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933
933화 아직 한창 팔팔할 나이입니다
응백의 서신이 아니었다면 간발의 차이로 흑옥 신문 개방에 실패했을지도 모른다.
만약 이번 기회를 놓쳤다면 흑옥 신문을 열 기회는 다시는 찾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심지어 흑옥 신문을 파괴해버리는 것조차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윤제가 아무리 이빨 빠진 호랑이라고 해도 한때는 한 신조의 대제였던 사람이다.
이런 윤제조차 흑옥 신문을 파괴하지 못했다면, 남은 건 영제의 본존이 직접 나서는 것뿐이다.
그러니까, 음영자객이 하마터면 진양에게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뻔했다는 것.
이쯤 되면 아무리 성인군자 같던 진양도 허허 웃으며 상대를 이해하며 넘어갈 순 없는 법이다.
‘좋아. 어디 한번 해 보자는 거지? 마침 잘됐네. 앞으로는 뭘 하면서 지내야 싶었는데, 마침 대연 녀석들이 잘 나타나 줬군.’
한편, 어느새 허공에 벌어졌던 틈은 천천히 닫혀가고 있었다.
진양은 여전히 미소를 띤 채 대장로를 향해 신나게 손을 흔들며 작별 인사를 하고 있었다.
과연, 그는 상황 판단이 빨랐다.
한 손에 검을 들고, 나머지 한 손에 윤제의 머리를 들고 있는 가희를 발견하기 무섭게 물러서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는 환해 일족의 습성이다.
이들은 상대할 수 없는 적을 만나면 재빨리 발걸음을 돌려 집으로 돌아가 숨어버린다.
어차피 상대는 환해의 위치를 모를 테니, 이러한 점을 이용하여 모든 걸 시간이 해결하도록 놔두는 것이다.
환해의 문이 닫히며 대장로가 산하도의 힘을 끌어와 펼쳤던 초대형 환술도 점점 걷혀 나갔다.
한편, 이도의 여러 고수들은 그 누구보다 가장 먼저 변화를 알아차렸다.
앞서 그들의 눈앞에 도궁을 재건 중인 신임 대제의 모습이 나타났다.
승급은 매우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어느새 벌써 법신 경지까지 재건이 끝난 것이다.
아무리 법신 경지라고 해도 그녀는 대제다.
이도에 머물며 대영 신조의 힘을 운용한다면 법신 강자쯤은 한 손으로도 눌러버릴 수 있을 정도였다.
대제가 강한 것은 수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단점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남은 건 기다림뿐.
그러나 환술이 걷혔고, 변화를 느낀 고수들은 곧바로 동술을 사용하며 주위를 살폈다.
궁성 성벽에는 어느새 새까만 이무기가 나타나 천천히 고개를 들고 있었다.
녀석의 눈은 분노로 인해 이글거리고 있었고, 입에선 대지를 뒤흔드는 듯한 포효가 터져 나왔다.
포효는 물결이 되어 사방으로 퍼져나갔고, 남아있던 환술의 힘을 모두 날려버렸다.
환술의 힘이 완전히 제거되고 나니 다시 원래의 하늘이 모습을 드러냈다.
궁성 성벽은 마침내 수백 리에 달하는 완벽한 이무기의 형상으로 변했다.
고개를 든 녀석은 금방이라도 이성을 잃을 것처럼 분노했다.
궁성 문을 지키는 환수로서 환술에 정통한 강자들, 특히 환해 일족을 막아내는 것이 그의 주요 임무였다.
환해 일족은 이도 상공에 초대형 환술을 펼쳤다.
이는 곧 환해 본체의 힘을 가져가 썼다는 뜻이었다.
환해 본체의 힘까지 가져다 쓰며 벌일 만한 일은 오직 하나뿐.
바로 반란이었다.
이무기의 포효와 함께 사람들은 마침내 제대로 된 하늘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진양은 환하게 미소를 지은 채 하늘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러나 누가 봐도 기쁨의 웃음은 아니었다.
숙적을 바라보며 분노로 가득 찬 웃음이었다.
진양에게선 강력한 기운이 느껴지는 듯했으나, 완벽히 숨기지 못한 허약감도 함께 드러냈다.
또 다른 곳에선 신임 여제가 허공에 떠 있었다.
