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930
약먹는 천재마법사 930화
아나테마(4)
쨍그랑!!
레녹과 아나테마를 둘러싼 빛의 고리가 깨져 나가며, 두 사람이 제단 위에서 추락했다.
목을 조르고 있던 아나테마의 손을 충격파로 튕겨 떨쳐내고, 벼락을 불러와 그 몸을 의식장 바닥 아래 처박았다.
[백락(白落)]콰아아앙!!!
새하얀 낙뢰의 기둥이 의식장 한복판에 내리찍히며 어마어마한 굉음을 내뿜고, 사방에서 날뛰는 살점괴물들을 불태웠다.
[꾸이이이익!!] [끼이익, 끼긱!!]살점괴물들이 처절한 괴성을 지르고, 아나테마의 신형이 쪼개진 제단 아래 처박혀 피를 토했다.
그 격렬한 뇌광에 한창 의식장에 난입한 괴물들을 상대하던 참석자들이 일제히 시선을 돌렸다.
“무슨 일이지?”
“견뢰가 사용하는 낙뢰술식이다. 의식에 문제가 생겼군.”
“아나테마!”
슈우우우……!!!
연기가 피어오르는 제단 아래쪽 공터 속에서, 레녹이 걸어 나오며 물었다.
“슬레인은 어디에 있지?”
적안의 남자가 보이지 않고, 그 자리를 수백 마리가 넘는 살점괴물이 대신하고 있다.
의식을 지켜보던 이들 모두가 살점괴물을 죽이고 치우는 일에 몰두하고 있는 상황.
레녹이 아나테마와 빛의 고리 안에 둘러싸인 직후 상황이 변한 것인가.
“위성도시 외곽에서 다른 참석자들에게 이변이 생겨서, 급하게 자리를 비웠다.”
“…….”
“그것보다 지금 이 상황에 대해 설명이 필요할 것 같은데.”
푸욱!!
검집을 찔러 살점괴물의 머리를 짓뭉갠 하백이 눈가를 꿈틀거리며 말했다.
“왜 아나테마를 공격한 것이지? 의식 도중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게냐.”
“이자가 이능을 전수하는 척하며 날 죽이려고 했다.”
레녹이 무표정한 얼굴로 답했다.
“교단과 내통해 판을 짜고 사도가 되었더군.”
“…….”
아나테마가 교단의 주구가 되었다고 고하는 레녹의 설명에, 모두가 말없이 입을 닫고 시선을 교환했다.
레녹이 그런 주변의 분위기를 무시하고 빠르게 설명했다.
“일단 팔괘법진을 빼앗아 아나테마가 선천이능을 각성하는 것을 막았다. 무력화를 시켜뒀으니 일단-”
“견뢰. 뭔가 착각하는 것 같은데.”
하지만 레이지는 레녹의 말을 단칼에 잘라 부정해 버렸다.
“아르마스는 교단과 상극에 가까운 힘과 이능을 가진 귀족이야. 이런 인신공양에 손을 댈 녀석이 아니라고……!”
촤아악!!
레이지의 신형이 폭발적으로 가속하며 쏟아지는 괴물들을 날려 버렸다.
그녀의 전신에 불이 타오르듯 붉은빛으로 회전하자, 화염의 회오리가 되어 의식장을 휘감았다.
화르르르륵!!!
가속을 무기로 삼는 육체능력자.
머리에 바이크 헬멧을 쓰고 있을 때 짐작하기는 했지만, 자신의 속도에 극단적으로 강점이 있는 타입이겠지.
손을 저어 괴물들의 살과 뼈를 잡아 뜯고 불태운 레이지가, 엄청난 속도로 부서진 제단 위에 착지했다.
콰아앙!!!
“카이세의 반대편에 서긴 했지만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이는 놈은 아니었어.”
부서진 제단에 처박힌 아나테마를 부축한 레이지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조금 전까지 꽤 친근하게 굴던 것과는 반대로, 더할 나위 없이 싸늘한 태도.
“너야말로 카이세의 손녀를 보호하겠다고 아르마스에게 누명을 씌우고 있는 것 아니야?”
“제니시아 바쥬르를 보호하는 것과, 아나테마의 배신을 지적하는 것이 무슨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군.”
키이이잉……!!
레녹이 머리 위에서 격렬하게 회전하는 팔괘법진을 바라보며 물었다.
“자신이 누구의 손을 잡았는지, 어떤 존재가 되어버렸는지는 아나테마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을 텐데?”
“뭐?”
레녹이 제단 아래 축 늘어진 아나테마를 바라보며 손목을 매만졌다.
