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601
601화 아주 정직한 사람
삼안요모는 굳은 표정으로 진양을 노려보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진양이 말을 이어갔다.
“그게 당신의 화신이라는 사실과 가장 강력한 삼안화신이라는 걸 알아버린 이상 이런 좋은 기회를 그냥 놓칠 수는 없죠. 녀석은 이미 남만으로 보냈습니다. 여족에 백일주라는 저주가 있거든요. 아마 들어보셨을 겁니다.”
진양은 조용히 상대의 반응을 살폈다.
삼안요모는 여전히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러자 진양이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백일주는 말 그대로 총 백 일 동안의 시전 시간이 필요한 저주죠. 영혼과 관련된 매개체만 있으면 백 일 만에 대상의 영혼과 이성을 완전히 날려버릴 수 있답니다.
화신은 당신의 영혼의 힘과 혈육까지 일부 받았기 때문에 매개체로 삼기에 이보다 적합할 순 없겠죠. 물론 다른 공법의 매개체로 쓰기에도 상당히 적합하고요. 혹시 정두칠전서(釘頭七箭書)라고 들어보셨으려나요.”
“정두칠전서?”
삼안요모의 눈빛이 드디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백일주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훨씬 강력한 공법이죠. 하지만 그만큼 공법에 사용될 매개체에 대한 조건도 상당히 까다로운 편이죠. 영혼의 일부도 필요하고, 정혈도 필요하고, 거기에 대상이 가진 힘도 필요하거든요.
어쨌든 이렇게 모은 재료를 허수아비에 넣고 이름을 적은 뒤 머리와 다리에 각각 못을 박고 결인을 그린 다음 불태우면 모든 준비가 끝나게 되죠. 이 상태로 하루에 세 번 의식을 치르다 보면 이십일 일째 되는 날에 대상은 완전히…….”
진양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삼안요모가 진양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진양은 곧바로 그녀의 앞으로 앞당겨지며 목을 잡혔다.
날카로운 손톱이 진양의 목살을 파고들자 피가 흘러나왔다.
진양의 방어를 뚫고 들어온 것이었다.
금방이라도 이성을 잃을 듯한 상대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얘기를 할 때가 아니었다.
“이미 말했지만 날 죽이면 당신도 죽을 겁니다.”
“죽일 생각은 없다. 네 놈을 갈기갈기 찢어버릴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로 만들어주마!”
“아쉽지만 지금 이 상태로는 그런 고문을 못 버티고 죽을 것 같은데요. 이만 포기하세요. 여차하면 그냥 자결하면 끝이니까요. 영태 수도사의 목숨을 태워 삼안요모의 목숨을 빼앗고 삼안요족의 힘까지 빼놓을 수 있다니. 이 정도면 가성비도 상당한 것 같은데요.”
“내가 그딴 말을 믿을 것 같으냐!”
삼안요모의 눈이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살기는 검은 안개가 되어 주위를 둘러싸기 시작했고, 진양의 목을 부여잡은 손에도 점점 더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럼 어디 한번 해보시든지.”
진양은 활짝 미소를 지었다.
그의 눈빛엔 광기가 서려 있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진양의 얼굴은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피부 표면에는 핏방울이 맺히기 시작했고, 온몸의 기혈은 금방이라도 터질 기세였다.
놀란 삼안요모는 황급히 손에 힘을 풀고 진양의 가슴을 강타하여 응집되던 기혈을 강제로 흩어버렸다.
스스로 몸을 터뜨려 자결하려던 진양을 막아선 것이다.
지면으로 떨어진 진양은 몇 바퀴나 나뒹굴고 나서야 멈춰 섰다.
진양이 씨익 웃으며 물었다.
“못 믿겠다면서요?”
삼안요모는 죽일 듯 진양을 노려보기만 할 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간신히 몸을 일으킨 진양이 입가의 피를 닦으며 말했다.
“괜히 쓸데없는 수작 부릴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어차피 당신이 내 진원과 기혈을 봉인한다고 하더라도 자결할 방법은 충분히 있으니까요. 그리고 잘 생각해 보세요. 제가 아무런 가치도 없는 사람이라면 과연 무슨 수로 여족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을지 말이에요.”
