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803
약먹는 천재마법사 803화
화신술식(5)
와장창창!!!
머리 위로 흩날리는 강철의 파편. 납골당의 지하공동 위로 쏟아지는 유리의 비.
쪼개져 으스러진 스테인드 글래스의 파편과 레녹의 화신체에 새겨진 균열 역시 선명하게 비춰진다.
구중도래 전승비의 의라구천.
납골당을 지키던 수호령을 모방해 거의 동시에 손에 넣은 새로운 무예 팔반의 기술.
하지만 의라구천을 내지른 화신의 팔은 그 자리에서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
기술의 위력은 수호령과 납골당의 문을 분쇄하고도 남았으나, 그 반동까지 화신체가 피할 수는 없었던 것.
쩌저적……!!
화신체의 팔을 대신하는 순백의 건틀렛이 갈라져, 당장이라도 쪼개질 것만 같다.
마력사로 균열을 이어붙여 수복을 시도했으나, 겨우 원형만을 유지하고 있는 수준.
역시, 팔경이 아닌 다른 기술을 사용하면 오래 버티지 못할 만큼 그 내구성이 지나치게 약하다.
화신을 사용해 직접 전투에서 방어 이상의 행동을 취하게 하려면, 무언가 다른 조치가 필요할 터.
화신체를 그림자 로브 안에 밀어 넣은 레녹이 눈앞에 펼쳐진 납골당의 정경을 돌아보았다.
고오오!!
스산한 한기가 몰아치는 메마른 납골당의 지하. 공동 끝에서 끝없는 어둠을 품고 일그러지는 거대한 흑색의 문.
저것이 바로 레녹이 찾던 무간의 역문이라는 사실을 직감한 그 순간.
“역문을 통해 무간에 가기 위해서는 그 사이에 위치한 영계를 건너야 하지.”
안개 저편에서 조용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지만 살아있는 몸으로 어찌 영혼들이 오가는 영계를 건널 수 있겠느냐?”
화악!
공동을 둘러싼 안개가 한 곳에 밀집되어 실재하는 형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납골당 전체를 휘감듯이 또아리를 틀고 누운 거대한 괴수의 형상.
도마뱀을 닮은 머리와 길쭉하게 늘어진 목, 안개를 휘날리며 느릿하게 흔들리는 두 날개.
저것이 바로 쿤다라의 고대종이자, 죽어 군령이 된 유령용의 현신인가.
순식간에 레녹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유령용은 파충류의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바로 그 수단을 마련하기 위해 화신 술식이 필요한 것이다.”
“…….”
“생자의 몸으로 영계를 건너기 위해서는, 육신 대신 버팀목이 되어줄 영체가 필요할 테니까.”
물질계와 영계의 경계선이 뒤바뀌는 찰나.
두 경계선에서 모두 자신으로 존재하기 위해, 생자의 육신과 화신의 영체가 필요하다는 설명.
“아이러니한 일이지. 오직 생자만이 출입 가능한 역문에서도, 정작 영체 없이는 무간에 도달할 수 없다는 사실이.”
기억을 돌이켜보듯 시선을 들어 올린 야오 쉰이 말했다.
“하지만 바로 그것이 요르타가 추구한 만귀야행의 본질이다. 그렇기에 진혼정의 영령들은, 영계를 오가며 야행을 이끄는 인도자를 만들기 시작했지…….”
“야오 쉰. 이건 약속과 다를 텐데.”
그 순간, 야오 쉰의 옆에서 차분한 여성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팔짱을 낀 채 역문 옆에서 야오 쉰을 바라보는 냉막한 인상의 여성.
여성은 레녹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싸늘한 목소리로 유령용에게 항의했다.
“왜 저자가 이곳에 있는 거지? 이번 의식의 전승자는 나로 정해진 것 아니었나?”
“음.”
심드렁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야오 쉰을 두고 여성이 재차 말했다.
“외겁도시와 한 약속이 있을 텐데. 협정을 지켜. 약속대로 내게 술식을 전수해라.”
