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486
486화
내가 배우가 된 이유 (3)
* * *
동 시각, 넥스트 엔터테인먼트.
늦은 시각임에도 한데 모여 티비를 보고 있던 사람들이 있었으니.
넥스트 엔터 대표 차용석과 옥장파 감독, 그리고 영화제작 팀장이었다.
그들은 JABC에서 재방송해주는 배우조합상 시상식을 보며 활짝 웃었다.
“이야, 이건 진짜 기대 이상인데요. ‘나의 미래’가 이렇게까지 잘 나갈 줄 정말 몰랐습니다.”
“옥 감독, 나하고 내기한 거 잊지 않았죠?”
차용석이 눈을 찡긋하며 손을 내밀었다.
“얼른 만 원 주세요. 아, 이럴 줄 알았으면 5만 원으로 할 걸 그랬나.”
“여기 있습니다.”
옥장파가 연두색 지폐를 차용석에게 건네자, 옆에 있던 팀장이 물었다.
“두 분 무슨 내기를 하셨어요?”
“옥 감독은 이번 영화가 배우조합상까지는 무리다, 라고 했고 나는 탈 수 있을 거라고 했죠.”
“합리적인 추론에 근거한 추측이었습니다. 이번에 배우 조합에서 상당한 힘을 지닌 데이빗 맥팔레인이 공개적으로 ‘나의 미래’를 비판한 적 있으니까요. 그런데….”
옥장파가 어깨를 으쓱였다.
“아무래도 그건 아닌 것 같군요. 아무튼, 내기와 별개로 저는 태주 씨 영화가 잘 되면 좋죠. 그래야 저희 영화에도 그 후광을 누리니까요.”
“그렇죠. ‘드림랜드’가 태주의 차기작인 만큼 그 빛을 볼 수 있을 겁니다.”
늦은 시각에도 그들이 모인 이유는 단순히 ‘나의 미래’ 배우조합상 시상식의 결과를 축하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넥스트 엔터에서 제작 중인 ‘드림랜드’의 진행 상황을 체크하기 위함이었다.
“감독님. 영화 진행 상황은 얼마나 됐다고 생각하십니까? 한 90% 정도?”
“이제 거의 완료됐습니다. 얼마 전에 스태프랑 1차 내부 시사회를 가졌는데, 살짝 늘어지는 부분만 만지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럼 슬슬 개봉 시기를 조율해 봐도 괜찮을 것 같네요.”
차용석은 노트북 속 달력을 꼼꼼하게 살폈다.
“흠…. 아무래도 내년 초가 좋을 것 같은데요. 다들 의견 어떻습니까?”
옆에 있던 유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 영화가 아무래도 연말 분위기보다는 희망찬 연초 분위기에 더 걸맞은 것 같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옥장파가 덧붙였다.
“영화 분위기가 희망찬 느낌이 물씬 감돌아서, 만물이 돋아나는 봄에 개봉하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그럼 태주 스케줄도 내년 초는 되도록 비워놔야겠네요.”
“그런데 태주 씨 국내 스케줄 소화할 수 있는 건가요? 요즘 미국에서 정말 바쁘던데.”
“이제 미국에서 향수 광고 촬영만 남았습니다. 일이 마무리되는 대로 한국으로 돌아와 다시 일정을 소화할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때, 테이블에 놓인 차용석의 핸드폰이 지잉, 울렸다.
“잠시 통화 좀 하겠습니다.”
갑작스럽게 걸려온 한유경의 전화.
이렇게 늦은 시간에 전화가 걸려온 적은 처음이라, 제법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차용석은 복도로 나가서 조심스럽게 받았다.
“무슨 일이에요, 유경 씨?”
-태주한테 증인 출석 통지서가 왔어요.
“그렇군요. 제가 강승민 검사와 통화해 볼게요.”
통화를 마무리한 그는 떨리는 손으로 강승민 검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돌아오는 건 ‘상대방이 통화 중입니다’라는 멘트뿐이었다.
차용석은 일전에 강승민 검사와 만나 이번 일을 논의했지만. 뾰족한 수를 찾지 못했었다.
태주의 정신적 트라우마를 이용해 증인 신청을 거절하자는 계략은 한유경에 의해 곧바로 거절됐기 때문이다.
* * *
한편, 핸드폰을 무음으로 해 놓은 강승민은 한창 상사와 깊은 대화 중이었다.
상대는 파직된 석월근 차장검사를 대신해 온 새로 온 서현석 차장검사.
