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of living again RAW novel - Chapter 132
132. 리솔루토 (Risoluto, 결연하게) -2
“히사이시 조… 라고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지긋한 중년, 홍 교수는 되물었다.
아직 결선 지정곡이 공개되기 사흘 전.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인해 사라진 심사위원, 곽재윤의 빈자리가 아직 채워지기도 전이었지만 심사위원들은 모였다.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 그 때문에 본선과 결선 사이의 휴식이 단 7일 주어진다는 전통은 이미 무너진 지 오래였다.
오랫동안 ‘한국 종합 콩쿠르’의 기획을 맡아온 클래식 협회가 기자들의 입방아에 오르고 말았으니 이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리라.
일정은 꼬였고, 계획은 무산되었다.
덕분에 참가자들에게 과하게 주어지게 된 휴식 시간,
물론 이를 허투루 쓰고 있을 참가자는 없겠지만 그건 그것대로 문제였다.
지금껏 이 콩쿠르는 ‘프로를 벼려내는 곳’이라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예선에서 같은 곡을 연주하게 했던 난제도,
본선에서 반대 성향의 오케스트라를 붙여준 이유도,
모든 참가자가 ‘그럼에도’ 좋은 연주를 들려주리란 믿음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반대로 이젠 그 믿음과 믿음에 ‘부응’해낸 참가자들의 실력이 문제였다.
변별력.
심사위원들은 입장상 이유가 어찌 되었건 참가자들의 승패를 갈라야 하며, 결선 진출자들을 1위부터 4위로 구분해야 한다.
하지만, 이미 심사위원의 예측을 가볍게 상회해버린 세 천재와 피아니스트 박의범의 승패를 어떻게 나눌 수 있다는 말인가.
또, 나눌 수 있다고 하면 뭘 근거로, 어떻게 평가를 하는 건가.
이에 대해서 절반이나 되는 심사위원들은 쉬운 길을 논했다.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를 모델 삼아 그들의 평가 기준을 차용해보는 건 어떠실는지요.”
“3대 콩쿠르라면 뭐···.”
그 쉬운 길이란 단연,
대중들도, 피아니스트들도 ‘한국 종합 콩쿠르’보다 상위라 생각하는 세계 3대 콩쿠르의 평가 방식을 따르는 것.
“좋지요. 어차피 저희 ‘한국 종합 콩쿠르’는 세계무대로 통하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라 불리지 않습니까? 저는 하상국 심사위원의 의견에 찬성합니다.”
그리고 세월의 풍파를 전신에 휘감은 여타 다른 심사위원들도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었다.
또, 말이다.
한국 종합 콩쿠르는 매해 열린다.
매년, 상위권에 드는 피아니스트를 모아 매번 비슷한 형식과 같은 규칙으로 반복되는 콩쿠르.
강성욱 교수가 이다지도 거부하던 그 뻔한 대화가 또다시 이 심사위원단 사이에는 오간다는 말인가.
‘작년도, 재작년도, 그 전해에도 그랬다.’
강성욱 교수는 무표정으로 생각했다.
그리고는 속으로 소리 없는 탄식까지 흘렸다.
마치 입속에 나뒹구는 혓바닥을 씹어버린 것처럼, 반복되고 또 반복되길 반복하는 이 광경에서···.
더없이 진한 비린내가 느껴졌다.
“올해도 말입니까?”
정신을 차리자, 강성욱 교수는 이미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낸 뒤였다.
“…?”
“…예?”
지금껏 조용히 고개만을 끄덕이던 강 교수의 발언에 심사위원들은 당황한 듯 입을 꾹 닫았다.
강 교수는 순간적으로 자신이 실언했음을 깨달았지만, 기이하게도 올해만큼은 말을 물리고 싶지 않았다.
그는 오직 자신을 바라보는 주위의 심사위원들의 얼굴을 쭉 훑어보았다.
