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660
약먹는 천재마법사 660화
인과응보(2)
순간 조용해진 제니의 술집 한복판.
화면 안에서 보도를 이어가는 아나운서의 말은 계속됐다.
[경시청은 현장에서 범인을 구속해 호송 중이라는 사실을 전했으며, 공판 일자가 잡히는대로 발표를 이어가겠다는 의지를…….]“제니!”
“어? 아…….”
스크린을 노려보고 있던 제니가 밀라의 말에 빠르게 정신을 차렸다.
벌떡 일어난 그녀가 싸늘한 시선으로 다른 이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문 닫고 손님들 내보내. 오늘 장사는 이걸로 끝이야.”
“자, 친구들. 다들 들었죠? 오늘 장사는 끝입니다. 해 뜨면 다시 열 테니까 일단 나가주세요~”
소식을 확인하자마자 술집의 장사를 끝내고 손님들을 몰아내는 딜런과 빠르게 후문을 걸어 잠그고 전화기 통신을 뽑아버리는 밀라.
[제니, 반의 휴대폰이랑 연락이 안 돼. 아예 통화권에서 한참 벗어난 것 같다.]“…….”
맨슨이 전화를 걸고 통화국에 위치를 문의하는 사이에도 뉴스는 이어졌다.
[폭발사건의 피해와 구체적인 동기에 대해서는 엑스 마키나에서 조사를 벌이고 있으며……] [마키나 수뇌부에서 발칸 시의회에서 공식적으로 사건 협조 요청을 한 걸로 확인되었습니다.] [발칸 시의회에서는 확실한 증거 없이는 어떤 입장도 표명하지 않을 것을 대변인을 통해 전달……]“역시나 발을 빼는군. 시의회다워.”
“쓸데없이 개입해 상황을 어지럽게 만드는 것보다는 나아. 일단 필요한 사람들부터-”
쾅!!
술집의 문을 박차고 도포를 입은 수련이 걸어들어왔다.
팔굉성채 출신의 귀족이자, 언월도를 수련한 수준급의 군위능력자.
사도 윌터 마르티네스가 토벌된 뒤로 제니의 술집에서 프리랜서 일을 하고 있는 창사.
평소에는 감정의 동요가 크지 않은 그녀의 얼굴에도 숨길 수 없는 놀라움이 아직까지 남아 있었다.
“소식을 듣고 왔다. 반은 괜찮은 건가?”
“일단 앉아.”
제니가 차분하게 가라앉은 음색으로 고개를 까닥였다.
“돌아가는 상황에 대해서 잠깐 확인이 필요하겠어.”
순식간에 광활한 술집이 텅 비어버리고, 제니를 중심으로 다른 초인들이 테이블을 잡고 둘러앉았다.
[반이 구속됐다는 정보 자체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동시에 보도되고 있다. 일단 어느 한 쪽의 오보는 아니야.]조든이 간단한 칵테일을 만들어 내놓는 사이, 맨슨이 로봇 머리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하필 견뢰를 지목해 핑계로 삼을 이유가 없지. 관련성 자체는 유의미하게 존재할 가능성이 있겠군.]“자료화면의 하늘을 가득 메웠던 검은 불길. 일전에 성채에서 한번 본 적이 있다.”
수련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교단의 사도를 처리할 당시, 반이 저것과 유사한 흑염을 사용했었지.”
“반이 정말로 마키나에 가 있을 확률이 무척 높다는 말이네…… 다른 특기할만한 사항은?”
턱을 괴고 앉은 제니가 물었다.
생각에 잠겼던 수련이 대답했다.
“당시에는 반도 제대로 그 불길을 통제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덕분에 탈출하는데 애를 먹어서, 일을 끝내고도 사이좋게 불타 죽을 뻔했었지.”
“…….”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말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상세한 경험담이 외려 반의 존재를 실감케 한다.
샷건에 기댄 채 삐딱하게 앉아 있던 밀라가 입을 열었다.
“마키나로 가는 기차편을 수배해 볼까?”
“…….”
“두어 명 정도 몰래 기계도시로 잠입할거라면, 내 선에서 구해볼 수 있어.”
“목적을 확실하게 하는 편이 좋겠군.”
딜런이 차분해진 기색으로 말했다.
“상황을 조사할 뿐이라면 지금 당장 움직여도 괜찮아. 하지만 반을 구출하러 가는 거라면…… 좀 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겠지.”
마키나에서 견뢰의 명성을 알고 있다면, 그를 허술하게 구속해 놓을 리가 없다.
