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0
10화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순식간에 검이 빛나자 허공에서 청색의 빛이 허공을 가르며 날아왔다.
검광(劍光)은 순식간에 후원에 있는 검은 옷의 사내에게 날아갔다.
검은 옷의 사내는 놀라서 서둘러 한쪽으로 굴러갔다. 푸른 검광이 뚫고 지나간 후 검은 옷의 사내는 뒤를 돌아보자 간담이 서늘해졌다.
뒤쪽 수십 장(丈)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날카로운 칼에 잘린 거처럼 반으로 갈라져 있었다.
“이런 망할 도둑놈. 내가 널 반드시 찾아내서 가만두지 않겠다.”
검은 옷의 사내는 욕을 하면서 몸을 돌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시신을 수습하는 자들도 분노하며 달려들었다.
검은 옷의 사내가 지도를 훔쳐서 자신들의 돈벌이를 끊은 것이었다.
시신을 수습하는 자들의 실력은 보잘것없었지만, 나름의 한 수를 지니고 있었다.
게다가 시신을 수습하는 자들의 목숨은 다른 사람의 손에 달려 있지 않은가.
낮에 발견한 지도를 밤에 누군가 훔쳐 갔으니 구 관사는 비밀이 샌 거로 생각하여 그들을 죽일 게 뻔했다.
십여 명이 일제히 달려들어 검은 옷 사내의 팔을 잡으려는 순간, 그의 팔이 떨리더니 마치 뱀처럼 미끄러지듯이 빠져나갔다.
그리고는 몸을 흔들더니 온몸의 뼈가 사라진 것처럼 땅에 달라붙었다. 검은 옷 사내는 몸을 흔들며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갔다.
십여 명의 사람은 그저 멍하게 그 모습만 쳐다볼 뿐이었다. 아무도 미끄러지듯이 빠져나간 자를 잡지 못했다.
사람들 사이에서 빠져나온 검은 옷의 사내는 반쪽의 지도를 보자 가슴이 쓰라렸고 속으로 저주하며 맹세했다.
“내가 그놈을 반드시 찾아내서 수련 경지를 폐하고 거세할 것이다!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게 만들어주리라!”
그러던 중, 구 관사는 점점 가까워졌다. 검은 옷의 사내는 이를 악물고 지도를 수십 조각으로 찢은 후 사방에 뿌렸다.
조각은 그대로 불바다 속으로 날아갔다.
이건 방금 진양의 수법을 보고 배운 거였다.
역시나 날아오던 구 관사는 경악했다. 그는 진원을 뿜어내더니 서둘러 허상의 손으로 불바다 속으로 날아가는 지도 조각을 잡았다.
멀리서 구 관사를 본 검은 옷의 사내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구 관사는 실력이 엄청나서 동작도 빨랐기에 수습하는 속도도 매우 빨랐기 때문이다.
그는 피가 거꾸로 솟는 걸 참으며, 남은 지도 조각을 꺼내 사방팔방으로 날렸다. 구겨진 지도 조각은 시위를 떠난 활처럼 어두운 밤 속으로 흩어져 날아갔다.
검은 옷의 사내는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복잡한 성의 건물 사이로 모습을 감췄다.
검을 타고 허공에 있는 구 관사의 안색은 창백해졌다. 근처에 있던 저택의 불이 켜지자 검은 옷의 사내에게는 신경도 쓰지 않고 서둘러 지도 조각을 줍기 시작했다.
잠시 후 지도 조각을 대충 맞춰본 구 관사는 빠진 부분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구 관사님.”
한 시종이 눈살을 찌푸리며 달려왔다.
“어찌 된 일인지 알아보았느냐?”
“그 도둑놈은 사경(四更)쯤 침입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자가 어디서 정보를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시신을 수습하는 자들의 방안에 숨어들어 지도를 훔쳤습니다. 하지만 운도 없게 그 신참과 마주친 거 같습니다. 그자의 방에 안신향이 있었는데, 아마 신참의 간이 작아서 잠이 오지 않아 켜둔 듯합니다. 그때 그 도적과 우연히 마주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신참은 혜교가 터지면서 죽었습니다. 안 그랬으면 이것저것 물어봤을 텐데…….”
