칠게 찬 뒤, 창문을 통해 바깥을 바라보는 엘라스티카.
그녀는 자색 마탑을 인수하려던 자본가 중 한 명이었다.
‘모처럼 좋은 마법을 들여오나 했는데.’
유서 깊은 자색 마탑은 지금껏 쌓아온 경험으로 보나, 아티펙트의 가치로 보나 충분히 시간을 들여 먹을 가치가 있었다.
전세계적으로 마법사의 통계가 압도적으로 높은 프랑스.
마탑의 권위는 곧 국가의 권위가 된다.
그 국가의 이름을 걸고서라도, 엘라스티카는 적색 마탑을 더욱 성장시켜야 할 의무가 있었다.
‘일단은 투표로 밀어냈지만…. 증명이 된 이후에는 또 몰라.’
이지아를 강등시키며 일이 잘 풀리나 싶었는데.
첫 단추가 꼬여 버렸다.
“이렇게 된 거. 어쩔 수 없나?”
탑주를 죽이는 방법을 쓰는 수밖에.
이지아는 단전이 없는 일반인이나 다름없다.
머리만 좀 좋을 뿐인 민간인. S급 이상의 경호원을 고용할 돈도 없을 테니 죽이는 건 손쉬웠다.
책임?
일단 죽이고, 원인을 다른 곳으로 돌려버리면 된다.
요즈음엔 거의 모든 문제점을 목령왕이나 플라워의 탓으로 넘겨버리는 추세.
그녀의 구김살이 보일지라도, 기자들은 다른 쪽으로 왜곡된 기사를 열심히 써재낄 것이었다.
“에휴….”
한숨을 내쉰 엘라스티카가 창밖을 빤히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빨리 집에 가고 싶다.”
모델, 마법사, 마탑주. 그녀를 상징하는 모든 직업들.
셋 다 마음에 드는 옷이지만 가끔 무겁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그럴때면 보는. 우리 프랑스의 아리따운 국목 여신의 사진.
핸드폰의 갤러리에 들어가니. 고양이 귀가 합성된 마로니에의 사진이 있었다.
두 손을 활짝 펼쳐, 아이들을 맞이하는 현자님.
꼬마 현자. 블랑쉬의 귀여운 모습은 누구에게나 사랑받고 있었다.
선인과 악인, 두 존재를 통 틀어서 말이다.
“후우.”
엘라스티카는 블랑쉬의 뺨 부분을 손가락으로 비벼댔다.
그 말랑말랑함이 전해져야 하는데, 정작 느껴지는 것은 딱딱한 액정 화면뿐.
그녀가 모델이 된 이유도 사실 마로니에의 옷을 입기 위해서였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마로니에 입었던 옷은 프리미엄이 붙어 온갖 명품으로 판매가 되는데.
세상에 몇 벌 남지 않은 옷을 미끼로 한 회사가 권유했고, 이를 엘라스티카가 덥석 물었다고 보는 게 맞았다.
자색 마탑에 대해서도 방침을 정했으니, 남은 것은 기다리는 것뿐.
‘정 안 되면, 플라워를 부르면 되니까.’
엘라스티카는 다리를 꼰 채, 손안의 마로니에로 시간을 보내며 눈웃음을 지었다.
그 순간이었다.
-쿵.
기감이 감지하는 희미한 마력의 울림.
마탑주인 그녀에겐 노골적인 도발로 느껴졌다.
“뭐야?”
엘라스티카는 당장 기사에게 소리쳤다.
“멈춰. 뭔가 오고 있어.”
“네? 탑주님. 하지만….”
“목숨 아까운 줄 모르면 당장 세워서 날 내보내는 게 좋을 거야.”
그리 크지는 않지만, 위험성이 다분한 힘.
-끼이이익!
차가 멈춰섬과 동시에 온몸에 마력을 두른 엘라스티카가 도로에 뛰쳐나왔다.
-타앙!
도로에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울린 한 발의 총성.
재빨리 위협을 스캔해낸 그녀가 방어막을 만들어 그 탄을 막아냈다.
“어떤 미친놈이 나를 상대로….”
가슴의 휘장을 드러내자 보이는 헌터의 상징.
금색으로 빛나는 S급 헌터의 휘장은, 그녀가 현재 세계에서 손에 꼽는 마법사임을 증명했다.