“그걸 숨길 수 없다는 사실마저도 이미 알고 있겠지.”
“…….”
교단의 전대 신녀, 세이나 나이드리.
요르타의 무간에서 마지막까지 레녹과 함께하며, 유지를 남기고 떠나간 동료.
여전히 그녀의 광신에는 공감하지 못하지만. 그녀의 결정에 대해 납득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녀가 레녹을 위해 희생하며 남긴 제사장의 권한은 곁에 남아 창백한 빛을 발하고 있다.
우우웅!!
마지막 순간 레녹이라면 괜찮을지도 모른다며 번민하던 흔들림조차 아직 이렇게 선명하다.
그때 세이나가 느꼈던 만큼의 동요와, 어렵게 결정한 희생만큼의 결의가 여기에 담겨 있다.
교단의 중추를 이루는 신앙 시스템에 접촉하는 제사장의 권한이 있기에, 레녹은 교단원이 아님에도 사도의 존재를 알 수 있다.
아나테마 역시 그것을 느꼈기에, 레녹의 말에 한마디 부정조차 하지 못하고 추락해 버렸을 터.
“한번 품은 각오와 마음이 영원히 변치 않으리라 믿나?”
“…….”
“수십 년 만에 다시 마주한 네 동료가 그때와 같은 존재라고 정말 확신할 수 있나?”
처절하게 날뛰는 살점괴물들이 레녹의 눈동자에 비친다.
지성을 잃고 인간을 잡아먹는 괴물이자, 그들 스스로가 한때는 인간이었던 희생자들.
이 모든 참상에 아나테마 본인이 직접적으로 엮여 있다는 사실은 이미 확인했다.
“꺾여서 뒤틀리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야. 포기하고 영락하는 것조차 인간에게는 자연스럽다. 적어도…….”
레녹의 싸늘한 시선이 기절한 채 쓰러진 아나테마의 모습을 향했다.
“아르스노바의 귀족이 생각만큼 고결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은 틀림없어 보이는군.”
“야, 적당히 해.”
화륵!!
레이지가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까부터 자꾸 뭘 안다고 그따위로 말하는 건데? 네가 내전에서 있던 일에 대해 뭘 알아?”
“…….”
“아르마스는 우리를 몇 번이나 구해줬어. 길레온 그 자식의 작전 때문에 죽을 뻔할 때마다, 현실에 남을 수 있는 시간을 포기하고 다른 사람을 구했다고.”
싸늘하게 변한 레이지의 시선이, 헬멧 너머로 레녹을 날카롭게 응시했다.
“오히려 교단과 상극의 힘을 가진 아나테마보다, 네가 더 내통자로 의심받고 있다는 거 알아?”
“…….”
“기계도시를 헤집어놓은 2사도와 비슷한 행적. 사도살해자 천번과 싸운 것도 네가 교단 관계자이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었지.”
“아, 그랬던 거였군.”
왜 아까 뜬금없이 그 일을 꺼내 드나 했더니, 다른 참석자들 사이에서 이미 그런 의혹이 오고 간 적이 있었던 것인가.
거기까지 생각한 레녹이 곧바로 마력을 끌어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애초에 구구절절 설명할 생각은 없었으니까. 일단 급한 일부터 처리하고 이야기하지.”
“누가 그렇게 마음대로 놔둘 줄 알고?”
레녹이 어떻게 아나테마가 사도라는 것을 알았는지 설명하고 증명하는 데 투자할 시간이 없다.
일단 달려드는 레이지를 상대하며 해야 할 일을 처리할 뿐.
가속을 힘으로 삼는 능력자.
지금까지 그녀가 보여준 변덕스러운 성격을 생각하면, 어떤 상황에서도 헬멧을 쓰고 있는 건 부자연스럽다.
저 바이크 헬멧은 아마 자신의 힘을 통제하기 위한 일종의 구속장치나, 억제구임이 틀림없겠지.
헬멧을 벗는 직후 반응하지 못한다면 치명상을 입는 것은 레녹이 될지도 모른다.
‘아나테마의 선천이능을 이 자리에서 모두 빼앗아 올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제사장의 권한으로 사도가 된 아나테마를 자극해서 팔괘법진의 작동을 깨뜨리긴 했지만.
이미 통제권이 레녹에게 넘어왔음에도 이능을 다루는 데는 아직 부족했다.
적어도 아나테마 본인이 확실하게 이능을 포기하거나, 그에 준하는 상태가 되어야만 가능해질 터.
‘레이지와 하백을 제압하면서 아나테마를 상대한다.’
우우웅!!!
