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733
733화 생각보다 머리를 쓸 줄 아는군
모두들 물러가고 난 뒤.
한 젊은 승려와 피부가 나무껍질처럼 거칠어진 나이 든 승려가 다가왔다.
세 사람은 서로 인사를 나누었고, 방장이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너희들도 다 들었겠지.”
“들었습니다. 확실히 빼앗아오는 건 별로 좋지 못한 방법 같습니다. 유령 경매는 오랜 역사와 명성을 가진 경매니까요. 게다가 일전에는 경전을 경매에 올린 적도 있습니다. 불골금신은 비록 우리에겐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보물이겠지만, 다른 수도사들에겐 한낱 평범한 경전보책에 지니지 않습니다.
게다가 신조 사람들은 저희 불도 수련자들을 항상 배척해왔습니다. 만약 여기서 강제로 그것을 빼앗아오려고 한다면 손에 넣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고, 혹여나 많은 사람들에게 원한이라도 샀다간 우리 윤전사를 노리는 강자들의 공격을 받게 될지도 모릅니다.
뿐만 아니라 현재 불골금신이 어디 있는지 정확하게 파악하지도 못한 상황에서 성급하게 움직여봤자 아무런 승산도 없을 겁니다. 반대로 유령호의 규칙을 따른다면 기껏해야 물질적으로 손실을 보는 것이 전부겠지요.”
왼쪽 하석에 앉은 젊은 승려가 차분하게 자신의 분석을 내놓았다.
곁에 앉아있는 두 나이 든 승려들은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이 맞다. 청심, 너도 우리와 함께 가자. 그곳에 가면 시골맥 녀석들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러니 너도 미리 봐두는 게 좋겠지.”
다른 건 몰라도 재력으로 맞붙는 거라면 윤전사에서도 자신 있었다.
윤전사 승려들은 비록 완전한 고행 수도사는 아니지만 대부분 거의 고행 수련이 주를 이룬다.
비록 진도는 느리지만 소모하는 자원은 일반적인 수도사에 비해 현저히 낮은 편.
윤전사의 진사경전(鎮寺經典) 장육금신(丈六金身).
이것을 수련하기 위해선 경문을 외우며 백여 년간의 고행 수련이 필요하다.
이렇게 기초를 쌓은 뒤 이백 년간 삼원을 만들어내고, 그다음 백여 년간 육신을 단련하며 의지를 연마한다.
여기까지 모든 수련을 마쳐야만 신해를 개벽하고, 체의겸수(體意兼修)를 이루게 되어 마침내 장육금신 수련을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이 과정에서 외력은 받을 수도 없고, 받는다고 하더라도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적지 않은 승려들이 이러한 과정을 이겨내지 못하고 수명이 다하여 죽고 만다.
때문에 일반 수도사들의 경우 겉으로 보이는 나이와 실력은 크게 상관이 없는데 반해 윤전사는 그렇지 않다.
젊은 외모를 가지고 있으면 아직 기초조차 마치지 못한 햇병아리에 불과하고, 온갖 세월의 흔적이 있는 노인의 모습일수록 강자일 확률이 높았다.
* * *
사해황막은 크게 들썩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서로 간의 마찰은 오히려 더 줄어들었다.
멀리 남만 땅.
외부와의 접촉을 일체 차단한 채 조용히 지내고 있던 부도마교 사람들도 이 소식을 듣게 되었다.
물론 움직이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으나 현재의 실력으로는 나서봤자 아무런 경쟁력도 없다.
같은 시각.
소식을 들은 요족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용의 혈맥을 받아 삼안용모(三眼龍母)로 거듭난 삼안요모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요국으로 돌아오기 무섭게 대영 신조의 대군을 멀리 치고 또 요국 내의 강자들을 힘으로 압도해버렸다.
현재 그녀는 모두에게 공인받은 진룡의 후예다.
실력, 혈맥, 신통력 등 각 방면에서 오룡 일족을 가볍게 제치고 있었다.
아무리 눈치 없는 요족이라도 진룡의 혈맥을 손에 넣은 삼안용모가 오룡 일족을 짓누르며 큰 성장을 이루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걸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삼안용모가 진룡의 피를 손에 넣어 큰 성장을 이룬 모습을 보며 다른 마음을 품는 자들도 있었다.