단순 랭크로만 따지자면, 연합회장인 아비와도 동급.
물론 승급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 실력을 증명하기엔 다소 부족함이 있다는 게 사회의 시선이었다.
-화르륵!
하지만.
그럼에도 훌륭한 마법사라는 건 변치 않는다.
적색 마탑의 간판인 화염 마법이 도로 전체를 휩쓸었다.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하고 쓴 것이고, 그 결과. 저 먼 곳에 있던 마력의 근원을 향해 그녀의 마법이 성공적으로 날아갔다.
도로에서 마법을 사용하는 것은 법에 저촉되지만, 일신의 몸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정당방위가 가능하다.
“그 여자가 수주했나. 같은 생각을 했나보군.”
뻗어 나가는 불꽃. 도로와 가드레일 일부가 녹아내리기 시작한다.
불꽃이 다가가는 곳에는, 한 소녀가 엘레스티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여자?’
팔 다리에 충만한 마력.
하지만 이상하게도 몸통 부위엔 그 어떤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다.
소녀는 한 손의 총을 장전한 뒤, 엘라스티카를 흘기고,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후웅!
여자가 사라졌다.
“무슨!”
말도 안되는 속도.
무투가였나?
빠르게 방어막을 걸친 엘라스티카를 향해 소녀의 인영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철컥.
팔에서 들리는 괴상한 기계음. 증기가 뿜어지며 기계팔의 마석이 녹아내린다.
단전이 없는 아오리의 전투법. 총과 기계를 이용한다.
휠체어나 타고다니던 아오리가 다시 싸울 수 있을 때까지 무려 3년이란 재활이 필요했다.
삼재라는 이름이 무색하지 않게, 그녀는 여러 아티펙트의 적성에도 맞아 새로운 방식의 전투 방식을 고수할 수 있었다.
“아오리…! 산데비스탄…!”
게임 속에 나올 법한 기술을 외며, 손목 옆에 달린 버튼을 누른 아오리.
아오리의 발목과 어깨에서 부스터가 작동한다.
번쩍!
아오리가 다시금 사라지더니, 엘라스티카의 뒤를 점했다.
마치 시간을 멈춘 것만 같은 속도.
단지 빨리 움직여서 그렇게 보이는 거겠지만, 엘라스티카의 시선에서 아오리는 말이 안되는 속도로 그녀를 압도하고 있었다.
“읏?!”
엘라스티카가 밀린다.
한 발자국 앞서간 아오리가 엘라스티카의 복부에 손바닥을 대고, 충격파를 일으켰다.
-콰직!
이온 충격파가 터지며 정신을 잃는 엘라스티카.
그녀의 풀린 눈 위로 음험하게 웃는 아오리의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
프랑스인들은 다 마로니에를 좋아한다던가.
엘라스티카의 자택엔, 무시무시할 정도로 마로니에와 관련한 굿즈들이 그녀의 방에 차례차례 쌓여 있었다.
“나이스.”
이런 곳에서 가치 있는 물건이 나올 줄이야.
나는 마치 명절날의 사촌이 된 것 마냥, 마로니에 브로마이드를 행여 흠집이 날라 아주 조심스럽게 훔쳤다.
‘오.’
사진 하나하나가 감탄이 나올 정도의 퀄리티다.
[마로니에 식빵 문.jpg] [배꼽 노출]“우리 밤냥이가 이런 곳에서 일하고 있었나.”
남들이 멋대로 제작한 거겠지만, 팬이 많을 법도 하다.
마로니에의 거의 모든 걸 알고 있는 나조차도 놀랄 노릇.
“…약간 좀 소름끼칠 정도인데.”
블랑쉬의 귀여움이야 나도 인정하지만, 이 정도로 굿즈를 사 모으는 건 어떤 이유 때문일까.
“슬슬 돌아갈까.”
어쩌다 보니 느긋하게 루팅을 하는 꼴이 됐지만,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게, 애초에 내가 할 일이 아무 것도 없었다.
나는 지하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아! 가슴 떨어져… 떨어진다고…! 흐아아아악…!
-우하~ 고무나무 엄청 늘어나~!
신이 나 보이는 목소리의 아오리.
그에 반해, 고통스러워 보이는 엘라스티카의 신세는 말할 것도 없었다.
‘잠시 내버려두자.’
조금 더 즐기게 둘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