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844
844화 그만큼 각오는 되어있겠지?
“눈에 불을 켜고 찾아라. 어떻게든 엮을 수 있다면 반드시 엮어야 한다. 서둘러라!”
조왕은 하루 종일 저택 내에 머물며 수하들이 조사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러다 작은 단서를 하나 더 발견하고는 대담한 생각을 떠올리게 되었다.
이건 확실한 증거다.
터뜨리는 즉시 서쪽 국경지대의 군후를 한 방에 날릴 수 있을 정도로 확실한 증거였다.
하지만 주왕에겐 그다지 큰 타격이 되지 않는다.
반드시 주왕에게 치명적인 한 방을 먹일 수 있는 큰 소식을 퍼뜨려야 한다.
설령 그것이 전부 진짜가 아니더라도 말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을 군후와 엮어야 했다.
특히 주왕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집중적으로 엮어야 했다.
그렇게 며칠 간의 작업 끝에 다소 억지에 가깝긴 하지만 주왕과 관련된 자들 중 삼분지 이나 되는 자들을 엮는 데 성공했다.
조왕은 마침내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너무 엉성하게 얽혀있기 때문에 제대로 사건을 터뜨리기엔 부족하다.
단순히 누군가 또 다른 누군가와 만났다는 건 증거가 될 수 없다.
하지만 상대의 얼굴에 똥물을 뿌리는 것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다.
모든 정리를 마친 조왕은 고민에 빠졌다.
‘이걸 어디에서 뿌리는 게 좋을까?’
마음 같아선 조회에서 뿌리고 싶었으나, 일단은 충동적인 결정은 삼가기로 했다.
물론 조회에서 뿌린다면 가장 효과가 클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염려되는 일이 있었다.
주왕과 조왕이 서로 난투극을 벌여도, 심지어 암살극을 벌여도 꼬리만 잡히지 않으면 영제는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영제의 역린, 전조가 엮여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국경지대를 지키는 한 군후가 말이다.
이건 함부로 건드려선 안 되는 부분이다.
이 사실을 이용하여 주왕을 궁지에 몰아넣는 건 충분히 가능하다.
하지만 영제의 성격상 조왕에게도 문제를 삼을 수도 있다.
만약 이 일로 영제의 노여움을 사게 된다면 그건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은 상황이었다.
어쨌든 누가 태자가 될지는 결국 영제의 결정이니 말이다.
아무리 발버둥 치고 많은 세력을 모은다 해도 결론은 영제의 입에서 나오는 법.
잠시 고민하던 조왕은 억지로 엮었던 자들을 모두 빼냈다.
그리고 남은 자료를 취합하여 곧장 궁으로 향했다.
그는 친왕이다.
때문에, 중요한 일이 생긴다면 언제든 입궁하여 대제를 알현할 수 있다.
* * *
조왕은 영제 앞에 무릎을 꿇으며 머리를 조아렸다.
“폐하, 갑작스럽게 알현을 요청하여 송구하나이다. 허나 엄청난 비밀을 알게 되어 지체할 수가 없었사옵니다. 무엇보다 이 일은 주왕이 연루되어있는 일이라 조회에서 밝힐 수도 없었사옵니다. 만약 이 사실을 조회에서 언급한다면 주왕은 필히 뭇사람의 비난 대상이 될 것이기 때문이옵니다.
오랜 고민을 해 보았으나 같은 황족끼리 다툼을 일으켜 폐하께 염려 끼쳐드리는 건 도리가 아니라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조용히 폐하를 찾아온 것이옵니다.”
한참 입에 발린 말을 마친 조왕은 미리 준비해두었던 자료를 내밀었다.
영제 곁에 있던 내시가 다가가 그것을 대신 건네받았다.
그리고 다시 영제 곁으로 다가가 그것을 전달했다.
영제는 무표정으로 그가 가져온 것을 읽어보았다.
그건 서쪽 국경지대의 군후가 전조 세력과 엮여있다는 명확한 증거였다.
영제의 표정에 마침내 변화가 있었다.
