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198
약먹는 천재마법사 198화
조력(2)
“펠릭스를 보낸 이유도 뻔해. 이 아저씨는 용병단의 업무를 총괄적으로 지휘하고 있으니까. 적당히 우리의 면을 세워주면서 깔끔한 거래가 가능한 상대를 보낸 거야.”
“……아무튼 그런 셈이네.”
헛기침을 한 펠릭스의 말에 레녹이 고개를 끄덕였다.
말하자면 다이크와는 이미 이야기가 끝났고, 안타레스와는 구체적인 의견조정이 필요한 단계라는 것이 아닌가.
제니가 단시간에 이만한 협력자를 모집한 것도 놀라운데, 벌써 일이 이만큼 진척이 되었다는 것도 의외다.
다이크 쪽에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이 일에 냉큼 끼어들었는지는 대충 예상이 간다.
시거 뱅 갱단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레녹의 실력과 무기사업을 독점하면서 얻은 이득이 상당했기 때문에, 계산기를 두드려 보고 슬쩍 레녹 쪽에 발을 들이밀기로 한 것이다.
어차피 이 행동으로 카르텔과 사이가 안 좋아지더라도 무기사업이 위협받을 일은 없고, 잘만하면 오히려 상대 쪽 파이를 빼앗아올 수 있다는 계산이 선 것이겠지.
레녹이 알고 있는 다이크의 기획실장, 파노아의 성격을 생각할 때 일견 영악하게 느껴지면서도 다분히 합리적인 결정.
킬리안만 달랑 보낸 것도, 따지자면 킬리안 혼자만의 독단으로 시치미를 떼기 위한 속셈이겠지.
그 생각이 뻔히 보이기는 했지만 나쁘지 않다.
킬리안의 실력 자체는 어디서든 발목을 잡을 수준이 아니니, 손이 필요한 일에서라면 도움이 될 터.
문제는 안타레스 쪽이었다.
업계에서도 최정예에 속하는 실력자들을 거느린 용병단이 이 일에 마냥 부정적인 대답을 들려주지 않은 것도 놀라운데, 거기에 펠릭스만 한 용병이 직접 와서 거래를 하고 싶다고 할 줄은 몰랐으니,
그만큼 레녹과 제니에게 승산이 있다고 보는 것일까.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군. 그러기 위해서 온 거겠지?”
“그 전에, 자리를 비켜줄 사람이 있는 것 같은데.”
펠릭스는 그렇게 말하며 날카로운 눈매로 킬리안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킬리안이라고 할지라도 여기서 초를 칠 수는 없었는지, 혀를 차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 한창 일이 바쁘다면 어쩔 수 없지. 난 아래쪽에 내려가 있겠어. 지금 밖에 바쁘게 돌아다니는 용병들에게 합류하면 되겠지?”
눈치 빠르게 자리에서 일어선 킬리안이 사무실을 떠나고, 세 사람만이 남았다.
그제서야 펠릭스의 입이 열렸다.
“우선 내 입장부터 말하는게 좋겠군. 나는 자네들이 시작한 사업이 굉장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네.”
“…….”
레녹은 대답하는 대신 제니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사업에 관한 내용은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레녹이 자치령에 가 있는 동안 일어난 일이다.
물류 유통에 관해서 그녀가 손을 대기 시작했다는 것 말고는 들은 이야기가 아무것도 없었다.
“도시 간 무역에 관여하던 사업자들을 투자자로 삼아서 음지의 물류 유통사업을 가로채겠다는 발상 자체는 굉장히 획기적이야. 특히 카이세의 혈육이었던 제니가 직접 주도하는 일이라면 더더욱 그렇지. 스캐빈저들이 지금은 그 일을 담당하고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놈들이 삼두령의 충실한 개였기 때문에 받아먹은 콩고물이었을 뿐……. 제대로 각잡고 사업을 시작한다면 파이를 가져오는 건 순식간일 거야.”
펠릭스는 그렇게 말하며 근육질의 팔로 턱을 괴었다.
“문제는 이 바닥에서 많은 이들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점일세. 그리고 그건 카르텔도 마찬가지지. 자네들이 사업을 시작하자마자 손을 쓰기 시작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야.”
