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rd-working billing engineer RAW novel - Chapter 308
열일하는 과금 기사 307화
* * *
“난장판이군.”
전장은 혼란스러웠다.
온 우주에 데브리가 떠다닌다. 절반으로 쪼개진 기가스 사이로 보이는 엘프와 드워프의 시체, 부서진 전투기, 짓눌린 시신들, 여기저기 생겨난 피 웅덩이.
심지어 둥둥 떠다니는 용의 길쭉한 사체와.
날아다니는 온갖 게임의 아이템들까지.
그나마 몬스터들의 시체가 사라져 이 정도지 아니었으면 움직이기 힘들었을 거라 예상 될 정도로 엉망인 전장이다.
“이거 생각 이상으로 너무 밀리는데?”
은폐 모드로 전장으로 접근 중인 고속정.
나는 그 갑판 위에 서 있다. 몬스터 함선에서 연신 뿌려 대는 감지 주문과 레이더는 내가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감히 접근하지 못한다.
[재연아, 저기.]보람의 통신에 고개를 돌리자 우리처럼 전함 위에 도도하게 서 있는 여인이 보인다.
‘다시 봐도 대단한 수준의 미녀군.’
사슴뿔을 달고 있는 훤칠한 신장의 미녀는 피와 시체로 가득한 전장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을 하고 있다.
비단으로 짠 고급스러운 옷에 재질을 알 수 없는 짐승의 가죽으로 만든 외투, 큰 보석이 박힌 귀걸이와 목걸이.
전장의 전사가 아니라 무대 위의 아이돌처럼 보이는 그녀는 일전 보스들에게 납치되어 감금되었을 때 보았던 보스 중 하나다.
‘미소녀 수집형 RPG게임의 보스였지.’
우우웅–!
그녀는 직접 싸우지 않았다. 능력의 개방, 수련 모두를 재능에 의지해야 하는 데다 안전장치를 아무리 높여도 열에 셋은 죽는지라 영능학이 발전한 세상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소환사형 초월자였기 때문이다.
파라락!
그녀가 허공에 손을 휘두르자 수십 장의 카드들이 소환되더니 핑그르르 회전한다.
번쩍!
강렬한 빛과 함께 아름다운 외모의 미소녀 수십 명이 한 번에 소환된다.
소환사인 그녀가 그랬듯 무장을 한 전사라기보다는 무대 위의 아이돌에 가까운 복장들이다.
특히나 빨주노초파남보로 가지각색의 머리칼과 각기 다른 개성을 위한 포인트 복장들은 기가 차기까지 하다.
‘대체 어디 문명 게임인지 모르겠단 말이지. 워낙 흔한 방식이라 찾기도 힘들다든가.’
나는 사슴뿔 여인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까다로운 상대긴 해.’
스스로도 상당한 전투 능력을 가진 강자가 전설급 능력자를 끊임없이 소환하니 그야말로 전쟁에 특화된 초월자다. 심지어 앞으로 나설 생각도 없고 소환수만 내보내니 저격도 암살도 어려운 존재.
물론 남들에게 그렇다는 말이다.
“컥……?”
도도하게 서 있던 여인의 몸이 훅 꺾인다.
“끅!?”
“꺄악!”
타격이 큰 듯 막 소환되었던 미소녀 능력자들이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사라졌지만, 정작 공격을 맞은 사슴뿔 여인은 황급히 몸을 일으키며 소리친다.
“피나! 미아! 마이!”
비명 같은 외침에 그녀의 뒤로 가지각색의 매력을 가진 소녀들이 등장한다.
“대치료!”
“완전면역!”
“궁극방벽!”
고오오오—-!
휘청거리던 사슴뿔 여인이 회복되기 시작한다.
“오, 나름 전력으로 휘둘렀는데.”
올마스터의 특성과 8개의 아티팩트 모두 전투용으로 맞췄다는 걸 생각해 보면 보통 생명력이 아니다.
“네놈!”
