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verted to being a K-drama genius RAW novel - Chapter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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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인연
* * *
“도 피디님, 이쪽으로 오시죠.”
래원과 래미가 박현만 대표와의 약속 시각에 맞춰 도착하니, 건물 앞에서 원더빅 직원이 먼저 두 사람을 마중 나와 있었다.
‘근데 나를 래미 보호자로 호칭하지 않고 꼬박꼬박 도 피디로 부르네? 저번 박 대표 전화도 그렇고 지금 이 직원도 그렇고.’
래원은 묘한 의문이 들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원더빅 엔터의 신사옥은 최근 이곳 성수동으로 이전했다.
시가총액 9,000억 회사의 위엄이 드러나는 으리으리한 건물이었다.
“우와아···!”
래미의 입이 떡 벌어졌다.
건물 입구와 연결된 커다란 주차장에 번쩍이는 벤이 즐비해 있었고,
건물 주위를 수많은 남녀 팬들이 둘러싸고 있었으며,
군데군데 경호 인력이 배치되어 있는 철옹성이었다.
원더빅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첫 번째로 들어간 곳은 연습실이었다.
그다음은 녹음실.
기대했던 만큼 쾌적하고 훌륭했다.
샤워실까지 잘 갖춰져 있었고, 휴식 공간도 충분했다.
가수들을 키우는 건물이다 보니 냉난방과 공기 청정 시스템 역시 잘 되어 있었다.
어린 연습생들에게 최고의 트레이닝 환경이었다.
“점심시간이라 시장하시죠?”
다음으로 직원이 안내해준 곳은 구내식당.
소문대로였다.
유기농 건강식을 챙겨주기로 유명한 원더빅의 구내식당은, 뷔페식으로 알찬 식사를 내놓고 있었다.
“이게 한 끼에 원가가 거의 15,000원 정도거든요. 그걸 저희 직원들은 4,000원에, 연습생들은 무료로 매일 먹습니다. 아티스트의 건강이 제일 중요하고, 건강해지려면 운동보다도 좋은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게 저희 대표님 지론이라서요.”
직원의 목소리에 회사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 묻어났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엔터 회사 TOP3 답게 시설은 손색이 없었다.
“대표님 뵙기 전에, 식사부터 하시죠.”
그가 래원과 래미에게 식판을 챙겨주었다.
오늘 점심 메뉴는 잡곡밥에 꽃게탕, 계란장, 목살구이, 명이나물 그리고 동치미였다.
‘와우, 우리 SBC 구내식당보다 좋은데? 이 정도면 래미가 여기 다녀도 안심이겠어.’
식사를 받은 래원의 눈이 휘둥그레졌고, 래미 역시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두 눈이 반짝거렸다.
정갈하고 푸짐한 밥상을 뚝딱 비운 후,
오늘 원더빅 엔터 투어의 마지막 코스는 대표실이었다.
엘리베이터 앞까지 마중 나온 박현만 대표의 안내를 받아 들어간 곳.
서울숲과 성수대교가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이었다.
「우린 음악을 만들지 않는다.
우린 스타를 만든다.」
벽 한 쪽에 새겨진 독특한 문구가 래원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식사는 입에 맞으셨어요?”
“네, 저희 SBC보다 훨씬 맛있던데요?”
“하하. 다행이네요. 감사합니다. 이쪽으로 앉으시죠.”
박 대표의 손짓에 래원과 래미가 가죽 소파에 앉자, 비서가 차와 다과를 내왔다.
“도 피디님에 대한 소문은 익히 들었습니다. 사실 오늘 제가 이렇게 직접 뵙자고 한 건,”
박 대표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 말을 이었다.
“래미 양에 대한 것과, 도 피디님에 대한 것 두 가지 건으로 연락을 드렸던 겁니다.”
‘나에 대한 건?’
래원은 짐짓 태연한 척 고개를 끄덕이면서 경청했지만 속으로는 물음표를 띄우고 있었다.
‘나에 대한 거라니? 뭔진 모르지만 이거 때문에 박 대표가 오늘은 래미 없이 단둘이서만 미팅하고 싶어 했던 건가?’