“아니, 그렇게는 못 하겠군. 나는 이미 저 술사에게 화신 술식의 전승을 끝냈다.”
“……뭐?”
“저자의 소질은 너와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뛰어나다. 필요한 적성만 따지자면 나조차도 견주기 어려울 정도지.”
일그러지는 여성의 표정을 두고, 야오 쉰이 태연하게 말했다.
“잘만 다듬으면 무엇보다 완벽하게 조형될 재목이다. 나는 오래된 약속 때문에 일을 그르치고 싶지는 않구나.”
“이……!!”
여성이 격노한 기색으로 야오 쉰을 바라보며 마력을 끌어올렸다.
“쿤다라와 한 약속을 대놓고 어기면서, 순리를 지킨다 자칭할 수 있는 거냐?!!”
“발리아. 내가 어떤 존재인지 알잖나.”
야오 쉰이 태연하게 대답했다.
“나는 쿤다라의 일원이 아니다. 죽은 야오 쉰을 대신해, 그의 화신으로서 의지를 대신하고 있을 뿐.”
“…….”
“엄밀히 따지자면, 그가 외겁도시와 했던 약속은 나와 큰 상관이 없는 일이지.”
지금 눈앞에 있는 야오 쉰이, 고대 용종 본인이 아니라 그가 남긴 화신체에 불과하다는 말.
레녹은 그제야 심판관 오리스가 유령용을 두고 특이한 술식에 얽매인 존재라고 말했는지 이해했다.
레녹의 재능을 인지하고, 그 자리에서 화신 구축을 도와주었던 것조차 같은 화신으로서 가능성을 느꼈기에 시도한 일이었던 것.
침묵하던 여성이 이내 빠르게 평정을 되찾았다.
그녀는 머리를 휙 쓸어넘기며 야오 쉰을 향해 말했다.
“좋아. 그럼 내가 저 술사를 죽이면, 다시 술식의 전승자는 내가 되는 거겠지?”
“음.”
부정은 하지 않는 야오 쉰을 두고, 발리아라 여성의 눈빛이 싸늘하게 변했다.
“음흉한 늙은이 같으니. 처음부터 내가 저 술사를 상대하길 원하고 있던 거겠지.”
홰액!!
발리아가 그렇게 말하며 휙 고개를 돌리고, 성큼 걸어 레녹의 앞에 마주 섰다.
끌어올린 마력을 그대로 손안에 띄워 올린 발리아가 레녹을 보며 물었다.
“검문 당시에 얼굴을 본 적이 있지, 복마전의 술사.”
“…….”
레녹은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았지만, 굳이 대꾸하지는 않았다.
선착장에서 수도승과 함께 잠시 스쳐 지나간 정도의 인연.
곧바로 천귀지구로 넘어간 그녀를 기억하곤 있지만, 굳이 반응해 줄 이유도 없었기 때문.
발리아 역시 기대하지도 않았다는 듯 곧바로 이어서 말했다.
“이야기는 들었지? 준비해. 쿤다라의 혈족으로서, 준비도 되지 않은 인간을 죽이고 싶지는 않으니까.”
“난 그쪽의 대화에 한마디도 동의한 적 없는데.”
레녹이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누구 마음대로 자격이고 나발이고 떠들어대는 거지?”
“너도 화신 술식을 익히기 위해 여기까지 찾아왔으면서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발리아가 외려 그런 레녹의 말을 비웃었다.
“시험을 통과했으면 알고 있을 텐데. 저 늙은이는 자기 대신 무간의 역문에 들어갈 생자가 필요한 것뿐이야. 그런 속셈 따위에 곧이곧대로 당해줄 것 같아?”
“그럼 나와는 목적이 완전히 반대되는 셈이군.”
레녹이 그녀를 바라보며 마주 웃었다.
“난 무간의 역문에 들어가기 위해 여기 왔으니까.”
“…….”
“야오 쉰이 어째서 날 선택했는지도 알 것 같고.”