순간 그녀와 눈이 마주친다. 초월적인 직감으로 단번에 공격의 주체를 찾아낸 그녀의 눈매가 매섭게 변한다.
“네놈-!”
파파파팟!
사방으로 카드가 떠오르더니 대량으로 미소녀들을 쏟아 내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심검에 위협을 느낀 모양.
나는 인벤토리에서 암흑령 히페리온을 꺼내 들었다.
히페리온을 휘두르지는 않는다. 휘두르는 것은 그저 마음의 검.
그러나 그것이 히페리온이 아무것도 안 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끝없는 어둠(에이션트)]최종 데미지 1,000%의 추가 데미지.
[오롯한 존재(에이션트)]상대방의 모든 저항, 방어 능력 1단계 무시.
끝없는 어둠 효과도 미쳐 돌아가지만.
오롯한 존재는 상대의 수준이 높으면 높을수록 끔찍한 효과를 자랑한다.
[치명타!]푸확!
미친 듯 미소녀들을 소환해 내던 사슴뿔의 몸이 쪼개져 쓰러진다.
소환의 주체가 사라지자 그녀가 소환한 미소녀들 역시 사라져 버렸다.
“뭐야!? 무슨 일이지?”
“뭐지?”
주변의 몬스터들은 물론 그들을 상대로 싸우고 있던 천지룡의 병력들까지 당황했지만 심검 자체가 워낙 추적이 어려운 기술이었기에 누구도 내 정체를 파악하지 못한다.
‘흠. 이대로 초월자들만 암살해도.’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푸확!
내 위쪽을 날아다니며 불꽃을 토해 내던 화룡의 목이 쩍 갈라진다.
심검, 당연히 내가 한 공격은 아니다.
‘우주천마.’
새까만 우주공간에 검 한 자루 든 사내가 서 있다.
전과 달리 그가 든 검은 암흑령 히페리온이 아닌 마검 히페리온이었지만 그렇다고 그 존재감이 어디 가는 건 아니다.
콰쾅!
쩡!
고개를 돌려보니 나머지 두 우주천마가 그 유명한 응룡 헌원과 싸우고 있다.
고오오오—-!
단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압박감이 느껴진다. 킬로미터 단위의, 크기라는 단어보다 규모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엄청난 크기의 동양룡은 백색에 가까운 몸과 황금빛 갈기를 가지고 있다.
‘강하다.’
황제 클래스에 올라선 지금의 나조차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강함이 느껴진다. 로그인, 로그아웃 능력을 가지고 있더라도, 심검을 쓸 수 있더라도 일대일로 싸운다면 결국 패배할 수밖에 없는 강자.
그러나 그럼에도.
그의 몰골은 엉망이다.
“……거의 죽어 가는 상황 아닌가, 저거?”
동족을 지키며 싸우고 있다는 걸 감안하더라도 심각한 부상이다. 저만한 강자가 어째서 심검 원툴 우주천마에게 저렇게까지 당했단 말인가?
콰쾅!
심검에 당한 용을 주변을 맴돌던 몬스터 전함이 받아 낸다.
구해 주기 위함은 당연히 아니다.
[죽여라!]“용! 크하! 이 신선한 피!”
[목을 끊어 낸다! 버프 개시!] [진형! 용참진(龍斬陣)!]전함에서 몬스터들이 우르르 몰려온다. 우주 공간이지만 당연히 다들 대책을 세우고 있다.
잡다한 놈들이기에 심검을 쓰기는 아깝다.
‘코스트가 큰 기술이니까.’
나는 암흑령 히페리온을 인벤토리에 넣고 마검 히페리온을 꺼내든 후 말했다.
“와라, 레플리.”
훅.
새까만 어둠을 휘감은 죽음의 용이 모습을 드러낸다.
“공격 스킬 쓸 생각 말고, 나를 보조해 줘. 내 인벤토리에 한계가 있으니 주변에 쏟아질 아이템을 마법으로 모아 주고.”