만약 정말로 반이 기계도시에서 구속당했다면, 그 경계수준도 일반적인 수준은 결코 아닐 터.
제니의 인맥 중에서도 최상급의 거물들이나, 안타레스 용병단의 최고위 간부들을 소집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제니는 차분한 표정으로 딜런의 제안에 고개를 흔들었다.
“딜런, 반이 이런 상황에서 죽을 거라고 생각해?”
“……그렇지는 않지.”
“이쪽에서 움직인다면 그건 반의 의사를 확인하기 위해서야. 섣불리 나섰다가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되겠지.”
빠르게 결론을 내린 제니가 곧바로 밀라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밀라, 기차편 수배 부탁할게. 상황을 조사하러 갈 사람은…….”
제니가 주변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면면을 돌아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수련은 확정. 다른 한 명만 정해보자고.”
“이 여자는 아직 발칸 뒷골목의 생리도 잘 모르는데, 괜찮겠어?”
밀라가 심드렁하게 던진 질문에 수련이 헛기침을 했다.
“흠흠, 실례되는 말이구려. 음지의 사업지식이 부족하긴 하지만, 결코 노력을 게을리한 것은 아닌…….”
“수련은 팔굉성채의 귀족가문 출신이야. 대외적인 외교 업무에는 우리중에서 가장 능숙하지. 마키나 정부와 접촉해야 할 경우를 대비해야 해. 다만 한 가지 걸리는 게 있다면…….”
제니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휴대폰을 매만졌다.
견뢰가 구속당했다는 소식이 어느새 이쪽 바닥에 쫙 퍼졌는지, 그녀의 휴대폰도 쉴 새 없이 전화와 메시지가 쏟아지고 있었다.
어디를 골라서 손을 잡고 움직이든, 선택지는 많다.
제니가 해야하는 것은 단지, 이 상황에 어떻게 움직일지를 결정하는 것뿐.
그 뒤에는 레녹과 그녀가 쌓아온 결실이 결과까지 그들을 데려다 줄 것이다.
하지만 제니는 당장 휴대폰을 들고 연락을 취하는 대신, 그녀의 등 뒤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테이블 옆에 조용히 서 있던 조든에게 그녀가 물었다.
“조든. 어떻게 생각해요?”
“내게 의견을 묻는 거니?”
딜런이 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모두가 한마디씩 했으니까, 조든 이야기도 한번 들어봐야지.”
“음, 내 생각에는…….”
생각에 잠겨 있던 조든이 말했다.
“반을 좀 더 신뢰하는 편이 좋을 것 같군.”
예상치 못한 화두에 자리에 있던 다른 동료들이 말없이 눈을 끔벅였다.
“……뭐?”
“내가 본 그 어떤 사람보다도 영민하고 신중한 남자야. 그런 사람이 허투루 이런 일을 벌였다고 생각하나?”
조든의 차분한 시선이 테이블을 둘러앉은 이들을 말없이 살폈다.
“자신의 이름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조차, 바라지 않는다면 결코 허락하지 않을 사람일세.”
“…….”
“반의 행적에는 숨겨진 부분이 많아. 비슷한 일이 몇 번 있었지만 아주 조용하게 해결되었었지.”
슬쩍 TV 화면을 향해 시선을 들어 올린 조든이 중얼거렸다.
“그럼에도 반의 이름이 이런 식으로 언론에 퍼지고 있다는 건, 이런 상황조차 반이 의도한 것이거나…….”
당황한 기색의 아나운서가 빠르게 말을 쏟아냈다.
[그, 마키나 경시청에서 해당 사건의 범인이 견뢰가 아니라고 입장을 변경했습니다.]“…….”
[관련 보도에 대해서는 유감을 표한다는 말과 함께, 이번 사건에 대해서는 추후 어떠한 공지도 없을 것이라는 언급이……]순식간에 조용해진 술집을 돌아보며 조든이 어깨를 으쓱였다.
“이 정도는 감당할 수 있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 아니겠나?”
* * *
“경시청에서 무척 억울해하더군요.”
마키나 의료지구 최상급 개인병동.
새하얀 복도 뒤로 두명의 집행관들이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철컥, 치칙!!
두 사람의 등 뒤로 수십겹의 강철장벽이 열렸다 닫히며 이어지는 통로를 격리시킨다.
티켓을 인식시켜 장벽을 통과할 때마다 긴장한 기색으로 경비를 선 군인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마치 요새와도 같은 엄중한 방어시설.
하지만 이 모든 격리와 경비조치는, 외부가 아니라 내부를 향해 만들어진 수감시설이었다.