이어서 뒷장은 대략적으로 훑어보았을 뿐 자세히 살펴보진 않았다.
“위 경을 들라 하라.”
잠시 뒤.
위흥조가 허둥지둥 달려왔다.
내시는 조왕이 준비해온 자료를 위흥조에게 건네주었다.
자료를 읽어나가는 위흥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는 너무 놀라 고개를 조아리고 있는 조왕을 바라보았다.
‘단단히 작정을 했구나.’
주왕에 의탁한 자들은 이제 막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조왕은 기다렸다는 듯 이들을 친 것이다.
위흥조는 오랜 시간 정천사에 몸을 담은 인물이다.
때문에, 자료만 봐도 진위 여부를 판단할 수 있었다.
이 자료는 진짜가 확실하다.
무엇보다 조왕이 아무런 확신 없이 이렇게 과감한 수를 두었을 리는 없다.
강한 확신을 가진 만큼 과감하게 다른 자들도 함께 엮어버린 게 분명했다.
“폐하, 소자 그 누구보다 주왕을 잘 알고 있사옵니다. 이번 일은 결코 주왕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사옵니다.”
조왕은 엎드린 채 주왕을 변호하기 시작했다.
“비록 소자와 주왕의 관계가 원만하지 않은 건 사실이옵니다. 이를 이용하여 주왕을 걸고넘어지려는 것으로 보시는 것도 충분히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허나 전조 세력과 연루된 일은 결코 묵과할 수 없사옵니다.
소자와 주왕이 경쟁을 벌이는 건 결국 모두 폐하를 더욱 가까운 곳에서 보좌하기 위함이옵니다. 결코 역적들이 끼어들어 훼방을 놓는 일은 용납할 수 없사옵니다.”
조왕의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이건 최소한으로 지켜야 할 선이다.
이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
그러나 이걸 입 밖으로 꺼냈다는 건 그만큼 조왕도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는 뜻일 것이다.
‘악독하군.’
“당장 사라지거라!”
영제가 고함과 함께 팔을 휘두르니, 바람이 일어나며 조왕은 그대로 날아가 버렸다.
조왕은 추한 모습으로 몇 번이나 구르며 대전 밖으로 밀려났다.
그러나 조왕은 다시 한번 극진히 예를 갖추어 절을 올린 뒤 자리를 떠났다.
떠나는 발걸음은 상당히 가벼웠다.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 소문이 퍼질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그가 방금 어떤 꼴을 당했는지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일에 영제가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확실했다.
‘역린을 건드렸으니 당연히 관심을 가질 수밖에.’
저택으로 돌아온 조왕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상황을 살폈다.
이제 남은 건 기다리는 것뿐이다.
같은 시각.
정천사로 돌아온 위흥조는 조용히 대량의 인원을 풀어 사건을 암암리에 조사하도록 했다.
영제는 조왕이 가져온 자료를 충분히 인정하고 문제 삼고 있는 듯했다.
그렇다면 영제를 가장 가까이에서 보좌하는 그로서 결코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아무도 모르는 사이 대영에는 커다란 먹구름이 몰리고 있었다.
* * *
“이런 치사한 짓을 하다니. 물론 그만큼 각오는 되어있겠지?”
진양은 수하들이 보내온 자료를 읽어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정천사 사람들이 물밑에서 조용히 움직이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조왕에게 조용히 뿌린 정보를 제외하면 별다른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조왕은 과연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정말로 많은 사람들을 한 번에 엮어버릴 생각이었던 것이었다.
그들이 전조에 의탁했다는 건 진양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어쩌다가 전조에 의탁하게 되었는지, 명확한 연결고리를 파악하고 있는 건 아니다.
지금 진양이 가지고 있는 완벽한 증거는 서쪽 국경지대 군후의 것이 유일했다.
서쪽 국경지대의 상황이 매우 단순한 만큼 가장 찾기 쉬운 정보였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핵심 단서는 있었다.
이 단서들은 적합한 시기에 조금씩 뿌리면 된다.
