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304
304화 죽는다!
세 번.
무려 세 번이나 상대의 목숨을 빼앗는 데 실패했다.
첫 번째로 고혈도희.
목숨을 빼앗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상대는 시해를 시전했고, 영혼만 뒤로 빼돌리며 도망쳐버렸다.
두 번째로는 진양.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몰라도 자신이 건넨 물건에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는 그렇게 자신이 건넨 물건을 가지고 순식간에 도망쳐버렸다.
세 번째로는 방금 싸웠던 소마불.
분명 완벽히 제압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소마불은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곧바로 입마 상태가 되어버렸다.
그는 잠시 시선을 돌리는가 싶더니 그대로 내빼버렸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째서 입마 상태에 빠진 사람이 냉정하게 이성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단 말인가?
무면인은 그대로 생각이 정리될 때까지 제자리에 멍하게 서 있었다.
* * *
같은 시각.
먼 곳으로 도망 온 진양은 한 대전 입구에 쭈그려 앉아 훔쳐 온, 아니, 선물 받은 신목을 이리저리 살피고 있었다.
“오상신목이라고 했었나? 근데 왜 이런 기괴한 힘이 느껴지는 거지?”
고민하던 진양은 마음속으로 들어갔다.
“검둥아, 좀 나와 봐. 물어볼 게 있어.”
그러나 검둥이는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대신 마수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양, 그런 말도 안 되는 속임수에 내가 넘어갈 줄 알아?”
진양은 황당했다.
‘속여? 누가? 내가? 내가 언제…….’
그러나 문득 등에 업혀있는 소녀를 생각해 보니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지금 뭔가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난 널 속이려고 이러는 게 아니야. 못 믿겠으면 소저에게 흘러나오는 기운을 먼저 살펴보든가.”
“하하하! 웃기고 있네! 겨우 그 정도로 이 몸을 속일 수 있을 줄 알았냐?”
“…….”
물론 진양이 자주 남을 속이고 다녔던 건 맞지만, 지금은 전혀 검둥이를 속일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죽어도 밖으로 나오지 않을 생각인 듯했다.
“난 진짜 궁금한 게 있어서 그런 거라고. 그렇게 의심스러우면 등 뒤에 있는 소저의 기운을 살펴보라니깐? 그리고 한 가지 더. 지금 내 손에 있는 오상신목 말인데. 이거 진짜 맞아? 느껴지는 기운이 어딘가 조금 이상한데.”
이렇게까지 얘기했는데도 검둥이는 밖으로 나올 생각은 추호도 없는 듯했다.
그렇게 한참의 침묵이 지나가고.
마침내 검둥이가 입을 열었다.
“죽은 듯, 산 듯한 기운이 느껴지는군. 수명은 다했지만 생기는 여전히 붙어있어. 이상하군. 그녀가 살았던 시대엔 이런 괴상한 공법은 없었는데 말이야.”
“말했잖아. 널 속이려고 했던 적 없다고.”
“낯선 공법인 만큼 경계하는 건 당연한 거지. 안 그래? 게다가 진양, 네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모를 줄 알아서 그러는 거야?”
검둥이는 확신했다.
진양은 분명 기회가 주어진다면 망설임 없이 자신을 소멸시켜버릴 것이었다.
진양의 등에 업혀있는 소녀.
그녀에게선 알 수 없는 기이하고도 강렬한 힘이 느껴졌다.
이제껏 단 한 번도 마주한 적 없던 그런 힘이었다.
괜히 잘못 덤볐다간 정말로 통째로 소멸할 수도 있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망인데. 난 우리가 서로 평화롭게 공존해나갈 수 있을 거라고 믿었는데. 검둥아, 난 정말 크게 실망했다.”
진양은 속상한 듯 한숨을 푹 쉬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검둥이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됐다.
사실 진양도 기회만 있으면 망설임 없이 검둥이를 소멸시킬 생각이었다.
그런 기회가 찾아왔는데, 멀뚱멀뚱 바라보고만 있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뭐, 일단 이건 나중에 얘기하기로 하고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자면……. 지금 내 손에 들려있는 오상신목. 이거 왜 이러는 거야? 진짜 오상신목 맞아?”
진양은 오상신목에서 흘러나오는 힘을 체내로 흡수했다.
