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487
1487화 아직은 부족하군
자욱한 안개가 걷히며 돌연 한 채의 정자가 나타났다.
목사는 천천히 정자를 향해 다가갔다.
그곳에는 먼저 도착한 진양이 차분히 앉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편, 실제로 목사를 보게 된 진양은 그가 자신이 상상했던 모습과는 크게 다르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그저 평범한 시골 양치기 노인의 모습이었다.
한 시대를 풍미한 고수라고 하기엔 아무런 기질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진양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포권을 취했다.
“소인 진양, 목사 대인을 뵙습니다.”
“이건 입몽술인 겐가?”
“그렇습니다. 몽사 대인께 얻은 전승을 통해 입몽술을 만들어내게 되었습니다.”
“자네 얘기는 이미 들은 적이 있네.”
다소 놀랄 만한 얘기였다.
진양의 명성이 벌써 십방계까지 퍼졌단 말인가?
“예전에 언예에게 들은 적이 있다네.”
“아, 언 대인께 들으신 거군요. 언 대인께서는 안녕하십니까?”
진양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서 잠깐의 짧은 인사를 나눈 뒤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대인께선 십방계에 계시니 십방 대제가 태일 천제라는 사실도 알고 계실 겁니다.”
“물론일세.”
“외람된 질문이지만, 대인께선 어떤 식으로 십방 대제를 상대할 계획이신지요?”
“당장은 정해둔 게 없다네. 내가 눈을 뜨는 순간 이미 대세가 눈앞에 다가와 있었다네.”
“그렇군요. 그렇다면 제 계획을 한 번 들어봐 주시겠습니까? 어쩌면 대인께도 도움이 될지도 모릅니다.”
진양은 간단하게 자신의 계획을 설명했다.
단신으로 신조와 싸움을 벌이는 건 불가능하다.
그래서 더욱 강한 신조를 만들고 신조의 대제와 함께 정면으로 나서겠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는 말이 있듯 사전 정보 조사는 필수였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 목사의 도움이 필요했다.
목사는 겸사겸사 도와줄 수 있는 일들은 일말의 망설임 없이 모두 승낙했다.
상대의 반응에 진양은 더 이상은 깊게 얘기하지 않았다.
탁몽술, 복제된 꿈 세계, 심지어 망자의 세계에 대해서도 아무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짧은 대화가 끝나자 탁몽도 끝났다.
뒤를 돌아보니 정자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진양은 눈을 뜨자마자 미간을 찌푸렸다.
진양의 추측은 어느 정도 맞는 부분도 있었지만 틀린 부분도 있었다.
현재 자신이 가진 신분이나 명성으로는 아직 단 한 번도 접촉해 본 적도 없고, 또 완전히 다른 세계에 살아가는 목사에게까지 체면을 바랄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목사는 의외로 흔쾌히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상당히 모순적이었지만 이런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딱히 문제라고 할 만한 것도 없는 단순한 대화가 전부였지만, 왠지 모르게 무언가 계속해서 마음에 걸렸다.
지금까지 여러 명의 십이사와 만나보았지만, 이런 느낌을 준 건 목사가 유일했다.
마치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무언가 있는 것처럼 답답한 기분이었다.
생각할수록 절로 한숨이 나왔다.
처음에 십이사라는 거물급 인물에 대해 들었을 때는 이들이 모두 하나같이 뛰어난 자들이고 훌륭한 성품을 가지고 있는 줄 알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십이사와 만나며 이러한 환상이 깨지게 되었다.
아무리 거물급 인물이라도 완벽할 순 없었던 것.
인형사는 지능적으로 문제가 있었고, 향사는 젊은 나이에 요절했으며, 풍수사는 심각한 족쇄에 얽매여있었고, 몽사는 지금 상황만 보면 꿈 세계를 전혀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게다가 천마보를 통해 추측해보건대, 악사는 완전히 미쳐버렸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자신이 생각했던 것처럼 완벽한 모습을 가진 십이사는 아무도 없었다.