“됐네. 그만하게. 가서 시신을 수습하는 자들을 모두 처리하게. 그리고 마침 불이 타고 있으니 건물도 모두 태워버리게.”
구 관사는 어두운 표정으로 화낼 기운도 없는지 손을 저었다. 그리고 시신을 수습하는 사람 중 누가 기밀을 누설했는지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시종이 대답하고 물러났다.
잠시 후, 건물에서 연속으로 십여 번의 폭발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불바다는 더욱 거대해졌고 곧 모든 저택을 삼켜버렸다.
* * *
성 남쪽의 작은 집 안.
검은 옷의 사내는 저택 안의 마른 우물 안에서 뛰쳐나왔다. 얼굴을 가리고 있던 복면을 내리고 몸을 흔들자 체형이 갑자기 팽창하더니 허연 멀쑥한 뚱보가 되었다. 겉보기에는 선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하지만 잠시 후, 뚱보의 표정이 일그러지면서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는 몸을 떨면서 화를 냈다.
“일이 이렇게나 틀어지다니! 무려 자소도군이 좌화한 땅인데! 엄청난 기연이 사라졌어……. 네 이놈, 내가 널 똑똑히 기억했다. 절대 가만두지 않겠다!”
뚱보가 옷을 갈아입자 조금 전의 날렵한 도둑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 * *
성 서쪽과 남쪽이 교차하는 곳.
진양은 이미 자신의 또 다른 작은 저택에 도착해 있었다.
옷을 갈아입은 후 천천히 그는 자신의 양 볼과 콧등에 살짝 손을 댔다.
온몸의 뼈가 울리더니 키가 조금 변하고 체형도 변했다. 게다가 얼굴을 조금 바뀌면서 이전과 비슷한 어수룩한 모습의 청년이 되었다.
그는 옷을 갈아입고 불을 켰다. 이웃집도 불이 켜지는 걸 본 진양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밖에는 이미 많은 이들이 모여 있었다. 먼 곳의 불바다가 그곳에서도 선명하게 보였다. 성안은 대부분 목조 건물이었기에 불꽃이 더 퍼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왕소가(王小哥), 자네도 시끄러워서 깼나?”
진양이 나오는 걸 보자 이웃집의 무던해 보이는 아저씨가 인사를 건넸다.
“이씨 아저씨, 웬 불이에요?”
“보아하니 삼산방 쪽에서 난 거 같네. 그 망할 놈들은 죽어서도 불안하게 하는군.”
이씨는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아저씨, 어서 들어가서 주무세요. 제가 보니 불길이 어느 정도 잡혀서 문제없어 보이네요. 전에 삼산방에게 호되게 당했던 자들이 복수하는 게 틀림없을 거예요.”
“내 말이 그 말이네. 왕소가. 자네도 어서 쉬게. 내일 새벽부터 일해야 하지 않나.”
“네.”
진양은 웃으며 다시 들어갔고 문을 닫고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이 작은 집의 전 주인의 성은 왕(王)씨였다.
이는 바로 진양이 지금 변장한 모습이었다. 왕씨는 작년에 역병이 돌았을 때 죽었고, 진양이 그를 땅에 묻어주었다.
훗날 모습을 바꾸는 기능을 얻은 후 위험이 생기면 도망치려고 만들어 놓았던 신분으로, 변장할 때 가끔 사용했다.
그게 이렇게 요긴하게 쓰이게 될 줄은 그도 몰랐다.
* * *
청림성, 아니 정확하게는 청림성 서쪽.
최근 한동안 이곳이 이렇게 소란스러웠던 적은 없었다.
아침 일찍부터 만영상호 휘하의 호위대가 가장 번화한 성 북쪽에서 궁핍한 성 서쪽으로 쳐들어왔다.
구 관사는 심각한 표정으로 성 서쪽 중심 거리에 서서 매 같은 눈으로 끊임없이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모두가 다 도둑놈으로 보이는군.’
어제 인피지도 조각은 모두 모았다. 하지만 나중에 다시 조각을 맞춰보니 상당수의 지도 조각이 조금씩 맞지 않았다. 일부분이 찢겨나간 것이다.
