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Beyond Fantasy Smartphones RAW novel - Chapter 191
알레미어 (2)
인류는 언제나 초월적인 누군가를 경외해왔다.
자신의 힘으로 이룰 수 없는 것을 신에게 기도하고, 자신의 손으로 닿을 수 없는 것에 신의 도움을 갈망했다.
신앙이란 사람을 지탱하는 버팀목이다.
또한 나약한 인간의 마음을 세우는 최후의 방어선이기도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절박한 순간에 신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기적이라는 이름의 도움을 갈구하는 모습을 보이고는 했다.
“······.”
그렇다면 신이란 무엇인가.
세상은 대체 무엇을 향해 신이라고 부르며 그들의 이름을 부르짖는가.
인간은 어째서 악신이라 부르는 것을 두려워하고, 선신이라고 부르는 것을 경배하는가.
어떤 기준이 올바른 이치의 선을 논하고, 반대에 있는 것을 악이라고 재단하는가.
“■■······.”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있을만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무수한 이들이 저마다의 신앙을 가지고 있고, 무수한 신앙들이 저마다의 진리를 주장한다.
어떤 것이 가장 가치있는 믿음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인지 나는 알지 못했다.
그에 대한 매듭을 짓는 것이 누구에게 허락된 것인지도 제대로 알 수 없었다.
그렇지만 내 얕은 식견으로도 이해할 수 있는 것이 분명하게 남아있었다.
“주··· 인······.”
나의 이름을 부르짖는 사람들이 세상 어딘가에는 있다.
꺾이고 부러져 진창에 빠지더라도, 나를 믿고서 앞으로 나아가려는 이들이 있다.
수많은 이들이 나에 대한 믿음에 기대어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나에게 그러한 믿음을 짊어질 자격이 있는지는 모른다.
그럼에도 그들의 믿음에 보답하는 것만이, 나에게 주어진———.
“주인님!”
툭.
에스타시아의 목소리에 머릿속을 짓누르던 상념에서 깨어나왔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주위를 둘러보면, 어느새 어둡게 변한 하늘이 창밖에 비치고 있었다.
신역에서 보이는 바깥의 경치는 거짓이지만, 그럼에도 시간의 흐름에 대한 개념만큼은 바깥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에스타시아. 시간이 얼마나 지난거야?”
나는 바싹 말라붙은 목을 움직여 에스타시아를 향해 입을 열었다.
갈라진 목에서 힘을 잃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내가 에스타시아를 향해 지금의 시간을 물으면, 에스타시아가 창밖을 손으로 가리키면서 이야기했다.
“사흘이 지났어요.”
“벌써 사흘이나 지났다고?”
깨질것 같이 아파오는 머리를 짚고서 지금까지의 기억을 되새겨본다.
인과율 보정에 의해 [신기 : 스마트폰]의 힘이 한단계 해방되면서, 나는 잠시나마 에 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정보와 사념의 파도에 한동안 휘말리고 있었다.
마지막에는 어떻게든 갈피를 붙잡는데 성공했지만, 내가 체감한 시간은 그렇게까지 긴 편이 아니었다.
생각보다도 시간의 괴리가 큰 모양이었다.
“네.”
“플루토는··· 그럼 플루토는 어떻게 된거지?”
마지막으로 마주했던 전황이 머릿속에 되살아난다.
내 기억속의 플루토는 분명 지상에 다가온 천사들과 싸우고 있던 모습이었다.
그로부터 벌써 사흘에 가까운 시간이 지났다고 한다면, 전투는 어떤 식으로든 결론이 났을 가능성이 높았다.
지금 당장 플루토의 상태를 확인해야만 했다.
나는 곧장 스마트폰을 찾아서는, 화면에 비치고 있을 플루토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 “······.”
스마트폰의 화면에 비치는 플루토는 꾸벅 졸고있는 모습이었다.
검은 용을 베개삼아 기댄 플루토의 근처에는 수많은 깃털들이 흩날리고 있었다.