이미 법신 경지에 오른 그녀는 한 손에는 누군가의 머리를 움켜쥔 채 당당하게 여전신(女戰神)으로서의 위엄을 내뿜고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정말로 놀란 건 따로 있었다.
그녀의 뒤로 나타난 대영 신조의 판도였다.
본래 텅 비어있어야 할 중심이 거대한 산으로 채워져 있었던 것이었다.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것은 괴산이었다.
환술의 영향으로 인해 천하에 신임 대제의 탄생을 고하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
게다가 신임 대제가 탄생함과 동시에 대영 신조의 국운이 안정되고, 한층 더 강한 기세를 뿜어내기 시작한 것조차도 느끼지 못했었다.
대영 신조의 수많은 관리들, 그리고 대영 신조에 몸을 담고 있는 수도사들은 뒤늦게 자신의 힘이 상당히 강해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심지어 몇몇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경지를 돌파하기도 했다.
이 중 가장 큰 변화를 맞이한 건 대영 최고의 비판가 나량이었다.
그의 몸에서 하나의 거대한 붓이 튀어나왔다.
붓은 한층 더 화려해졌고, 끝에는 선혈과 같은 검붉은 색까지 나타났다.
이는 곧 나량이 역사적인 경지를 이뤘다는 뜻이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붓으로 상대를 비판하는 상주문을 써서 올린다면 큰 위력을 발휘하게 된다.
모든 정황이 명확하며 상대의 마음에도 걸리는 것이 있을 경우, 신조의 법으로 심판할 것도 없이 곧바로 상대를 규탄할 수 있게 된다.
즉, 비판 하나만으로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만들 수 있는 모든 어사들이 꿈꾸는 경지였다.
이 외에 위흥조의 실력도 이전보다 한 단계 더 강력해졌다.
어쨌든, 신조의 휘하에 있는 모든 이들이 혜택을 누리게 되었다.
“영토가 확장되니, 국운이 번창하는구나!”
대리사경은 고개를 든 채 눈물을 뚝뚝 흘리며 중얼거렸다.
경지가 한 단계 더 올라가며 늙은 모습이었던 그는 다시 젊어졌다.
아무런 희망 없이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자리만 꿰차고 있던 그다.
그런데, 새로운 대제가 등극하며 얻게 된 영토 덕분에 뜻밖의 희망을 얻게 된 것이다.
괴산이 아닌 다른 곳이었으면 이런 변화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그만큼 괴산이 가진 힘이 강력하다는 뜻이었다.
모두들 갑작스러운 변화에 당황하고 있을 때.
한 손에 윤제의 머리를 든 가희가 높이 검을 뽑아 들며 외쳤다.
“환해 일족이 반란을 일으켰고, 윤제가 직접 이곳에 나타났으며, 대연의 음영자객의 습격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윤제의 목은 잘렸고, 음영자객은 목숨을 잃었으며, 환해 일족은 도망쳤다.
감히 개돼지만도 못한 것들이 하찮은 음모 따위로 대영 신조의 위엄에 도발하다니! 정천사는 어디 있는가?”
“소신 여기 있사옵니다.”
위흥조가 한쪽 무릎을 꿇으며 큰소리로 대답했다.
“지금 즉시 역적 환해 일족을 체포하라.”
“존명!”
이어서 가희의 시선이 북방 국경지대의 장군들 쪽으로 향했다.
“지금 즉시 군대를 국경지대로 집결하고 대연을 정벌하도록 한다.”
“존명!”
장군들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큰소리로 외치며 움직였다.
“호부 상서는 이에 필요한 모든 자금을 준비하도록 하라.”
호부 상서도 한 걸음 나아오며 고개를 조아렸다.
“존명!”
사실 호부 상서는 아주 잠깐 머뭇거렸다.
늘 그랬던 대로 자금 상황이 넉넉하지 않다는 말이나 전쟁에 너무 많은 자금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를 하려고 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마음은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대영의 신임 대제가 등극하는 날 대연의 음영살객이 난입하며 암살극을 벌였다.
이건 단순히 신임 대제 개인에 대한 도전이 아니다.
이는 곧 대영 전체를 향한 도전이나 다름없다.
이대로 보복하지 않는다면 대영 신조의 위신은 바닥을 치고 말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감히 불필요한 흥정을 할 수는 없었다.
가희는 계속해서 남은 수행을 이어나가는 한편, 조리 정연하게 사람들에게 명령을 이어나갔다.
