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perienced Newbie RAW novel - Chapter 139
139
반군의 이상한 모험
히름이 지워졌다. 귀족과 황족이 모두 사라졌고, 12신위는 그 이름이 무색하게 쓰러졌다.
“신위만도 아니고, 보조 인원하고 보급 인원까지 한 번에 정리해 버리냐.”
위원회 어플로 사건 경과를 보고 있던 현이 중얼거렸다.
10만 하고도 1320명. 정식 신위 부대의 숫자이며, 보조 인원 1200명은 차기 신위이기도 하다. 그들이 빠짐없이 몰살당했다. 대부분을 처리한 건 윌리엄이었다. 위원회의 역할은 윌리엄이 도착할 때까지의 발목 잡기.
며칠 사이 백만에 달하는 피를 손에 묻힌 것이다. 지금쯤 위원회에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뒤처리를 하고 있을 것이다.
과학에게 주도권이 넘어갔지만, 히름이 망한 건 아니다. 신위가 사라지며 위원회 권력에 흠집이 생겼겠지만, 김 교수의 태도로 보면 과학에게 그 이상으로 뜯어낼 수 있을 듯했다.
위원회 내부에서 히름이 하는 일은 거수기와 유사시의 병력 차출 정도다. 과학에게서 신위보다 강한 무기를 얻어낸다면 위원회의 여론은 진정시킬 수 있었다.
제국 하나가 사라진 것치고는 잘 정리된 셈이다.
현은 창밖을 보았다. 여긴 20층 건물의 최상층이다. 그 창공을 드론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드론의 아래쪽에서 움직이던 센서가 들어가고, 그 구멍에서 흉흉한 총구가 나타났다.
드르륵. 흠잡을 곳 없는 점사. 현은 아래로 고개를 돌렸다. 미간, 심장, 배에 구멍이 뚫린 시체가 땅에 엎어져 피를 흘리고 있었다.
과학이 통치권을 넘겨받고 사흘, 하르시스타는 완전히 변했다. 함선에서 투입된 로봇들에 의해 폐허는 3시간도 안 되어 정리됐고, 하룻밤이 지나니 복구 되어 있었다. 마법을 빼고, 낡은 블록의 깨진 금까지 재현된 거리에 현도 살짝 오한이 들었다.
마법보다 마법같은 과학의 기술들은 몇 번이나 봐도 적응되지 않는 면이 있었다.
대 행성용 폭탄 같은 물건은 너무 초현실적이라 실감하게 된다면, 이런 사소한 부분에서 반대로 실감이 되지 않아 소름이 돋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과학은 자본주의의 대행자 역할에 충실하고 있었다. 방금의 총살도 그 하나. 과학이 감시하는 도시는 바늘 하나 들어갈 틈이 없는 철벽이 되었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하르시스타를 시작으로 과학은 진짜로 히름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김 교수가 나설 때부터 적당히 하리라곤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건 진심을 넘어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도 보였다.
과학이 지배하는 하르시스타는 무능한 놈들이 지배할 때가 좋았다고 생각되는 지옥이 되었다.
과학의 감시는 아주 사소한 일탈도 놓치지 않았다. 과학의 눈은 집행자의, 생물의 눈과는 감지하는 범위 자체가 달랐다.
신위가 사라진 것을 알고 반란을 일으킨 무리도 있었다. 그들의 최후는 아름다웠다. 함선에서 쏘아지는 함포의 빛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과학의 공격에는 마력이 없다. 대 과학용 장비나 술법이 없는 한 과학의 공격에는 당할 수밖에 없다. 대 과학용 장비도 종류가 다양하다. 과학의 공격 수단이 몇 갠데 그걸 장비 하나로 모두 방어하겠다는 건 과욕이다.
대 과학용 마법과 장비는 수십, 수백 가지가 되고, 그것들을 항시 구비해두는 집단은 현이 아는 선상에선 위원회와 드래곤의 둥지 정도다.
나머지는 과학이 기습해오면 손도 쓰지 못하고 당할 수밖에 없다.
에이네가 있기에, 또 에이네에게 받은 몇몇 기기가 있기에 비교적 안심하고 있지만, 본래는 현도 과학에 대한 대비로 아티팩트와 마법으로 몸을 떡칠할 예정이었다.
현도 구하기 힘든, 회귀자조차 에이네에게 부탁해 만들어 다니는 장비를 충동적으로 반란을 일으킨 무리가 가지고 있을 리 없었다.
히름 제국, 아니 중앙 대륙에 있다고 중앙 대형 산업 단지라 이름 붙은 땅은 과학의 지배 아래 더욱 철저한 물질만능주의 사회로 변해가고 있었다.
