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Beyond Fantasy Smartphones RAW novel - Chapter 192
알레미어 (3)
“······허스.”
에반은 허스의 이름을 부르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지식의 영웅. 그리고 알레미어 가문의 둘째.
어린 시절부터 그를 뒤따르던 동생은 이제 예전과는 다른 위치에 서있었다.
에반이 그토록 동경하던 위치에 서서, 적대감이 어린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에반 알레미어. 여신님의 뜻에 따라 널 처단하겠다.”
지독한 인연이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무기를 겨누어야만 하는 기구한 운명이라니.
신의 장난이라고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운명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이 서로에게 무기를 겨누는 것에 망설임은 남아있지 않았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이미 오래 전부터 결론이 내려져 있었으니까 말이다.
“여신의 뜻이라··· 어느새 독실한 신도가 다 되었군.”
“아무래도 타락한 성기사가 꺼낼 이야기는 아닌 것 같은데.”
철컥.
건틀릿을 낀 손으로 마검을 붙잡은 에반이 허스를 향해 검을 겨누었다.
날카로운 마검에서는 뇌전의 기운이 번져나가고 있었다.
“——히에로글리프.”
그를 마주하고 있던 허스 역시 가만히 있지 않았다.
허스는 히에로글리프를 붙잡은 채로 에반에게 쏘아낼 마법을 준비했다.
서로를 노려보는 형제의 눈에는 살기가 가득차있는 모습이었다.
“정말 오랫동안 기다려왔다. 에반.”
이제 그들을 지탱하는 것은 양립할 수 없는 신념뿐이었다.
천상의 신에게 선택받은 두 사람의 몸에서 막대한 마력이 뿜어져나왔다.
파직.
에반의 전신에서 칠흑의 뇌전이 피어올랐다.
허공에서 맞부딪히는 두 사람의 기세를 바라보면서, 성벽 위에 서있던 리벨즈가 허스를 향해 커다란 목소리로 외쳤다.
“허스 공, 지금 합류할테니 잠시 시간을······!”
“에반 알레미어는 내가 처리한다. 아무도 이 싸움에 끼어들 수는 없어.”
허나 허스는 곧장 리벨즈의 참전을 거부했다.
리벨즈의 도움 없이 오직 자신의 힘만으로 에반을 쓰러뜨리겠다는 이야기였다.
망설임 없이 돌아오는 답변에 당황한 리벨즈의 목소리가 허공을 맴돌았다.
“허스 알레미어! 그게 대체 무슨 이야기냐!”
“리벨즈 에더런트. 당신이 상대해야할건 이쪽이 아니라, 지금 지상에 내려오고있는 교단의 군세일텐데.”
“뭐라고······?”
허스의 이야기가 끝나기 무섭게, 리벨즈의 머리위에서 단검을 든 남자 하나가 떨어져내렸다.
소리조차 내지 않고 떨어지는 남자의 기척은 기사단장인 리벨즈조차 충돌 직전에 감지할 수 있을 정도였다.
카앙!
흑색의 성검과 암살자의 단검이 맞부딪히며, 허공에 금속의 마찰음이 울려퍼졌다.
“큭······!”
리벨즈로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날카로운 일격이었다.
힘겹게 암살자의 암습을 받아낸 리벨즈는 곧장 성검을 휘둘러 반격을 시도했다.
그러나 리벨즈의 검은 암살자가 사라진 자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리벨즈가 검을 휘두르는 사이에 암살자가 완전히 모습을 감춘 것이었다.
허공을 스치고 지나가는 성검의 궤적에, 리벨즈는 다급한 목소리로 주변을 향해 외쳤다.
“암살자가 섞여들어왔다! 전원 경계해라!”
상대는 능숙한 실력을 가진 암살자였다.
게다가 지금은 악신의 권능이 지상을 뒤덮고 있는 상황이었다.
실력이 출중한 성기사라도 암습에 당할 가능성이 존재했다.
허나 전장은 리벨즈에게 일말의 여유조차 허락하지 않으려는 듯이, 사방에서 거센 목소리가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단장님! 성문이 위태롭습니다!”
“에드워드! 헤러! 너희는 아래로 내려가 성문이 돌파당하는 사태에 대비해라!”
“단장님! 통신구에서 성황청이 습격당했다는 소식이······!”