그 누구도 감히 가희의 명에 토를 다는 이는 없었다.
그저 군주가 명하는 대로 행하는 것이 신하의 도리였으니까.
이로써 가희의 등극 대전은 마무리되었다.
지면으로 내려온 진양은 호리병을 꺼내 미리 담아온 탕을 마시며 기운을 보충했다.
그때, 전씨 대장로가 뒷짐을 진 채 진양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는 서른 살의 외모가 되어버린 진양의 모습을 바라보며 혀를 끌끌 찼다.
“아직 몸에 마기(魔氣)가 남아있군. 쯔쯧, 게다가 얼굴 꼴을 보니 수명도 꽤 써버린 듯하구만.”
대장로가 물었다.
“그건 그렇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겐가?”
“뭐야? 어르신, 아직도 살아 있었어요? 오늘내일하시더니. 결국엔 제가 드린 영약을 드셨나 보군요.”
진양은 탕을 한 입 더 마시고는, 이어서 말했다.
“별일 없었습니다. 윤제가 나타나서 대제께서 베어버리셨고, 대윤의 음영자객이 나타나서 제가 베어버렸고, 상황이 이렇게 되니 환해 대장로 녀석은 꽁무니 빼지게 도망쳐버렸죠. 이게 다예요.”
이어서 진양은 자신의 얼굴을 만지작거렸다.
“서른 살이면 아직 한창 팔팔한 나이인데. 어떻게 곧 눈에 흙이 들어갈 영감님 얼굴이랑 비교합니까?”
말을 마친 진양은 소매에 손을 넣어 기이덩굴에서 기이과를 하나 따서 꺼냈다.
그리고 한입에 그것을 삼켰다.
그 순간, 진양의 외모가 육안으로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빠르게 젊어지기 시작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다시 스무 살의 외모로 돌아왔고, 허약하던 기운도 점차 회복되었다.
“…….”
대장로는 그런 진양의 모습을 기가 막힌다는 듯 쳐다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진양에게 타격을 줄 만한 말은 떠오르지 않았다.
진양은 전씨 대장로를 조용히 살펴보았다.
그는 꽤 회복이 된 모습이었다.
이어서 진양의 시선이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황씨 가주에게 향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두 사람의 일 처리 방식은 극과 극이었다.
황씨 가주는 이번 일에 많은 공을 들였다.
가희를 태자로 추천할 때도 그렇고, 심지어 각계의 인물들과의 관계까지도 수많은 공을 들였다.
그러나 전씨 대장로는 마땅히 한 일이 없었다.
그는 그저 진양이 시키는 대로 줄을 선 게 전부다.
그리고 전씨 가문을 따르던 사람들은 함께 줄을 섰을 뿐이다.
결론적으로 전씨 대장로는 진양과 같은 편이 되었다.
그러나 황씨 가문은 기껏해야 원래의 지위를 지킨 것이 전부일 뿐, 그동안 보여주었던 기회주의자적인 모습으로 인해 중용될 가능성은 매우 낮았다.
같은 가문의 대표끼리도 일 처리 방식이 이렇게까지 다른 것이다.
진양은 한편으로는 속으로 혀를 끌끌 차면서도, 앞으로 친구를 사귈 때는 무조건 전씨 대장로와 같은 사람만 사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황씨 가주처럼 기회주의적인 사람은 가까이 해봤자 크게 득이 될 게 없다.
진양이 넋이 나가 있으니 전씨 대장로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원래대로라면 그에게 감사 인사를 할 생각이었다.
그는 일반적인 영약으로는 호전시킬 수가 없는 상태였었다.
그러나 진양의 기이과 덕분에 순식간에 상태가 호전되었다.
대장로가 다시 살아나며 전씨 가문에게는 다음 후계자를 키울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확보하게 되었다.
대장로로선 더 이상의 여한은 없어지게 된 셈이다.
그런데 이제 막 진양과 만나 몇 마디 나누지도 않았는데, 그는 무슨 방법을 썼는지는 몰라도 기이덩굴을 키우고 있었다.
심지어 덩굴에는 기이과가 몇 개나 달려있었다.
이 모습에 그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진양의 다시 젊어진 얼굴을 바라보던 대장로는 답답한 듯 뒷짐을 진 채 한참을 말없이 있다가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