***
엘로렌은 밤하늘을 보았다. 술사들이 천기를 보는 것과도 비슷했지만, 그녀가 보는 건 다른 영역이었다. 그녀의 눈에 세상은 빛이었다. 빛의 스펙트럼 전체를 아우르는 눈부시고, 화려하고, 암울한 빛들.
빛의 세상 속에서 그녀만이 빛나지 않았다. 그녀에게 주어진 숙명과 같았다. 엘로렌은 그것에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
전쟁 후에 죽을 목숨을 이 눈 하나로 연명했고, 지금은 사치라 해도 좋을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불만은 없었다.
고민은 있지만.
“밤에 뭐해? 밤은 별로 안 좋아한다며.”
“그래, 밤하늘을 끼고 보는 세계는 아름다워서 더 싫으니까.”
“그럼 왜?”
로한의 질문에 그녀는 눈을 가늘게 떴다. 히름이 변했다.
그녀가 처음으로 능력을 사용한 땅. 인지도가 아닌 능력을 처음으로 사용해본 장소. 대계의 시작으로 점찍어둔 장소에서 나오던 빛이 변했다. 처음 사용한 능력이지만, 그리 쉽게 변하는 능력은 아니었을 텐데도.
“그런데 또 그게 나쁜 방향은 아니란 말이야…….”
엘로렌이 고민하는 이유가 이거였다. 분명 히름에서 나오는 빛은 변했다. 그녀는 히름이 변한다면 분명 그녀의 주문과 역행하는 방향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히름은 그녀가 원하는 방향으로 변했다.
권능의 힘인가? 아니면 우연? 알 수 없었다. 열한 번째의 권능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건 세상에서 그녀가 유일했지만, 그녀조차도 권능의 모든 걸 알 수는 없었다.
애초에, 권능을 제대로 사용해본 적조차 몇 번 없었다. 인지도를 보는 능력이나 사람을 세뇌하는 능력은 열한 번째가 가진 권능의 편린에 불과했다.
“인형을 보냈다며. 그거 때문 아냐?”
“권능 일부를 부여해 보내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김우현을 꾀어내기 위한 거야. 세계의 문명을 바꿀 정도의 영향력은 없을 건데. 뭐야, 그 표정.”
로한의 한심하다는 얼굴에 엘로렌이 발끈해서 말했다. 젭크에게 무시당하는 건 익숙해도, 바보인 로한에게 저런 눈빛을 받는 건 엄청 기분 나빴다.
“… 아니. 나랑 처음 만났을 때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나 해서.”
“기억 안 나는데?”
로한은 이마를 감쌌다.
“내가 어쩌자고 이런 인간에게 인생을 바쳤는지. 네가 배신당해 죽어가던 나를 발견하고 말했지. 작은 것들이 세계를 바꿀 수 있다는 걸 보여주자. 세상을 뒤집어 버리자.”
“잊어! 어린 시절의 치기야! 잊어!”
“하지만 실제로 세상을 뒤집을 일을 하고 있지. 안 그래?”
“맞아.”
엘로렌이 한풀 꺾인 기세로 대답했다.
“그러면 그것들이 세계를 바꾸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거 아니야?”
그녀는 한참이나 고민했다. 그녀의 얼굴이 점점 심각해졌다. 망연하게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그녀가 중얼거렸다.
“나, 설마 말도 안 되는 짓을 해버린 건가?”
“그걸 이제야 안 거냐.”
기척도 없이 구석에 있던 젭크의 말이 엘로렌을 더욱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어차피 그게 더 목적에 좋은 거 아닌가? 세계가 혼란스러울수록 우리는 강해지니까.”
“그건 그래. 그래도 아아악! 문명을 가장 먼저 건드리는 건 내가 하고 싶었는데!”
별빛보다 환한 빛이 산란하는 세상 아래서, 엘로렌은 소리쳤다.
***
중앙 대형 산업 단지는 하루가 다르게 모습을 달리하고 있었다. 김 교수의 말대로 한 달이면 히름 전체를 장악하고도 남을 듯했다. 적당히 거리를 돌아다니는 현에게, 기다리던 사람이 말을 걸어왔다.
“어떠십니까. 자본주의의 모습은.”
“최악이더군. 특히 주인이 바뀐 뒤로는 더욱. 네가 보는 풍경은 어떻지?”
“요즘 밥을 먹지 못하고 있습니다. 먹는 족족 토하거든요. 참기 힘든 걸 넘어 역겨워졌습니다.”
그 말대로 남자는 조금 수척해져 있었다. 없던 다크서클도 생겨 있는 걸 보면 어지간히 고생하고 있는 듯했다.
“마음은 정하셨습니까?”
“한 번 둘러보기나 하지.”