“래미 양도 왔으니, 일단은 래미 양 이야기를 먼저 드려보죠. 단도직입적으로, 래미 양을 우리 회사 연습생으로 캐스팅하고 싶습니다. 보통의 아이돌 연습생 말고 노래, 춤, 연기까지 하는 만능 엔터테이너로 키워볼 생각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직접 인사를 드리는 거구요.”
“하하. 우리 래미를 좋게 봐주신 건 감사한데, 원더빅 입장에서 왜 하필 래미를 택하신 건지 듣고 싶습니다. 그것도 이렇게 박 대표님이 직접 나서서 연락주신 이유가 궁금하네요. 그걸 알아야 저희도 결정하니까요.”
박현만 대표는 래원의 의중을 알아차리고는 숨을 골랐다.
‘도 피디님 친동생이라서 제가 직접 연락드렸습니다.’ 따위의 짧은 대답으로는 래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제가 이 업계에 뛰어든 지 20년 가까이 됐고, 업계 주류로 발돋움한 건 10년쯤 됐습니다. 당시 한국 음반 시장의 위기가 저에겐 기회였죠. 그때 통신망의 발달로 한국 CD 음반 시장의 90%가 죽었으니까요.”
박현만은 말솜씨가 뛰어난 사람이었다.
“그때 당시 거의 모든 게 디지털화 되기 시작하는 세상에서, 전 반대로 가장 아날로그적인 것에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절대로 디지털화 될 수 없는 것, 그건 바로 ‘사람’이었죠.”
래원과 래미는 순식간에 그의 이야기에 매료되었다.
“음악이 배포되는 방식은 급변해왔고, 앞으로도 기술과 통신의 발달에 따라 더 급변할 겁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이 ‘스타’를 사랑하는 건, 그 어떤 시대에도 영원불변이죠. 때문에 저는 ‘사람’에 투자합니다. 스타를 만드는 게 제가 하는 일입니다.”
박현만 대표의 신조 같은 것이었다.
“물론 ‘재능’이 있는 사람이어야겠죠.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스타가 될 만한 ‘자질’과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래미 양한테서 발견한 게 바로 자질과 매력이었거든요. 이걸로 답변이 좀 됐을까요?”
래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었다.
“감사합니다. 원더빅 입장에서 우리 래미를 원하는 이유를 들었으니, 이제 저희 입장에서는 왜 원더빅이어야 하는지를 충분히 고민해보고 다시 연락드릴게요.”
“좋습니다. 긍정적인 회신, 기다리겠습니다.”
“래미는 대표님께 또 여쭤보고 싶은 거 없어?”
“네, 좋은 말씀 잘 들었습니다.”
래미가 수줍게 웃었다.
“이제 도 피디님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요. 근데 이걸 래미 양이 같이 들어도 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박현만 대표와 달리, 래원은 ‘어른들끼리만 통하는 이야기’ 같은 말로 래미를 소외시키고 싶지 않았다.
“저는 괜찮습니다. 래미가 제 유일한 가족이라서요, 제 일에 대해 래미도 알 건 알아도 됩니다. 다만, 래미가 불편할 수 있는 이야기면···.”
“아, 그런 건 아니고···. 그냥 고리타분한 이야기죠. 하하.”
래미는 눈치가 빠른 아이였다.
“오빠, 난 1층 카페 가서 뭐 먹고 있을게.”
빨딱 소파에서 일어나며 박 대표에게 인사를 건네는 래미.
“먼저 가보겠습니다. 천천히 이야기 나누세요.”
철컥-
래미가 나간 문이 닫히자, 박 대표가 바로 입을 열었다.
“저희가 도 감독님 차기작에 투자하고 싶어서요.”
“투자요···?”
래원은 적잖이 놀랐다.
원더빅이 훗날 드라마나 영화 제작에 발을 들이긴 하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제 차기작은 어떻게 알고 계신 거죠?”
“하하하. 도 피디님, 저 원더빅 박현만입니다. 일제강점기 배경의 4부작 단막극. 대본이 무척 흥미롭더군요.”
“정보가 정말 빠르시네요.”
박 대표의 말에 래원은 혀를 내둘렀다.
“4부 단막이면 거의 자체 제작일 텐데, 일제강점기 세트장을 감당할 만한 예산이 SBC에서 다 나오나요?”
역시 정곡을 찔렀다.
박 대표다운 전략이다.
