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Beyond Fantasy Smartphones RAW novel - Chapter 193
알레미어 (4)
성직자의 업을 짊어진 사람이 할 수 있는거라곤, 예나 지금이나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신을 믿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 대상이 세간에 악신이라고 불린다고 해도, 에반 알레미어의 역할은 언제나 정해져있었다.
모든 것을 불태워 신의 뜻을 따라가는 것.
그는 천상의 신에게 내려받은 마검을 양손으로 쥐고서 입을 열었다.
“——아스트라페.”
파직.
검붉은 스파크가 튀어오르며 허공에 빛을 흩뿌렸다.
양손으로 마검을 붙잡은 에반의 주변에 거센 비바람이 휘몰아쳤다.
콰릉!
한줄기의 낙뢰가 떨어져내리며 어둠으로 가득찬 공간에 선을 그었다.
뇌성과 함께 울려퍼지는 빛줄기 너머로 에반이 검을 기울였다.
“——라이트닝 스톰.”
뇌전계통의 모든 마법을 다룰 수 있게 만드는 번개의 신기가 빛을 내뿜었다.
신의 분노가 에반의 검을 빌어 지상에 내려앉은 직후.
방대한 뇌기가 휘몰아치며 천둥소리와 벼락이 지상을 뒤흔들었다.
적막을 찢어발기는 뇌룡의 표효가 공기를 터뜨리며 쩌렁쩌렁 울려퍼졌다.
“——배리어!”
번개의 폭풍은 피아를 가리지 않은 채로 휘몰아쳤다.
그 여파에서 벗어날 생각이었던 모양인지, 에반을 지켜보던 허스가 배리어 마법을 사용했다.
형태를 갖춘 마력의 흐름이 허스의 근처에 머물며 빛의 장벽을 형성했다.
정점에 다다른 마법사들 중 하나가 사용한 배리어 마법이었다.
어지간한 공격으로는 흠집조차 내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지식의 영웅, 허스 알레미어.”
시야를 어지럽히는 번개의 폭풍속에서 에반은 검을 쥐고 앞을 향해 걸어나갔다.
콰르릉!
타락한 성기사가 한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우레와 같은 소리가 울려퍼졌다.
파직!
악신의 사도가 한걸음 더 영웅에게 가까워질 때마다, 뇌전의 빛이 번져나가며 사방으로 스파크가 튀었다.
줄어드는 거리속에서 에반 알레미어의 검은 하나뿐인 자신의 형제를 겨누고 있었다.
번쩍거리는 뇌광속에 파묻힌 안광이 흉흉한 기세를 내뿜었다.
“그 더러운 입으로 내 이름을 입에 담지마라!”
허스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에반에게 일갈하며, 날카로운 뇌전의 마법을 그에게 쏘아보냈다.
그러나 허스가 쏘아보낸 번개의 창은 그에게 닿지 못했다.
허스의 손을 떠난 번개의 창은 휘몰아치는 뇌전에 집어삼켜져 그 일부가 되어버린 것이다.
옅은 스파크를 만들어내며 날아간 뇌전의 창이 사라진 직후, 이전보다 더욱 강대해진 번개의 폭풍이 에반을 휘감은 채로 전진했다.
“너를 우둔한 영웅으로 만들어낸건, 어디까지나 과거의 내가 만들어낸 업보다.”
“헛소리는 집어치워! 나는 오직, 너 하나를 죽이기 위해서 지금까지······!”
“그러니 그 책임을 다하는 것을 피할 생각은 없다.”
에반은 여전히 쓰디쓴 웃음을 입에 머금은 채로, 허스를 향해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발걸음을 옮겼다.
눈앞에 보이는 지식의 영웅은 과거의 그를 비추고 있는 거울이었다.
가장 선명하게 빛나는 자리를 쫓고 있었다.
가문의 모두가 그를 우러러보게 만들 찬란한 영광을 쫓고 있었다.
어린 동생이 그를 동경하게 만든 것도, 그가 지금 이토록 경멸하는 길을 따라걷게 만든 것도 모두 에반 자신의 업보였다.
그러니 지금부터 그 책임을 다할 생각이었다.
“——어리숙한 모습으로 써내려가던 영웅담은 이제 끝이다.”
말을 끝마친 에반의 발걸음이 앞을 향해 달려나갔다.
타다다다닥—.
앞을 향해 질주하는 에반의 등 뒤에 거대한 뇌전의 날개가 펼쳐졌다.
에반을 휘감고 있던 뇌전의 폭풍은 날개를 밀어내는 강한 바람이 되고, 그를 향해 내려꽂히던 벼락은 빛의 날개를 더욱 키워나갔다.