“잘 생각하셨습니다. 이쪽으로.”
남자는 익숙하게 색깔 있는 보행로를 벗어나 건물 구석으로 들어갔다.
“드론에게 안 들키나?”
“안 들킵니다.”
“어떻게 확신하지?”
“제 능력입니다. 드론을 보니 알겠더군요. 감시를 피하는 법을.”
“생각보다 능력이 광범위하군.”
“제가 생각해도 놀랍습니다.”
그리 말하며 남자가 땅을 들어 올리자 지하로 가는 통로가 나타났다. 현은 남자를 따라 지하로 들어갔다.
출입구가 닫히자마자 진하게 풍기는 냄새에 현이 콧잔등을 찌푸렸다. 진한 마약 냄새와 분 냄새가 아래에서부터 올라왔다.
볼 것도 없다. 다년간의 경험이 말해주고 있었다. 이 아래는 매음굴이다.
“왜 반군들이 이용하는 장소는 항상 매음굴이지?”
“높으신 분들은 더러워서 무시하고, 평범한 사람은 존재조차 모르는 사회의 사각 같은 장소이니 그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특히 하르시스타는 더합니다. 이 아래 있는 여자들은 대부분이 계급의 최하층에 있는 자들이니까요.”
지하에 만들어진 굴에는 마약을 태워 만들어진 연기가 천장에 고여 작은 구름을 만들고 있었다.
현은 남자를 따라 매음굴을 지나쳤다. 매음굴 안쪽에는 깨끗한 공간이 있었다. 남자는 거기서 다시 바닥을 열었다.
“여기가 진짜입니다.”
안쪽은 마약 냄새가 아닌 쇠와 피 냄새가 났다.
그 뒤로는 평범한 인사였다. 반군처럼 폐쇄적인 조직에 신입이 들어오면 누구 하나 경계할 법도 한데 모두 이상하리만치 현에게 호의적이었으며, 또 남자에게 존중을 보였다.
“설마 두목이 너냐?”
“그럼 뭐라고 생각하셨습니까?”
“스카우터.”
“제 능력만 보면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군요. 하지만 제가 반군의 리더입니다. 실망하셨습니까?”
현이 고개를 저었다.
“그런 능력을 가지고 스카우터나 하고 있다면 그게 더 이상하지. 간부라고는 생각했다. 리더라는 게 의외일 뿐.”
“리더의 재목으로는 안 보인다는 거군요. 자각은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리더를 넘길 수도 없습니다. 여차할 때 도망가려면 리더의 능력이 필요해서 말이죠.”
“리더 자리만 넘길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런 인재가 좀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만한 능력이 있다면 신위 부대에 들어가지 누가 반군 따위에 들어오고 싶어 하겠습니까.”
맞는 말이었다. 반군이 히름의 지배 세력을 위협할 정도로 거대하다면 모를까, 현이 본 반군은 그냥 오합지졸이다. 신위 부대는커녕 신위 부대를 지키는 보조 인원들도 상대하지 못한다.
10만의 보급 인원이 물량으로 밀고 들어오면 그대로 사라져버릴 병력. 이거라면 알고도 가만두는 게 정답이라고 느껴졌다.
반군을 짓밟는 건 간단하다. 하지만 그러면 여차할 때 반군이라는 이름으로 국가를 집결시킬 수 없어진다. 아무리 어설퍼도 반군은 존재해주는 게 히름에 있어 편리하다.
“그걸 알고서도 반군을 유지하는 건가. 이용당할 뿐이라는 걸 모르지 않을 텐데.”
“알고 있습니다. 알고서도 유지하고 있는 겁니다.”
“그럼 이대로는 답이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는 거군.”
“답은 있습니다.”
남자가 단호하게 말했다. 처음으로 남자에게서 카리스마라고 부를만한 것이 느껴졌다.
“그거 궁금하군.”
남자가 위를 가리켰다. 지하의 위는 천장이었다. 그래도 남자는 검지를 하늘로 뻗었다.
“저 함선. 함선 꼭대기에 한 순간만 설 수 있으면 그걸로 됩니다. 모든 걸 희생한다는 걸 전제로 하면, 그 정도는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턱도 없는 소리. 라고 말해주고 싶었으나 현은 그냥 남자의 말에 동의했다.
“운이 좋다면, 가능하겠네.”
“운이 아닙니다. 실력으로 가능합니다. 그만한 인물을 이번에 영입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현은 그 인물이 누군지 안 봐도 알 것 같았다.
남자가 그 인물을 소개해 준다고 데려간 장소에는 예상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퍼스트 양입니다.”
얼굴을 바꾸고 있지만, 그 골격은 틀림없는 에이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