부족한 부분은 매우 적었지만, 하필 찢겨나간 부분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안타깝게도 어제 시체 수습하는 자들은 모두 죽었다.
삼산방 무리의 시체도 모두 불에 타 잿더미가 되어서 쓸모가 없었다. 찢겨나간 부분은 분명 어제 그 도둑이 빼앗아간 것이 분명했다.
‘착오가 생겼으니 이 누명을 벗기 위해선 이 사건의 배후를 찾아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누명으로 인해 관사 자리마저 빼앗길 수 있겠어.’
그는 자신의 호위대를 보냈을 뿐만 아니라 성 서쪽에 대대적으로 돈을 뿌려서 이쪽의 악질들을 대규모로 고용했다. 그리고는 의심이 되는 자들을 모두 조사하기 시작했다.
대외적으로는 도둑이 만영상호의 새로운 물건을 훔쳐 갔다고 알리기만 했다.
온 성이 이렇게 시끄럽고 번잡했지만.
막상 사건을 일으킨 사람 중 하나인 진양은 평온했다.
아침 일찍부터 구관사가 보낸 자들이 문을 두드리고 몇 마디 물어보긴 했다. 진양의 새로운 신분인 ‘왕소가’가 어릴 때부터 여기서 나고 자란 착실한 청년인 것을 확인하고는 더는 그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성 서쪽 잡화점을 하던 자신의 신분은 당분간 사용 못 할 거 같았다. 그래도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지도를 생각하면 진양의 가슴은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물론 복수를 위한 생각도 없는 것이 아니었다. 이런 억울함을 안고 살아가다가는 화병에 쓰러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지금 만영상호와 정면으로 싸우는 건 불가능하겠지.’
지금 상황에서 제일 좋은 방법은 당연히 지도에 나와 있는 곳으로 가서 그곳에 있는 보물을 빼돌리는 것이었다.
만영상호 사람들이 보물을 얻지 못해 주화입마에 빠지는 것을 보는 것이 지금 상황에서 가장 현실적인 복수였다.
‘좋아.’
하지만 이것도 현실적으로 쉬운 일은 아니었다.
지금 그는 겨우 양기 육 층에 불과했다. 가난할 때 기초적인 양기단(養氣丹)을 사는 것도 아까웠기에 이렇게 약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이 수준으로 가게 되면 그저 명을 재촉하는 거다.’
진양은 머리를 흔들고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내 자신의 허리에 차고 있는 주머니가 가득 찬 것을 확인하고는 왠지 모를 자신감이 생겼다. 지금 바로 성 남쪽으로 가서 먼저 수련 경지를 올릴 수 있는 단약을 사고 법기로 자신을 무장하기로 했다.
이게 현재로서는 가장 나은 방법이었다.
성 서쪽은 난장판이어서 한동안 안 가는 게 좋을 거 같았다. 안타깝게도 삼산방의 무리가 모두 죽었으니 자신의 잡화점은 어차피 더는 운영할 수는 없었다.
시체를 만질 수 있는 연줄도 끊겨버렸기 때문이다.
돈을 벌 수 있는 길이 사라졌다는 것에 아쉬움이 들었다.
성 남쪽의 장물을 파는 작은 가게를 찾아갔다. 그 가게는 구석진 곳에 있었고 그쪽 거리에서는 활기찬 사람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문으로 들어가자 안에는 거의 죽어가는 모습의 청년이 눈을 들어 흘끗 쳐다보았다.
“물건 받습니까?”
“뭘 팔려고 그러시오?”
청년은 눈꺼풀을 떨구고 정신없이 접수대에서 졸고 있었다.
진양은 씩 웃고는 저번에 처리하지 못한 주머니 전부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응?”
물건을 받는 청년은 순식간에 허리를 곧게 세우고 두 눈을 번쩍 뜨고 진양을 보았다.
“동지, 이, 이게…….”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진양은 다시 한번 물었다.
“있습니다.”
청년은 자리에서 일어나 백여 개의 주머니를 보자 진양을 의심쩍은 눈빛으로 보았다.
‘청림성에 언제 이런 정신 나간 도둑이 생겼지? 어찌 이런 물건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