그런 플루토의 주위에는 무너진 교단의 건물들을 수리하고 있는 신도들의 모습도 확인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어떻게든 천사들의 습격을 방어해낸 모양이었다.
치열했던 전투의 양상을 보여주듯이, 플루토의 몸은 짙은 피범벅이 되어있는 상황이었다.
“주인님이 눈을 감은 이후로 검은 용과 함께 한참동안 싸우고 있었어요.”
“천사들은 어떻게 됐어?”
“문제가 생겼는지 다들 물러났어요.”
“······다행이네.”
플루토 본인의 힘이 막강한데다가, 갑작스럽게 등장한 나이아스의 조력도 어느정도 도움이 된 모양이었다.
교단의 신도들이 완전히 전멸하는 불상사까지는 가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피에 젖은 플루토를 바라보았다.
전투의 피로가 심각했던 모양이었는지, 깊은 잠에 빠져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무래도 당장은 전투에 내보내기 어렵겠지.”
압도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 숫자의 차이가 존재하는 싸움이었다.
이곳에 남아있는게 플루토가 아닌 다른 사도였다면, 이만큼의 활약이 가능했을지 확신할 수 없을 정도였다.
무리해서 싸움을 이어나갔던 만큼, 한동안은 이곳에서 회복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당분간은 플루토가 전력에서 이탈한다고 보아도 무방했다.
성지에서의 싸움은 온전히 다른 사도들의 몫이었다.
“그리고 아로니아한테 연락이 왔어요.”
내가 곤히 잠든 플루토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면, 이번에는 에스타시아가 헤일로를 깜빡이면서 이야기했다.
일찍이 아로니아에게 부탁했던 정보수집에 대한 연락이었다.
나는 손에 쥐고있던 스마트폰을 내려놓고서 에스타시아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교단을 지키기 위한 플루토의 싸움이 중요했던 만큼, 아로니아를 통해 수집한 정보 역시 무척이나 중요한 것이었다.
“무슨 연락이었는데?”
“조율의 신전에 대한 정보를 찾았다고 했어요.”
성지에서의 싸움이 다른 사도들의 몫인 것처럼, 이곳에서의 싸움은 온전히 나의 몫이었다.
나에게는 더 이상 기댈 수 있는 신같은건 남아있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 * * * * *
“······지독하군.”
교단의 두번째 사도, 에반 알레미어는 자리에서 일어나는 성기사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뇌전을 떨어뜨려 몇차례고 그들을 마비시켰지만, 기사단장인 리벨즈의 방해때문에 완전히 숨통을 끊어내는 것에는 실패했다.
흑색의 성검, 리벨즈 에더런트.
그는 일찍이 에반이 성기사였던 시절부터 들어왔던 명성만큼이나 강한 상대였다.
크로스브릿지의 검이라는 이명에 걸맞는 실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여신이여, 길을 인도하소서.”
그런 리벨즈의 공격보다도 더욱 까다로운 것은, 에반의 공격에 의해 쓰러진 성기사들을 회복시키는 리벨즈의 신성력이었다.
아스트라페의 뇌전에 노출된 기사들은 전투불능이 되었다가도, 금세 리벨즈에게 치료를 받아 전선에 복귀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게다가 하나라도 멀쩡한 성기사가 남아있다면 그가 곧장 다른 성기사들을 치료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가능하다면 적들을 일거에 쓸어버릴 필요성이 있었다.
“여신이 인도해주는 길을 믿나?”
철컥.
에반은 자신의 주인에게 하사받은 마검을 붙잡은 채로 물었다.
칠흑의 뇌전이 번쩍이는 마검의 너머로, 불쾌한 표정을 짓고 있는 리벨즈의 얼굴이 보였다.
리벨즈는 에반의 질문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인지, 분노가 섞인 목소리로 에반을 향해 반발했다.
“······인류를 배신한 악신의 종복이 뭘 알겠나.”
“글쎄. 잘난 여신께서 나에게 인도해주신 길은 이곳이더군.”
