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413
413화 판 안에 있어서 이해 못 하는 걸까?
어귀 맥주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평소 직선적인 성격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제이검군이 마교의 일까지 끼어들 줄이야. 아무래도 배후에 누군가 있는 게 분명하다.
월치 맥주, 잔꾀는 있어도 큰 지혜는 없군. 상황이 이리도 불리한데 임기응변으로 날 설복시키다니. 그 배후에도 누군가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현재 두 맥주가 죽었고, 남은 최후의 승자는 나뿐이다. 그런데…….”
순간, 어귀 맥주가 흠칫 멈춰 섰다.
그의 동공은 빠르게 수축되었으며, 입술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이번 일, 자세히 생각할수록 공포스러웠다.
‘이건…… 누군가가 모두를 죽이기 위해 판을 짠 게 분명하다!’
단숨에 남만 마도의 세 봉우리를 약하게 만들고, 세 봉우리의 강자를 한 번에 베어버리다니.
“큰일이다. 어서 가자! 빨리!”
승리의 결과물을 확인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어귀 맥주는 곧바로 호신귀와 부리나케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아귀 맥주는 다시 멈춰 섰다.
“이런 상태로는 우리 두 사람이 힘을 합쳐도 적을 상대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여기부터는 따로 가도록 하고, 운 좋게 살아남는다면 종문에서 다시 만나도록 하자. 그동안 날 따르느라 고생 많았다. 무운을 빈다!”
“대인! 그럴 순 없습니다. 소인 끝까지 대인과 함께 하겠사옵니다.”
호신귀는 곧장 무릎을 꿇었다.
절대로 물러서지 않을 듯한 모습이었다.
“어서 가래도! 이러고 있을 시간 없어. 어서 나의 모습으로 변하여 도망치도록 하거라. 어서!”
어귀 맥주는 호신귀가 고집을 피우건 말건 자신이 할 말만 하고 쌩- 하고 떠나버렸다.
이렇게 되자 호신귀는 다소 망설여지긴 했으나 별다른 수가 없었다.
그는 어귀 맥주의 명대로 어귀 맥주의 모습으로 변한 뒤 그와 반대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각자의 방향으로 도망친지 반 시진 정도가 지났을 즈음.
어귀 맥주의 앞으로 허공이 갈라지며 거대한 손이 불쑥 튀어나왔다.
손은 무소불위의 강력한 힘을 내뿜으며 어귀 맥주의 도주로를 차단해버렸고, 이어서 다가와 어귀 맥주를 붙기 위해 다가왔다.
손이 어귀 맥주를 붙잡으려는 순간, 어귀 맥주는 짧은 기합 소리와 함께 자신의 엄지손톱으로 미간을 꾹 눌렀다.
미간에서 선혈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선혈은 마치 고정된 길이 있는 것처럼 일정한 문양을 이루며 온몸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어귀 맥주는 기이한 핏줄 문양으로 온몸이 뒤덮이게 되었다.
“이형환영(移形換影)!”
절규에 가까운 외침과 함께 혈광이 번쩍였다.
그리고 어귀 맥주는 완전히 모습을 감추었다.
대신 일말의 사람의 기운조차 느껴지지 않는 ‘어귀 맥주’의 모습을 한 자가 덩그러니 나타났다.
눈앞에 있는 거대한 손을 발견한 그의 표정은 곧장 복잡해졌다.
거대한 손으로부터 느껴지는 기운에 반항할 마음조차 사라져버렸다.
퍽-!
무언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호신귀는 거대한 손에 잡혀 완전히 소멸되어버렸다.
손은 다시 틈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이곳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다.
처음의 그 모습 그대로.
그 어떠한 기운조차 느껴지지 않는 깔끔한 그 모습 그대로 원상복구가 되었다.
수천 리 밖.
신해 최고봉의 노인 모습을 한 어귀 맥주가 숲속 깊은 곳에 몸을 숨긴 채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있었으며, 몸은 심하게 떨려오고 있었고, 체내의 힘은 빠른 속도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어귀 맥주는 몰려오는 부작용을 강제로 힘을 사용하여 눌러버리고 있었다.