“……아무래도 좋아.”
순간 할 말을 잃어버린 발리아가, 곧바로 레녹을 향해 손을 치켜들었다.
“내가 영변 의식의 유일한 합격자가 되면, 야오 쉰 역시 쓸데없는 고민은 그만두겠지……!!”
키리리릭!!
발리아의 손에서 붉은 선혈이 솟구치더니 순식간에 길쭉한 피의 채찍으로 변했다.
순식간에 레녹의 목을 움켜쥐고, 그대로 뽑아버리려는 거친 손놀림.
그녀 역시 마비약을 여러 번 복용했을텐데, 믿을 수 없을 만큼 기민하고 움직임이다.
혈마법을 다루는 흡혈귀. 제 피를 뽑아 조작하는 존재기에 시험에서 더욱 자유로울 수 있는 걸까.
‘매개체를 다루는 술식. 특이한 힘과 비틀린 성정.’
승려 크라야가 화신술식을 익히기 적합한 적성을 설명할 때 했던 말들. 눈앞의 흡혈귀를 상대로도 정확하게 들어맞는 설명이었다.
하지만 레녹은 그런 감상은 접어두고, 거침없이 자신의 목을 휘감은 채찍을 움켜쥐었다.
콰드드득!!
장갑을 낀 손으로 채찍을 움켜쥔 순간, 날카로운 가시가 튀어나와 그대로 레녹의 손을 찔렀다.
“멍청하긴. 평생 흡혈귀를 본 적도 없는 거야?”
발리아가 그런 레녹을 보며 비웃었다.
“피하지도 않고 상처를 내가면서 내 혈액에 접촉하다니, 제정신이 아니고서는 생, 각…….”
그 순간, 레녹을 바라보는 발리아의 표정이 확 변했다.
채찍이 레녹의 손바닥을 찢어버리기는커녕, 반대로 창백한 섬광에 역으로 짓눌리고 있었기 때문.
으직!!
레녹의 손 위로 순백의 건틀렛이 떠올라 발리아의 채찍을 대신 움켜쥔다.
금이 간 채로 위태롭게 흔들리는 건틀렛의 모습. 하지만 그것이 채찍에 손을 가져다 댄 순간, 채찍의 색이 새하얗게 역으로 물들어 버렸다.
쩌저적……!!
피의 채찍을 그 자리에서 오염시키듯 순식간에 자신의 색채로 뒤덮어버리는 모습.
섬뜩함을 느낀 발리아가 즉시 채찍을 버리고 거리를 벌리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창백한 백색으로 변한 채찍이, 이제는 역으로 그녀의 손을 단단하게 붙잡았다.
“피를 매개로 다루는 혈마법은 효율이 뛰어나지만, 같은 매개술식을 상대로는 간섭에 취약하지.”
레녹이 채찍을 움켜쥔 화신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내 화신은, 자신의 힘이나 의념을 ‘전도’하는 일에 재능이 있는 편이라.”
“……!!”
부아아앙!!
새하얀 채찍이 외려 발리아의 팔을 단단히 묶어버린 그 순간.
화신체의 팔이 채찍을 크게 휘둘러 발리아의 몸을 납골당 벽에 처박아버렸다.
콰아아앙!!!
“크학!! 너, 너……!!”
숨이 끊어지는 듯한 비명을 지른 발리아가 채찍에 매달린 채 더듬거렸다.
혈마법에 대해 이상할 정도로 상세히 알고 있는 데다, 대번에 그 상성을 찌르고 들어오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존재.
하물며 그런 능력을 자신의 화신을 통해 대신 구현할 수 있을 정도로 숙달된 자.
“너…… 흡혈귀 사냥꾼 출신이냐?”
“흡혈귀 사냥꾼?”
레녹이 웃었다.
“모기를 죽이는데 사냥꾼이라는 직업도 필요했나?”
“……!!”
신랄한 대꾸에 발리아의 표정이 일그러지고, 그녀의 마력이 크게 진탕한 그 순간.