싹수가 보이는 신인 감독과 신인 작가를 잡아서, 자본을 미끼로 서포트 해주고, 그들이 궤도에 올랐을 때 이익을 창출하는 일종의 투자였다.
사람에 대한 투자.
래원은 고개를 들어 벽면에 새겨진 문구를 다시 한번 읽어보았다.
「우린 음악을 만들지 않는다.
우린 스타를 만든다.」
이 모토로 아이돌 사업에 성공한 그가 이제는 그 영역을 영상 컨텐츠 업계로 넓히려 하는 것이다.
원더빅이 매니지먼트 쪽과는 달리 컨텐츠 쪽에서는 아직 햇병아리 회사였지만,
그래도 박현만의 큰 계획안에 도래원을 포함시켰다는 사실이, 래원은 기분이 썩 나쁘지 않았다. 꽤 괜찮았다.
그의 이 같은 사업 수완 덕분에 원더빅은 훗날 국내 원탑의 세계적인 엔터테인먼트 회사로 성장한다.
래원은 익히 기억하고 있었다.
“대표님이 도와주시면, 저야 감사하죠.”
“도 피디님과 대본을 보고 투자하는 겁니다. 당장 이 한 작품으로 이익을 기대하진 않습니다. 그러니 손익에 대해 걱정은 하지 마시고 작품에만 집중해 주시는 게, 저희의 투자 조건입니다.”
드라마 감독이 듣고 싶은 말은 다 갖다 붙인 최고의 유인책이었다.
“그럼 담당 PD님께 허락도 받았으니 저희가 SBC 드라마국과 접촉해서 처리하겠습니다. 앞으로 자주 뵙죠, 도 피디님!”
박현만 대표가 먼저 악수를 청했고,
래원도 그의 손을 맞잡았다.
“박 대표님, 아까 미처 못 여쭤본 게 있습니다만,”
“네, 말씀하세요.”
“전에 래미가 원더빅 직원분께 명함을 받아온 적이 있습니다. 놀이공원에 수학여행 가서요.”
“네, 알고 있습니다. 그때 회신을 못 받았던 차에 ‘재벌의 세계’를 보고 다시 수소문해서 연락드린 거구요.”
“아까는 래미의 자질과 매력을 말씀하셨는데, 툭 까놓고 우리 래미의 외모가 마음에 드신 건가요?”
“하하하. 도 피디님 듣던 대로 시원시원한 분이시군요.”
“저도 방송하는 놈입니다. 솔직히 말씀해주셔도 이해합니다. 제 동생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려는 오빠의 마음이니 편하게 답해주세요.”
“단순한 길거리 캐스팅이 아니었습니다, 래미 양은.”
“그러면···?”
“래미 양한테 명함을 준 건 직원이 아니라 저였습니다. 코인 노래방에서 제가 직접 래미양을 봤거든요.”
박현만 대표의 이야기는 이랬다.
혼자 코인 노래방에 가는 취미가 있는 대표는, 그날도 혼코노를 즐기러 갔다가 교복 입은 래미와 친구들을 발견했다.
노래방 복도에서 래미의 청아한 음색에 매료됐고, 말 할 때의 발성 또한 남다르다는 것을 캐치했다.
그래서 래미가 화장실 가려고 나온 틈을 타서 명함을 건네줬던 것이다.
“캐스팅 장소가 코인 노래방이었을 줄은 몰랐네요. 래미의 음색이 마음에 드셨던 거군요. 뜻밖이네요.”
“음색과 발성이 특히 훌륭했지만, 제가 마음에 든 건 래미 양의 외모도 포함입니다. 스타성 있는 얼굴인 건 굳이 따로 말씀 안 드려도 잘 아실 줄 압니다. 그리고,”
박현만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잠시 뜸을 들였다.
“그리고, 래미 양을 픽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
“제가 생각하는 ‘스타의 자질’에는 ‘인성’도 포함이거든요. 그때 화장실에서 청소 아주머니가 실수로 쓰레기통을 엎으셨어요. 지저분했죠. 근데 래미 양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바로 도와드렸습니다. 그 모습이 저한텐 무척 인상 깊었습니다. 청아한 음색 만큼이요.”