“어째서 이만한 고과를 대외적으로 공표하면 안되는지 납득이 안 되는 모양입니다.”
“어이가 없군. 자기들이 직접 체포한 것도 아니면서 생색을 내려 했다고?”
“도시 치안을 대외적으로 담당하고 있으니까요. 거물을 잡았으니 고과에 눈이 머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하지만 경시청이 멋대로 행동한 덕분에 오히려 우리가 곤란해졌지. 저걸 봐.”
짜증스레 대꾸한 집행관이 복도 안쪽에 나 있는 투명한 유리창 너머로 시선을 돌렸다.
“근래 거대도시에서 가장 위험하다는 마법사를 잡아놓고 이게 뭐 하는 짓이지?”
창문 너머로 비추는 것은 차분하고 깔끔한 형태의 특수 개인수감실. 그 크기는 공방 한 채에 비견될 만큼 광활한 너비다.
한눈에 보기에도 안락하고 푹신해 보이는 침대에 드러누운 채, 진찰표를 휙휙 넘겨보는 청년의 모습.
팔에 꽂힌 링거에선 영약을 희석시킨 수액이 원활하게 공급되고 있고, 청정기를 통해 관리되는 공기는 한 줌의 먼지 없이 맑게 순환한다.
양손에 무거운 수갑을 차고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범죄자를 가둬둔 모습인지, 의료관광을 온 귀빈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
그런 레녹의 옆에서는 여섯 명이 넘는 의사들이 바쁘게 돌아다니며 열심히 그 모든 움직임과 상태를 기록하고 있었다.
“극위급 초인의 생체 데이터를 얻을 수 있는 극히 귀중한 기회야. 모두 집중하지.”
“마력 수치 데이터가 제대로 잡히지 않는데. 이건 이상해.”
“체질의 문제일 수도 있어. 마력차단금속을 채웠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고.”
쉴 새 없이 의견을 주고받으면서도 레녹의 몸에 전극과 링거를 꽂아넣고, 그 컨디션을 회복시키는데 전력을 다한다.
“생체반응 활성도가 터무니없이 낮은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큰 부상을 입었다는 소문이 있었지. 그 후유증으로 보이는군.”
“그럴 리가 없어. 그럼 다친 몸으로 기계화병단 3군단을 혼자 학살해버렸단 말인가?”
“그러니까 대마법사라는 위대한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아니겠나.”
레녹의 상태를 관찰하고 치료하면서도, 결코 레녹에게는 말을 붙이지 않는 의사들.
마치 그 자리에 없는 사람인 것처럼 철저하게 무시하고, 연구 대상으로만 생각하고 집중하는 태도다.
똑똑.
창문을 두들기는 집행관들을 확인한 의사들의 표정이 확 찌푸려졌다.
“……진료 중에는 방해를 하지 않겠다는 약조를 받았던 것 같습니다만.”
“심문에 지장이 가지 않는 선에서 컨디션을 회복시켜 달라는 지령이었죠.”
집행관이 병실 안으로 들어와 의사들을 향해 고개를 까닥였다.
“이자와 해야 할 이야기가 무척 많아서.”
“아직 구체적인 수치 측정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극위급 초인의 심신이 회복되는 과정을 면밀히 관찰할 수 있는 건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펠튼 박사님.”
집행관이 얼굴을 쓸어내리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
펠튼을 바라보는 집행관의 눈빛은 서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도시 전역을 휩쓴 재해를 책임지고 수습하기 위한 일입니다.”
“……”
“부탁드립니다.”
의사들이 마지못한 기색으로 하나둘씩 병실을 떠난 뒤, 문을 열고 들어온 집행관을 보며 레녹이 침대에 편하게 드러누웠다.
“마키나의 생체공학 기술이 대륙 학계 사이에서 선두에 서 있다고 소문이 자자하던데, 거짓말이 아니었군.”
“……”
“의료시설과 병동의 서비스가 아주 훌륭해. 이런 식으로 편하게 쉬어본것도 무척 오랜만인걸.”
“지금 당신이 받고 있는 모든 배려가, 결코 무상의 호의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겁니다.”
집행관이 딱딱한 어조로 말했다.
“도시 전체를 뒤집어놓고도, 당신이 아직까지 살아 있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내 입으로 직접 들어야 할 증언들이 있기 때문이겠지.”
레녹이 그의 말을 끊고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헤르메스의 범행과 승천문의 비밀, 화덕진군과 마이야 렌슬릿에 대해 소명이 끝나지 않은 걸로 아는데.”
“…….”
“하나로는 끝나지 않는 일이라 허투루 넘길 수 없고, 교차검증이 필요한 정보들이 너무 많아 함부로 처리하기도 어려울 거야.”