새하얗게 빛나는 채찍이 발리아의 신형을 한 번 더 휘둘러 그대로 레녹의 발아래 내리꽂았다.
쿠우웅!!!
어깨를 떨며 고꾸라진 흡혈귀를 향해 레녹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잠깐의 공방조차 제대로 이어지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끝나 버린 전투.
철저하게 상성과 약점을 찔렀다 해도 믿을 수 없을 만큼 일방적인 결과.
피투성이가 된 발리아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어…… 어, 떻게…….”
“쿤다라의 흡혈귀에게 흥미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것보다 더 급한 일이 있어서.”
희미하게 숨을 들썩이는 흡혈귀를 두고, 레녹이 야오 쉰을 향해 걸음을 돌렸다.
“강력하고 독보적이나, 한없이 위태롭고 불안정한 화신이로군.”
무표정한 얼굴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유령용이 말했다.
“영변 의식을 모두 통과했는데도, 화신의 구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건가.”
“역시 그걸 보고 싶어서 저 흡혈귀와 내가 싸우도록 방조했군.”
레녹이 비웃었다.
“나와 저 여자를 비교하며 뻗대던 것도, 순전히 내 화신이 어떤 상태인지 확인하고 싶어서였겠지?”
“…….”
화신 술식의 전승자를 굳이 한명만 둘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그럼에도 야오 쉰이 굳이 발리아의 요구를 묵살하고 두 사람의 충돌을 부추긴 것은.
그 과정에서 레녹의 화신이 어떤 상태이며, 어떤 능력을 지녔는지 확인하고 싶어서였겠지.
“쓸데없는 비교는 그쯤하고 역문에 들어갈 방법부터 듣지. 그쪽도 원하는게 있어 지금까지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 아니었나?”
무엇을 목적으로 하는지 모르겠지만, 야오 쉰은 무간 너머에서 틀림없이 바라는 것이 있다.
그렇기에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이 낡은 요새에서, 화신 술식을 가르치고 있던 것이 아닌가.
“아니, 이대로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야오 쉰은 그런 레녹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적어도 네놈이 지닌 그 화신의 모습으로는 결코 성공하지 못하겠지.”
“뭐?”
“네 말이 맞다, 복마전의 술자여. 내가 화신 술식을 전수하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을 위한 일이니까.”
“…….”
“쿤타라의 고대종은 영혼이 존재하지 않고, 죽은 뒤에는 외겁도시와 함께 그 대가를 치를 뿐…….”
순간, 야오 쉰의 눈이 아주 먼 기억을 되짚는 듯 흐릿해졌다.
“하지만 야오 쉰은 그것이 두려워 영혼을 가지려 했다. 쿤다라와는 다른 대답을 선택할 기회를 얻고 싶어 했지.”
“그래서 화신 술식을 익혔나?”
“그래. 요르타에 몸을 의탁해 영혼에 대해 공부하고…… 죽은 뒤에도 의지를 남길 방법을 찾았지.”
유령용의 화신체가 섬뜩한 의념을 내뿜었다.
“그렇게…… 그는 죽은 뒤에도 화신을 남겨둘 수 있었지만, 그건 결국 진짜 야오 쉰이 아니었던 거야.”
“…….”
“화신이란 자신을 대변하면서도, 결코 대신할 수는 없는 것. 나는 야오 쉰의 화신체이나, 야오 쉰 본인은 결코 될 수 없는 것이지.”
공허한 표정으로 변한 야오 쉰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진짜 야오 쉰이 바라던 목적에는 결코 닿지 못한 채, 나는 저주이자 원령이 되어 이곳에 남겨지고 만 거다.”
레녹은 그제야 눈앞에 서 있는 야오 쉰의 화신체가 어떤 존재인지 이해했다.
외신의 화신체로 존재하는 교단의 사도들이, 결국 외신 그 자체가 될 수는 없는 것처럼.
화신체는 주인을 대변하는 존재일 뿐 결코 주인 본인이 될 수 없다.