마력을 끌어올린 레녹의 육감이 격렬하게 회전하며 사방에서 쏟아지는 정보를 받아들였다.
‘초능력자의 개입까지는 감당할 수 있어. 문제는 저쪽이군.’
아까 전부터 기이한 바이저를 쓴 남자가 지상에서 의식장을 관망하고 있다.
마커스 트랭귈러. 미러 다이버의 수장이자, 발칸에서 최초로 사건의 지평선을 뛰어넘은 존재라 했던가.
문제는 레녹이 사건의 지평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는 것.
하백이나 초능력자처럼 능력과 대처법이 짐작이 가는 상대와는 이야기가 다르다.
쐐액!!
그 순간, 레이지의 신형이 레녹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의식장을 둘러싼 기괴한 석상 사방에서 가벼운 충격파와 함께 강풍이 몰아친다.
광활한 의식장 사방을 딛고 도약하며, 가속에 필요한 거리를 맞추고 충격량을 최대한 늘리는 기예.
속도는 곧 힘. 공기마찰을 이기지 못하고 타오르는 불꽃은 가속에 더하는 추진력이 된다.
엘리자트 극련 : 2중 개방
추진(推進)
신속(神速)
화륵!!
발끝에서부터 옮겨붙은 불길이 레녹의 눈앞에서 한 바퀴 회전한 순간.
레이지가 초음속을 뛰어넘는 속도로 레녹의 배를 걷어차 버렸다.
[멸각(滅脚)]뻐어어어어엉!!!
수십 겹에 달하는 충격파가 파문처럼 폭발하고, 레녹의 신형이 크게 들썩였다.
그 여파만으로 사방에서 우글거리던 살점괴물 수십 마리가 싸그리 압살당해 체액을 내뿜었다.
[찌이이익!!]“……!!”
레녹의 몸이 그 자리에서 기역자로 꺾여 버릴 만큼 엄청난 충격.
하지만 레녹은 레이지의 공격을 정면에서 허용하고도 피를 토하거나, 눈을 까뒤집고 기절하지도 않았다.
“막았……?!”
설마 정면에서 대놓고 선공을 받아낼 거라곤 생각조차 못한 레이지가 경악한 순간.
레녹의 손끝에서 터져 나온 압축된 화염이 레이지의 신형을 의식장 바닥에 처박아 버렸다.
[축화(築火)]콰아아앙!!!!
“악……!!”
의식장 돌바닥 위를 긁어내며 밀려난 레이지가, 그제야 레녹이 어떤 수단을 썼는지 깨닫고 황당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른 신체 부위의 방어를 포기하고 마력을 배에 집중시킨 건가, 미친 자식……!! 경로가 보이지도 않았을 텐데 어떻게!!!”
“가속 능력자라 해도 그만한 속도를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을 리가 없지.”
레녹이 창백해진 얼굴로 웃었다.
“도약을 중첩시켜 거리감을 재야 하는 수준이라면, 애초에 내 몸의 중심을 노리지 않고선 맞히기도 어려울 지경 아니겠나.”
“너……!!”
레이지가 공격에 앞서 의식장 사방을 뛰어다닌 것은, 도약 거리를 늘려 가속력을 높이기 위해서가 아니다.
의식장을 발로 뛰며 거리감을 체화하고, 멸각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한 것.
하지만 레이지 본인 역시 그만큼 가속한 상태로는 레녹의 모습을 제대로 포착하기 어렵다.
가속을 더한 선공이 빗나가는 일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최대한 표적의 정중앙에 [멸각(滅脚)]을 맞히려 하겠지.
그렇기에 레녹은 레이지가 다른 곳을 목표로 노리지 않을 것을 직감하고, 마력을 복부에 때려박아 정면에서 공격을 받아낸 것이다.
라피스의 일로 인해 최대마력량이 크게 늘었기에 가능한, 마력을 때려박아 물리력을 대신하는 무식한 대처.
그리고, 레녹이 이렇게 해가며 레이지의 코앞에서 버틴 이유가 있었다.
“내 차례군.”
“너……!!!”
철컥!!
스나이퍼 라이플을 꺼내든 레녹이 제단 위에 늘어진 아나테마의 육신을 겨누었다.
레이지를 이 자리에 묶어두고 아나테마의 육신을 완전히 말소한다.
마력을 구름처럼 휘감아 강제로 레이지의 기척을 붙잡고, 동시에 제단을 향해 파괴술식이 담긴 탄환을 격발하려던 찰나.
“그녀의 말이 맞다.”
아나테마의 목소리가 레이지의 뒤에서 울려 퍼졌다.