자신들도 삼안용모처럼 기연을 만나 진룡의 피를 손에 넣게 된다면 마찬가지로 다른 요족들을 능가할 수 있는 기회를 손에 넣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모르는 사실이 한 가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삼안용모가 손에 넣은 건 평범한 진룡의 피가 아닌 진룡의 정혈이다.
어쨌든 요족들은 유령 경매에 대한 얘기를 듣자마자 각자 돈과 재물을 긁어모으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로 간의 마찰도 현저히 줄어들었다.
물론 요국의 요족들 외에도 삼안용모의 사례를 보고 진룡의 피를 눈독에 들이는 자들이 있었다.
바로 동해의 요족들이었다.
사방에서 일어나던 마찰은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마치 평화의 시대가 도래한 듯한 모습이었다.
단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사방을 감시하던 정천사에도 이상 기류를 포착했다.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동해의 정세가 갑작스럽게 평온해졌다는 점이다.
시도 때도 없이 말썽을 치고 치고받고 써우던 요족들이 하나같이 온순해진 것.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정천사에서도 이들이 온순해진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이도에 남아 이도를 지키고 있던 일품 외후.
그는 손에 정보지를 든 채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지금 날 놀리는 게냐? 사해황막, 남만, 동해, 심지어 요국의 요족 녀석들까지 전부 다 잠잠해진 이유가 고작 진양 그 녀석이 경매를 연다는 소문 때문이라고?”
“대인, 고정하시지요. 여러 차례 확인이 끝났고 초청장까지도 입수한 상황입니다. 이건 틀림없는 사실이옵니다. 벌써 세 번이나 확인을 마쳤는데 아무래도 수존(首尊) 대인께 보고를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보고는 무슨! 대인께서 며칠 전에 뭐라고 하신 지 벌써 잊은 게냐? 진양 그 녀석이 죽었다는 소식 아니면 절대로 아무것도 보고하지 말라고 하지 않으셨더냐! 다들 귀는 장식으로 달고 있는 게냐?”
일품 외후의 손에 들려있던 정보지는 순간 펑- 하며 가루가 되어 사라져버렸다.
조정의 녹을 받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눈치 살펴보며 처신을 잘해야 오래 살아남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러한 도리를 모르는 자들은 대부분 좋지 못한 결말을 맞기 마련.
때문에, 이토록 큰일이 벌어졌는데도 불구하고 위흥조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일품 위후는 최근 들어 자신의 직속상관의 심기가 상당히 불편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처신을 잘못했다간 그 화가 자신에게 돌아올 수도 있다.
그래서 그는 서면으로 지금까지의 상황을 정리했다.
동해, 사해황막, 그리고 이 외의 모든 곳이 평온하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내용을 각각 다른 정보지에 분리하여 적었다.
이런 식으로 분리하여 적어 올리게 된다면 이는 곧 큰일이 아니라는 뜻을 의미한다.
정세가 파도처럼 기복이 심한 건 본래 정상적인 일이니 말이다.
그렇게 현재 상황에 대한 모든 보고를 작성한 후 마지막으로 진양에 대한 부분을 따로 적어 위흥조가 절대 쳐다보지 않는 상자 안에 넣었다.
심지어 상자 안에서도 가장 구석에 처박았다.
그리고 큼직하게 ‘진양’이라는 글씨도 적어넣었다.
이렇게 하면 그는 자신의 직무에 태만하지도 않았고, 또 위흥조의 명령을 어기지도 않은 것이 된다.
그야말로 모든 것이 완벽해진 셈.
아무리 다루기 어려운 상사라 하더라도 아래 있는 부하 직원들은 방법을 찾아내기 마련이다.
상부에 정책이 있으면 하부엔 대책이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한곳에 모아둔 정보지를 보고 있으니 서정강은 절로 한숨이 나왔다.
위흥조는 최근 몇 차례 불려가 매를 맞은 이후로 감정의 굴곡이 더욱 심해졌다.
자신도 모르게 ‘줄 풀린 미친개’라는 표현마저 떠오를 정도였다.
