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108
107 내분(內紛)(1)
“훌륭한 아드님을 두셨습니다.”
“……과찬의 말씀입니다.”
자식의 성공을 바라지 않는 부모는 없을 테지만.
아들에 관한 과분한 칭찬에도 강우경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대화할수록 내가 알고 있는 아들이 맞나 갸우뚱했다. 또한, 의외의 방문자는 문파의 호법을 맡고 싶단다.
‘밖에서 대체 뭔 짓을 하고 다니는 것이냐!’
거구의 사내는 강우경이 감히 바라보지도 못할 그런 존재였다. 송호문의 이름값보다 훨씬 위상이 높았다. 강호 전체를 따져 봐도 수위에 드는 상승의 무인이 어째서 이런 조그만 문파의 호법을 맡겠다고 자청하냐고.
누가 봐도 이상하잖아.
상식적인 대답을 바란다면, 의도를 의심해야 했다. 그러나 강우경은 아들의 돼먹지도 않은 무력을 익히 알고 있었다. 말로는 아버지를 위한다면서, 쉬지 않고 갈구었던 불효자를.
끄응!
골이 아프다.
밖으로 싸돌아다녀서 근래에 편안했거늘, 감당하기 버거운 존재를 보내 아비를 고달프게 만들었다. 이러면 자신에게 뭔가 좀 있어야 하잖아. 천주신창이 아무 문파의 호법이 될 리 없으니까. 그러다 실력이 뽀록나면 개망신은 필연이었다.
아주 귀찮게 되었다.
그러나 거절은 불가하다.
곽운백은 신주이십일강을 제외한 절대강자, 육성의 일인 천주신창이다. 그의 이름값이 가진 무게를 경시할 자가 있을까? 도대체 이런 자를 어떻게 끌어들인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도량이나 인품은 아니겠지?’
무공은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해졌을지 몰라도, 하찮은 껍데기에 지나지 않았다. 내실은 무척이나 속 좁고 쪼잔해서 내 아들이 분명했다.
“진이하고는 어떻게 알고?”
“생명의 은인입니다. 이런 말 제 입으로 하긴 민망하나, 저는 육성의 일인입니다. 그럼에도 내세우지 않는 인품은 감히 따를 수가 없더군요.”
그럴 리가?
도대체 누굴 만난 거야?
제 아들은 넓은 사람과는 거리가 멉니다.
혹시 다른 사람하고 착각을 하지 않았나 의심이 들었다.
말 그대로 해석하면, 사기꾼이었다. 아들놈이 멀쩡한 대협에게 사기를 치고 다닌 것이다.
그러면 자신은 뭐가 돼?
사기꾼의 아비가 되잖아. 그렇다고 내 아들은 사기꾼이니, 어서 냉수 먹고 정신 차리라고 할 수도 없었다.
“무공은 또 천외천의 경지에 이르렀더군요. 아, 비밀은 꼭 지키겠습니다.”
“좋게 봐주셔서 고마울 따름입니다.”
비밀이라고 하기도 모호했다. 다 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알면 속 터지는데, 보통은.
그리고 사태가 심각하다.
아들의 무공이 생각한 것 이상으로 대단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좋아해야 하는 건가?’
아비의 무공을 봐준다는 핑계로 들들 볶았던 세월이 상기되었다. 말로는 삼초식만 버티면 끝낼 거라고 했지만, 어쩌면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드륵!
아내가 차를 가지고 왔다. 오룡차의 일종인 철관음이었다. 그다지 차를 선호하진 않아도, 아내가 좋아하기에 같이 마시곤 했다.
“입맛에 맞으실지 모르겠어요.”
“향이 아주 좋습니다. 복건성의 안계에서 생산한 철관음이군요.”
“향만으로도 알아보세요?”
“저도 즐겨 마시는 찹니다, 부인.”
“다행이네요. 그럼 편히 대화 나누세요.”
아내는 정중히 자리를 내어 주었다.
강우경은 이 사람을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을 내려야 했다.
장로들도 떨떠름해 했었다. 장로직을 내어 준다면 최고 장로의 자리를 내어 주어야 했다. 호법으로 만족한다고 하니 안심하는 눈치였다.
“문주께선 복을 타고나셨나 봅니다.”
“예?”
“현숙한 부인과 훌륭한 아들을 두지 않았습니까? 지금까지 무공만 수련했던 지난 시절에 회한이 드는군요.”
“항상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틀린 말은 아닌데, 정정은 하고 싶다. 아들의 본모습을 알면 저러지 않을 텐데.
그렇다고 아비로서 아들의 흉을 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렇게나 아들에게 콩깍지가 제대로 씐 인간한테 차마 입을 못 떼겠다.