“동요하지마라! 성황청에는 성하께서 계신다!”
끊임없이 성문을 향해 돌격해오는 짐승들.
모종의 수단으로 성문을 돌파해 크로스브릿지 내부를 헤집고다니는 교단.
그리고 지상을 덮은 어둠속에 숨어 기습을 가해오는 암살자까지.
성벽을 지키던 성기사들에게 여유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결국 리벨즈는 전장의 압박감에 짓눌려 허스의 일에서 눈을 돌리고 말았다.
“허스 알레미어! 독단에 대한 책임은 나중에 묻도록 하겠다!”
“책임은 이 자리에서 내 손으로 지도록 하지.”
터벅.
불꽃이 서린 마법을 움켜쥔 허스가 한발자국 앞으로 나아가며 말했다.
“제2사도, 에반 알레미어를 죽이는게 내게 주어진 책임이다.”
리벨즈의 시선에서 벗어난 허스는 옅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에반 역시 그를 마주보며 발걸음을 옮겼다.
허스 알레미어와 결판을 짓는 일은 그 역시 바라마지않던 일이었다.
허공에서 시선을 마주한 두 영웅이 서로를 향해 움직였다.
“——아스트라페.”
“——파이어 스톰.”
뇌전의 마검을 들고 달려나가던 에반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거리를 좁혀오는 허스를 바라보며 의아해했다.
허스는 그와의 충돌을 피하지 않겠다는 것처럼, 마력을 끌어올린 채로 에반을 향해 달려오고 있는 모습이었다.
통상적인 마법사의 전법과는 커다란 차이가 있는 모습이었다.
오러도 신성력도 사용하지 못하는 에반과의 근접전을 피할 이유가 없다는 의도처럼 보였다.
‘어지간히 얕보인 모양이군.’
파지지직.
기나긴 꼬리를 만들어낸 뇌광이 궤적에 있는 모든 것을 집어삼킬 기세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검이 움직이는 공간의 빛이 굴절되며, 칠흑의 검이 눈앞의 적을 노리고 쏘아져나갔다.
눈을 어지럽히는 빛과 어둠의 폭격이 눈앞의 마법사에게 닿으려는 순간.
허스가 입꼬리를 틀어올리며 입밖으로 영창을 내뱉었다.
“——텔레포트.”
콰아앙!
목표를 잃어버린 뇌격이 아무것도 없는 바닥에 내려꽂혔다.
지면을 타격한 에반의 마검이 사방에 칠흑의 뇌전을 흩뿌렸다.
쿠구구구궁.
에반의 공격에 휘말린 숲의 나무들이 뿌리채로 꺾여 무너져내렸다.
허나 에반이 휘두른 검은 엉뚱한 곳을 내려쳤을뿐, 정작 목표물이었던 허스는 그곳에서 완전히 벗어난 이후였다.
“공격을 피했다고······?”
“더는 그때의 내가 아니야.”
어느새 에반의 뒤에 자리잡은 허스가 손을 들어올렸다.
화르륵!
허스의 손에는 아직까지 밀도 높은 화염의 마력이 쥐어져있는 상태였다.
허스는 망설이지 않고 손에 응축된 마법을 해방시켰다.
극한까지 응축된 화염의 마력이 비어있는 에반의 등을 노리고 쏘아져나갔다.
“······!”
손에 쥔 마검을 이용해 막아내기에는 상황이 좋지 않았다.
결국 에반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최대한 몸을 뒤트는 일이 전부였다.
그는 한계까지 뇌전의 힘을 끌어올리면서, 화염폭풍의 중심에서 빗겨나기 위해 몸을 비틀었다.
콰과과과광—!
거센 폭음이 터져나오면서 에반의 몸이 이전과 마찬가지로 멀찍이 튕겨나갔다.
“아스··· 트라페······!”
파직.
에반의 건틀릿에서 뇌기가 흘러나오며, 날아가는 몸을 최대한 보호하기 위해 움직였다.
카각! 콰드드드득!
지면에 내려꽂힌 채로 긁혀나가는 건틀릿은 불꽃과 먼지를 일으키며 어떻게든 충격을 흘려내려는 모습이었다.
물론 충격을 받아내려는 에반을 허스가 얌전히 놔둘 이유는 없었다.