“물자 유통 사업의 성공을 확신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견제를 하고 있다 이건가?”
“그렇지. 그래서 제니의 제안이 고민이 많이 돼. 여기서 한쪽의 편을 들어준다면 이 판이 수습되기 전까지는 함께 해야 할 테니까. 나는 가급적이면 손을 대고 싶지 않았지만…….”
펠릭스는 그렇게 말하고 테이블에 놓인 커피잔을 단번에 부리 안쪽에 털어넣었다.
상당한 거구인 그의 몸에 들어가는 카페인으로는 간에 기별도 가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우리 보스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야.”
“…….”
여기서 펠릭스가 말하는 보스가 누구인지는 굳이 들을 필요도 없다.
이 드넓은 거대도시에서도 용병업계의 정점을 차지한 안타레스 사무소의 소장.
외부활동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는데도 그 얼굴을 모르는 이가 없고, 그 실력을 확신하지 않는 이가 없다.
용병단장 안타레스.
딜런과 밀라. 펠릭스와 같은 걸출한 용병들을 거느린 단장이 이제 레녹을 향해 시선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펠릭스. 요점만 간단히 하죠.”
제니가 입을 열었다.
“그쪽이 우리 사업을 굉장히 긍정적으로 평하고 있다는 사실은 고맙지만, 원하는 게 뭔지 말을 해줘야 우리도 협상이 가능하지 않을까요? 이쪽 사업이 공식적으로 상장될 때 지분양도를 원하나요?”
“…….”
“그쪽이 우리 사무실을 직접 찾은 시점에서, 이미 마음은 정한 것 같은데 뜸을 드이는건 적당히 하죠.”
그녀의 눈동자가 날카롭게 빛났다.
“안타레스가 따로 원하는 게 있기 때문에, 이렇게 거창하게 말을 늘이는 것 아니에요?”
“흠.”
펠릭스가 말없이 큰 손으로 자신의 부리를 쓰다듬었다.
“여전히 아가씨는 너무 감이 좋군. 그 말대로야.”
‘아가씨라…….’
다양한 곳에 발을 뻗고 넓은 인맥을 가진 제니가, 막상 경어를 사용하는 상대는 그리 많지 않다.
그런 그녀의 성향을 생각해 봤을 때 펠릭스는 아마…….
레녹이 생각에 잠긴 사이 대화는 계속된다.
“조건은 크게 두 가지. 제니 아가씨가 말한 대로 이쪽에게 사업상의 이권을 어느 정도 양보할 의사가 있는지 확인하는 것. 이 경우 자세한 조건은 카르텔의 견제를 물리고 난 뒤에 조정하는 것으로 하지.”
안타레스는 막상 제니와 카르텔이 맞붙었을 때 끝까지 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다.
제니 역시 어느 정도는 짐작하고 있었는지 표정이 변하는 일은 없었다.
“두 번째. 우리 단장이 반을 따로 한번 만나고 싶어 해. 시간을 내주었으면 좋겠군.”
고작 이런 조건을 내세우기 위해서 펠릭스가 그렇게 시간을 끌었다는 말인가?
레녹이 살짝 의아한 심정으로 고개를 돌리자, 펠릭스가 덧붙였다.
“상호 간의 부상을 전제로 하는 진지한 대련을 원해.”
“…….”
“펠릭스. 미친 거 아니냐고 전해주세요.”
칼같은 제니의 대답처럼, 그 요구는 지금 시점에서 레녹이 들어주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이다.
안타레스가 얼마나 호전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는지는 모르겠다만, 카르텔과의 갈등이 크게 번질 우려가 있는 지금 레녹이 안타레스와 대련을 벌였다가 부상을 입기라도 한다면 엄청난 손해다.
거기에 레녹은 대련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 마법사.
아무리 레녹이 그동안 숱한 강자들을 연달아 죽여오면서 명성을 쌓았다고는 하지만, 그가 안타레스만 한 전사와 일대일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는 이는 아무도 없을 터.
하지만 레녹은 그 요구에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반?”