태연한 마법사의 말에 집행관이 어깨를 부들부들 떨었다.
“빌어먹을, 처음부터 전부 알면서……!!”
“그럼 내가 하지 않은 일에 속죄를 하겠다고 순순히 체포당했을 거라 믿었나?”
레녹이 실소를 흘리며 상반신을 일으켜 벽에 기댔다.
집행관들의 어깨 너머로 시선을 돌린 레녹이 어깨를 으쓱였다.
“너희 수뇌부도 그걸 모를 만큼 멍청하지는 않을 테니 거래를 제시할 생각일 테고.”
“……거래?”
“방금 막 기계화병단의 군단장들을 상대로 벌어진 군사재판이 끝났다.”
집행관들의 등 뒤에서 들려온 싸늘한 목소리.
휠체어에 탄 나시사 솔머가 차가운 눈빛으로 레녹을 바라보고 있었다.
“군단장을 비롯해 헤르메스에게 가담한 관계자 전원의 혐의가 확정되었지.”
“나, 나시사 솔머 위원님……!!”
“경호원도 없이 혼자 오셨습니까?!”
전혀 기척을 느끼지 못하고 있던 집행관들이 화들짝 놀라 그녀를 향해 살짝 고개를 숙였다.
나시사는 그런 두 사람을 돌아보지도 않은 채 고개를 까닥였다.
“내가 직접 이야기할 테니 잠시 나가 있게. 의사들에게는 사정을 잘 설명해 주고.”
“……알겠습니다.”
집행관들이 무어라 대꾸하지도 못하고 순순히 사라지자마자 그녀가 말했다.
“엑스 마키나 세 파벌이 고루 엮여 있는 만큼, 도시 수뇌부의 정세에 큰 영향이 있을 거다. 아마 총독의 자리까지 대거 교체당하겠지.”
“그래서?”
“일을 확실하게 처리하기 위해 현장에 있던 네놈의 증언이 필요하다.”
나시사가 못마땅하다는 듯 희미하게 미간을 찌푸린 채로 말했다.
“네놈은 이번 일의 시작과 끝을 모두 지켜본 유일한 관계자인 만큼, 그 존재만으로 사건의 증언이나 마찬가지지.”
“본론만 간단하게 해. 원하는게 뭐지?”
“……헤르메스와 나누었던 대화 전문, 마이야 렌슬릿의 접선내역과 위치, 구세계의 승천자와 접촉여부 정황을 증거품으로 제출해라.”
레녹을 바라보는 나시사의 눈동자가 예리하게 빛났다.
“그렇다면 이번 일에 한해 네게 씌워진 혐의를 없애고, 라이먼의 신분도 다른 방식으로 유지시켜 주지.”
“…….”
구세계의 승천자.
역시 나시사 솔머 역시 헤르메스가 어떤 짓을 저지르려 했고, 그 일이 어디까지 진행되었는지는 파악하고 있는 것인가.
다만 돌아가는 상황을 보아하니, 구세계의 승천자가 정말로 이 세계에 강림했었는지는 아직 확신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 사실을 명확하게 하고, 전후처리를 위해 레녹에게 이렇게 거래를 제시하는 것일까.
“받아들인다면 군사재판에서 네 혐의는 사법거래 대상으로 분류되어, 추가적인 절차 없이 감형에 들어갈 거다.”
레녹은 그 말에 대답하는 대신, 고개를 들어 물끄러미 나시사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말없이 나시사의 무표정한 얼굴을 바라보던 레녹이 말했다.
“당신들, 역시 나를 죽일 생각이 없군.”
“……뭐?”
“일이 이렇게 된 시점에서 내게 극형을 선고하거나, 다소 과격한 대우를 받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생각보다 훨씬 더 조심스러워.”
말과 함께 빠르게 나시사의 반응을 살피며 레녹이 물었다.
“수뇌부의 결정? 아니군. 하위 무력집단의 반발? 그것도 아니고…… 심성관의 유물이나, 승천문의 문제도 아니야.”
레녹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기계도시에 아직 내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 남아 있군. 그렇지?”
“…….”
그제서야 레녹이 실시간으로 반응을 확인해가며, 역으로 심문 아닌 심문을 걸었음을 깨달은 나시사가 날 선 숨을 토해냈다.
“……기가 막히는군. 이런 성정으로 그간 얌전한 장인을 연기하고 지냈다는 말이냐.”
라이먼의 재능을 시험하기 위해 그의 공방에 찾아온 적도 있는 나시사로선 레녹의 반응에 위화감을 느끼고 있는 듯했다.