적어도 지금까지 만난 십이사들 중에선 말이다.
어쩌면 진양이 처음부터 큰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이번에 만나게 된 목사는 누가 봐도 가난한 양치기 노인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크게 놀랄 건 없었다.
진양은 한숨을 푹 쉬며 머릿속을 가득 채운 잡념들을 날려버렸다.
짧은 만남을 통해 진양의 생각은 한층 더 굳어졌다.
세계를 복제하여 미래를 예측하겠다는 계획은 아무래도 자신 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게 좋을 듯했다.
아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예측 가운데 발생하는 변수도 함께 늘어나게 된다.
스스로 변수가 된다면 어느 정도 조절이 가능하겠지만 다른 변수의 경우는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다.
* * *
계속해서 따분한 일상이 이어졌다.
늘 하던 대로 환생부에 출근하고, 꿈 세계 계획을 계속해서 발전시켜나갔다.
어느덧 탁몽술을 얻게 된 망자의 수가 늘어나며 입수되는 정보의 양도 상당해졌다.
물론 그래봤자 대부분 한 번 보고 넘겨도 될 만한 수준의 정보들이었지만.
그나마 가끔 목사를 만나 얻는 정보들은 꽤 수준이 높은 정보들이었다.
이렇게 얻은 정보 덕분에 직접 십방계에 가지 않고도 십방계에 대한 많은 사실들을 알 수 있었다.
정보들이 조각처럼 끼워맞춰지며 점차 완전한 덩어리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러나 급할 건 없었다.
마음을 차분히 하고 천천히 수련을 하며 실력을 쌓는 게 지금으로선 최선이다.
흑검 수련도 마찬가지였다.
단시간 내에 끝낼 수 있는 게 아니였기 때문에 시간을 두고 천천히 쌓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경험과 실력을 쌓는 건 산 자의 세계보다는 망자의 세계가 훨씬 더 유리했다.
* * *
어느덧 오백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중간엔 잠시 호량 학원에 들러 ‘예측 계획’의 진전도 살필 겸 입학시험도 진행했다.
현재 계획이 가장 순조롭게 진행되는 곳은 단연 대황이었다.
그사이 최양평은 계속해서 연구에 몰두했다.
여기에 진양의 도움이 더해지며 마침내 새로운 법보를 만들어내게 되었다.
법보를 곳곳에 설치한다면 사람들은 시험을 보러 직접 호량 학원까지 찾아오지 않아도 된다.
꽤 가치 있는 법보이기도 했고 제작 방법도 결코 쉬운 건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춘 세력이라면 충분히 만들 수 있는 수준이었다.
지난 오백 년 이래, 호량 학원에선 꽤 많은 수의 고수를 배출해냈다.
그러나 첫 기수를 제외하고는 호량 학원에 남는 자의 수는 점점 더 줄어들었다.
하지만 진양은 이들을 막지 않았다.
처음 정한 규칙 그대로였다.
오히려 학원에 남을 수 있는 자의 기준을 다소 높이기도 했다.
수많은 세력들이 호량 학원을 반대하지 않는 이유.
오히려 호량 학원을 지지하는 이유.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어느 정도 안목이 있는 사람이라면 앞으로 호량 학원의 영향력이 점차 더 커져갈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언젠간 모든 세력을 초월하는 세력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를 위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 남만 마도 삼종조차도 호량 학원이 초월적인 세력이 된다고 해도 자신들에게는 아무런 영향이 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애초에 그 어떠한 세력도 호량 학원과 같은 차원의 수준을 이루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크게 문제 삼을 것도 없다.
오히려 호량 학원의 힘을 빌려 자신들의 제자들을 성장시키는 게 더 이득이었다.
어차피 졸업하고 나면 대부분 자신의 문파로 돌아오는 법.
