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ergency Exit to Freedom RAW novel - Chapter 9
9]
지혁은 옆에 잠들어있는 정현을 깨우지 않기 위해 소리 없이 일어나 진동하고 있는 휴대폰을 가지고 베란다 밖으로 나갔다.
“네….”
[박상원 중윕니다.]
“음. 무슨 일인가?”
[제 3의 인물을 찾은 것 같습니다.]
지혁은 박중위의 말에 담배에 불을 붙이려던 손을 멈추었다.
“……….”
[……….소령님의 짐작이 맞았습니다. 박의원이 3일전에 별장으로 내려왔는데……….유철웅 준장을 두 번 만났답니다. 한번은 점심을 함께 먹었고 두 번째 만남은 밤늦은 시각에 준장 자택의 지하 서재였습니다.]
지혁은 왜 박상원 중위가 준장을 제 3의 인물로 확신하는지 알 수 있었다. 국회의원과 해군특수전여단장이 사적인 만남을 가질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게다가 밤늦은 시각의 은밀한 만남은 더욱더………
지혁은 그녀가 누워있는 침실 쪽을 흘끗 바라보았다.
“알았다. 지금부터 제 3의 인물을 너구리라 칭한다. 박의원의 뒤에 감시자를 붙인 것과 같이 너구리에게도 24시간 감시자를 붙여.”
[네. 알겠습니다.]
명령을 끝으로 휴대폰의 폴더를 닫은 지혁은 심각한 표정으로 침실로 들어갔다. 정현은 아무것도 모른 채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일이 아주 복잡해지고 있었다. 처음엔 단순히 해군의 기밀문서가 없어진 사건이었고 그 사건의 뒤에는 국회의원 박용섭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문서를 훔쳐낸 행정부의 하사를 심문하자 바로 국회의원 박용섭의 이름이 나왔다. 하지만 박용섭 의원에게 그 문서가 무슨 효용가치가 있는가가 의문이었다.
문서의 내용은 최근 5년 동안의 udt/seal 팀이 참가했던 비밀작전의 리스트였다. 물론 그 리스트가 현재 내분이 일고 있는 파키스탄이나 그 밖의 테러집단의 내부로 들어간다면 한국 정부가 아주 곤란한 상황에 처하겠지만 그 리스트를 돈을 주면서까지 사려고하는 테러집단이 있을까?………..이미 한국정부에서 미국편을 들어 대대적으로 파병까지 보낸 것은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비밀작전 몇 가지가 그들에게 돈을 들여서까지 가지고 싶은 정보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박의원이 원하는 것은 따로 있다는 뜻이었다. 그게 무엇이든 박의원이나 일개 하사 정도만으로는 해군에서 중요한 무언가를 빼낼 수 없었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였다. 없어진 기밀문서는 미끼였다. 그것으로 해군의 누군가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을 박의원이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는 미끼……….
그가 바로 유철웅 준장이었다. 그라면 박의원이 이용하기 쉬울 것이다. 권력의 야망에 눈이 멀어 승진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 자신의 딸마저도 자신의 야망을 이루기 위한 도구로 생각하는 사람……..
유철웅 준장…….그가 자신의 딸과의 만남을 처음 주선할 때부터 짐작할 수 있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지혁의 배경. 공군참모총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그의 아버지. 해군참모총장과 절친한 사이고 공군 최고사령관인 그의 부친 정태욱 장군………준장이 생각하기에 지혁이 자신의 사위만 된다면 군의 최고사령관들을 등에 업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겠지……..그래서였다. 자신의 딸을 지혁에게 보낸 이유는 바로 그것이었다.
지혁은 잠든 정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그녀를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그녀가 다치지 않고 준장을 잡을 수 있을지 방법도 몰랐다. 다만 준장이 이 일과 연관이 없기만을 바랐지만 지금은 그도 기대할 수 없었다. 자신의 아버지가 무너지는 것을 보게 될 경우 그녀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것도 그녀의 아버지를 파멸시킬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지혁 자신이었다. 그를 원망할지도 모른다. 자신의 아버지를 부셔버린 그를 증오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해야 했다. 어쩌면 나라를 팔수도 있는 매국 행위를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최악의 경우 그녀를 잃을 수도 있었다.