순간 뜨겁고 차가운 기운이 빠르게 교차하며 진양의 체내로 흘러들어 갔다.
비록 오상신목을 완벽하게 연화시키긴 했지만, 여전히 불편함이 느껴지는 힘이었다.
만약 실력이 부족한 자였다면 오상신목에 손을 대는 것만으로도 곧바로 육체가 붕괴했을 지도 모른다.
“오상신목? 하하! 누가 그래?”
검둥이는 체내로 흘러들어온 힘을 느끼자마자 피식 웃었다.
“뭐? 그럼 이건 뭔데?”
전설에 따르면 상고시대 대황엔 부상신목(扶桑神木, 중국 고대 신화에 존재하는 신목. 이곳에서 해가 뜬다고 알려져 있다.)이 있었다고 한다.
현재는 모두 사라지고 없었고, 지금 남아있는 건 전부 부상신목의 아종(亞種)이라고 한다.
오상은 그 아종 중 하나다.
물론 부상신목에 비하면 한참 못한 수준인 건 사실이지만, 부상신목이 사라진 오늘날엔 상당히 희귀한 존재로 대접을 받는다.
“너도 알고 있겠지만 오상신목을 비롯한 모든 상목(桑木, 뽕나무)은 부상신목으로부터 파생된 존재들이야. 네가 지금 주워온 그 오상은 오상신목과 오상음목(烏桑陰木) 총 두 가지로 나뉘지.
지금 네가 들고 있는 그거, 그건 오상신목이 아니라 오상음목이야. 오상신목은 부상신목의 신묘함을 이어받은 존재이지만, 오상음목은 아니지.
오상음목은 상고 지부 근처에서 삼천(三泉)중 하나인 일음천(一陰泉)으로부터 양분을 받아 자라난 신목이지. 비록 음양의 두 기운을 모두 품고 있긴 하지만, 두 기운은 결코 하나로 섞이지 않으며 서로를 견제하고 있지.
덕분에 너 같은 애송이도 오상음목을 만지고도 멀쩡한 거라고.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육신은 순식간에 가루가 되어버리고 영혼은 구천으로 흩어져버렸을걸!
잘 들어. 웬만하면…….”
진양은 눈을 뜨고 마음 밖으로 나왔다.
더 이상 그가 재잘거리는 걸 듣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검둥이 저 녀석, 어르고 달래는 건 귀찮아도 꽤 쓸모는 있단 말이지.’
음양의 기운을 모두 품고 있는 물건.
그 말은 오상신목보다 훨씬 더 귀한 물건이라는 뜻이었다.
특히 이런 물건은 취령대진에서 비로소 그 진가를 발휘하게 된다.
취령대진은 일월성휘(日月星輝)를 영기로 바꿔주는 진법으로, 이 진법의 가장 핵심은 바로 음양의 기운을 모두 품고 있는 보물을 재료로 사용하는 것이다.
여기서 사용되는 재료는 진법의 위력, 범위 등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는데.
만약 오상음목을 핵심 재료로 사용하여 대진을 만든다면 초대형 종문을 전부 뒤덮고도 남을 만한 거대한 취령대진을 만들 수 있게 될 것이다.
즉, 돈이 있다고 해서 마음대로 살 수 있는 그런 물건이 아니라는 뜻.
“단공도 녀석들은 전부 쪼잔한 녀석들인 줄 알았는데. 단장공, 보기보단 통이 큰 녀석이었구나! 이렇게 귀한 물건을 만남의 선물이랍시고 건네다니. 크게 될 녀석이야.”
진양은 흡족스러운 얼굴로 오상음목을 주머니에 챙겨 넣었다.
* * *
진양은 계속해서 앞으로 걸었다.
그러면서도 혹여나 단장공이 또다시 나타나지 않을까 열심히 주위를 살폈다.
지나가는 길에 여러 궁전들이 보였다.
궁전은 전부 문이 굳게 닫혀있었다.
진양은 괜히 그곳으로 들어갈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궁전들은 전부 은은한 빛과 사기로 둘러싸여 있었다.
물론 지난번 자소도군을 만났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긴 하지만, 안에 뭐가 있을지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다.
지난번엔 각 궁전마다 궁전을 지키는 수호자들이 있었다.