심지어 호신귀가 죽으며 발생한 힘의 역류마저도 밀어내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은 강제로 이루어지는 것이었기 때문에 상처는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었고, 심지어 도기까지 심하게 흔들렸다.
어쨌든 그 바람에 힘은 금세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도기가 흔들리며 경지까지 수직으로 하강하게 되었다.
더는 위장을 할 필요도 없었다.
지금 그에게선 영태조차 못 미치는 기운이 느껴졌으니까.
상처가 이미 도기에까지 미칠 정도로 심각해졌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곳에서 무언가를 찾으러 다니는 다른 수도사와 같이 숲을 거닐기 시작했다.
수십 리 내에 수많은 수도사가 있었으나, 그 누구도 그의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어서 어귀 맥주는 흔히 볼 수 있는 영초 앞에 주저앉아 그것을 파내기 시작했다.
주위에 있는 다른 수도사들의 비웃음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아직 다 자라지도 않은 청임초잖아. 그딴 걸 파내서 어디에 쓰려고.”
“허허, 이미 팔십 년은 묵은 놈이라 충분히 먹을 수 있는 것이라오.”
어귀 맥주는 너털웃음과 함께 대꾸해 주었다.
바로 그때.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졌다가 사라졌다.
착각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찰나의 순간이었다.
어귀 맥주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이곳에 있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약초도 캐고, 조용히 산을 옮겨가며 최대한 멀리 벗어나기 시작했다.
* * *
같은 시각, 흑림해 외곽.
많은 이들이 강자가 죽을 때 뿜어져 나오는 기운을 연달아 느꼈다.
감히 발을 들이면 안 될 것 같은 극한의 땅이 되어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대담한 자는 스스로의 운을 믿으며 끝까지 버텼으며, 담이 작은 자들은 속히 이곳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졌다.
진양은 후자 무리에 섞여 흑림해와 멀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흑림해 범위를 벗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누군가 싸우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저 그런 수준의 수도사들의 싸움이었다.
멀리서 힐끗 바라보고는 그냥 돌아서 지나가려고 했는데.
진양은 갑자기 흠칫하며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다시 그곳을 살펴보는 진양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복잡하게 뒤엉켜 싸우고 있는 무리 속에는 유명성종, 황천마종, 심지어 월치 일맥의 제자들의 모습까지 확인할 수 있었다.
눈에 익은 자들이었다.
분명 보책과 함께 흑림해 안에 갇혀있던 그 제자들이었다.
그보다 더 의외인 것은 이 중 한 사람은 분명 부도마교의 제자였음에도 불구하고 황천마종 제자의 모습을 한 채 싸움에 가담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진양은 급할 것도 없으니 우선 조금 살펴보다 가기로 했다.
그러나 싸움이 진행될수록 진양의 표정은 점점 굳어져 갔다.
월치 맥주가 죽어갈 때의 기운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 정도 수준의 강자가 죽어가는 것이라면 수천 리 밖에서도 그 죽음의 기운을 느낄 수 있을 것이었다.
이건 숨기려고 하여도 숨길 수가 없는 기운이었다.
어귀 맥주는 이전에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단지 진양과는 아무런 원한이 없었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을 뿐.
사실상 이번 사건에서 최고의 승자는 어귀 맥주였다.
짧은 시간 내에 두 명이나 되는 강자가 연달아 죽었으나, 어귀 맥주는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았다.
즉, 현재 이 구역에서 가장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건 어귀 맥주라는 것.
음험하면서도 신중하고, 신중하면서도 욕심 많은 그가 가만히 있을 리는 없었다.
대충 시간을 계산해 보니 지금쯤이면 진작 보책을 가지고 떠났을 시간이었다.
하지만 보책은 진양이 떠나보내기 전에 완전히 연화를 시킨 상태였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가까운 거리에서는 정확하게 느낄 수 있었다.
보책은 아직 월치 일맥의 제자들이 가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어귀 맥주도 본 것이 있으니 시간을 더 끌어봐야 좋을 게 없다는 걸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어딘가 이상했다.