“웃기지도 않는군.”
삼안요모는 가소롭다는 듯 피식 웃으며 말했다.
“뭐, 끝까지 못 믿으시겠다는 눈치군요. 지금 당신이 절 납치한 지 며칠이나 지났죠? 그동안 뭔가 이상한 점 없었나요? 아마 없었을 겁니다. 아직 저주가 시작되지 않았으니까요. 제가 당신에게 붙잡혀온 이상 여족은 그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곧바로 착수할 겁니다. 어차피 대영 신조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사람들이니까요.”
진양이 손에 끼고 있는 주머니 반지를 만지작거렸다.
“이미 저에 대해 조사를 하셨다니 제가 어디서 온 사람인지도 잘 아시겠군요. 여기 이 주머니 안에 흑여의 귀신령이 들어있거든요. 한번 구경해 보실래요?”
“허튼짓은 꿈도 꾸지 말거라. 꺼내는 순간 네 놈의 손목이 날아가게 될 것이다!”
진양의 말이 사실인지 궁금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정말 꺼내 보라고 할 순 없었다.
갑자기 귀신령의 힘을 빌려 흑여의 고수가 이곳에 강림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마냥 믿지 않는다고 버틸 수만은 없었다.
백일주에 대해서는 예전에 얼핏 들었던 기억이 난다.
물론 확실하게 기억나는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여족 사람들이라면 매개체를 이용해 그녀에게 저주를 걸고도 남을 만한 실력을 가지고 있다.
정두칠전서에 대해서는 전혀 들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여족이 신비에 둘러싸인 자들이라는 것을 감안하여 생각한다면 실제로 그런 저주가 존재할 가능성이 크다.
아마 여족 중에서도 어느 정도 지위가 있는 중요한 인물만이 알고 있는 저주인 듯했다.
이쯤 되자 진양이 여족 내에서도 꽤 중요한 인물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대영에는 왜 온 거지? 설마 여족이 대영과 손을 잡으려고 그러는 건가?’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지거나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뭐, 보기 싫다면 어쩔 수 없고요.”
진양은 순순히 손을 내려놓았다.
“쭉 한 가지 이해가 안 되더군요. 저를 대영 영토 밖으로 끌고 올 만큼 신중한 사람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엄청난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직접 대영으로 찾아온 걸까요? 그것도 한낱 화신 따위를 위해서 말이에요. 삼안화신이 소멸된다고 하더라도 기껏해야 원기에 조금 상처를 입는 게 전부일 텐데. 괜히 직접 왔다가 죽기라도 하면 오히려 손해가 더 크잖아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이제야 알겠네요. 당신은 올 수밖에 없었던 거예요. 놈은 한시라도 빨리 죽고 싶어 하는 것처럼 행동하긴 하지만 사실은 연기를 하고 있는 거죠. 녀석은 단순한 화신이 아닐 겁니다. 그러니까 녀석이 죽는다고 해도 당신은 죽지 않겠지만 거의 죽음에 가까운 상태가 되는 거죠.”
삼안요모는 부정하는 대신 진양을 노려보며 차갑게 웃었다.
“너희 인간들 말 중에 이런 말이 있더구나. 너무 똑똑한 사람은 빨리 죽는다고.”
“제 말이 맞았나 보네요. 그럼 내친김에 편안하게 얘기해 보도록 하죠. 어차피 평소에는 이런 얘기를 나눌 사람도 없잖아요? 게다가 제가 꽤 엄청난 비밀을 알아낸 것 같군요. 이대로 절 보내줄 것 같지도 않은데. 이왕 이렇게 된 바에 그냥 속 시원하게 얘기해 주는 건 어때요?”
“계속해서 개소리를 하면 혀를 잘라버리겠다.”
진양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일단 당장의 상황만 봤을 때 그녀는 진양을 죽이지 못할 것이다.
진양을 죽이면 결국 자신도 죽게 될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굳이 자극해봐야 좋을 건 없다.
괜히 잘못 건드렸다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한낱 요족 하나 때문에 허무하게 죽을 수는 없다.
삼안요모가 입을 다물어버리자 진양은 알아서 적당한 구석을 찾아 포단을 깔고 앉았다.
그리고 단약을 삼킨 뒤 요상을 시작했다.