사전 설명 없는 명령에 레플리가 그 기다란 목을 죽 내밀어 나를 응시한다.
“왜?”
[흠. 뭐지? 너, 뭔가 달라졌다.]내 경지 상승까지는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지만 그럼에도 느껴지는 게 있는 모양.
나는 씩 웃어 주었다.
“많은 변화가 있긴 했지. 이건 나중에 이야기하기로 하고 지금은 움직여.”
[……그러지.]내 모습을 한 번 더 뜯어보던 레플리가 거대한 날개를 펼친다.
훙!
레플리의 날개가 펼쳐지고 거대한 몸이 우주공간에 던져진다.
나 역시 허공을 박찼다.
대기만성(大器晩成). 파천극광(破天克光).
이제는 내 성명절기나 다름없는 돌진기에 그 누구도 반응하지 못한다.
광속(光束)이라는 게 원래 그렇다. 여기에 반응할 수 있는 존재는 초월자 정도다.
푸쾅!
[꺄악!?]“으아앗!”
“컥!”
전함의 갑판이 크게 일렁이자 그 위를 달리고 있던 몬스터들이 바둑알처럼 사방으로 튕겨나간다. 위력은 조절했다. 정작 구하려 했던 화룡까지 죽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으, 으윽…… 당신은?]“여기 엘릭서, 인간형으로 변해 먹어.”
아이템을 던져 주는 순간 전투예지가 작동한다.
콰득!
전함의 갑판이 부서지며 거대한 팔이 튀어나온다.
“너 은신도 할 줄 아는구나?”
[게타–!]“그래도 게임 속에서는 말도 통했는데 여기서는 다시 영문 모를 소리네.”
푸확!
쩡!
갑판을 뚫고 올라온 쉠곤과 드잡이한다. 심검은 굳이 쓰지 않았다.
내 근력이 몇인데 근거리에서 굳이 심검을 쓴단 말인가?
턱!
쉠곤의 말을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순간 피식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감히 힘으로 덤비냐는 뜻이겠지만.
“웃어?”
나도 함께 피식해 준 후.
쉠곤의 팔을 당겼다.
쩌저적! 콰득!
녀석의 몸에서 충격파가 터진다. 거대한 용골이 부러지는 듯 요란한 소리와 함께 녀석의 팔이 부러진다.
[그락-!?]경악하는 쉠곤의 팔을 당겨 녀석의 자세를 무너트리는 순간이었다.
-축복하는 자께서 말씀하시길. 이미 그들은 최고 속도에 도달했느니라!
누군가의 규칙 설정과 함께 가까이 있던 전함 하나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돌진한다.
쿠아아—!
한순간에 접근한다. 길쭉한 모양의 전함은 온갖 실드를 두른 채 다가오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쉠곤이 죽을 위기에 처하자 도와주러 오는 모양이다.
“흥.”
팟.
나는 일어나려 발악하는 쉠곤의 등 뒤로 타고 올라 다리를 웅크렸다.
끼이이이익–!
허벅지 근육이 확 부풀며 쇠가 휘어지는 괴음이 울린다.
그리고 그대로.
쏘아진다.
대기만성(大器晩成). 파천극광(破天克光).
내가 육체를 가지고 광속을 넘나드는 근간은 초월적인 무의 이치나 속성 저항력의 힘이 아니다.
그것들은 모두 보조.
‘진짜는 근력이지.’
근력 900이 넘으면 맨손으로 산을 뽑을 수 있다. 그렇다면 1,000이 넘는 근력으로는 뭘 할 수 있는가?
그것이야말로 권능의 영역에 도달한 근력.
콰득!
박차고 뛰는 순간 쉠곤의 척추가 부러지며 전함을 뚫고 반대쪽으로 튕겨나간다.
덕분에 자연스레 나 역시 날아드는 전함으로 쏘아졌다.
“웃- 차!”
극한의 가속 상태에서 모든 운동 능력을 오른발에 집중했다.
쩡!
날아들던 전함과 발등이 충돌한다. 전함을 감싸고 있던 실드는 단박에 깨져 나가고.