레녹은 그런 나시사의 말에 피식 웃으며 다시 침대에 드러누웠다.
“그때 보여준 재주는 얼마든지 다시 보여줄 수 있는데. 지금이라도 필요한가?”
초췌한 나시사의 외견을 위아래로 대충 훑은 레녹의 입이 곧바로 열렸다.
“사흘째 잠을 거의 자지 않았군. 도중에 바닷가에 다녀온 것 같은데, 해저장벽에 출입했던 모양이야. 붕괴된 심성관의 수습은 끝나가나?”
“……”
“오래 누워 있던 것 치곤 영양상태는 괜찮아 보이는데. 인위적으로 컨디션을 관리하고 있군. 그 휠체어의 능력인가? 경호원을 데리고 다니지 않는 건 그 장비를 믿기 때문이었군.”
레녹의 시선이 나시사가 타고 있는 휠체어로 향했다.
“사이즈와 부품의 간격이 당신의 체형과 손크기와는 맞지 않아. 당신이 만들었거나, 당신을 위해 만들어진 물건은 아니군. 그럼에도 마감처리가 뛰어난 걸 생각하면 아마 화덕진군의…….”
“그만!!”
나시사가 강한 어조로 레녹의 말을 끊었다.
레녹은 입을 다물고 물러서자, 나시사가 날이 선 표정으로 입매를 비틀었다.
“……그 잠깐 사이에 장인이 가져야 할 눈썰미를 진작 뛰어넘었군. 원하는 것이 대체 무엇이냐?”
“나시사 솔머.”
레녹이 웃었다.
“바로 그걸 알고 싶어서 조건을 협상하고 있는 거다.”
“…….”
침묵하던 나시사가 천천히 휠체어의 방향을 돌려세웠다.
“12시간 이내로 재판이 다시 열릴 거다. 다시 찾아오기 전까지, 이 수감실에서 단 한 발짝도 나갈 생각하지 말도록.”
병실 문 앞에 선 그녀가 한결 차분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마키나의 모든 정예병들이 네놈 하나만을 노리고 감시하고 있으니까.”
나시사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 병실을 나섰다.
대기하고 있던 집행관들 역시 슬쩍 레녹을 돌아보고 곧바로 기척을 감췄다.
손목에 찬 수갑을 매만지는 사이, 의사들이 다시 들어와 레녹의 상태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이곳 병실에서 제공하는 수액의 효과가 생각보다 훨씬 괜찮아, 레녹으로서는 피로 회복에 적잖이 도움이 되고 있었다.
잠깐의 구속을 감수하고 신변을 맡긴 것은 나쁘지 않은 결정이었고.
그 덕분에 레녹 역시 기존에 미뤄두었던 목적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군사재판이 열리기까지 12시간이라…….”
기계도시가 반파된 이 시점에서도 아직 밝혀지지 않은 비밀이 있고, 그것이 이 시점에 와서 레녹을 함부로 처리하지 못하도록 억제하고 있다.
노련한 마이스터인 나시사조차 그 허점을 감추지 못할 만큼 중요하면서도, 아직 레녹이 알지 못하는 비밀.
그런 비밀이 존재한다면, 아직 레녹이 찾아내지 못한 카이세의 흔적과도 관련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원래라면 적당히 요양하면서 엑스 마키나 수뇌부를 상대로 사법거래 조건을 맞춰볼 생각이었지만…….
“역시 직접 확인해 보지 않고서는 알기 어렵겠어.”
레녹이 그렇게 중얼거리며 손가락을 튕긴 그 순간, 바쁘게 움직이던 의사들이 실 끊어진 인형처럼 풀썩 쓰러졌다.
삑, 삑……!!
온몸에 달라붙은 전극과 링거를 뜯어내고 침상에서 일어선 레녹이 환자복과 수갑을 걸친 상태로 수감실 앞에 섰다.
연결이 끊긴 의료장비들만이 불규칙적인 소음만을 내뿜으며 진동하고 있을 뿐.
[특수수감시설 입체설계도 48% 재현 완료. 닥터 패스 습득. 수감실 개방.]드르륵!!
“뭐, 뭐야!!”
경계를 서고 있던 군인이 황급히 통신기를 들어 올리며 총을 겨누고 달려오는 모습.
“몸이 좀 뻐근해서 잠깐 산책 좀 나갔다 오려는데, 괜찮겠지?”
그를 바라보며 레녹이 천천히 어깨를 늘어뜨리고 몸을 풀기 시작했다.
“괜찮다고 말해줘야 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