푸른 비늘이 뒤덮은 미형의 청년이, 흑색 도포를 두른 채 그녀의 뒤에 서 있었다.
“나와 그녀는 전장에서 서로의 목숨을 빚진 사이. 더할 나위 없이 강한 인연으로 엮여 있는 전우였지.”
“아르마-”
푸욱!!
레이지의 목 뒤에서 푸른 비늘이 뒤덮인 손가락이 튀어나왔다.
헬멧의 틈 사이로 드러난 경동맥에,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손가락을 밀어 넣은 그가 말했다.
“그러니, 이번에는 빚진 목숨을 받아가겠네.”
“…….”
제단 위에 축 늘어진 채로 쓰러진 아나테마와, 레이지의 등 뒤에서 그녀의 목을 꿰뚫은 또 다른 아나테마의 모습.
레녹이 마력감지를 사용하고도 아나테마의 기척을 놓친 것이 아니다.
아나테마의 육신이, 말 그대로 이 자리에서 새롭게 하나 더 만들어졌던 것뿐.
그리고 그것이 가능했던 동력이 인신공양이라는 사실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아르…… 마…….”
레이지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아나테마의 팔을 움켜쥐었다.
경동맥과 식도, 머리를 떠받치는 목뼈가 부러져 호흡조차도 나오지 않는 몸으로 더듬거렸다.
“구해주려 했…….”
“그 누구도 나를 구해줄 수는 없네, 레이지.”
아나테마가 실로 부드러운 목소리로 답했다.
“처음부터 이 세계에 구원은 없었으니까.”
“…….”
“아무리 헌신하고 많은 생명을 구해도, 나는 한낱 이방인일 뿐. 언제나 무대 밖의 관객이었지.”
레녹이 어딘가 기시감이 느껴지는 한탄에 입매를 굳힌 사이, 아나테마가 나직하게 말했다.
“언젠가는 보답이 찾아오리라, 언젠가는 내게도 인과가 자리하리라 믿으며. 평생 동안 배운 율법을 따랐으나…….”
푸슉!!
레이지의 목에 꽂아 넣은 손을 비틀며 아나테마가 속삭였다.
“나의 구원은, 이 세계가 아니라 저 바깥에 있었던 거야.”
“어째, 서…….”
말을 잇지 못하고 무너져 내린 레이지의 모습.
목을 감싸쥐고 쓰러진 레이지를 내려다보며, 아나테마가 눈을 감았다.
“오라, 나의 신이시여.”
고오오오……!!
양팔을 활짝 벌린 아타네마가 허공으로 솟구치고, 한없이 어두운 밤하늘을 바라보며 독백했다.
“그대의 화신이 여기에 있다……!!!”
파아아아앗!!!
사방에서 솟구친 창백한 광신의 빛이 그의 몸을 휘감고, 마침내 온전하게 깃들었다.
푸른 비늘로 뒤덮여 있던 그의 몸에, 새카만 털이 돋아나고 뿔이 자라난다.
다리의 관절이 거꾸로 비틀려서 짐승의 그것처럼 변하고, 온몸의 크기와 근질이 폭발적으로 상승한다.
쿠구구구구!!!
아나테마의 신형이 폭발적으로 상승하며, 순식간에 의식장을 벗어나 에타노크 상공에 우뚝 섰다.
발아래서 휘감기는 창백한 빛을 거부하지 않은 채로, 광신의 속박과 교리에 묶여 영락해 나간다.
아르스노바의 귀족이 사도로서의 운명을 완전히 받아들이고 수육을 마친 순간.
뚜둑!!
양쪽으로 구부러져 솟구친 산양의 뿔.
길쭉하게 튀어나온 산양의 주둥이와, 그 안쪽에 자리한 용의 이빨.
피막이 어린 날개와 비늘과 털로 뒤덮인 기괴한 피부.
산양과 용의 형상을 뒤섞어놓은 듯한 이형의 괴물이, 어마어마한 사념을 흩뿌리며 지상을 오시했다.
“하…….”
나직한 한탄과 함께 스스로의 이마를 짚은 아나테마가 고개를 뒤로 젖혔다.
“귀도 교단 산하 6사도. 육천겁(六天劫) 아나테마.”
스스로 도취하듯 속삭인 아나테마가 의식장 아래 선 레녹과 눈을 마주치며 선언했다.
“이 자리에서 위대한 외신의 축복을 받아 다시 태어났음을 선언하노라.”
쿠구구구구!!
그 말과 동시에, 위성도시 에타노크의 지반이 회전하며 천천히 공중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