진양이 예상했던 것보다도 족히 두 시진 이상이나 지났는데, 어귀 맥주는 여전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두 시진 역시 제일 늦은 시간을 예측했기에 두 시진인 것이지.
원래대로라면 어귀 맥주는 최소 다섯 시진 전에는 보책을 손에 넣었어야 했다.
이 정도의 시간이라면 강자들에게 충분히 반응할 시간을 제공한 셈이었다.
하지만 이 시간을 낭비한다면 어귀 맥주는 보책을 들고 종문으로 돌아갈 최선의 시기를 놓치게 되는 셈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진양은 눈앞에 있는 자들이 싸우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직 나 스스로가 판 안에 있어서 이해를 못 하는 건 아닐까?’
현재 상황에서 자신을 제외한 뒤 다시 생각해 보았다.
그러자 보이지 않았던 것이 보였다.
이전에 황천 맥주와 어귀 맥주는 진양의 계획과는 달리 부도마교를 노리기로 했었다.
그러나 진양이 계획을 바꾼 뒤로는 월치 맥주와 황천 맥주를 노리게 되었다.
계획을 바꾼 것이 어귀 맥주인 줄 알았다.
그러나 어귀 맥주는 황천 맥주와 손을 잡고 있을 때 한시라도 빨리 기선을 제압하고 그 뒤에 월치 맥주를 상대할 생각으로 황천 맥주가 의심할 수도 있는 위험을 무릅쓰고 모험을 했다.
이런 그가 최종 목표인 보책을 포기할 리 없었다.
그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건 무언가 다른 일이 발생했다는 뜻이었다.
더는 강자의 죽음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다.
아직 죽진 않았으나 예기지 못한 사고를 당한 게 분명했다.
혹은, 이미 죽었으나 압도적인 힘을 가진 강자가 그 기운을 눌러버렸기에 아무도 느끼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이 정도의 힘을 가진 건 삼대 마도 종문의 종주 정도 되는 강자뿐이었다.
그렇다는 건.
계획을 바꾼 게 어귀 맥주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황천 맥주는 그 자리에서 협공에 당해 죽어버렸다.
월치 맥주는 중상을 입으며 살아남긴 했으나 갑자기 나타난 제이검군에게 목숨을 잃었다.
각종 위험과 제약이 있는, 강자들이 가장 꺼리는 흑림해에 수많은 강자가 연달아 모습을 드러냈다.
한편의 혼란 속에 어귀 맥주도 마침내 죽고 말았다.
크게 뜻밖일 건 없었다.
상처를 입었을 수도 있고, 조용히 보책을 가지고 나가려다가 예기치 못한 최악의 상황에 빠졌을 수도 있다.
이대로 사라진다고 하더라도 충분히 납득은 갔다.
두 명이나 되는 맥주가 죽었는데, 하나 더 죽지 말라는 법이 있겠는가?
누군가 수를 쓴 것이라고 쳐도 의심할 대상이 너무 많았다.
큰 전투를 치르고 극도로 피로한 상태에 상처까지 입은 어귀 맥주를 죽일 수 있는 사람은 널리고 널렸다.
진양의 머릿속에만 해도 벌써 대여섯 명이 떠올랐다.
그러나 최종 목적은 둘 중 하나.
마도 삼대 세력의 힘을 한 층 꺾어버리던지.
아니면…….
진양은 황천마종의 제자로 분장한 월치 제자를 바라보았다.
‘아니면 보책 때문일지도…….’
그렇게 진양이 생각에 빠져있을 때.
보책을 든 황천마종 제자로 분장한 제자는 천천히 전투가 벌어지는 곳에서부터 멀어지고 있었다.
조용히 보책을 들고 도망갈 심산인 듯했다.
한편, 진양은 한참의 고민 끝에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일단은 해봐야 아는 법.
보책을 든 제자가 조용히 전장을 빠져나가는 사이, 진양은 방금 보았던 황천마종의 제자의 모습으로 변장했다.
그리고 전장을 빠져나가고 있는 제자를 향해 다가갔다.
진양은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 물었다.
“사제, 무슨 일이야? 어디 다치기라도 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