이젠 ‘중년’을 넘어 ‘고령’이라 불려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가 된 동료들의 얼굴.
언젠가 함께 무대에 올라 세계를 뒤엎어보자는 꿈을 품고 하하, 호호 웃고 떠들던 그들은 이젠 그냥 꼬부랑 늙은이가 다 되어있었다.
“또 쇼팽, 퀸 엘리자베스,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의 심사위원들 흉내로 올해의 공쿠르를 마무리 짓자는 겁니까?”
말을 하다 보니 다소 거센 억양이 되어버려서 강 교수 자신도 적잖게 놀라고 말았다.
하지만, 무려 몇 년이나 꾹 눌러뒀던 마음들이 이제야 형태를 갖추고 말로 나오는 것이라는 걸, 강 교수 스스로가 아주 잘 알았기에 멈추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목소리는 더, 더 강해졌다.
“난, 이토록 가슴이 뛰는 심사를 해본 게 몇 해만인지 생각도 나질 않습니다.”
3대 콩쿠르의 심사기준을 그대로 따른다는 건,
얼핏 보기에 퍽 합리적인 것처럼 보일 순 있지만, 현실은 그보다 더 비겁하고 옹졸했다.
그들은 싫은 것이다.
자신의 판단이 다른 전문가들과 다르고, 대중과 달라, 욕을 먹고 그 판단에 책임을 지는 상황이 말이다.
그렇기에 이미 존재하는 심사기준을 그대로 따와 적용하려 든다.
그럼으로써 심사위원인 자신에게 돌아올 화살은 사라지는 것이다.
사회적 위치가 올랐고, 이뤄낸 업적이 쌓였다.
그렇기에 한 마디, 한 마디에 신중을 기하고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건 알겠다.
알겠지만, 강 교수는 누구보다 그들의 마음을 잘 알기에 더 공감할 수가 없었다.
“벌써 몇 해 쨉니까. 언제부터 우리 ‘한국 종합 콩쿠르’가 해외로 나가는 관문이 됐냐는 말입니다.”
“가, 강 교수님. 저희 말은 그런 게 아니지 않습니까.”
“올해는 너무 이례적이니까요.”
이례적,
분명 그 단어는 고등학생 1학년의 나이로 결선에 오른 세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리라.
하지만, 매년 ‘전형성’을 위해 타 콩쿠르의 심사기준을 따와 이용해놓고 올해마저 ‘이례적이기에’ 타 콩쿠르의 심사기준을 사용하겠다니.
이건 너무 편리한 헛소리이지 않은가.
“시대는 변하고 있습니다.”
주로 셋,
아니, 애초에 재능과 자본이 군림하던 이 시장에 노력의 화신으로 나타난 박의범도 어쩌면 새로운 바람이라 말할 수 있으리라.
“새로운 바람은 불어오는데, 우리가 옛것에만 집착해 그들의 길을 막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요?”
강성욱은 떠올렸다.
1차 예선에서 성현이 보여주었던 가능성.
무너지던 최지은은 다시 일어섰고,
기본기만 철옹성같이 쌓아 올렸던 김민호는 그 굳건한 성문을 열었다.
모두 변하고 있다.
2차 예선과 본선에서도 그랬다.
백중철이 셋이 되었을 때의 충격이, 우승 후보의 도발을 받아넘긴 성현이 역으로 그 맹수 같은 남자를 쓰러뜨리는 모습을 봤을 때, 강 교수는 솔직히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신이 났었다.
지금껏 없던 충격적인 사건이 연이어 터지고, 기사들이 입에 거품을 물만큼 세상은 역동적으로 요동치고 있다.
그런데도 변하지 않는 이들은···.
“변하지 않는 이들은 이제 우리밖에 없는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프로를 벼려내는 콩쿠르’ 같은 걸 논할 수 있겠습니까.”
자조적인 웃음과 함께 끝맺은 강성욱 교수의 말.