큰아버지와 동문인 그에게 강승민은 자신의 의견을 강력하게 어필했다.
“차장님, 부형윤의 이런 행태를 도대체 어떻게 생각해야 합니까? 제가 분명히 부형윤에게 경고했습니다. 한태주를 수면 위로 끌고 오지 말라고요.”
“지금 그 인간이 눈에 뭐 뵈는 게 있겠나.”
시니컬한 표정의 차장검사가 어깨를 으쓱했다.
“자기가 살 수만 있다면 죽은 아버지의 시체도 무덤에서 도로 꺼낼 인간이야, 그이는.”
“그래도 그렇죠. 10여 년 전 교통사고와 관련해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한태주를 소환하다니요.”
“그래도 한태주가 지금 미국에 있어서 증인 참석을 미룰 수 있지 않나. 그 시간 동안 어떻게 이 일을 잘 해결할 수 있을지, 같이 생각해보자고.”
“하….”
초조한 듯 얼굴을 쓸어올린 강승민이 말했다.
“태주를 어떻게든 이 재판에서 제외시킬 방법은 없습니까?”
“하지만 자네도 알지 않나. 한태주는 이번 사건의 핵심이야. 잘만 이용하면, 부형윤을 무너뜨리는 건 문제도 아니란 말일세.”
“하지만 그 사건은 태주의 트라우마입니다. 어린 시절 겪은 사고를 겨우 극복하고 배우의 길을 걷고 있는 애한테, 다시 그 사건을 언급하는 건 정말 아니라고 봅니다.”
씩씩거리던 강승민의 목소리가 점차 커졌다.
“게다가 오대인 선배, 이번 재판에서 자네 혼내 준다고 단단히 벼르고 있던데. 도대체 뭘 그렇게 밉보인 건가?”
“재판 전에 사적으로 담당 검사 가족과 만나서 짜고 치는 고스톱 하자는 인간이 제정신입니까?”
“원경 선배와 만났었는데, 완강하게 거절당했다지?”
서현석이 재밌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원경 선배도 참 어지간해, 선배를 상대로 그렇게 큰소리치기 쉽지 않은데.”
서현석이 재밌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법무법인 ‘해신’의 대표이자 강원경의 선배, 오대인 변호사.
강원경과 마찬가지로 전직 대법원장인 만큼 아직도 법원 구석구석에 그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이번 재판을 오대인 선배 손에 놀아나지 않으려면 자네가 정신을 차려야 해. 자칫하면 저 쪽한테 완전히 말려들 수가 있어.”
“알겠습니다.”
“그리고, 한태주를 최대한 엮이게 하고 싶지 않으면 그날의 사건기록을 다시 들여다봐.”
서현석이 강승민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날 교통사고의 목격자가 한태주만 있으라는 법은 없잖나?”
그가 나간 후.
가만히 앉아있던 강승민은 벼락을 맞은 듯한 기분이었다.
“그래, 부형윤이 태주를 이용해서 여론의 시선을 돌리려나 본데. 그럼 태주 대신 다른 이를 판으로 불러들이면 되지.”
그런데 그날 교통사고를 목격했던 사람들이 누가 있었지?
강승민의 머릿속에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권혁중이 쓱, 지나갔다.
그는 재빨리 핸드폰을 들어 권혁중에게 문자를 보냈다.
-권혁중 형사님, 태주 교통사고 사건기록을 다시 확인해야겠습니다. 연락 부탁합니다.
* * *
“하암.”
미국의 한 호텔에서 졸린 눈을 비비며 눈을 뜬 태주.
배우조합상 시상식, 그리고 뒤풀이까지 참석하고 난 후 늦게 일어난 그였다.
간단히 씻고 주변을 둘러보니 장진혁은 운동을 나갔는지 없었고, 박인우는 헤벌쭉 입을 벌린 채 자고 있었다.
“형 일어나 봐. 아침 먹어야지.”
[그냥 너 먼저 먹으러 가. 쟤 어제 위스키를 1병이나 마셨는데 술이 깨겠냐.]머리를 긁적이던 태주는 곧바로 호텔 브런치 레스토랑으로 내려갔다.
곧 간단히 계란 후라이, 소시지를 접시에 담아 자리에 앉았다.
태주가 한창 열중해서 먹고 있는데, 익숙한 얼굴들이 그에게 다가왔다.
의미심장한 미소를 번뜩이는 ATC의 새 주인인 로렌조와 하퍼 크로츠였다.