그는 한안명과 다르다.
한안명은 위흥조의 수제자인 만큼 무엇이든 말할 수 있는 것이고, 또 잘못을 한다고 하더라도 간단한 질책으로 끝나게 된다.
그는 그저 정천사의 한낱 일품 외후에 불과하다.
오늘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그가 능력이 뛰어났기 때문은 아니다.
단순히 능력만 본다고 했을 때, 특히 외교와 관련된 일이라면 그는 그보다 한참 젊은 한안명보다 못한 수준이었다.
추적, 체포, 살인, 심문 등의 능력 역시도 전뇌와 같은 괴물급 외후들과는 비교조차도 할 수가 없었다.
서정강이 오늘날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위흥조 덕분이었다.
위흥조는 자신이 정천사의 절대적인 권력자가 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영제가 정천사에 몰래 감시자를 심어놓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위흥조 자신이 정천사의 모든 권력을 자신과 자신의 제자들이 나눠가질 의도가 없다는 입장은 확실하게 보여주어야 했다.
눈치 빠르고 스스로의 분수도 잘 아는 자가 오래 살아남는다.
급진적으로 권력에 눈이 멀어 마구 주먹을 휘두르면 반드시 일찍 죽기 마련이다.
일련의 업무을 마친 서정강은 느긋하게 차를 마시며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뒤.
수하가 돌아왔다.
“초청장은 받아왔나?”
“그렇습니다, 대인.”
“그래, 여기 두거라. 이번에는 내가 직접 나서겠다. 괜히 네 녀석들에게 맡겨서 일을 망치는 것보단 낫겠지.”
초정장은 손바닥만 한 크기의 작은 장부 비슷한 물건이었다.
초청장 겉면에는 기괴한 글씨체로 ‘유령’이라는 두 글자가 큼직하게 적혀있었다.
초정장을 열면 가장 먼저 왼편에 각종 규칙이 적혀있었고, 또 해당 초청장 하나에 몇 명까지 경매에 참여할 수 있는지가 적혀있었다.
현재 서정강의 손에 들려있는 초청장은 소지인 본인만 경매에 참여할 수 있다고 나와 있었다.
이어서 오른쪽에는 이번 경매에 올라오는 물건의 목록이 적혀있었다.
일. 불곰금신
이. 진룡의 피 한 방울
삼. 한발(旱魃)의 정혈 한 방울
사. 현황지기 천 근
오. 만년사 십만 알
…….
상당한 물건들로 이루어진 목록에 서정강은 혀를 끌끌 찼다.
불과 하루 전만 하더라도 안 보이던 물건이 추가되어있었던 것이었다.
서정강은 혹여나 하는 마음에 초청장에 조심스럽게 진원을 흘려 넣었다.
그러나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소문 그대로였다.
오직 유령 경매에 사용되는 비경이 열리고 난 뒤에만 초창장을 통해 비경 안으로 들어설 수 있다.
그전에는 그 누구도 사전에 비경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다.
게다가 사전에 위치가 설정된 초청장이 아니었기 때문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안심하고 참여할 수 있었다.
* * *
어느새 시간은 흘러 경매 시작까지 하루 남았을 무렵.
진양은 길게 늘어진 종이 한 장을 든 채 흐뭇하게 웃고 있었다.
“오랜만에 여는 것도 나쁘진 않군. 생각 이상으로 많은 매물들이 들어왔어. 이 정도면 다음부터는 굳이 내 물건을 내놓지 않아도 될 정도야.
그나저나 다소 의외군.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윤전사 녀석들과 시골맥 녀석들이 치열하게 기 싸움을 벌이기 시작했을 줄이야…….”
현황지기는 시골맥에서 보내온 매물이었다.
이것은 장육금신을 수련하는 윤전사의 승려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최상급의 자원이다.
즉, 윤전사 승려들의 눈을 뒤집히게 만들기에 충분하고도 남을 물건이라는 뜻이다.
‘녀석들, 생각보다 머리를 쓸 줄 아는군.’
이 정도라면 시괴가 시골맥 안에서 제대로 성장하기도 전에 동족의 손에 죽게 될까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