이런 좋은 기회를 그냥 넘길 수는 없었다.
* * *
진양은 흑옥 신문을 통해 호량 학원으로 돌아왔다.
산 자의 세계로 돌아오자마자 각사향을 꺼내 들이키니, 일 다경도 채 지나지 않아 체내에 있던 모든 죽음의 기운이 생기로 바뀌어 불타올랐다.
진양은 완전히 기운을 숨긴 채 평범한 모습으로 외모를 바꿨다.
어디서든 쉽게 구할 수 있는 장포와 아무렇게나 묶어 올린 장발까지.
누가 봐도 평범한 호량 학원의 학생 모습이었다.
진양은 다시 한번 자신의 힘을 가늠해 보았다.
경지는 여전히 도군이었지만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당장은 매번 다시 산 자의 세계로 돌아올 때 죽음의 기운이 불타는 속도를 보고 대략적으로 가늠하는 수밖에 없었다.
오백 년 전에는 대략 열 다경 정도가 필요했다면 지금은 일 다경이면 충분했다.
게다가 죽음의 기운이 생기로 전환되는 속도도 예전보다 수십 배는 빨라졌다.
대략적으로 가늠해 보니 이 정도면 순수하게 쌓은 힘만 해도 이미 도군의 한계를 뛰어넘은 수준이었다.
힘만 있고 경지는 없는 게 진곤의 상황과 비슷했다.
수도사가 가장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는 변화는 바로 수명이다.
어쩌면 진양의 수명은 같은 실력을 가진 수도사보다도 한참 더 부족할지도 모른다.
물론 걱정할 수준은 아니었다.
망자의 세계가 생긴 이후로 수명 문제 따위는 더 이상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한참의 잡생각을 마친 진양은 밖으로 나와 걸었다.
이곳은 매번 돌아올 때마다 달라져 있었다.
곳곳에 일어난 변화도 느껴졌고, 처음 보는 낯선 얼굴도 많아졌다.
감시용으로 남겨뒀던 분신이 스스로 사라지며 방대한 양의 정보가 머릿속으로 쏟아졌다.
진양은 대놓고 학원 곳곳을 누비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마치 그를 발견하지 못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진양의 모습을 볼 수는 있었지만 그를 인식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를 보는 순간 기억이 사라지며 잊게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진양이 지난 오백 년 동안 흑검을 수련하며 파생해낸 능력이다.
존재감을 지우는 묵양의 능력이나 성은 신통력과 비슷한 능력이긴 하나 핵심은 다르다.
묵양의 능력은 단순히 스스로의 존재감을 지워버리고, 성은 신통력은 아예 존재 자체를 숨겨버린다.
하지만 진양의 능력은 존재감을 지우거나 숨겨버리는 게 아니라 아예 상대가 기억하지 못하게 만들어버린다.
겉보기엔 비슷한 것처럼 보이지만 따지고 보면 다르다.
사용법도 다르고, 뒤이어서 파생될 것들도 완전히 다르다.
사방을 둘러보며 어느덧 강도대가 있는 곳까지 왔다.
이곳은 수많은 인재들이 몰려있는 곳.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강도대는 고행 수도사들의 낙원이 되었다.
꽤 많은 사람들이 아예 이곳에 뿌리를 내린 채 미동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진양은 계단 위로 올라서며 발아래를 바라보았다.
순간 계단에서 흘러나오던 제약이 모두 사라졌다.
단순히 강도대의 창조자의 권한을 발동하여 제약을 없앤 것이 아니다.
강도대가 반응하려는 순간 누군가 계단으로 올라섰다는 사실을 망각하게 만든 것이다.
그러나 진양의 반응은 썩 시원치 않았다.
‘아직은 부족하군.’
만약 이 강도대가 다른 사람이 만든 것이라면 아마 이런 상태를 유지하는 건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강도대가 자신이 올라섰다는 사실을 망각하게 된 건 결국 진양이 창조자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