“웜 데드가 아주 재밌게 잘 뽑혔어. 올해 데스 게임이 휩쓸었다면, 내년에는 ‘웜 데드’가 장악할 거라 감히 확신하네. 그럼, 조만간 뉴욕에서 보지.”
뉴욕에서 열릴 ‘웜 데드’ 드라마 시사회를 암시하는 말.
태주는 가슴이 두근거려서 주스를 한 모금 마셨다.
[뭐가 그렇게 좋아서 웃어? 웜 데드가 내년을 휩쓸 거라는 말이 듣기 좋긴 하나 보지?]‘제작자가 저리 확신이 있으니 예감이 좋아서요. 특히나 이번 드라마는 제가 유독 고생하면서 찍었잖아요.’
[그렇긴 하지. 조지아주였지? 거기서 사막바람 들이마시면서 추격전 찍고. 아주 생고생했잖아.] [사막바람을 맞으면서 촬영한 거 가지고 고생이라고? 이보게 태주 군, 우리 때는 더한 고생도 많이 했다네.]그때, 태주의 테이블에 호리호리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같이 먹어도 되겠나?”
뷔페 접시를 내려놓으며 옆에 앉은 노인은 데이빗 맥팔레인.
그의 등장에 올리비아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갑자기 조용해졌다.
“그럼요, 함께 드시죠. 저도 혼자 먹어서 외롭던 참이었거든요.”
“흐음.”
옆에 먼저 앉은 데이빗은 호기롭게 앉은 것치고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리고는 그가 꺼낸 한 마디.
“수상을 축하하네. 이번에 자네 작품을 뽑을 수밖에 없었네.”
“감사합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희 작품을 달가워하지 않으셨는데, 투표해 주셨다니 의외입니다.”
솔직한 태주의 태도에 데이빗은 자신도 모르게 큽, 웃었다.
“분명 그랬었지. 그런데, 내 양심을 저버린 투표는 차마 할 수가 없더군. 나의 개인적인 생각 때문에 좋은 작품에 표를 던지지 않는 그런 멍청한 짓은 하고 싶지 않았거든.”
“개인적인 생각은 존중합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이 있듯,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솔직한 생각을 말해 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태주의 말에 데이빗의 눈이 살짝 흔들렸다.
“자네처럼 살면 누군가와 싸울 일은 없겠어. 줏대가 없는 건가, 아니면 자기 생각이 없는 건가?”
잔뜩 흥분한 이중협에게 손을 내저은 태주가 데이빗을 보며 말을 이었다.
“모든 이들이 다 같은 생각을 할 수는 없죠. 그래서 다른 이의 생각을 존중하는 것뿐입니다. 그들의 생각과 행동에는 다 이유가 있을 테니까요.”
“다른 이의 생각을 존중한다?”
“네. 그러나 저희 영화가 제일이라는 제 생각이 바뀌는 일은 없을 겁니다.”
씩 웃는 태주의 표정에 데이빗도 덩달아 입꼬리가 흔들렸다.
“자네는 줏대 없는 사람이 아니라, 버드나무 같은 사람이었군. 자신의 소신을 지키면서도 곁을 살랑거리며 다른 이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그런 사람.”
“그런데, 저도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태주는 조심스레 그에게 물었다.
“그때 레드카펫에서 습격당하셨잖습니까.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하하. 진짜 궁금한 걸 물어보지 그래.”
데이빗이 큭큭 거리며 심술궂은 미소를 지었다.
“그 남자가 나한테 무슨 원한이 있어서 그렇게 습격까지 했나, 그게 궁금한 거지?”
“아, 그게….”
“황색 언론들이 그 이유를 캐내기 위해서 온갖 거짓 기사를 쓰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지. 혹자는 내가 가망 없는 제자를 잔인하게 버렸다고 하고, 어떤 이들은 그 청년이 정신병자라고 하던데. 결론적으로 둘 다 아니네.”
“제자였던 건 맞습니까?”
“내 집에 들여 연기를 가르친 이는 맞네. 그런데 연기에는 도통 관심 없고 이상한 얘기만 하길래 내보냈지. 그런데 그 후로 나를 저렇게 따라다니더군.”
데이빗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 남자에게 스토킹을 당한 것만 벌써 4달째라네. 내 비밀을 가지고 협박하면서 말이지.”
비밀?
그 말에 태주가 무언가 알겠다는 듯 눈이 빛났다.
귀신 보는 배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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