쿤다라의 고대종 야오 쉰은 이미 죽어 사라지고, 그가 남긴 화신체가 대신 이곳에 남아 있을 뿐.
야오 쉰은 그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았고, 그의 화신만이 이 군령도시에 남아 묶여버렸다.
“화신 술식을 익히기 위해 야오 쉰은 야행에 참가했고, 그 대가로 내 존재는 무간의 저편에 묶이게 되었어.”
음울하게 변한 유령용의 눈이 천천히 역문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 세계가 암흑의 바다 아래 가라앉는 그 순간까지, 나는 요르타와 함께 영원히 고통받게 되겠지…….”
이제까지 그에게서 전혀 느낄 수 없었던, 절망에 가득 차 있는 회한.
침묵하던 레녹이 물었다.
“원하는 게 뭐지?”
“안식.”
유령용이 눈을 감은 채로 대답했다.
“피할 수 없는 결말이 존재하고, 그것을 벗어날 수 없다면…… 그 전에 조금이라도 편해지고 싶구나.”
“편해지고 싶다…….”
레녹이 중얼거렸다.
화신체이자, 살아 있는 저주로서 무간에 묶인 야오 쉰의 화신체.
하지만 무간 안에 누군가 들어갈 수 있다면, 저주로서 묶인 그의 존재를 해방시켜 줄 수 있다.
유령용은 오직 그것을 바라며, 긴 시간 동안 자신을 대신할 누군가를 기다려 왔던 것이다.
“화신 술식을 배워 무간으로 향한 생자는 몇 명 있었지만,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다.”
야오 쉰이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무간에 진입조차 하지 못하거나, 버티지 못해 죽어버리거나…… 군령이 되어 위령탑에 복속되기 일쑤였지.”
“…….”
“영계 저편에서 간혹 구세계의 기술을 가지고 돌아온 이도 있었으나, 내가 바라던 목적은 이루지 못했어.”
쿵!!
그 말과 동시에 야오 쉰의 화신체가 레녹을 향해 한발 앞으로 내디뎠다.
“복마전의 술사여. 네놈은 그간 이 요새를 찾아온 그 누구보다 뛰어난 소질을 가진 그릇이다.”
활활 타오르는 시선으로 레녹의 흑요석 가면을 바라보며 그가 말했다.
“네놈을 본 순간 확신했다. 다음은 없어. 이곳을 찾는 누구도 네놈보다 뛰어나지 않을 거란 말이다……!!”
“…….”
“반드시 성공해야 해. 네가 성공해야 한다!! 네가 무간에 들어가, 그 저주받은 성소에서, 내 존재를 소멸시켜줘야 해!!”
“서론이 길군. 그쪽의 사정은 들을 만큼 들은 것 같은데.”
시큰둥하게 고개를 기울인 레녹이 물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지?”
결국 이 모든 설명이 레녹에게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하는 말이 아니겠는가.
번뜩이는 유령용의 안광이, 레녹의 뒤에 선 창백한 화신체를 향했다.
“그 불안정하고 나약한 화신체를 버리고, 새로운 화신체를 손에 넣어라. “
“…….”
“그런 유약한 화신으로는 안 돼…… 그리 불안정한 존재로는 절대로 무간에 도달할 수 없어!!”
야오 쉰의 화신체가 레녹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말했다.
“영계에서 버틸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화신을 구해, 역문을 넘어 무간에 도달하는 거다.”
“새로운 화신체를 구하라고?”
이제 와서 어디서 새로운 화신체를 구하라는 말인가.
아니, 애초에 술자의 화신이라는 것을 그리 쉽게 갈아치울 수 있기는 한 걸까.
레녹이 가면을 고쳐 쓰며 고개를 젓는 사이, 거대한 용의 유령이 콧김을 내뿜으며 스스로를 가리켰다.
“내가 네 화신이 되어주마.”
“……뭐?”
(…….)
그 순간, 로브 뒤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레녹의 화신이 불쾌한 듯 크게 꿈틀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