에반은 미소를 지으며 손에 쥔 마검을 기울였다.
파직. 파지직.
손에 쥔 뇌전의 마검에서 칠흑의 빛이 그 모습을 키워나갔다.
번개의 힘을 증폭시키는 마검의 능력은 결코 우습게 볼만한 것이 아니었다.
에반이 전력으로 쏘아내는 뇌격의 위력이 기존보다 반절은 증가했으니까 말이다.
뇌전을 휘감은 검을 쥔 에반이 눈앞의 적들을 향해 그것을 겨누면, 리벨즈는 눈썹을 꿈틀거리며 그를 향해 물었다.
“무슨 말을 하려는거냐.”
“모든 것을 바쳐 기도해보아도, 결국 내가 마주한 현실은 이게 전부였다.”
“오만한 녀석이군. 올바른 길을 저버린 것은 네 녀석의 선택이다.”
리벨즈 역시 흑색의 성검을 들고 자세를 잡으며, 에반의 뇌격에 대응하기 위한 준비를 했다.
날이 바짝 세워진 흑색의 성검은 어둠의 아래에서 빛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그를 마주한 에반이 생각하기에는, 성검이라는 이름과는 썩 어울리지 않는 무기였다.
리벨즈가 가진 흑색의 성검은 다른 성검과는 다르게 무척이나 이질적인 무기였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치부하기에는 가벼운 응답조차도 내게 닿지 않더군.”
“여신을 향한 네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여신께서는 고결한 믿음을 가진 이들에게 언제나 합당한 답을 돌려주신다.”
지금까지 스스로가 쌓아올렸던 모든 믿음을 부정당했다.
허무함에 젖은 에반의 눈빛이 리벨즈의 성검을 향했다.
세상의 누군가는 여신으로부터 직접 선택받으며, 영웅이라는 이름으로 영광스러운 생애를 보내고는 한다.
그에 반해 다른 누군가는 여신으로부터 버려져, 끊임없는 시련에 저항하다가 끝내 꺾여 부러지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믿는 명예의 여신이 선택한 것은 에반 자신이 아닌 산골마을의 농부였다.
“내 믿음이 피터보다도 부족했다고 말하고 있는건가.”
아무리 생각해도 우스운 이야기였다.
자신의 모든 것을 여신에게 바치던 성기사보다도, 제대로 된 기도를 올렸는지조차 의심스러운 피터가 더 고결하다니 말이다.
지금의 피터를 원망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렇다고 자신의 과거를 부정하는 이야기에 긍정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여신께선 전부 알고계시겠지.”
“······그래. 성기사의 정점에 오른 인물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 조금은 마음이 정리가 된 것 같은 기분이군.”
한때는 에반이 동경하던 인물이었다.
그는 에반이 동경하던 그 시절 그대로, 성지의 문을 계속해서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변한 것은 에반 자신이었다.
에반은 이제 맹목적으로 여신의 인도를 쫓던 성기사가 아니었다.
파직.
응집된 뇌전이 칠흑의 빛을 발하는 것과 동시에, 에반은 눈앞의 리벨즈를 향해 이야기했다.
“내가 믿음이 부족해 꺾였다고 이야기했나?”
“결국은 어리석은 자의 발로일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다시 한 번 말해주도록 하지.”
지금 이곳에 있는 에반 알레미어가 해야만 하는 일은 하나뿐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쌓아올린 동경의 감정을 자신의 손으로 베어내는 것.
결심을 마친 에반의 눈에서 붉은 스파크가 튀어올랐다.
안광을 피어올린 에반은 전력을 다해 손에 쥐고 있던 마검을 휘둘렀다.
“나는 제2사도 에반 알레미어다.”
검게 물든 뇌전의 폭풍이 터져나오면서 두 사람의 시야를 뒤덮었다.
콰과과과광—!
강렬하게 휘몰아치는 뇌전의 폭풍이 리벨즈와 기사들을 노리면서 뻗어나갔다.