“그쪽 용병단장과 한번 손을 섞어주는 정도로 안타레스의 이름을 빌릴 수만 있다면 남는 장사지. 두 번째 조건은 내가 수락하지. 첫 번째 조건만 적당한 선에서 제니와 합의하면 나는 괜찮다.”
이미 이쪽에 크림갈 용병단과 다이크 기업이 합류한 시점에서 정황은 확 달라진 상태다.
단순히 카르텔을 상대로 일방적인 손해를 안겨주는 것을 떠나, 이쪽도 세력을 형성하고 힘싸움을 벌일 수 있다는 것.
그건 레녹이나 제니가 크게 고생하지 않고도 카르텔을 상대로 팽팽한 줄다리기를 이어갈 가능성이 확 높아졌다는 의미나 다름없었다.
‘마냥 꼬리를 뺄 수 없는 위치까지 올라왔다. 이런 조건을 내걸었다는 건, 저쪽에서도 내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뜻이겠지.’
아직 7레벨에 도달할 심상을 손에 넣은 것은 아니지만, 레녹이 자치령에서 얻은 수확도 결코 적지 않다.
다양한 약재들과 온갖 재화들. 개인적인 마법의 성취와 그 과정에서 아카샤와 바이젠을 통해 얻어낸 아티팩트.
그리고 결정적으로 라피스에게 받은 염주, 정토신해진언의 존재가 레녹을 한결 신중하게 만들었다.
천견 마드레아 팔시어가 무려 승천자가 되기 직전까지 사용했던 최상급 법구.
특정 공간을 제압하고 봉인하는 방식으로 상대를 속박하는 이 아티팩트라면, 어떤 상황에서든 레녹이 제 한 몸을 무사히 빼내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안타레스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그를 바탕으로 수싸움을 건다면, 이번 일에서 레녹이 큰 손해를 보는 일은 없으리라.
제니는 그런 레녹의 얼굴을 보고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이내 한숨을 푹 내쉬고는 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레녹이 아무런 근거 없이 이런 판단을 하지 않을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아…… 좋아요. 그럼 일단 지금 당장 딜런 오케이시를 우리 쪽으로 보내주세요. 그 자식이 우리 술집에 여전히 드나들고 있다면, 카르텔 쪽에서도 대충 무슨 의미인지 눈치챌 테니까.”
“딜런은 지금 다른 일로 자리를 비운 상태다만…… 이쪽에서도 이번 일에 참가하고 싶어하는 단원들이 많아. 전력이 부족할 일은 없을걸세.”
“……좋아요. 일단 그 부분까지 포함해서, 조건을 협상하는 게 좋겠군요.”
그 뒤로 레녹은 한창동안 협상을 벌이는 펠릭스와 제니를 내버려두고 술집을 빠져나왔다.
펠릭스가 이쪽의 사업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말이 허언은 아니었는지, 그는 정말로 꽤나 구체적으로 이쪽 사업의 지분 일부를 요구해 왔던 것이다.
그렇게 나올 거라면 안타레스 용병단이 통째로 이쪽 회사로 들어오라는 제니의 말과 함께 협상은 끝없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었다.
더불어 레녹의 추측대로 펠릭스는 한때 카이세의 부하들 중 하나였는지, 덩달아 옛날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하자 자리를 비켜주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 먼저 일어섰다.
술집 아래쪽으로 내려가자 자리를 지키고 있던 용병들이 인사를 건넸다.
대충 고개를 끄덕여서 받아주고 밖으로 나오자 눈에 띄지 않게 은밀하게 주위를 순회하는 이들이 눈에 보였다.
그사이에 벌써 드레이가 용병들이 해야 할 일을 정리하고 업무에 들어간 모양이었다.
어떤 식으로 순찰 방식을 정했는지는 나중에 물어봐도 충분할 터.
레녹은 그렇게만 생각하고 걸음을 옮겼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앞서서 개인적으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 * *
49구역을 빠져나와 식물원이 있는 31번 구역으로 향했다.
어스름이 내려앉은 저녁. 평일이라 그런지 가뜩이나 사람이 없는 식물원 내부를 지나 안쪽의 과수원으로 향한다.
