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ing the World Tree RAW novel - Chapter 8
쾌락 없는 책임 (2)
“이번 입학생들은 기대가 되는군요.”
넓직한 빔프로젝터 속에 입학이 확정된 얼굴들이 비친다.
자리에 앉은 아카데미의 중역들은 반쯤 흥분한 기색으로 자신들의 의견을 피력하기 시작했다.
“이번 학년 생도들은 따로 정진반은 운영하여도 좋지 않습니까?”
“그건 안되죠. 아무리 실력자들이 많다 해도, 한 반에 정예 생도들을 몰아 넣으면 분명 차별한다며 목인 협회서 반발할 텐데요?”
“하지만 이번 생도들은 특히나 실력의 격차가 큽니다. 그런 생도들은 좀 더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아야죠”
정진반을 운영할 필요가 없다던 교사는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그래도 정진반은…… 좀.”
“지금 발전 가능성이 높은 생도들을 썩힐 생각이십니까?”
“그런 말이 아니잖소!”
점차 과열되어가는 회의실의 분위기.
본래였다면 이러한 일은 없었어야 했다. 10년 전에 폐지된 ‘정진반’은 이미 결론이 난 주제이니까.
“옛날에는 생도간의 실력 격차가 적었으니 정진반의 필요가 없었죠. 하지만 지금은 다르지 않습니까? 당장 정시우와 산수유 학생만 봐도 그래요.”
정시우, 산수유.
‘초록 세대’라 불릴 정도로 실력자가 많은 이번 기수 중 가장 두각을 드러내는 두 능력자.
그 두 명의 이름이 언급되자 교사들은 고개를 주억였다.
“뭐 정시우 생도는 그 ‘세계수’의 남편 될 사람이니 말이오. 그 생도만 있다면 불만도 사그라지지 않을까 싶소만.”
“그래… 산수유 생도의 모친도 목인 협회에서 상당한 자리를 꿰차고 있다지.”
이야기가 긍정적으로 쏠리자 처음 반대했던 교사가 열불이 난 듯 손으로 미간을 짚었다.
그때 였다.
“괜찮네.”
회의실 중앙에서 청아한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고고하신 세계수님의 지아비 될 사람이 어중이 떠중이랑 같은 교육을 받을 수는 없는 법이지. 한국지부는 그대로 진행하세요.”
정 중앙, 거대한 책상에 무릎을 꼬고 앉아 고고한 자태로 앉아있던 그녀가 이 회의의 답을 내놓았다.
교장. 안젤리카.
정의를 관장하는 세계수의 사자. 그녀의 말을 묵살할 수 있는 자는 지고한 존재인 세계수 밖에 없으며, 그에 교사들은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엘 아카데미 한국지부에 세계수님의 남편 될 사람이 있다 해서 와봤는데. 제법 인재가 많은 듯해서 기쁘네요.”
“가, 감사합니다. 교장님.”
“저는 가볼게요. 다른 건 없죠?”
총책임자가 고개를 끄덕이자 한 감독관이 손을 들어 올렸다.
“저기…… 한 명 입학 보류 중인 학생이 있습니다.”
그 감독관을 향해 교사들의 당황한 시선이 몰린다.
‘넌 씨발 눈치도 없냐!‘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 안젤리카는 씩 웃으며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누구죠?”
“……이시헌 예비생도입니다만. 정시우를 상대로 시합을 진행했습니다.”
“어머 불쌍하여라. 그래서요? 학년 1위와 시합을 진행했다고 문제가 있다는건아니죠?”
“아닙니다. 이시헌 예비생도는 정시우 생도와 검을 몇 합 나누었습니다.”
안젤리카는 커다란 가슴을 팔짱 위에 올려놓더니 총책임자에게 물었다.
“그게 대단한 일인가요?”
“……아뇨. 마력 없이 진행하였기에 정시우 생도와 몇 합을 나눌 수 있는 생도는 지금 입학생 중에서도 꽤 많을 겁니다.”
“그럼 왜 보류죠? 설명하세요.”
감독관은 정장 앞섶을 매만지며 입을 열었다.
“현장에서 봤을 때, 검을 드는 자세나 휘두르는 모양새가 처음 검을 드는 것 같더군요. 특별한 특성이 있는 것같으니 주시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처음 검을 휘두른다고요? 그런데 왜 아카데미에?”
안젤리카의 당연한 물음에 감독관은 대답할 수 없었다.
실제로 아카데미 입학 수속을 밟기 위해서는 어린 시절부터 검술과 마법을 배워야 한다.
하여 아카데미가 귀족들의 학교라 불리는 것이고.