어둠이 한차례 허공을 뒤덮고, 그 뒤에 빛이 공간을 찢어발겼다.
자신을 향해 쇄도하는 날카로운 궤적에 리벨즈 역시 방어를 위해 검을 휘둘렀다.
“——빛이여!”
치직. 치지지지직.
공간을 굴절시키기 시작한 리벨즈의 성검이 에반의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 움직였다.
불필요한 동작없이 부드럽게 흘러들어간 검은 순식간에 폭풍의 중심으로 빨려들어갔다.
그렇게 휘둘러진 리벨즈의 성검이 에반의 마검과 충돌하려는 순간.
에반은 측면에서 느껴지는 강대한 기운에 재빠르게 궤도를 비틀었다.
“······!”
서로의 검이 맞부딪히려는 장소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
그곳에서 막대한 마력이 응집되고 있었다.
빛과 열. 그리고 압축된 공기가 만들어내는 거대한 위압감.
무방비한 상태에서 공격을 허용하게 되면 그 자체로 치명상이 될 수 있을만한 일격이었다.
‘이 공격을 허용했다간 위험해질거다.’
정체 모를 누군가가 쏘아내는 마법의 기색에 에반은 다급한 손으로 뇌전의 폭풍을 휘둘렀다.
파직.
무리하게 꺾어낸 궤도를 따라 뇌격이 터져나갔다.
에반의 마검은 자신을 노리고 날아오는 불꽃의 마법을 막아내기 위해 움직였다.
마법이 발현된 장소로부터 작열하는 화염이 피어오르며 후끈한 열기가 공간 전체를 뒤덮었다.
“——파이어 스톰.”
“허스 알레미어······!
마법을 영창하는 목소리와 리벨즈의 외침이 동시에 울려퍼진 직후.
뇌전의 폭풍과 화염의 폭풍이 허공에서 맞부딪혔다.
겹쳐가는 폭풍속에서 급하게 중심을 뒤틀어버린 에반의 몸이 뒤로 밀려났다.
콰아아아앙——!
균형을 잃어버린 에반의 몸이 성벽 밖으로 튕겨져나가고, 마검을 쥐고 있던 에반의 시야가 허공에서 뒤흔들렸다.
“크윽······!”
리벨즈와의 충돌도중 날아온 일격에 제대로 대응조차 어려운 상황이었다.
가까스로 열기를 빗겨낸 에반이라도 자신을 밀어내는 힘을 완전히 무시하기는 어려웠다.
파공성을 터뜨리며 뒤로 밀려나가던 에반은 건틀릿을 쥔 손에 마력을 끌어올렸다.
성벽에서 너무 멀어지기 전에 어떻게든 몸을 멈춰세우려는 생각이었다.
“——아스트라페!”
파지직.
뇌전의 날개가 펼쳐지며 에반을 밀어내던 힘을 대부분 상쇄시켰다.
에반은 남은 힘마저도 버텨내기 위해 바닥에 마검을 꽂아넣었다.
카가가가각!
검을 꽂아넣은 지면에 상흔이 새겨지며 에반의 몸에 제동이 걸렸다.
“하······.”
날개를 펼친 곳으로부터 조금 더 밀려난 곳에서 에반은 완전히 멈춰설 수 있었다.
바닥에 검을 꽂아넣은 에반의 입에서 거친 숨결이 터져나왔다.
전조를 감지하지못한 갑작스러운 마법은 에반의 예상을 상회하는 위력이었다.
그리고 크로스브릿지에서 그러한 수준의 공격이 가능한 사람은 둘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보고싶었다. 제2사도, 에반 알레미어.”
“너는······.”
영웅. 혹은 그에 준하는 존재.
그 중 하나는 불세출의 천재 아레인 크로스트였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처음으로 소개하지. 지식의 영웅 허스 알레미어다.”
에반 알레미어의 하나뿐인 형제.
허스 알레미어.
그가 에반의 바로 앞에서 신기를 펼친 채로 서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