쾅! 콰광! 콰과과광!
내 발에 맞은 전함의 선두를 시작으로 전함의 기다란 함선이 순차적으로 터져 나간다.
와드득!
거대했던 전함이 한순간 앞뒤로 10미터가 안 될 정도로 압축되었다가, 잠시 후 터져 사방으로 흩어진다.
안에 타고 있던 몬스터가 몰살당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결과다.
촤르릉!
쏟아진 아이템은 인벤토리를 꽉 채우고도 모자라 내 주위를 뒤덮는다.
[응집].뒤늦게 따라온 레플리가 아이템을 싹 회수해 간다. 명색에 대마법사라 실력이 제법이다.
콰득!
[크에타……]괴성에 고개를 돌려보니 전함을 뚫고 튕겨나갔던 쉠곤의 목덜미를 물어뜯는 하얀색의 동양룡이 보인다.
‘아, 스틸.’
그렇게 생각하는 내게 백룡이 묻는다.
[누구냐, 넌? 이만한 강자가 있었다니…… ]녀석의 모습에 놀란다.
‘와. 초월병기가 몇 개야?’
거대한 덩치의 백룡은 놀랍게도 온몸에 철갑을 두르고 있었다. 투구와 갑주는 물론이고 발톱과 여의주에도 기묘한 무장들이 장비되어 있던 것.
그녀 자체는 그저 하급 후반대의 초월자일 뿐이지만…… 느껴지는 힘이 거의 황제 클래스에 비견될 정도였다.
“구조 신호를 받고 왔다.”
내 말에 백룡이 잠시 멈칫하더니 답한다.
[세상에, 진짜 그걸 받고 오는 녀석이 있군.]거대한 드래곤이 함선에 내려앉는 듯하더니 이내 사람의 형태로 폴리모프한다.
그녀는 일단 바닥에 쓰러져 있는 화룡을 살피더니 몇 개의 치료 마법을 사용하고는 말했다.
“세린이를 구해 줬군. 고맙다.”
드래곤일 때만 해도 거칠게 숨을 내뱉고 여기저기 상처가 나 있었는데, 사람의 모습으로 폴리모프하면서 상처를 가린 것인지 상태가 제법 양호해 보인다.
나는 손을 내밀었다.
“한재연이다.”
“전룡단의 설룡(雪龍) 예설민이다. 그나저나 한재연? 어디서 들어 본 이름인데…….”
‘설룡? 그런 용도 있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너무 빨라! 따라잡기가 버겁잖아!”
반쯤 무너진 갑판 위로 보람이 내려선다. 그 모습에 설민이 반색한다.
“오! 세상에. 너 마법소녀로군!”
아까 나를 볼 때와 사뭇 다르게 반가움과 안도가 담긴 표정에 황당해 웃는다.
“와. 아무리 그래도 보자마자 알아?”
그러나 내 반응 따위는 상관없다는 듯 설민이 보람에게 요청한다.
“마법소녀, 권능인 태초의 빛을 부탁한다! 그 권능이라면.”
그의 질문에 보람이 우리 주변에 힘을 뿌려 달려드는 몬스터를 튕겨 내며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은 안 돼.”
“어째서? 지금은 우리 용족 전체의 위기다! 용신님이라면 틀림없이…….”
“황금용신이랑 연결이 끊겼어. 그 덕분에 변신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야.”
보람의 대답에 설민이 멈칫한다.
“너, 설마.”
심각한 얼굴로 그녀가 묻는다.
“처녀성을 잃었나?”
“하.”
보람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사고길 빌었는데…… 이제 보니 드래곤이 아니라 유니콘이셨네.”
“말을 조심해라 마법소녀. 아니 어쩌면 이제 그것조차 아니겠군. 하필 이런 순간에.”
안타까워하는 순간 전투예지가 발동한다. 나는 마음의 검을 휘둘렀다.
킹!
그리고 그 순간,
마음과 마음이 충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