그런 이유가 있었기에 아카데미에 입학하는 인간이 적은 것이다.
“……각성이라 생각됩니다. 아카데미에 온 것도 그렇고. 그게 아니라면 입학 지원을 할 리 없으니까요.”
감독관은 끝내 자신의 답을 내놓았다.
각성자.
성장에 관련된 잠재력 능력치가 높은 사람들은 후천적으로 고유 특성을 개화한다.
“각성자라.”
안젤리카는 말을 늘였다.
각성자란 대대로 위인이 되곤 했으니.
“그 말 책임질 수 있나요? 입학 시켜 놨더니 중간고사도 보기 전에 꼴사납 게 퇴학당하지는 않겠죠?”
“……”
감독관, 만세적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의 교직을 내걸고 도박을 할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직접 그 대결을 지켜본 자라면 누구나 만세적의 말을 이해했을 것 이다.
우둔하기 짝이 없는 보법 하며, 바보 같은 자세부터 어색한 호흡까지.
그러나 이시헌 예비생도는 기이할 정도의 움직임을 선보였다. 신기에 달한 몸동작은 정시우마저 놀라게 했다.
“……”
“대답하시죠?”
“교, 교장님! 만세적 감독관이 입학 부서 일 처리는 처음이라서요. 이번만 넘어가 주시는게…”
보다 못한 총책임자가 손을 비벼대며 안젤리카에게 용서를 구했다.
만세적은 생각했다.
’내가 본 그게 진짜라면 그 못생긴 아이는 훌륭한 영웅이 될 수 있겠지.’
장래가 유망한 생도를 보는 것은 오랜만이라서 말을 한 번 꺼내봤다.
그러나 그 말이 무덤을 파는 삽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말을 아끼는 게 좋았을것이다.
“책임지겠습니다. 잘 될 겁니다. 그 학생.”
“만세적 감독관!”
“흐음?”
본래 였다면 말을 아꼈으리라.
교장을 앞에 둔 이 상황에 누가 말을 아끼지 않았을까.
그 얼굴도 모르는 생도를 밀어줄 정도의 의리는 그에게 존재하지 않았다.
“왜죠?”
그럼에도 그가 말을 꺼낸 것은 단순히-
“제가 그렇게 A급 영웅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오랜 과거가 생각나서.
“……”
“……”
회의실에 침묵이 감돈다.
감독관과 교사들은 각자 옆자리를 바라보며 우려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기나긴 고요를 깬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니었다.
‘‘괜찮아 보이네요. 입학 시켜주죠. 대신 성적이 안 좋으면 퇴학시키는 걸로.”
이세영.
땀을 삐질 흘린 그녀가 눈치를 보며 손을들고 있었다.
*****
[합격했어, 수목환내놔.]“핸드폰 번호는 또 어떻게 아셨대?”
[입학생 전화번호 아는 게 그렇게 어려운일인줄 알아?]백주대로에 갑자기 전화가 온다 싶더니 그때 만난 이세영의 독촉 전화였다.
“선생님 너무 성질 급하시다.”
[선생은 지랄. 나 2학년 교사거든?]“여하튼 수목환은 줄 수 있는데, 대신 몇 가지만 알려줘요. 입학생 명단 뽑아서 유망한 인재들 좀 추려서 가져다줘요.”
[뭐? 너 지금 장난해?!]“아니 그 정돈 해줘도 되잖아요. 이게 얼마짜린데. 저희집 주소 알죠? 아, 그리고 오는 길에 피자 좀. 고구마 쉬림프 피자로.”
[……무친놈. 알았어.]세영은 의외로 순순히 대답한 후 전화를 끊었다.
‘이 사람이 웬일이지? 저번에 만났을 때는 날 잡아먹으려 안달 났으면서.’
모르겠다. 아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나는 벌러덩 드러누워 천장을 바라 봤다.
“입학은 했고, 보상도 받았고,”
곰팡이가 슬어있는 천장은 일전에 내가 살았던 자취방과 비슷했다.
달라진 건 나와, 세계뿐이다.
“목적도 생겼고.”
목인들을 취하고 도감을 채운다. 그리고 세계수에게 한 방을 먹인다.
이러한 마음가짐을 먹었을 때 세계수나 상태창에서 별 반응이 없던 걸 보아 녀석들은 내 계획을 모르는 듯했다.
‘모르는 척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럼 너무 우울해질 것 같으니까.’
한동안은 정보 수집과 실력 기르기에 집중을 할 생각이었다.
지금 나는 모르는 게 너무 많다.
인터넷으로 조사하는 것도 한계가 있어서, 보다 내게 전문적인 정보를 전달해 줄 사람이 필요했다.
