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ce Genius Top Star RAW novel - Chapter 174
174화에 계속 –
174화 한 걸음 더 (5)
Henri Breson.
감독의 이름이었다.
김우리 대리는 미간을 찌푸린 채 집중하며 영어 메일을 해석했다.
연락이 온 곳은 미국 할리우드 쪽이 아닌 프랑스의 한 영화 제작사였다.
감독 역시 프랑스인인 듯했다.
감독 앙리 브레송이 얼마 전 파리의 한 미술관에서 크리스토퍼 앨런의 특별전이 열렸고, 그곳에서 도준이 모델인 사진, 을 보았으며 크게 감명받아 도준이 출연한 작품들도 보았다는 얘기가 간략하게 적혀 있었다.
그로 인해 도준의 얼굴은 물론이고 연기와 분위기에 크게 매력을 느꼈고, 제작 예정인 영화의 메인 캐릭터로 도준을 캐스팅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여태까지 도준을 캐스팅하고자 한 외국 영화나 드라마의 경우 중국에서 온 제안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조연인 경우가 많았다.
외국에서 출연한 작품이 의 ‘닥터 원’뿐이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기는 했다.
그런 점에서 일단 주연으로 캐스팅하려고 한다는 점은 고무적이었다.
‘하지만 주연 캐스팅 제안도 처음은 아냐.’
해외 유명 콘텐츠 스트리밍 업체인 ‘넷플레이스’에서 이미 도준을 주인공으로 한 오리지널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고 제의를 해 왔었다.
아마 도준이 검토 중인 대본에는 넷플레이스의 대본도 있을 것이다.
“흐음…….”
프랑스 영화에 대해서 그다지 지식이 없는 데다가 할리우드 제작사가 아니라는 사실에 조금 김이 새 버린 김우리 대리는 관성적으로 포털 사이트 검색창을 열었다.
도준에게 가는 작품들은 임지유 이사와 진성현 대표가 일일이 모든 작품을 검토했다.
때문에 어쨌든 두 사람에게 메일을 포워딩해 제안 사실을 알려야 했는데 그전에 누군지 기본적인 정보는 알아둬야 할 듯했다.
“Hen…… ri…….”
메일에 적힌 스펠링을 따라 쓴 후 검색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앙리 브레송을 소개하는 페이지가 뜨자 김우리 대리는 영어로 전화를 받았을 때와는 비할 수 없는 당혹감을 느꼈다.
* * *
개업식을 마치고 센터 사람들과 점심 식사를 함께하고 집으로 돌아가던 도준은 저녁 여섯 시가 넘은 시간에 사무실에 들를 수밖에 없었다.
개업식에 찾아왔었던 진성현 대표와 임지유 이사는 퇴근 시간이 넘은 시각이었음에도 사무실에서 정신없이 일을 보는 중이었다.
몇몇 직원 또한 남아 있었다.
도준은 자신 때문에 직원들이 야근을 하게 된 듯해 미안했지만, 직원들은 일제히 손사래를 쳤다.
그간 여유로웠던 것을 생각하면 이 정도 잔업은 야근도 아니었다.
직원들과 인사한 후 대표실로 들어간 도준은 진성현 대표와 임지유 이사의 맞은편에 앉았다.
“앙리 브레송이요?”
이미 진성현 대표에게 소식을 듣고 온 참이었다.
앙리 브레송의 작품에 캐스팅 제안이 들어왔다는 것. 그럼에도 도준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연이어 되물었다.
“정말 그 앙리 브레송이 맞나요?”
“맞아요, 도준 씨. 그쪽 제작사랑 통화해서 내용도 확인했고…… 아무래도 우리 쪽보다는 정보가 더 있을 것 같아서 데이비드한테도 물어봤는데 안 그래도 앙리 쪽에서 데이비드한테도 연락했다고 하더군요. 한국 기획사 알려 준 것도 데이비드래요.”
임지유 이사가 평소보다 조금 더 올라간 톤으로 설명했다. 임지유 이사 역시 흥분되는 일인 듯했다.
“이 사람이 네가 좋아한다던 영화감독이지?”
사실 도준이나 임지유 이사보다는 앙리 브레송에 대해 잘 모르는 진성현 대표가 물었다.
그 명성이야 앙리 브레송 감독의 수상 경력만 봐도 알 수 있었지만 막상 앙리의 작품을 본 적은 없었던 것이다.
“네. 맞아요. 감독이요.”
열 번, 아니 스무 번은 본 영화일 것이다.
이번 휴가 때 프랑스 남부 여행을 하게 만든 것도 앙리 브레송의 영화 이었다.
앙리 브레송의 대표작으로 프랑스 대표 영화제 중 하나인 뤼미에르 영화제에서 작품상을 받기도 했다.
그가 여태까지 발표한 영화는 총 다섯 작품이었다. 다섯 작품 모두 수작이었고.