허스 알레미어를 향해 가속하는 에반의 몸이 전류를 흩뿌리며 전진했다.
‘조금 더 빠르게.’
파직.
영혼을 불태우는 뇌광이 에반의 몸을 한층 더 가속시켰다.
일렁이는 어둠은 빛에 물들고, 피어오르던 빛은 다시 어둠에 사그라든다.
위대한 존재가 만들어낸 검은 번개는 모순적인 빛의 꼬리를 그려나가며 사도의 몸을 앞으로 밀어내었다.
‘조금 더.’
주변을 휩쓰는 폭풍의 중심에 있는 것은 여전히 악신의 사도였다.
대지를 내달리던 발걸음은 허공에 뜬 채로, 몇차례고 거듭해 쌓아올린 뇌전만이 공기를 터뜨리며 나아갈 뿐이었다.
타오르는 빛이 에반을 앞으로 이끌었다.
모든 것을 불태우는 열기속에서 에반 알레미어는 계속해서 전진했다.
‘앞으로 조금만 더———.’
콰아아아앙—!
지나치게 커져버린 뇌전의 날개가 그 크기를 버티지 못하고 터져나갔다.
귀를 뒤흔드는 폭음에 에반은 귀가 멀어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럼에도 그는 멈추지않고 앞을 향해 한층 더 가속했다.
“——아스트라페······!”
“——히에로글리프!”
충돌하는 빛과 어둠속에서 검은 섬광이 허공에 한줄기의 궤적을 그려내었다.
어둠의 빛이 노리는 목표물은 오직 하나.
궤적의 끝에 배리어를 펼친 채로 서있는 허스 알레미어였다.
파멸적인 속도로 다가오는 악신의 사도를 앞에 두고서, 허스는 한손에 펼쳐진 신기를 움켜쥐고 있는 모습이었다.
‘아직··· 아직은 아니다.’
어느새 검을 휘두르면 닿을 것 같이 좁혀진 거리에서, 에반은 손에 쥐고 있는 마검을 휘두르는 것을 주저했다.
눈앞의 영웅은 얼마든지 공간을 뛰어넘을 수 있다.
목표물을 놓친 검이 허공에 휘둘러지고, 그 틈을 타 허스가 준비된 마법을 사용한다면 그를 붙잡는 것은 결코 불가능했다.
그러니 검을 휘두르는 상대는 눈앞의 허스 알레미어가 아니었다.
지금 이곳에서 벗어나 그를 향해 마법을 준비하고 있을, 미래의 허스 알레미어에게 이 검격을 휘둘러야만 했다.
“——텔레포트!”
그의 예상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이, 에반을 코앞에 둔 허스가 전이마법을 사용해 눈앞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에반의 공격을 따돌리고서 그에게 유효한 피해를 입히기 위함이었다.
허스가 눈앞에서 모습을 감추기 무섭게, 에반은 곧장 검을 휘둘러 준비해둔 공격을 쏘아내었다.
에반의 마검이 빠르게 휘둘러지며 무자비한 궤적이 허공을 스치고 지나갔다.
“——파이어 스톰!”
‘지금이다.’
그렇게 휘둘러진 검이 노리는 것은 아무도 없는 허공이 아니었다.
휘릭.
허공에서 한바퀴 회전한 검은 이내 에반의 손아귀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주인의 손을 떠난 마검이 노리는 목표물은 공중에 떠있을 허스 알레미어였다.
“검을 손에서··· 이런······!”
자신을 향해 회전하며 날아오는 마검의 모습에, 당황한 허스 알레미어가 재차 마법을 발동했다.
검을 피하기 위해 그가 사용할만한 마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다중영창이 가능한 신기의 힘을 이용해, 다시 한 번 공간을 뛰어넘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회전하는 마검의 궤적에서 허스가 모습을 감추고, 그 직후 다시 다른 위치에서 허스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테, 텔레포트!”
“——템페스트.”
그렇게 전이한 허스가 허공에 부유한 채로 모습을 드러낸 순간.
에반은 기다렸다는 듯이 미리 준비해놓은 마법을 발동시켰다.
템페스트. 주변 반경의 공기를 얼어붙게 만드는 빙설의 마법.
신의 힘을 빌어 재현하는 기적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며, 허스의 손아귀에 쥐어져있던 불꽃의 마력과 충돌했다.
뇌기를 이용해 돌진하고 있는 에반의 계산속에는 검을 피하는 허스의 모습까지 그려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예상치못한 에반의 마법에 허스의 목소리가 허공에 울려퍼졌다.