“세계수, 나한테 이세계에 대해 좀 알려줄 수 있어?”
【 ‘순결의 세계수’가 고개를 내젓습니다. 】
“무능한 놈.”
【 ‘순결의 세계수’가 울상을 짓습니다. 】
세계수와의 관계는 언제나 그렇듯 부르면 쪼르르 달려오지만, 막상 내게 도움을 주지는 못했다.
“그래서 세계수의 사랑은 대체 언제 오는거야?”
이번 입학 퀘스트의 보상인 세계수의 사랑.
언젠가 도착한다는 언질만 주고 싹 달아나 버렸다.
그래도 퀘스트의 경험이 의미 없지는 않았다.
엘 아카데미 한국지부 근처 도서관에서 책을 읽은 결과 몇 가지 지식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세계수’
저번에 말했던 N-1지구에는 다섯 그루의 세계수가 이 행성의 뿌리를 이룬다.
[정의]. [성실]. [강인]. [희생]. [번영].각 개념을 관장하는 세계수들은 이 세계의 신과도 같은 존재로 숭상을 받고 있으며 그 밑으로 수십 그루의 세계수가 존재한다고 한다.
요컨대 나무들 사이에서도 계급이 존재한다는 소리다.
〔5대 세계수]〉[세계수]〉[성령과 성자]〉[장로]〉[노목]〉[성목]〉 [유목]
간단히 정리하면 이 정도일까.
이 계급표는 세계수의 기운이 남아 있는 나무만이 인정된다. 그냥 나무들은 귀한 취급을 못 받는다는 소리다.
그리고 목인과 나무의 차이는… 단순한 진화 여부. 나무와 인간이 반반 섞인 목인들의 계급은 인간 세계에서 귀족으로 통한다.
하늘이 내린 혈통이라고나 할까. 과거 세계수와 떡을 친 여성이 낳은 아이가 목인의 시초였다고 한다,
‘전형적인 왕의 논리지.’
신의 대리자라는 감투를 뒤집어쓴 기득권들.
뭐 지들이 권력으로 밥을 해 먹든 뭘 하든 내 알 바는 아니었다. 내 신경은 오직 원래 세계로의 귀환에 집중되어 있으니까.
그나마 관심이 가는 거라면 이 순결의 세계수다.
그녀? 그? 여하튼 이 순결의 세계수는 5대 세계수 안의 범주에 있지 않았다.
이 세계의 2인자. 카스트로 치면 브라만이 아니라 크샤트리아 같은 존재 이다.
‘그런데 문제는 순결의 세계수에 대해서 아는 놈이 아무도 없단 말이지.’
도서관 사서에게 슬쩍 물어봤더니 뭔 개소리를 하냐는 반응이 었다.
단언컨대 듣보잡 나무가 분명하다.
지 남편 속 썩일줄만 아는 년.
‘어떻게 명예를 얻을 수 있나 궁리해도, 이 세계가 순결의 세계수를 모른다면 이득 볼 수 있는 게 없잖아.’
숨겨진 세계수의 남편이오! 하고 나타났다간 몰매 맞을 게 분명했다.
아마 사이비로 취급받겠지. 이 세계는 그런 거에 민감하다.
아무래도 한동안은 조용히 살아야 할 성싶었다.
一딩동!
마침 울리는 벨소리.
벌써 세영이 왔나 싶어 문을 여니, 그곳에는 웬 남성이 택배 상자를 들고 있었다.
“이시헌님 맞으신가요?”
“네.”
“트리 코퍼레이션에 귀하의 이름으로 맡겨진 물품입니다. 받아가십시오.”
모자를 눌러쓴 그는 무감정한 목소리로 내게 상자를 맡기고 떠나갔다.
-쿵!
문을 닫고 방 안에 들어와 상자를 풀어헤치니 그곳엔 연두색의 씨앗이 놓여 있었다.
뭐야 이게.
씨앗을 꺼내 눈앞으로 가져다 대니 홀로그램 창이 먼저 반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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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수의 사랑(?)
[분류 : 기타]-순결의 세계수가 잉태한 씨앗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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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를 읽어내린 나는 얼빠진 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뭐?”
정신을 차리고 차분히 그 글을 읽어 내렸다.
-세계수가 잉태한 씨앗.
“잉태가 뭐지?”
【 아이를 배는 것. 성태. 회태(懷胎). 순화어는 ‘임신’입니다. 】
“아니 씨발 그걸 묻는 게 아니잖아 지금.”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나는 생각 하는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을 설명하자면 이렇다.
“나한테 아이 떠맡긴 거잖아. 이 미친 세계수년이.”
깊은 빡침이 우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