지혁은 이를 악물었다. 그녀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상상만으로도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심장이 갈라지는 아픔이 느껴졌다. 그녀를 잃을 수는 없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녀를 잃을 수는 없었다. 결코!
정현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희미한 푸른 새벽빛에 살며시 눈을 떴다. 그녀는 그대로 침대에 누운 채 희미하게 밝아오는 새벽하늘을 바라보았다. 밝아오는 빛도 푸른 하늘도 그대로인데 그녀에게 오늘의 새벽은 어제의 새벽이 아니었다. 정현의 눈 끝에서 한줄기 눈물이 흘러내려 베개를 적셨다.
사랑하나보다……….어느새 그를 깊이 사랑하게 되었나보다……..
정현은 고개를 돌려 자신의 허리를 안은 채 잠들어있는 그를 돌아보았다. 거의 새벽녘까지 거침없는 열정으로 그녀를 몰아세우던 그가 깊이 잠들어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훈련에서 돌아오자마자 밤새 자신을 안았으니 피곤할 것이다. 정현은 몸을 돌려 그의 강인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살며시 손을 들어 그의 짙은 눈썹을 손가락으로 쓸어보았다. 그리고 그의 곧게 뻗은 콧날을 따라 손가락을 움직이며 약간은 얇은 듯 섹시한 그의 입술을 쓰다듬었다. 정현은 소리 없이 조용히 그의 입술에 살짝 입을 맞췄다. 그리고 물러나려는 순간 그의 팔이 재빨리 그녀의 허리를 감아 자신의 품속으로 끌어당겼다.
“흐음……..”
그가 만족의 한숨을 내쉬며 그녀의 엉덩이를 움켜쥐었다. 정현의 팔이 그의 뒷머리를 감싸 안으며 그와 눈을 맞추었다. 그녀는 자신의 팔 안쪽 깊숙이 닿는 그의 귓불을 느끼며 그의 까슬한 머리를 쓰다듬었다. 두 사람의 코가 거의 맞닿을 듯 가까운 거리였다. 그의 손이 그녀의 벗은 등을 천천히 쓸어내리고 있었다. 그가 턱을 움직여 그녀의 입술에 쪽 소리가 나도록 키스하며 그녀의 눈을 그윽하게 바라보았다.
갑자기 그가 심각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속삭였다.
“점점 보내기 싫어지는 군. 오늘 안가면 안 되겠지?”
“풋. 당신도 그런 말을 할 줄 알아요?”
“왜? 난 그런 말 못하는 사람 같은가?”
“네……..당신은…………모르겠어요. 당신이 누구에게 부탁하거나 붙잡는 거 못할 것 같아…….”
“훗. 앞으로 많이 보게 될 거야. 네게 함께 있어달라고 애원하고 가려는 널 붙잡고 매달릴 테니까.”
정현은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자신에게 애원하고 매달리는 그가 쉽게 상상이 되지 않았다. 이렇게 강한 남자가 자신처럼 약한 여자에게 매달리는 상상만으로도 웃음이 새어나왔다.
“…….지금 해봐요.”
그녀가 낮은 목소리로 유혹하듯 속삭이자 그의 눈빛이 어둡게 내려앉았다.
“원한다면.”
그리고는 웃고 있는 그녀에게 깊게 키스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뒤로 환한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늦은 오후 그의 차가 그녀의 집 앞에 멈춰 서자 정현은 그를 돌아보았다.
“내일부터 다시 부대로 출근하는 건가요?”
“음.”
그가 그녀의 집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정말 보내고 싶지 않군.”
“풋. 우리 집이 무슨 위험한 전쟁터라도 되는 듯 말하는군요.”
“글쎄. 총 들고 싸우는 곳만이 전쟁터는 아니지.”
그의 나지막이 중얼거리는 의미심장한 말에 정현이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뜻이에요?”
“아니야. 만약 무슨 일이 있으면 어느 때고 전화해. 새벽이든 밤늦은 시간이든 상관없어.”
“무슨 일이 있을게 뭐가 있어요?”
“그러니까 만약이야. 알았나?”
“넵. 소령님.”
그녀가 장난스럽게 군인들의 거수경례를 흉내 내자 그가 얼굴에 미소를 띠웠다.
“벌써 보고 싶어지는군.”