늘 그렇듯이 검푸른 안개속에서 농땡이를 피우던 노인이 레녹을 맞이했다.
“이번에는 또 무슨 볼일이냐?”
노인이 미심쩍게 웃으면서 그를 올려다보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하릴없이 시간을 때우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노인이지만, 그가 가진 귀는 이 거리 전역에 가득 깔려 있다.
덕분에 노인은 보기 드물게 레녹의 얼굴과 이름을 꽤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이상하기 짝이 없는 놈이다.
처음 보았을 때만 하더라도 별 볼 일 없는 프리랜서들 중 하나였는데, 이제는 40번대 구역에서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48구역을 지배하던 갱단 시거 뱅을 궤멸시킨 일이나, 미개발지구에서 반역을 꾀하던 흑마법사들을 척살한 일은 모르는 이가 드물 정도.
연원을 알 수 없는 다양한 계열의 마법을 다루는 것도 모자라, 정면에서 웬만한 전사들과 다투어도 결코 밀리지 않는 전투실력은 반의 이름만큼이나 유명해져 가고 있었다.
간혹 딥웹을 뒤지다 보면, 왜 최근 들어서 반이 지명의뢰를 받지 않는지를 물어보는 익명의 클라이언트들이 가득하다.
거주지도, 본명도, 소속도, 일체의 신상을 완벽하게 감추고 있는 이 남자가 유일하게 공식적인 신분으로 행하는 의뢰 이외의 활동이 과수원에 들리는 것이라는 사실은 꽤 의미심장하다.
유달리 연초를 좋아하는 그의 취향은 과연 단순한 기호일 뿐일까, 아니면 그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는 걸까.
노인 역시 세간에 떠도는 그 소문을 모르지는 않기에, 그가 과수원에 들릴 때마다 사가는 물건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가 피우는 연초에, 그 비상식적인 강함과 성장속도의 비밀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감정을 알 수 없는 눈으로 노인을 내려다보던 레녹이 입이 천천히 열렸다.
“약을 구매하고 싶습니다만.”
“물건은 차고 넘칠 만큼 준비되어 있지. 돈만 있다면 뭐든지 가져갈 수 있네.”
노인이 킬킬 웃으면서 파리처럼 양손을 비볐다.
한없이 비굴한 동작을 거리낌없이 취하면서도,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도 유별난 일이다.
“그래서, 뭘 줄까. 최근에 자네가 구입했던 더블 스칼렛과 페더 폴의 약효가 떨어질 때가 됐지. 하지만 원래 그런 법일세. 부작용이 없는 물건을 찾다 보면, 살짝 아쉬운 효과에 입맛을 다시게 되거든.”
“…….”
“나도 아주 잘 알아. 약을 피우는 놈들의 심정이라는 게 다 똑같은 법 아니겠나? 이해하네. 스스로는 통제할 수 있다면서 어떻게든 선을 그으려고 하지만, 이 약의 세계라는 것이 수렁과도 같아서 한번 발을 담그면 벗어날 수가 없거든…….”
그렇게 말하는 노인의 눈동자에서도 여전히 약기운이 아른거리는 것이, 무엇보다 정확하게 그의 말을 증명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말을 듣고 난 뒤에도 레녹의 시선이 변하는 일은 없었다.
무심한 반응에 실망한 노인이 등을 뒤로 젖히면서 고개를 까딱였다.
“자, 이번에는 어떤 물건을 원하는지 알려다오. 49구역의 반은 과연 어떤 약이 취향인지 나도 이제 슬슬 궁금해지기 시작해서 말이야. 표본이 모이기 시작하면 자네의 취향을 듬뿍 담은 커스텀을 제작하는 일도 어렵지 않네. 단골들을 위한 서비스지만, 자네에게는 굳이 못 해줄 것도 없겠지.”
노인은 그렇게 말하고 레녹의 대답을 기다렸다.
레녹은 노인의 뒤쪽에 진열되어 있는 널찍한 선반을 한번 쭉 둘러보고는 말했다.
“전부 주시죠.”
“……뭐?”
“여기 있는 모든 종류의 약을, 샘플 하나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