늘 독특한 소재를 넋이 나갈 만큼 아름다운 영상미에 녹여내며 새로운 시도를 성공적으로 완수하는 감독이었기에 도준은 그의 새 작품 또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새 작품에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기회라니 신기하고 놀라웠다.
“앙리 브레송 스타일을 생각하면…… 도준 씨를 캐스팅하려는 것도 너무 이해가 돼요.”
임지유 이사의 말에 진성현 대표가 무슨 뜻이냐는 듯 물끄러미 그녀를 보았다.
“천연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감독이잖아요. 도준 씨 얼굴에 반했을 만하죠.”
그 말에 도준이 기분 좋게 웃었다.
그런데 의아한 점이 있었다.
“분명히 프랑스를 배경으로 할 테고 대사도 프랑스어일 텐데……. 왜 저를 캐스팅하려고 한지 모르겠어요.”
“그래? 도준이 너 불어로 연기하는 건 무리 아냐?”
“네. 무리죠.”
도준은 솔직하게 인정했다.
영어는 이미 출연 이전부터 꾸준히 준비해 왔고, 에서 영어 연기 자체를 갈고닦을 기회도 있었다.
그러나 불어는 기본적인 인사말밖에 하지 못했다.
게다가 특유의 억양을 생각하면 몇 개월 배워서는 완벽하게 연기하지 못할 게 분명했다.
“이번에는 영어로 대사를 쓴 건가?”
진성현 대표도 그러고 보니 이상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러나 영어로 대사를 썼을 리 없다고 도준은 생각했다.
앙리 브레송의 자국 언어에 대한 사랑은 꽤 고집스러운 면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분명히 언어에 대한 문제도 고려하고 캐스팅 제의를 한 걸 텐데 말이죠…….”
물론 설정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프랑스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캐릭터가 탄생할 수 있었다.
시나리오를 받아 보면 곧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시나리오 받아 본다고 하면 되는 거지?”
진성현 대표가 확인하듯 물었다.
앙리 브레송 쪽에서도 도준이 휴식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도준의 작품 참여 가능 여부나 참여 의사를 먼저 확인하고 시나리오를 보내겠다고 해 왔다.
도준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네.”
대답하는 도준의 얼굴에는 기대감이 가득했다.
‘앙리 브레송의 시나리오라니…….’
물론 아무리 앙리 브레송의 작품이라고 하더라도 시나리오를 확인해야 작품 참여를 결정지을 수 있겠지만, 시나리오를 보게 된 것만으로도 떨리는 기분이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떨림이었다.
데뷔하고 처음, 의 한국 영화계의 거장이라 할 수 있는 박찬종 감독의 시나리오를 받을 때의 기분과도 같았다.
시나리오 자체도 궁금했고, 앙리 브레송 감독이 자신을 어떤 역할에 캐스팅하려고 하는 것인지도 궁금했다.
도준을 보며 진성현 대표가 기분 좋게 웃었다.
“꼭 네가 할 만한 작품이었으면 좋겠네.”
임지유 이사도 진 대표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웃으며 끄덕거렸다.
도준이 캐스팅에 응하게 되면 세계적인 감독의 작품에 출연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굉장한 화제가 될 것이었다.
도준의 필모그래피가 더욱 완벽해질 것 또한 자명했다.
그러나 단순히 대외적인 이유로 진 대표와 임 이사가 도준이 앙리 브레송의 영화에 참여하길 바라는 것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앙리 브레송의 시나리오를 떠올리는 도준의 눈이 기대와 흥분으로 반짝거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 *
그리고 이메일로 시나리오를 받아 본 도준은 잠시 아연해졌다. 시나리오가 도준의 예상대로 전부 프랑스어로 돼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다행히 시나리오는 영어판도 함께 첨부돼 있었다.
캐스팅을 위해 번역 작업을 해 둔 듯했다.
제목은 . 배경은 미래 시대였다.
‘역시 평범하지는 않은 소재…….’
도재는 생각하며 시나리오를 읽어 내려갔다.
은 22세기를 사는 남자 주인공 ‘K’와 여자 주인공 ‘M’의 이상하면서도 평범한 연애를 다루고 있었다.
여기서 느끼는 이상함이란 21세기를 기준으로 느끼는 이상함이었다.
다른 언어를 쓰는 이들이 아무런 위화감을 느끼지 않고 대화하며 일상을 공유하는 설정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배우가 꼭 프랑스인일 필요가 없었던 거구나.’
도준의 생각이 맞았다.
앙리 브레송은 남녀 주인공 중 한쪽만 프랑스 배우를 기용하고, 남은 한쪽은 타국의 언어를 쓰는 이를 캐스팅하고자 했다.
타국 배우를 캐스팅할 경우, 대사 또한 모두 타국의 언어로 번역해 배우는 자신의 모국어로 연기하게 되는 것이었다.