그 정도의 괴수라면 설령 지금의 실력으로 싸운다고 하더라도 적수가 안 될 것이었다.
진양은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궁전이든 어디든 괜히 목숨을 걸어가면서까지 쓸데없는 모험을 하려 들지 않았다.
궁전 하나를 더 지나고 보니 십여 리 정도 널찍하게 펼쳐진 광장이 나타났다.
광장 중앙에는 자금으로 만든 세 발 화로가 있었다.
뜨거운 열기와 함께 은은한 단약의 향기가 사방으로 풍겨오고 있었다.
광장의 주위에는 무려 팔백 장에 이르는 거대한 비석들이 놓여있었다.
각각 둥글둥글한 모양의 부문이 새겨져 있었다.
진양은 발걸음을 멈추고 자세히 살폈다.
총 여덟 개의 비석이 중앙의 화로를 중심으로 둘러싸고 있었다.
이곳 바닥에도 복잡한 도문이 새겨진 자금 벽돌이 깔려있었다.
진법은 여전히 작동하고 있었다.
이곳은 사방으로 뻗어진 도로가 모이는 곳이었는데,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이곳을 반드시 지나야만 했다.
이 외에는 원래 왔던 길로 돌아가 다른 길을 찾는 수밖에 없었다.
다른 길을 찾는 건 어쩌면 훨씬 더 위험할 수도 있었다.
진양은 고민 끝에 광장 가장자리로 향했다.
그리고 이곳의 진법을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보면 볼수록 눈에 익은 진법이었다.
그렇게 잠시 진법을 살피던 진양의 눈이 점점 휘둥그레지기 시작했다.
“놀랍군. 이런 식으로도 가능하다니.”
진법에 서려 있는 변화, 기운, 도문은 전부 자소도경에 기록되어있는 것이었다.
수도사의 공법을 진법의 형태로도 나타낼 수 있다니.
진양은 새로운 경지에 눈이 뜨인 기분이었다.
진법을 계속해서 관찰하는 진양의 입에선 연신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이건 평범한 다른 진법과 크게 다르지 않은 진법이었다.
단지 공략이 어려운 진법일 뿐이었다.
자소도경의 공법을 진법으로 만든 만큼 무시무시한 위력을 지니고 있지만, 무적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허점 따위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난해하군.’
그러나 문제될 건 없었다.
난해하면 직접 파진(破陣)하여 살펴보면 된다.
한참을 살펴보던 진양은 광장 안쪽으로 발을 들였다
바로 그 순간.
천지가 뒤집어지며 높은 산봉우리가 솟구쳐올랐고, 수맥이 지하에서 솟구쳐올랐다.
이어서 마지막으로 해와 달, 그리고 반짝이는 별이 하늘을 수놓았다.
진양은 당황하지 않았다.
이미 예상했기 때문이다.
침착하게 방향을 찾은 뒤 계속해서 걷기 시작했다.
진양은 마치 평지를 걷는 것처럼 편안하게 걸었다.
자신이 연마한 공법과 같은 것으로 만들어진 진법이었기에 정확히 파악하기만 한다면 어려울 것도, 위험할 것도 없을 것이었다.
그렇게 언덕을 넘기 무섭게 한 개의 별이 빠르게 유성이 되어 떨어졌다.
진양은 고개를 들어 그곳을 바라보았다.
순간 온몸의 털이 쭈뼛 서며 생사의 공포감이 물려오기 시작했다.
‘죽는다!’
유성우는 진양이 있는 곳으로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진양은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눈앞에 반짝이던 그건 유성이 아니었다.
옅은 황금색으로 일렁이는 기운을 뿜어내는 그것은 단약이었다.
유성이 되어 떨어진 단약은 산 중턱의 반대편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진양은 조금도 안심할 수가 없었다.
이대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계속해서 엄습해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반면 등 뒤에 업힌 소녀는 여전히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콰광-
빛이 터져 나오며 마치 거대한 기포가 솟아 나오는 것처럼 산 중턱 전체를 뒤덮었다.
터져 나온 빛이 휩쓸고 간 자리에 있던 흙과 돌은 전부 증발하여 사라져버렸다.
진양은 미친 듯이 달리면서도 계속해서 힐끔힐끔 뒤를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