그는 래미의 가능성과 됨됨이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으며, 그로 인해 래미에 대한 믿음도 확고하게 지닌 듯 했다.
이에 래원이 빙긋 미소지었다.
“대표님이라면 제 하나뿐인 동생을 믿고 맡길 수 있을 것 같네요. 물론 최종 결정은 래미가 스스로 할 겁니다.”
진심이었다.
래원은 래미가 어른들의 논리에 휩쓸리지 않고 스스로 결정할 시간을 주고 싶었다.
“희소식 기다리겠습니다. 그 전에 도 피디님 작업을 먼저 응원해야겠네요. 말입니다. 우리 이제 곧 한배를 탈 사이니까요.”
박 대표가 너털웃음을 지었고, 래원 역시 흡족한 얼굴이 됐다.
래미로 인해 맺게 된 뜻밖의 인연이,
래원에게도 굉장한 선연(善緣)이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 * *
화창한 오후, 어느 아이스크림 체인점.
지금 래원은 이곳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김윤하 작가가 좋아하던 아이스크림 집이다.
약속 시각에 늦으면 죽일 듯 째려보던 그녀의 성미를 기억하기에, 래원은 약속 10분 전부터 미리 나와 앉아 있었다.
테이블에는 대본을 올려놓았다.
하필 수없이 읽어서 지저분해진 대본을 말이다.
물론 이는 김윤하를 초장에 기선제압하려는, 일종의 연출이었다.
그녀의 대본은 읽고 또 읽어봐도 재밌었다.
신인치고 분명 꽤 괜찮은 필력이었다.
그녀를 다시 만날 생각을 하니, 가슴이 저릿했다.
과거의 실패에 대한 부채감 때문일 것이다.
5분 전.
이제 그녀가 올 때가 됐다.
어쩐 일인지 아직이다.
1분 전.
약속에 늦는 법이 없던 그녀인데···.
결국,
김윤하 작가는 약속 시간을 3분 넘기고 나타났다.
한참을 뛰었는지 숨을 헐떡거리고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하아.. 하아.. 늦어서 죄..죄송합니다!!”
래원이 작가 중에서 가장 잘 알고 지냈던 김윤하 작가, 그녀의 과거와 마주한 지금.
몹시 생경한 느낌이 들었다.
래원과 동갑이었지만, 한눈에 봐도 20대 초반이나 잘 하면 고등학생 정도까지 보이는 앳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집에 틀어박혀서 대본만 쓰나 싶을 정도로 창백하리만치 하얀 얼굴.
쭈뼛쭈뼛 래원의 앞에 앉더니 자기소개를 한다.
“아..안녕하세요, 김윤하 입니다.”
“안녕하세요, 도래원 입니다. 반갑습니다, 김 작가님.”
뜻밖이었다.
깐깐한 고슴도치 같던 30대 중반의 그녀와는 전혀 다른 첫인상.
‘이 김윤하는 8~9년이라는 세파에 닳고 닳기 전의 모습인가? 이건 뜻밖의 비포 앤 애프터인데?’
당시 30대 중반의 김윤하는 너무 드셌다면,
지금 눈앞에 27살의 김윤하는 반대로 너무 여려 보였다.
이래서 이 험난한 방송가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가..감사해요, 제 대본 좋게 봐주셔서.”
래원은 뜨악했다.
그가 알던 그녀라면,
‘제 대본에서 어떤 점이 좋으셨어요? 연출 포인트는 어떻게 잡으실 거죠?’
라며 꼬치꼬치 캐물어야 김윤하였다.
‘대체 이 사람의 앞날에 무슨 일이 생겨야, 이 김윤하가 그 김윤하가 되는 거지?’
잠시 앉아서 숨을 돌리던 김윤하는 테이블에 놓인 대본을 보고는 까무러치듯 놀랬다.
“헉.. 제 대본.. 감동이에요···! 이렇게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열심히 봐주신 건.. 도 피디님이 처음이거든요! 저, 진짜 열..열심히 할게요!”
래원은 지금 이 뜻밖의 상황에 적응하기 쉽지 않았지만,
‘그때의 그 괴팍하고 깐깐한 성격만 쏙 빠진 김윤하라···? 같이 작업하기에는 이 김윤하가 훨씬 수월하겠는데?’
이것 또한 나름대로 흥미롭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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