낮게 속삭이며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던 그가 그녀의 입술에 강한 입맞춤을 했다.
지혁은 출근 준비를 하던 중 휴대폰이 울리는 소리를 들었다.
[소령님. 박상원 중윕니다.] “음.”[한 시간 전쯤에 너구리의 집에서 딸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큰 여행 가방을 든 채였습니다.]
지혁은 벽에 걸린 시계를 흘낏 쳐다보았다. 06시 10분………아직 이른 아침이었다. 한 시간 전이라면 05시. 일반인이 활동하기엔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여행 가방?”
[이상한 생각이 들어 미행을 했는데 김해공항으로 가는 리무진 버스 정류장이었습니다. 거기서 낯선 남자를 만났는데 아무래도 둘이 닮은 것이 남동생 같습니다.]
“군대에 가있는 걸로 아는데?”
[제대를 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남자가 공항으로 가는 리무진을 탔습니다.]
“여자는?”
[………그게……]
“뭔가?”
[소령님 아파트로 가고 있습니다. 지금 아파트 입구로 들어섰습니다.]
“………….알았다. 나머지 보고는 다른 시간에 받도록 하지.”
[네. 알겠습니다.]
지혁은 휴대폰의 폴더를 닫고 군복의 윗도리를 마저 입었다. 그리고 주방으로 가 가스렌지에 2인 분량의 커피 물을 올렸다. 그때 현관의 벨이 울렸다. 지혁이 문을 열자 정현이 환한 웃음을 지으며 현관으로 들어섰다.
“당신이 출근하기 전에 보려고 왔어요.”
“그래?”
“몇 시까지 출근이에요?”
지혁이 손목시계를 보며 대답했다.
“아직 30분정도 여유 있어.”
“그래요? 아침은 먹었어요? 어. 물이 끊고 있네요. 커피 마시려고요?”
“음.”
그녀가 주방으로 가는 모습을 지혁은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잘됐다. 커피 마시고 싶었는데.”
그녀가 두 잔의 커피를 타는 모습을 바라보며 지혁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뭔가 달랐다. 평소의 그녀가 아니었다. 차분하고 어딘가 어두웠던 분위기의 그녀가 확실히 변해있었다. 새벽의 외출과 관련이 있는 건가………
“뭐 좋은 일 있나?”
그녀가 몸을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느꼈어요?”
“그래.”
그녀가 그에게로 다가와 그의 목에 팔을 감았다.
“좋은 일 있어요. 너무 좋은 일……….당신은 주어진 임무를 성공했을 때 기분이 어때요?”
“임무?”
“네. 임무. 아니 작전인가? 아무튼 당신에게 주어진 일을 성공했을 때 성취감이랄까……뭐 그런 거 있잖아요?”
“무슨 중요한 임무라도 완수한 것 같군.”
“맞아요! 아주 중요한 임무 하나를 완수했죠.”
그녀가 갑자기 뒤꿈치를 들고 그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갑자기 궁금해지는군. 그게 뭔지.”
“나중에…….나중에 말해줄게요. 때가 되면…….지금은………키스해줘요…….”
지혁은 다가오는 그녀의 입술을 바라보며 무언가 석연치 않음을 느꼈지만 곧 그녀의 입술이 자신의 입술에 닿자 다른 생각은 모두 머릿속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자세한 내용은 따로 알아보면 될 것이다.
박상원 중위는 정지혁 소령의 아파트를 올려다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처음 대장이 유정현이라는 여자를 만나는 것을 알았을 때는 그저 대장에게 중요한 존재가 생긴 것에 기쁜 마음만 들었었다. 하지만 이젠 상황이 틀려졌다. 제 3의 인물이 준장임이 거의 확실한 상태인데 준장의 딸과 대장의 관계는……..대장에게 유정현이라는 여자가 중요한 존재라면………일이 심각해진다. 유정현은 다름 아닌 적의 딸이었다. 어쩌면 자신들이 찾고 있는 물건이 너구리에게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대장과 여자의 관계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다름없었다.
젠장……..대장이 설마 여자에게 빠져서 일을 그르치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다른 누구도 아닌 UDT/SEAL의 최정예부대인 제 3팀의 대장 정지혁 소령이었다……….
박상원 중위는 다시한번 아파트를 올려다보고 차를 출발시켜 아파트 주차장을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