흙먼지를 휘날리며 밀려나가는 에반을 향해 허스의 다음 공격이 쏘아져나갔다.
“——인페르노.”
허공에 빛과 불꽃의 궤적이 그려지더니, 밀려나는 허스를 향해 붉은 섬광이 뻗어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작열하는 섬광은 닿는 순간 전신이 타오를만큼 강렬했다.
치지직.
에반이 펼친 뇌전의 날개에서 흘러나온 빛이 에반의 몸을 밀어내었다.
뇌전의 힘으로 방향을 비틀어버린 에반이 나무와 충돌해 몸을 정지시키면, 에반의 몸에서 강한 격통이 전해져왔다.
“큭······.”
에반은 이를 악물고 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꽉 다문 에반의 입안에서 짙은 피맛이 느껴지고 있었다.
허스의 마법이 스쳐지나간 왼팔 역시 멀쩡한 모습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허나 공격에 적중당했다고 해서, 고통에 신음하고 있을 여유따위는 없었다.
전장에 서있는 모든 순간이 죽음과 직결된 상황이었다.
“그걸 피하다니, 어지간히도 운이 좋군.”
허공을 부유한 허스의 손아귀가 다시금 에반을 향해 겨누어졌다.
휘릭.
마검을 고쳐잡은 에반도 마찬가지로 신기의 힘을 끌어올렸다.
“——아스트라페.”
“——히에로글리프.”
뇌전을 끌어올린 에반의 움직임에 맞추어, 허스 역시 불꽃의 마력을 끌어올렸다.
파직. 화르륵.
강맹한 두 기운이 서로를 노리고 쏘아져나갔다.
불꽃과 번개. 그리고 빛과 열.
허공에서 맞부딪힌 적색과 흑색이 우위에 서기 위해 뒤엉키기 시작했다.
“——아이스 스트라이크.”
콰아아아앙!
충돌하는 마력이 폭음을 일으키며 흩뿌려졌다.
산산히 부서지며 주변을 밝혀나가는 마력광 너머로, 두 사람이 다시 한 번 다음 공격을 준비하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공간을 뛰어넘은 허스의 손에는 차가운 냉기의 마력이, 날개를 펼친 채로 변칙적인 기동을 펼치는 에반의 검에는 뇌전의 마력이 서려있었다.
“——아스트라페.”
이번에도 먼저 움직인 것은 에반의 공격이었다.
뇌전의 빛이 뻗어나가는 궤적을 허스가 공간이동 마법으로 피하고, 그 다음에 날카로운 얼음이 에반을 향해 쏘아져왔다.
그러나 에반은 아스트라페의 기동력을 사용해 곧장 자리에서 벗어났다.
다음 공격을 준비하는 것은 에반쪽이 더 빠른 상황이었다.
“——아스트라페······!”
뇌전의 일격이 쏘아져나가고, 그것을 허스가 공간을 뛰어넘어 피해낸다.
그 다음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공간을 뛰어넘은 허스가 마법을 쏘아내었다.
직전과 동일한 움직임이었다.
콰앙!
에반은 자신을 노리고 날아오는 공격을 뇌전의 검격으로 막아내었다.
“——히에로글리프.”
“——아스트라페.”
“——파이어 스톰.”
“——아스, 트라페······!”
이후의 전투는 한동안 비슷한 양상이 반복되었다.
막고, 피하고, 그리고 다시 공격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공간을 내어주지 않는 단조로운 대치상황이 반복되었다.
무한에 가까운 마력을 가진 두 사람의 대결인만큼, 전투의 양상이 빠르게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일은 없었다.
“쓸데없는 발악을 하는구나.”
십 분. 삽십 분.
그리고 한 시간.
사방의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빛은 끝을 모르고 계속해서 휘몰아쳤다.
두 사람의 전투가 계속해서 이어져갈수록, 크로스브릿지 부근에 존재하던 숲은 거듭해서 그 형태를 바꿔나갔다.
전투를 벌이는 두 사람의 체력만 무한했다면, 결코 끝이 나지 않을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허스.”
“에반 알레미어. 너는 결코 이 자리에서 살아돌아갈 수 없을거다.”
허나 두 사람의 처지는 결코 평등하지 않았다.
