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has become the older brother of the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57
157화. 달리아와 달리아 유치원에 가다 (4)
달리아가 팔을 쭉 뻗은 채 두 손을 모았다. 그 모양대로 어둠이 뭉치기 시작했다. 달리아의 등 뒤로, 거대한 덩어리가 만들어졌다. 달리아의 팔 모양으로.
알라타의 머리를 라기아로 확 베어버리려 팔을 올렸는데, 귀청이 찢어지는 경고가 울려 퍼졌다.
[시에라! 피해!]라기아가 소리치자마자, 달리아의 먹물이 알라타를 내려쳤다.
“으악!”
건물이라도 한 방에 박살 낼 만큼 엄청난 파괴력이었다. 먹물이 쏟아진 반동으로 내 몸이 뒤로 튕겨 나갈 정도였다. 피핀이 뒤에서 부축해준 덕분에 꼴사납게 넘어지는 꼴은 막았다.
물론 지금 중요한 건 내가 아니었다.
“달리아는?”
“그게…….”
코카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 큰 충격에도, 달리아는 한 발짝도 뒤로 밀려나지 않았다. 바닥을 단단히 버티고 서 있었다. 아침에 내가 신긴 귀여운 신발을 신은 채.
“알라타는 마음에 안 들어. 돌아가도록 해.”
달리아의 눈이 시퍼렇게 빛났다. 말 그대로 안광이 뿜어져 나오는 모습이었다. 달리아의 먹물은 바닥을 타고 일어나 괴물 오징어처럼 알라타의 몸을 휘감았다. 알라타의 손목이 뒤로 꺾이며, 문제의 지팡이가 결국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가씨!”
놀란 피핀이 달리아를 불렀다. 달리아는 아랑곳하지 않고 먹물을 조종했다.
먹물 줄기는 알라타의 몸을 집어삼키는 듯하더니, 목을 졸랐다.
“크윽!”
알라타가 발버둥 쳤지만 무용지물이었다. 달리아는 알라타의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가, 뒤를 돌아 자신의 인형을 챙겼다.
“흥.”
인형을 주웠음에도 아직 화가 풀린 건 아니었다. 달리아는 새침한 눈빛으로 저쪽을 돌아봤다. 달리아가 있으라고 한 자리에 얌전히 앉아 기다리고 있던 엔비가 뒤늦게 반응했다.
“이제 일어나도 되냐?”
“엔비.”
달리아는 턱 끝을 세웠다. 동시에 허공을 떠다니던 성게들이 더 크게 부풀었다.
“좋아. 뭘 하라는 건지 알겠어.”
“야, 물고기! 왜? 왜? 뭘 하려고?”
“응?”
피핀이 엔비를 불러세웠다. 엔비는 태연하게 준비운동을 하듯 어깨를 붕붕 휘둘렀다.
“달리아가 하라는 대로 하려고. 물론 나의 영원한 주인은 엘세노테 님이시지만, 그날 인간과의 대련으로 뒤늦게 깨달았다. 나는 달리아의 친구가 되고 싶어. 가장 친한 친구.”
“너는 호위 기사야, 이 멍청아!”
“그게 뭐 어떻다는 거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엔비는 몸을 확 돌려 주먹으로 성게를 강타했다. 날아간 성게가 알라타에게로 향했다.
퍽! 과격한 소리가 들려 모두 몸을 움츠렸다. 알라타는 자신의 방어벽으로 간신히 공격을 피한 상태였다.
“아하하……. 심지어 인어까지……. 이번 회차는 일이 정말 이상하게 돌아가는군요…….”
알라타의 방어벽에는 금이 가 있었다. 엔비는 같은 과정을 반복했다. 달리아가 만든 구체를 알라타에게 던지는 방식으로.
눈치 없기로 유명한 엔비가 눈치코치 하나로 달리아의 명령을 알아듣고 수행하는 것이다. 이게 가능한 일이었던가?
자신보다 몇 배로 커다란 엔비를 말없이 부리는 달리아는 진짜 악역 영애처럼 보였다. 새침한 눈매에 뚱한 표정까지.
햄스터 같은 달리아가 저렇게 반항적인 모습이라니…….
나에게만 충격이었던 게 아니었나 보다. 피핀과 코카도 당황하며 시선을 교차했다.
특히 달리아의 귀엽고 해맑은 모습만 봤던 코카의 충격이 컸다.
“아가씨가 저렇게 무서운 분이셨나요?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타인을 공격하다니……. 무섭지만 대단하기도 하고……. 공, 공작 영애셔서 그런가 봐요! 배포가 저렇게 크시다니!”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냐!”