“갑자기 템페스트라니··· 무슨······!”
“——아스트라페.”
“크으윽······!”
그러나 마법이 준비되지 않은 허스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뒤섞여가는 마력을 보며 의문에 찬 목소리를 내뱉는 것이 고작이었다.
콰아앙—!
얼음의 마력과 불꽃의 마력이 허공에서 충돌하며, 허스를 지키고 있던 배리어에 커다란 균열이 만들어졌다.
배리어를 미리 두르고 있던 덕분에 피해를 입지는 않았지만, 지면에 발을 붙이지 않은 그의 몸은 결코 그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으윽··· 테, 텔레······!”
냉기와 열기의 충돌속에서 허스의 몸이 한쪽 방향으로 튕겨나갔다.
그리고 그 뒤에는 여전히 뇌기를 두른 채로 질주하고 있는 에반이 존재하고 있었다.
에반은 자신의 앞쪽으로 날아오는 허스를 향해 건틀릿을 낀 손을 뻗었다.
콰득.
아무것도 쥐어져있지 않은 건틀릿에 굴곡진 배리어가 단단히 붙잡혔다.
“기다리고 있었다, 허스.”
뇌기에 물든 에반의 눈동자가 눈앞의 허스를 바라보았다.
영웅. 알레미어 가문의 둘째. 클라우드의 2급 수사관. 아둔한 마법사.
그동안 그가 마주해왔던 혈육의 기억이 에반의 머릿속에 스쳐지나갔다.
에반은 손에 붙잡은 허스 알레미어를 뇌전의 힘을 이용해 강하게 고정시켰다.
이것만이 그가 선택한 가족에 대한 책임이었다.
“무슨 짓을 할 셈이··· 아악······!”
에반의 손이 허스를 배리어채로 지면에 꽂아넣었다.
아직까지도 속도를 전혀 줄이지 않은 에반의 날개는 폭풍을 타고 달리는 중이었다.
앞을 향해 밀려나가는 허스의 배리어는 지면에 맞닿은 채로 마찰을 일으켰다.
콰드드드드드득!
빛과 열기가 손아귀에서 번져나가며 섬광의 궤적이 지면을 가르고 지나갔다.
“——아스트라페!”
쩌적. 쩌저적.
흙과 바위를 갈아넣으며 달려나가는 허스의 배리어에는 금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두개의 마법이 충돌하며 만들어졌던 커다란 균열은, 이제는 수복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크기로 커져버린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그를 붙잡은 에반은 여전히 인지를 초월한 속도로 달려가는 중이었다.
귀를 뒤흔드는 파공성속에서 에반이 허스를 향해 외쳤다.
“기도해라, 허스 알레미어······!”
에반의 목소리는 찢어지는 대기에 파묻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하지만 손아귀에 붙잡힌 허스 알레미어만큼은 그 의도를 정확히 이해한 모습이었다.
전이를 위한 마법을 새로 준비할 시간따위는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를 보호하고 있는 배리어는 서서히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더 이상 지식의 영웅이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경외해라. 그리고——!”
쩌적! 콰드드드득—!
갈라지는 공기를 타고 흘러나오는 배리어의 마찰음이, 지금 이 순간만큼은 에반에게 있어 기분 좋은 울림처럼 전해져오고 있었다.
무너져내리는 배리어의 너머에서 일그러진 허스의 얼굴이 시야에 보였다.
옛날 이야기속의 영웅은 지금 무력한 모습으로 그의 손아귀 아래에서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것은 영웅의 자격을 갖춘 자에게만 허락되는 것이 아니었다.
영웅이 되었기에 위업을 세우는 것이 아니다.
위업을 세우는 자에게 모두가 그에 걸맞은 경의를 보이는 것이었다.
– “운명을 받아들여라.”
운명을 받아들여라.
이제는 익숙해진 악신의 목소리에 에반의 입에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정해진 운명이라.
무엇이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이란 말인가.
허스를 움켜쥔 에반의 손에서 서서히 힘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영광스러운 나날을 살아왔다.
그러나 그 길의 끝에 영광은 존재하지 않았다.
결국 그 기나긴 시련의 마지막에, 자신이 선택한 것은 모든 것을 부정하는 길이었다.
지금의 자신은 성기사가 아니었다.
지금의 자신은 이단심문관도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의 자신은———
“나는··· 제2사도 에반 알레미어다!”
콰아앙—!
신앙의 빛이 무너져내렸다.
* * * * * *
– [신기 : 히에로글리프]가 파괴되었습니다.
– [신기 : 아스트라페]가 성장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