올해도, 작년처럼 간단히 넘어가려던 모든 심사위원은 쥐죽은 듯 입을 다물었다.
‘만일 이번 결선 진출자가 세 천재···. 그리고 지금껏 부정당하고 부정당하길 반복하던 박의범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조용해지지도 않았겠지.’
즉, 이들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는 소리다.
항상 마법 같은 연주로 듣는 이를 놀라게 하는 성현과 최지은, 김민호, 박의범을 보며, 뭔가 변하고 있다는 걸.
그 때문일까. 긍정도, 부정도 하지 못하고 있는 심사위원들, 숨 막히는 적막함만이 감도는 그 상황에서, 침묵은 의외의 존재로 인해 깨졌다.
“대안은 있으십니까? 강성욱 교수님.”
목소리는 강 교수의 앞에서 들려오질 않았다.
오히려 뒤,
환기를 위해 조금 열려있던 문을 열며 등장한 한 남자.
탁,
둔탁한 목제 지팡이의 소음을 내며 천천히 다가오는 존재.
비교적 나이가 어린 편의 심사위원은 결국 참지 못하고 나타난 이의 이름을 크게 외치고 말았다.
“배, 백건오. 선생님!?”
그는 ‘백건오 한국 종합 콩쿠르’라는 이 콩쿠르의 총 책임자이자 명예 이사.
1세대 피아니스트라 불리는 전설적인 존재. 백건오 본인이었다.
“심사위원 자리가 비어 곤란하다고 들어서 말입니다. 신입 심사위원 백건오라고 합니다. 하하하하!”
등장과 함께 호탕한 웃음을 내지르는 백발의 백건오, 허나, 심사위원단은 모두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거기서 용기를 내어 입을 여는 사람. 그가 강 교수였다.
“대안이라면 있습니다. 백 이사님.”
“지금은 신입 심사위원입니다만, 뭐 좋습니다. 말해주세요. 강성욱 교수님이 생각하시는 그 새로운 바람에 걸맞은 심사 규칙과 결선곡 말입니다.”
백건오의 말은 하나, 하나에서 타인을 위한 배려와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엿보였다.
그럼에도 느껴지는 위압감, 보통의 사람이었다면 제대로 입도 때기 힘들었으며 얼토당토않은 소리를 했다간 그에 상응하는 응징이 날아들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강성욱 교수는 잠시 눈을 감고 자신을 이토록 능동적으로 움직일 용기를 준, 한 참가자의 얼굴을 떠올리며 말했다.
“히사이시 조입니다.”
그의 발언에 수많은 이들이 눈을 크게 떳으며,
“히사이시 조… 라고요?”
심사위원이던 홍 교수는 완전히 당황한 기색으로 그렇게 되묻기까지 했다.
“호오?”
허나, 심사위원들과는 달리.
긍정도, 부정도, 폄하도, 존중도 아닌 무언가를 입에서 흘려낸 백건오···.
그의 짧은 목소리로 인해 장황한 침묵이 흐르는 순간,
“끝까지 들어볼까요?”
그는 말했다.
그 한마디, 고작 한마디였지만, 다름 아닌 백건오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기에 사람들은 직감할 수 있었다.
결선의 방향이, 지금까지와는 많이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지도 모르겠다고 말이다.
강 교수의 이야기는 길었다.
길었지만, 정갈하고 귀에 듣기 좋아 딱히 피로감은 느껴지지 않는 그런 목소리로 말을 이어가는 강 교수.
이윽고, 강 교수의 제안과 설득이 적절히 배합된 의견이 마침표를 고하자 백건오는 한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굳어 있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흔히, 영재는 주위를 바꾸고 천재는 세상을 움직인다 합니다. 이미 몇 년이나 정체되어 있던 여러분의 마음을 움직인 시점에 사실 제 대답은 정해져 있었죠.”
“그, 그렇다 하심은···.”