‘우리 아들은 망나니…… 끄응!’
강우경은 적당히 둘러대고 기거할 곳을 알려 주었다. 대화가 길어져 봤자 흥미롭진 않았다.
“잠시 문파를 둘러봐도 되겠습니까?”
“아무렴요. 얼마든지 둘러보십시오.”
“고맙습니다.”
“사람을 붙여 드리겠습니다.”
곽운백은 강 문주에게 허락을 받은 후 방에서 나와 문파의 내부를 둘러보았다.
눈에 띄는 무인은 많지 않았다.
강 문주의 성취도 무진과 비교하면 많은 차이가 있었다. 아들이 아비를 뛰어넘어 괄목상대할 만한 성취를 얻은 것이다. 이런 작은 문파에서 그와 같은 무인이 나오다니 실로 대단했다.
하나, 그러한 판단은 착각임을 깨달았다.
내원의 훈련장.
한 소년이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기본에 불과하나, 공수의 조화가 놀라울 정도로 완벽했다. 특히 발의 사용이 능수능란하다. 보통 저 또래의 무공을 익힌 아이들은 현란한 동작에 힘을 쏟기 마련인데, 보법을 가다듬고 있었다. 보법이야말로 모든 무공의 근간이었다.
그럼에도 실천하기는 또 지난하다.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천지인의 삼재검법이 시중에는 흔하다고 해도, 그 정수를 깨닫는 자는 드물었다. 이치를 알고, 정수를 실천했다.
하늘과 나.
나와 대지.
삼위일체의 신위.
착!
소년이 동작을 멈추고 자신을 바라보았다.
‘허어, 기운을 알아차렸구나.’
경지에 이를수록 공력의 운용이 미세해진다. 작은 차이를 만들고, 흔적을 지울 수도 있다. 완벽히 차단하진 않았더라도, 그 미세한 기척을 알아차린 소년의 성취가 군계일학이었다.
“누구세요?”
“네가 태진이구나. 나는 곽운백이라고 한다.”
“혹, 천주신창 곽 대협이세요?”
“그렇단다.”
곽운백은 무진과의 관계를 밝히며 태진의 성취를 칭찬했다.
태진은 아버지에 대해 이렇게나 좋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밖에서 아는 사람이 늘어 갈수록 뒷담화도 많아졌다. 사람들의 태도가 극과 극이었다.
‘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거예요?’
아버지가 없는 평화로운 문파에서 잘살고 있는 태진은 때깔이 좋았다. 하지만 훈련을 게을리하진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왔을 때 철호 형보다 부족하면 지옥이 시작된다. 그러니 언제나 성취에 목말랐다. 곽 대협의 칭찬에도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심지가 보통 굳은 게 아니구나.’
속내를 모르는 곽운백은 칭찬에도 흔들리지 않는 태진이 다르게 보였다.
“오빠!”
태진을 부르며 달려오는 아이.
인간인지 인형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문파의 귀여움을 한 몸에 받고 있으리라 짐작했다.
“제 동생입니다.”
“강미주예요, 할아버지!”
낯설 텐데도 두 손을 뻗은 채 똘망똘망한 큰 눈으로 안아 달라고 팔을 뻗자 곽운백은 감히 거절하지 못했다. 더욱이 처음 들어 보는 할아버지라는 단어가 오늘따라 심금을 울렸다.
‘또 시작이네.’
미주의 여우짓을 알고 있는 태진으로서는 입맛이 썼다. 저 손짓, 발짓, 표정까지 소유욕의 표본이었다. 반드시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버리고 말겠다는.
그렇다고 아무나 탐하진 않는다. 어떻게 아는지 몰라도, 본능적으로 이득을 잘 가렸다.
‘곽 노사를 알고 있는 건 아닐 테고.’
천주신창을 할아버지로 만들어 손녀의 사랑을 받고 마는 미주의 역량에 태진은 혀를 내둘렀다. 저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라고 해야 할까? 어떤 측면에선 무공보다 훨씬 무서웠다.
보는 순간 무장해제를 당하고, 무방비 상태에서 기습을 가한다고 생각해 봐라. 저게 보기엔 어리고 귀엽게 느껴질 뿐이지, 실상은 요괴였다.
그러나 태진은 진실을 밝히지 못했다.
‘나만 죽는 거지.’
착한 동생을 험담하는 오빠로 낙인이 찍힐 테고, 설령 진실이라고 해도 아버지가 날 가만두지 않을 거다.
“혈이 막힘이 없으며 공력이 이렇게나 정순하다니. 허허허, 네가 나보다 낫구나.”
“미주는 그저 최선을 다할 뿐이에요.”
나왔다, 제삼자 화법.