정천사의 외후들은 한참 조사를 하며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이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 한 장의 그물이 서서히 펼쳐지고 있었다.
* * *
이도.
많은 사람들이 의문에 밤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이제 괴산 제사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어째서 영제는 아직도 대리인을 정하지 않는단 말인가?
한편, 정천사의 조사는 매우 순조로웠다.
반역자를 붙잡을 때마다 점점 더 많은 연관성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주왕에게 영맥을 가져다 바쳤던 자들에 대한 조사는 이미 끝났다.
잡아들인 자들 중 팔 할은 명확한 증거가 있거나 중대한 혐의가 있어 투옥시키기엔 충분했다.
남은 이 할은 혐의는 있었으나 아직 명확한 증거는 없었다.
하지만 줄줄이 연관성이 밝혀지며 수사망은 점점 더 좁혀져 오고 있었다.
이대로 간다면 조사는 마지막까지 순항을 이어나갈 것이다.
위흥조는 어째서 일이 이렇게 쉽게 풀리는 것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저 정천사의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무엇보다 이번 일에 가장 앞장서서 조사를 벌인 건 한안명이다.
한안명은 본래 이런 일에 특화된 사람이긴 하지만, 이번 일로 한층 더 그를 높이 평가하게 되었다.
심지어 이런 훌륭한 조사관을 동해 구석으로 보내버렸다는 사실에 자책감마저 느낄 정도였다.
그렇게 조사가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을 때.
뜻밖의 사건이 벌어졌다.
중요한 단서를 가지고 있던 자가 죽어버린 것이다.
그것도 전혀 예상치 못한 사람의 손에 말이다.
그는 다름 아닌 엽현이었다.
지금껏 조왕이 씹어먹지 못해 안달이 난 바로 그 엽현이었다.
엽현이 지금까지 무사히 도망칠 수 있었던 이유.
위흥조는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주왕에 의탁하여 도움을 받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지금껏 주왕과 관련된 자들만 조사하느라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엽현은 완전히 배제하고 있었던 것.
아직 완벽하게 조사가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중간 보고가 영제에게 올라가게 되었다.
정천사가 나서서 사람들을 붙잡고 있다는 사람은 진양도 알고 있었다.
가희에게도 명령이 하달되었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에 연루된 자들이 너무 많아 정천사에 협력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진양은 이미 사전에 가희에게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말해준 상태다.
때문에, 가희는 명령이 하달되기 무섭게 병력을 움직였고, 정천사가 아직 국면을 제대로 잡아가지 못할 때 먼저 나서서 강제로 국면을 휘어잡았다.
청전군의 명단에 있던 전조 세력의 사람들 중, 영맥을 빌리러 왔던 사람들은 전부 일망타진되었다.
그리고 이들과 엮여 있는 사람들은 청전군의 명단에도 대부분 포함이 되어있었다.
그렇게 겨우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작전은 마무리되었다.
순순히 오라를 받은 자들은 체포되었고, 끝까지 저항하던 자들은 현장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작전을 모두 끝낸 가희는 계속해서 순방을 이어나갔다.
한편, 지금쯤이면 이도에서는 이번 달에 열리는 조회 중 가장 큰 조회가 열리고 있을 것이다.
아마도 이번 조회에선 조왕과 주왕의 싸움이 가장 격렬하게 벌어질 듯했다.
진양은 옥련에 반쯤 누워 자신의 소책자에 적힌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씩 지워나가고 있었다.
한참 작업을 마친 뒤.
소책자를 탁 덮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펴고 하품을 했다.
진양은 흡족스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이 일은 진양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들의 눈에 진양은 그저 돈 한 푼 없이 당하기만 한 불쌍한 사람에 불과할 것이다.
* * *
조회가 시작되기도 전, 이도에는 한바탕 폭풍우가 몰아닥칠 것처럼 심상치 않은 기류가 흘렀다.
모든 이들의 얼굴에서 웃음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평소 자주 만나 담소를 나누던 사람들끼리도 그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만 나눌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