‘내가 출연하면 한국어가 나오는 영화가 되는 거야…….’
일단 그것에서부터 매력적인 설정이었다.
물론 연기는 힘들 수도 있었다. 상대방의 언어를 서로 모르는 데 아는 것처럼 대화해야 하니까.
그러나 그 점 또한 도준에게는 새로운 연기에 대한 도전 정신을 불러일으켰다.
시나리오는 남녀가 만나 사랑에 빠져 서로를 모두 이해하고 있다고 착각하다가 결국 오해로 헤어지는 과정을 무척이나 섬세하게 그리고 있었다.
시나리오를 끝까지 읽고 나니 설정이 더욱 이해가 됐다.
다른 언어를 쓰지만 대화가 가능한 독특한 설정은 주제 의식에 대한 거대한 메타포이기도 했던 것이다.
두 사람은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처럼 굴지만 관객은 결국 어쩔 수 없이 괴리를 느낄 테니까 말이다.
우유부단하고 심약한 듯하지만 중요한 순간에 누구보다 냉철한 ‘K’의 캐릭터 자체도 마음에 들었다.
‘생각해 보면 약한 캐릭터 연기는 해 본 적 없었어.’
외양적으로 얼굴에 선이 확실한 데다가 키도 크고, 말랐어도 탄탄한 몸이라서인지 한국에서는 이런 식의 배역이 들어온 적 없었다.
그러나 앙리 감독은 귀신같이 도준의 얼굴에 있는 부드럽고 여린 이미지를 찾아낸 듯했다.
시나리오를 모두 읽은 도준은 프린트된 시나리오의 끝부분을 버릇처럼 접었다.
그러고는 다시 첫 페이지로 돌아와 뚫어지게 영어로 된 지문들을 읽었다.
‘지문만 읽어도 앙리 감독의 감수성이 느껴져. 과연 이곳의 배경을 앙리 감독은 어떻게 상상하고 썼을까…… 궁금해’.
도준은 생각하며 다시 한번 시나리오를 읽기 시작했다.
자신의 답은 이미 나온 것이나 다름없었다.
‘출연하고 싶어!’
무척 연기하고 싶어지게 만드는 시나리오였다.
첫 장면에서는 어떤 표정을 지으면 좋을지 도준은 이미 얼굴 근육을 움찔거리며 연습해 보고 있었다.
그리고 앙리 브레송이 만들어내는 그림 속에 자신이 어떻게 배치되고 녹아드는지 알고 싶었다.
“하아…….”
잠시 숨을 고르며 마음을 가다듬은 도준은 진성현 대표에게 연락을 넣었다.
출연하고 싶다는 얘기를 하기 위해서였다.
* * *
도준이 휴식기를 가진 지 5개월.
도준의 차기작이 앙리 브레송 감독의 라는 소식에 이곳저곳이 들썩거렸다.
도준의 팬들은 오랜만에 듣게 된 도준의 차기작 소식에 심장이 벌렁거린다며 난리였고, 영화계는 세계적인 감독이면서도 폐쇄적이기로 유명한 감독과 작업하게 된 도준에 충격을 받은 분위기였다.
박찬종 감독이 앙리 감독과 함께 작업할 기회를 얻다니 ‘부럽다’고 했을 정도였으니 말을 다 한 셈이었다.
그렇게 떠들썩한 분위기 속에서 그리고 사전 미팅을 포함해 현지에서의 촬영 준비까지, 모든 준비를 마친 도준은 출국을 위해 인천공항으로 향하고 있었다.
“형, 이제 한국에서는 안 받은 상도 없으니까 이걸로 해외에서 상 타면 되겠죠? 앙리 감독은 작품 하면 무조건 칸 영화제 진출이라고 다들 난리던데요.”
“야, 규홍아. 너는 애 아빠가 됐으면 조금 더 진중해져라, 어? 설레발이 제일 무서운 거야, 어? 영화 촬영도 전인데 김칫국부터 마시면 어떡하냐!”
운전하며 규홍이 건넨 말에 조수석에서 진성현 대표가 핀잔을 주었다.
도준은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는 것을 들으며 뒷좌석에서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창밖의 날이 무척 맑았다. 푸른 하늘 속에서 양떼구름이 일정한 방향으로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도준도 그렇게 나아가고 있었다.
이번 작품의 촬영 현장은 어떤 분위기일지, 현장에서의 자신은 어떨지, 개봉 후 반응은 어떨 것인지.
매번 작품에 들어가기 전에 하는 생각은 비슷했다. 예측할 수는 있지만 확신할 수 없는 미래…….
불안과 기대가 공존했으나 도준은 알았다.
‘즐겁겠지.’
꿈을 꾸던 모든 것이 현실이 되어 가는 매일이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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