“이성현이라···. 저도 그 아이가 강 교수님이 제시한 그 난관을 과연 넘어올 수 있을지가 궁금해졌습니다. 재미있는 콩쿠르가 되겠습니다. 정말로요. 하하하하!”
백건오의 호탕한 웃음에, 강 교수는 그제야 얼굴에 긴장을 풀고 새삼 자신이 얼마나 큰일을 벌인 것인지 깨닫고 말았다.
‘백건오 한국 종합 콩쿠르’의 방침을 바꾼다는 건,
단순히 이번 결선에 국한된 이야기로 끝날 일이 아니다.
비유하자면 국내 수많은 대학의 신입생 입시 요강들이 ‘서울대’의 영향력을 적잖게 받아 작성되는 것처럼.
‘백건오 한국 종합 콩쿠르’의 이 작은 변화는 앞으로 다양한 국내 콩쿠르에 크고, 작은 영향을 끼칠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콩쿠르의 기준선이 변화한다는 건.
레슨의 형식 수정으로 이어질 것이며,
레슨의 변화는 다시 새롭게 음악을 배우고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영향을 준다.
그렇게, 국내의 클래식계는 변할 것이다.
그리고 그 변화의 시작점을 찾아 나선다면, 백이면 백 한 고등학생을 마주하게 되겠지.
자신보다 먼저 이 업계에 뛰어들어, 이미 ‘천재’라 불리던 동갑내기의 두 사람까지 바꿔내고, 이젠 자신을 둘러싼 환경인 ‘클래식계’ 자체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은 한 고등학생.
이성현을 말이다.
강 교수는 성현의 오랜 팬이었기에 더더욱 이성현이라는 아이의 영향력과 능력에는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언제였지···.’
그리고 강 교수는, 반년도 더 전에 읽었었던 한 기사가 갑자기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김백찬’이라고 하는, 이 업계에서는 나름 유명한 기자가 써놓은···.
기사라기보단 에세이에 가까운 그 글귀 속에서 ‘성현’은 향후 3년 내로, 다시 말해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대한민국 클래식계에 큰 파문을 일으킬 거란 문구가 있었다.
당시에는 성현의 팬을 자처하는 강 교수조차 읽는 즉시 너무 과대평가한 것이라고 기사글을 일축했었는데, 그게 지금 현재에 이르러서는 반대가 되었다.
‘그게 과대평가가 아니라 과소평가였을 줄은···.’
대체 누가 알았겠는가.
현역의 피아니스트 중 단연 으뜸으로 손꼽히는 김정석도 아니고, 천재를 선점하고 엘리트를 양성하는 M스튜디오도 아니고, 다수의 인재를 받아 수없이 많은 연주자를 길러내는 A스튜디오도 아니고, 베테랑이라 불리는 피아니스트들도 불가능했으며, 5년 넘게 천재라 불리던 김민호와 최지은이 꽃피우기도 전에, 새로운 천재가 나타나 녹슬어 있던 시대의 톱니바퀴를 굴려버릴 줄이야.
정말, 정말로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성현이라는 천재의 등장과 그가 일으킬 파문의 크기를 말이다.
***
12일.
결선 지정곡 두 곡과 내가 따로 선택한 한 곡을 연습하라고 주어진 기간은 고작 12일이었다.
작년까지의 일정대로였다면 정확히 2주인 14일이 주어졌겠지만, 이번 ‘클래식 협회’ 사태로 인해 예상보다 긴 휴식 기간을 줬기에 이틀이 줄어든 것이겠지.
하지만, 다행히 내게 그런 일정들은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
“이번에는 느낌이 아주 좋았어. 우물 같다고 해야 하나? 울림이, 엄청 길고 깊더라고!”
바로, 결선이 고작 이틀 남은 오늘까지 내 옆에서 적절한 감상을 들려주는 최윤설 선생님이 계셔주신 덕분이었다.