체내의 기혈을 최대한 거두고 남아있는 진원의 힘도 조금만 남긴 채 전부 해안에 봉인시켰다.
연기를 할 거면 꽤 그럴싸하게 해야 한다.
괜히 삼안요모의 경계심을 키워봐야 좋을 건 없으니 말이다.
어차피 상황을 보아하니 당분간은 도망치는 게 불가능할 듯싶었다.
삼안요모 역시 마찬가지로 쉽게 진양을 놓아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일단은 상대를 진정시키는 게 우선이었다.
그래서 진양은 일단 요상과 수련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삼안요모가 자리를 비운 사이, 진양은 도망칠 방법을 찾기 위해 이곳저곳을 살폈다.
그 결과 간신히 공간에 걸려있는 금제를 푸는 데 성공했다.
금제가 풀리며 단단한 현철과 같은 바위로 만들어진 통로가 나타났다.
백여 장 정도 되는 긴 통로였는데, 자세히 보니 통로 끝에 하얀 고치가 길을 막고 있는 게 아닌가?
“빌어먹을!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잖아?”
기껏 개고생해서 금제를 풀었더니 수천충이 길을 막고 있을 줄이야.
이쯤 되자 진양은 도망칠 생각은 일단 포기하기로 했다.
그리고 고치 앞에 앉아 수천충에 대해 연구해 보기로 했다.
며칠 뒤.
삼안요모가 갑자기 진양의 등 뒤에 나타났다.
“흥, 네 놈이 가만히 못 있을 줄은 진작 알고 있었지.”
“당신이 가진 그 신통력 상당히 쓸만하네요. 아쉽게도 전 배울 수가 없지만 말이에요.”
진심이었다.
만약 배울 수만 있다면 삼안요모보다는 훨씬 더 유용하게 써먹을 자신이 있었다.
이렇게 좋은 신통력을 사람을 가두는 데나 써먹다니.
이 얼마나 낭비란 말인가!
“저리 비켜.”
삼안요모는 진양의 뒷덜미를 잡고 다시 지하로 내려왔다.
그리고 손을 뻗어 진양을 다시 수천충의 고치 속에 가둬버렸다.
“자, 잠깐!”
“왜? 할 말이라도 더 남았나?”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어서요. 요 며칠 동안 어디 갔다 왔어요? 절 여기 혼자 두고 가면서 불안하지도 않았던 겁니까? 그러다 도망치거나 누군가 절 찾으러 왔다면 어쩌려고요?”
“정보를 모으러 갔었다.”
삼안요모는 미묘한 눈빛으로 진양을 바라보았다.
“과연 아무런 가치 없는 녀석은 아닌 것 같더군. 네 첩신호위가 근처까지 쫓아왔다. 뿐만 아니라 대영의 순천사들까지 나서서 널 찾아다니고 있더구나. 보아하니 대제희가 널 상당히 아끼는 모양이야.”
“그러지 말고 거래를 하는 건 어떨까요? 날 내보내 준다면 나도 당신의 화신을 풀어주도록 하죠. 굳이 남만까지 갈 필요도 없어요. 지금 여기서도 풀어줄 수 있으니까요. 절 풀어준다면 화신 역시 안전하게 돌아올 거라고 보장할게요.”
“또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게냐? 그딴 말을 내가 믿을 것 같으냐?”
“못 믿겠다면 어쩔 수 없죠. 그럼 대신 진유덕이 어떤 사람인지 한번 알아보세요. 제 입으로 이런 말을 하긴 좀 그렇지만 전 이제껏 단 한 번도 스스로 뱉은 말을 어겨본 적이 없는 아주 정직한 사람이라고요.”
그러나 삼안요모는 여전히 못 미덥다는 얼굴이었다.
“그럼 수천충의 고치에 가두지만 말아주세요. 갇혀있으면 심심해 미칠 것 같단 말이에요. 어차피 밖에 있어도 당신이 감시하고 있으니 아무것도 못 하는 건 마찬가지잖아요.”
잠시 고민하던 삼안요모의 미간이 갑자기 벌어지며 눈이 하나 튀어나왔다.
이어서 눈에서 흘러나온 빛이 진양의 몸을 휩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