전투의 초반부터 허스의 공격을 허용한 에반의 몸은 망가져있었으며, 그와 다르게 허스의 모습은 아직까지도 지친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갑작스럽게 변화한 허스의 전술을 에반이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 탓이었다.
전투가 길어질수록 불리해지는 것은 에반쪽이었다.
어깨에 생겨난 상처는 점점 더 벌어져가고, 마검을 쥔 손에서는 미세한 떨림이 전해져오고 있었다.
“내가 너를 죽일테니까.”
그 사실을 이해하고 있는 것은 허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시간은 에반의 편이 아니었다.
스스로의 부족함으로 인한 상처였으니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었다.
어떻게든 허스를 쓰러뜨린다고 하더라도, 다음에 있을 전투에서 제대로 활약할 수 있을거라는 보장도 없었다.
‘이 전투가 끝나면 아무래도··· 유테니아에게 단단히 혼나겠군.’
쓴웃음을 지은 에반이 비틀거리는 손으로 검을 들어올렸다.
자신이라면 영웅을 쓰러뜨리고 계속해서 전장에 남아있을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마저도 에반의 오판이었다.
언제나 그를 뒤따르던 어린 동생의 모습이 겹쳐보이지만, 그럼에도 눈앞에 있는 적은 엄연한 영웅의 하나였다.
가지고있는 패를 아껴두고서 쓰러뜨릴 생각을 할 수 있을만큼, 여유롭게 전투에 임할 수 있을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다른 영웅들과 맞서싸우는 것은 어디까지나 다른 사도들의 몫이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거냐.”
갑작스럽게 미소를 지어보인 에반을 향해, 공중에서 마법을 준비하고 있던 허스가 물었다.
그런 허스의 모습에서는 아직까지도 다 자라지 못한 동생의 모습이 겹쳐보이고 있었다.
문득 과거의 기억이 에반의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부터 그는 옛날 이야기의 영웅을 동경하고는 했다.
“어린 시절이 생각나는군. 그때는 내가 영웅이 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었지.”
“그거 참 안타깝게 됐군. 여신이 선택한게 네가 아니라 나여서.”
“아니, 지금 생각해보면 다행인 일이었다. 나는 영웅의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같은게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꺼지지 않는 동경의 마음은 성기사가 되고 나서도 이어졌다.
누구보다 강인한 신앙을 자신의 가슴속에 품게된다면, 언젠가는 여신이 그를 돌아보게 될거라고 믿고 있었다.
믿음. 동경. 그리고 영웅.
그 모든 것들이 지난날의 에반 알레미어를 지탱하고 있던 원동력이었다.
“이제서야 자신의 분수를 알게된건가.”
“그래. 지금에서야 자신의 분수를 이해하고 말았다.”
그러나 오래전의 영웅담에 에반을 위한 자리는 없었다.
지금의 그는 영웅같은게 아니었다.
그는 여신에게 버림받은 성기사였으며, 악신에게 선택받은 교단의 두번째 사도였다.
눈앞의 허스 역시 언제나 그에게 뒤쳐져있던 동생이 아니라, 에반을 죽이기 위해 무기를 겨누고 있는 그의 적이었다.
쓰러뜨려야 하는 것은 에반의 혈육인 허스 알레미어 따위가 아니었다.
그가 그토록 동경하던 자리에 군림해있는 지식의 영웅이었다.
“지식의 영웅, 허스 알레미어. 지금부터 전력으로 너를 쓰러뜨리겠다.”
마검을 겨누던 에반의 눈빛이 이전과는 다른 이채를 띄기 시작했다.
에반을 불태우던 신앙의 빛은 진작에 꺼져버렸다.
그럼에도 그가 해야만 하는 일은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모든 것을 바쳐 여신을 따르던 언젠가의 성기사처럼, 이제는 모든 것을 불태워 믿음을 쫓는 신의 사도가 되어야만 했다.
결심을 마친 에반이 허스를 노려보며 한줄의 기도문을 읊었다.
“——위대하신 분이시여, 당신의 뜻을 행하소서.”
신앙의 빛을 포기했던 순간부터 에반이 가장 바라고 있던 것은 한줄기의 기적이었다.
그리고 에반의 주인은 언제나 그에게 기적을 내려주고 있었다.
하루에 한 번.
가장 필요한 순간에만 그 힘을 발할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찬란한 기적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