자기 이름을 내세워 귀염을 배가하는 수법이었다. 보통 사람은 해선 안 되는 금단의 화법이기도 하다. 아무나 쓰면 역겨움에 토를 한다. 저것도 미주가 쓰니까 잘 어울리는 거지.
철호 형이 ‘나 철호는요, 열심히 훈련할 뿐이에요!’라고 말한다고 상상해 봐라. 십오 년 전에 먹은 간장으로 조림 잘된 메추리알을 전부 토해도 구역질이 멈추지 않을 거다.
‘왜 저딴 게 먹히는 거지?’
태진은 자신이 유행에 뒤처지고 있는 게 아닌가 하여 예전에 한 번 시험 삼아 해 봤다가 아버지한테 토 나올 정도로 처맞은 적이 있었다. 역시 정상적인 사람에겐 역겨운 화법이었다.
“할아버지, 미주 잘하죠?”
“기본이 확실하구나.”
얼씨구, 누가 보면 친할아버지와 친손녀인 줄 알겠다. 피는 물보다 진해야 마땅하거늘, 미주는 오늘 처음 본 사람도 자기 할아버지로 만들어 버리는 재주를 타고났다.
어슬렁, 어슬렁!
미주의 주변을 맴도는 고양이가 있었다. 항상 미주의 근처를 철두철미하게 어슬렁거렸다. 혹, 위협이 닥치면 ‘어흥!’ 했다. 저것도 미주 닮아서 그런지, 낯간지러운 짓을 잘도 하네.
“소예요. 아빠가 데리고 왔어요.”
“호오, 영물이구나.”
겉으로는 솜털이 보슬보슬한 살찐 고양이처럼 보이나, 곽운백은 소가 영물임을 간파했다. 나른한 노란 두 눈에서 맹수의 기질이 언뜻 비쳤다.
‘자식들을 아주 잘 키웠군.’
오늘따라 가정을 꾸리지 않았던 자신의 삶이 유난히 상기되어 곽운백은 한숨을 흘렸다. 그러나 살갑게 안겨 오는 미주를 보고 있자니, 그런 회한도 눈 녹듯이 사라졌다.
“곽 대협을 뵙습니다.”
“자네였군.”
태진을 가르치기 위해 훈련장으로 온 무호의 평온한 기도에 곽운백은 내심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형제가 나란히 벽을 넘은 고수였다.
“어떤가, 한 수 어울려 보는 게?”
“제가 좋은 장소를 알고 있습니다.”
무호에게도 천주신창과 같은 고수와의 대결은 바라는 바다. 문파에 자신에 비견되는 무인이 없었다. 형이야 워낙 말도 안 되는 괴물이라 자신이 얼마나 강해졌는지 확인하는 잣대로는 무용했다.
‘형, 들어오지 마.’
가문을 위해서.
속내는 날 위해서지만.
***
구름 한 점 없이 높고 푸른 하늘.
무진은 처마에 누워서 쏟아지는 햇볕을 쬐고 있었다. 가끔은 햇살에 몸을 데워야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다. 나른하니 마음도 풀어진다.
경침에 머리를 대고 대자로 누웠다.
식사 시간이 되면 경종이 울렸고, 네 명의 시비가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상을 차려 왔다. 사천의 특산물을 매운 양념으로 적절히 조리하여 입맛을 돋웠다.
“대접이 좋긴 한데, 시선은 편치 않네.”
무진은 귀빈실로 쓰이는 진원각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최근 받아들인 귀빈이 없는지라, 혼자서 통째로 쓰고 있었다. 북적거리지 않고 조용해서 좋기는 했다.
파파팟, 타앗!
진원각의 넓은 공터에선 철호가 권공 수련에 매진하고 있었다. 남의 가문에서도 자기 할 일을 꾸준히 하는 철호였다.
몰라보게 달라진 성취에 자만할 법도 하지만, 태진을 언급할 때마다 불꽃을 태웠다.
“발을 쓸 때 균형도 중요하지만, 네 권공의 성향을 최대한 이용해야지.”
균형과 중도가 언뜻 좋은 말처럼 들리지만, 무공이 어디 균형만으로 완성되나. 파격과 변수도 무공의 완성에 중요하다.
무진은 눈을 감고 있음에도, 소리만으로 철호의 운신을 파악하고 있었다.
가는귀가 실하다.
훈련할 때만큼은 철호도 불만을 토로하지 않았다. 사부는 장단점을 귀신같이 파악해서 적절히 방향을 제시했다. 인정하긴 싫지만, 첫 사부와는 가르침의 질이 달랐다. 단순하면서도 핵심을 관통했다.
“상대를 그려 보고,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수단을 찾아. 사자는 맹수지만 약점을 노리지. 무턱대고 공격하진 않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