지난 11일간, 선생님의 감상은 점점 비유로 발전해나갔다.
넓은 음형과 다양한 주법이 어지럽게 흩뿌려져 있을 당시에는 얕은 바다나 초원 같은 것들이 주로 언급되었는데, 이제는 우물, 동굴 같은 비유들이 더 많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선생님의 평가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정확한 편일 테니.
분명, 내가 나아가는 방향은 틀리지 않았으리라.
이제와서 내 오리지널리티를 되찾겠다고 다짐한 걸 후회하려 해도 늦었다.
이제 내게 남은 일은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려나가는 일뿐이겠지.
오케스트라와의 합동 연습 여섯 번.
선생님과의 1대1 연습 열 번.
거기에 마 원장님에게 점검을 받기를 두 번.
결선 지정곡이 공개되기도 전부터 빠듯하게 지켜왔던 나의 치밀한 연습 일정은 결선 당일이 고작 이틀 앞으로 다가온 현재, 드디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하.”
너무 힘들어서 나온 한숨인지, 선생님의 도움으로 차근차근 완성되어가는 주법에 대한 감탄인지.
내 안의 어느 깊숙한 곳에서부터 뭔지 모를 진한 숨결이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감사합니다!”
무려 자정까지.
요 나흘간은 자신의 일정에 맞춰 움직여준 최윤설 선생님이 진심을 담아 고개 숙여 인사를 드렸다.
D-1.
그리고 결선을 하루 앞둔 다음 날.
나는 온종일 잠을 잤다.
그러면서 왠지 모르게 기억에 선명히 남는 긴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서 나는, 마흔이 넘은 전생의 내가 되어있었고, 눈앞에는 현재보다 훨씬 더 늙으신 최윤설 선생님이 계셨다.
무슨 대화를 나누는 건지.
목소리가 도통 내 귀에는 닿질 않아 제대로 듣지는 못했지만, 즐거운 미소를 짓고 있던 걸 보면, 분명 나쁜 꿈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과거로 돌아오지 못한 채 그 삶을 그대로 살아갔다면 아마도 그런 생활을 하고 있진 않았을까.
졸업 후, 10년이 족히 넘도록 찾아뵙지 않은 이 나쁜 제자가 용서를 받아, 다시 선생님과 사이좋게 지내는 그런 세상이 어딘가에는 존재하지 않을까.
너무 선명하게 기억에 남았기에, 나는 그 꿈이 부디, 과거로 돌아오지 못한 또 다른 내가 도달했을 세상이기를 바랐다.
주르륵,
긴 꿈에서 깨어난 나는 눈물을 흘렸다.
부디 그런 세상이 어딘가에는 있기를 바라며···.
기쁨의 울음이 터진 것이다.
“어. 그러고 보니···.”
잠에서 깨어나기 적진에, 세월의 풍파를 그대로 맞으신 선생님이 뭔가를 내게 말해주셨던 것 같은데.
“음···.”
입 모양은 그 기억이 나는데, 왠지 제대로 된 단어가 떠오르질 않았다.
그렇게 행복하지만, 어딘가 조금 찝찝한 마음으로 맞이한 그다음 날.
결선 당일.
나는 아주 이상한 상황을 마주하고 말았다.
강성욱 교수.
과거, 대한민국에 피아니스트를 손꼽아 보라면 언제나 양손 안에 들었던 대단한 연주자이다.
그런데 그런 어마어마한 존재가 결선 리허설을 위해 대기실에 앉아있던 나를 찾아온 것이다.
“미안하구나. 성현아 이번 결선은 너무 불리한 형식이 되고 말았어···.”
거기다, 고개를 슬쩍 숙이며 영문도 모를 폭탄 발언을 터트리는 강성욱 교수.
곧 리허설 차례였던 내가 할 수 있는 반응은 오직 하나였다.
“네?”
대체 갑자기 찾아와서 무슨 소릴 하는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