나는 버럭 소리쳤다.
“악행을 할 거면 남들 모르게 해야지. 이러면 다 들키잖아! 보는 눈이 없을 때 해야 하는데, 우리 달리아는 아직 그런 걸 생각하기에는 너무 어려.”
남을 때려도 좋고, 심지어는 죽여도…… 뭐, 좋다. 그러나 들키지는 않아야 할 게 아닌가.
물증 없이 심증만 있을 때는, 사람들이 뒤에서 수군거릴 뿐 직접적인 해를 입히지는 못한다. 반대로 대놓고 악행을 한다면 평판이 떨어지는 건 물론, 사회에서 고립될 수도 있었다.
달리아가 제멋대로 사는 건 괜찮지만 외로워지는 건 원하지 않았다. 이상한 짓이야 지금도 마음껏 하고 있고, 내가 살아 있는 동안은 실컷 뒤치다꺼리를 해줄 테니 괜찮다.
그래도 일을 벌일 거면 영리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달리아.”
나는 심통이 나 있는 달리아에게 후딱 다가갔다. 달리아가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로 칭얼거리며 내 다리에 찰싹 달라붙었다. 녀석이 들고 있는 인형이 아직 좀 무섭지만, 화난 달리아를 달래기 위해서라면 두 눈 딱 감고 모르는 척할 수 있었다.
“알라타가 우리를 괴롭혀서 화가 났어?”
“네. 싫어.”
“우리 달리아가 이렇게 마법을 잘 사용할 수 있는 줄 몰랐어.”
“화났어요?”
“놀랐을 뿐이야. 하지만 다음부터는 이렇게 사람을 잡고…… 음…….”
내가 고민하는 동안 달리아가 신발을 휙휙 집어 던졌다.
“달리아. 사람도 신발도 그렇게 마구잡이로 던져버리면 안 돼.”
“네.”
“목을 조르는 것도 안 돼.”
“왜요?”
“하고 싶으면 남들이 안 볼 때 해.”
“흥…….”
잠자코 보고 있던 피핀이 다가와 슬쩍 말을 얹었다.
“나으리. 교육 방침이 좀 잘못되지 않았나요.”
“넌 조용히 하고 달리아나 들어올려. 발이 불편한가 봐.”
“예.”
달리아는 곧 엔비를 불러 알라타를 향한 공격을 멈추게 만들었다. 공격을 멈춘 엔비는 기계처럼 달리아 뒤에 섰다. 피핀과 엔비가 달리아를 두고 살짝 눈싸움을 했다. 다행히 두 사람은 달리아의 심기가 몹시 불편한 걸 알아채고는 다투지 않았다.
“코카. 알라타의 하수인을 잡아 와.”
“네.”
잽싸게 움직인 코카는 소파 뒤에서 웅크리고 떨고 있던 나비다의 목을 쥐어 들고 왔다. 내 예상보다 과격한 방법에 어리둥절해 있는데, 코카는 내가 왜 놀랐는지조차 모르는 모양이었다.
“죽일까요? 아니면 고문할까요? 아니면 고문한 다음에 죽일까요?”
눈을 깜박이며 말하는 꼴이 천진난만한 게, 우리집에서 코카가 제일 이상한 놈일 것 같다.
“죽인다는 말 좀 그만해.”
“알겠습니다.”
코카가 나이프를 들어 나비다를 확 찌르려 들었다. 엔비가 말리지 않았다면 나비다는 순식간에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왜 말리세요? 공작님께서 말하지 말고 죽이라고…….”
“그냥 너는 좀 저기 가 있어라.”
코카를 뒤로 치우고, 나비다를 내가 낚아챘다. 놈의 멱살을 잡아 들어 올리자 작은 몸이 아르마딜로처럼 움츠러들었다. 작고 둥근 난쟁이를 흔들며 다그쳤다.
“여기 온 목적을 말해. 달리아를 뺏어가려고 부른 거야?”
“주인님, 주인님, 도와주세요…….”
“아는 거 다 말하지 않으면 죽여버리겠어. 너와 네 주인 모두.”
“저는 아무것도 모르는 난쟁이 요정일 뿐이에요…….”
나비다는 부들부들 떨기만 할 뿐 제대로 말을 할 줄 몰랐다. 물론 순전히 이 겁쟁이 요정을 괴롭히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알라타에게 일말의 희망을 거는 것뿐이지.
“이봐. 네 종이 어떻게 되든 좋아? 나는 상관없는데.”
알라타는 아직도 달리아의 먹물에 붙잡혀 있었다. 꼼짝도 못하고 있는 알라타가 눈을 감고 활짝 웃었다.
“리드가……. 이래서 좋아했구나.”
“도서관 거인? 그 여자가 갑자기 왜 나와?”
“나비다는 풀어줘. 설거지나 할 줄 아는 바보니까.”
“주, 주인님……!”
요정을 바닥에 내던지자, 놈이 알라타에게로 쪼르르 달려갔다. 물론 먹물 기둥에 갇혀 있는 알라타는 놈을 받아줄 수 없었지만.
“내가 알고 있는 걸 말해주지. 흥미가 없어도 들어두는 게 좋을 거야.”
“…….”
“어쩌면 조급해진 그분이 일찍 움직일지도 모르는 일이거든.”
***
내 동생, 그러니까 주영이가 죽었을 때.
내가 느낀 건 배신감이었다. 웃기는 말인데, 정말 배신감을 느꼈다.
그 당시 내가 아득바득 살아가는 이유는 하나였다. 우리가 언젠가 행복해질 수 있으리라 믿었으니까. 부모 없이도, 주변 도움 없이도 살아남아서 결국 어디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감동 실화의 주인공이 되리라고 생각해서.
나만 바쁘고 고됐던 게 아니었다. 주영이에게도 역할이 있었다.
살아남아서 내 옆에 있는 것. 평범해지는 것. 그게 녀석에게 주어진 역할이었다.
주영이는 그 역할을 내던지고 내 옆을 떠났다. 슬픔을 뒤덮는 배신감은 자괴감을 몰고 왔다.
동생이 죽었는데, 배신감을 느껴? 내가 너무 나쁜 놈 같잖아. 하지만 진짜 나쁜 녀석은 누구였을까?
‘악착같이 목숨을 붙잡고 있지 못했던, 너도 나쁜 거 아니야?’
유골함 앞에서 내가 눈을 부릅뜨고 있었던 건, 이런 나 스스로를 질책했기 때문이었다.
“여신께서는 쌍둥이 동생을 되찾기 위해 분투하고 계셔.”
나는 주영이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고 싶었다.
“테라의 육신은 이미 무너져 내려서 대지가 되었지. 인간과 짐승과 마수는 빵 위의 곰팡이처럼 대지를 뒤덮었고…….”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이번에는 버텨줬으면 했다. 다시 살아나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그분은 이물질을 걷어내고, 쓰러진 몸을 일으켜 다시 살려낼 생각이시지. 테라를 되살리기 위해 그분은 몇 번이고 세상을 과거로 되돌려 놓고 계신 거야.”
주영아, 만일 네가 되살아난다면.
나는 나의 역할을, 너는 너의 역할을 마저 이어가겠지.
우리는 다시 평범한 남매가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너희 인간은 그분의 상실을 모르는 채, 그저 심연의 악마라고 부르더군.”
알라타는 감격한 듯, 혹은 무언가를 회상하는 듯 눈을 감고 미소 지었다.
“그건 사랑이야.”
***
알라타를 죽인다고 달라질 건 없었다. 나는 알라타를 살려 보냈다. 언젠가 정보원으로 써먹을 수 있다고 생각했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유치원이었다.
이미 알라타는 고아원을 한 곳 인수해서 경영하고 있었다. 귀족을 대상으로 하는 유치원은 그 고아원을 후원하기 위해 만들어져 있는 곳이었고.
어차피 다시 허물어질 세상에서 왜 고아를 거두느냐고 물었을 때, 알라타는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내일 꽃이 진다고, 나무에 물을 주지 않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어쩌면 그 말 때문에 알라타를 살려뒀는지도 모른다.
“그 거인이 한 말……. 사실일까요. 세상이 곧 무너지고 다시 돌아간다는 거…….”
“글쎄.”
겁쟁이 코카가 빙글빙글 돌며 손톱을 뜯었다.
코카는 두려워하는 듯 보였으나, 나를 비롯해 피핀과 엔비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우리는 그저 침묵했다.
시간을 돌릴 수 있다는 데 매료되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건 거짓말일 것이다.
피핀은 누이를 잃었고, 엔비의 엘세노테는 갓난쟁이로 바뀌어버렸다. 과거로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가족을 돌려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건 환상이었다.
“심연의 악마가 되살리려는 건 이 대륙 그 자체야. 땅덩어리를 일으킬 생각이라고.”
이 미친 계획이 성공한다면, 가족이고 나발이고 모두 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