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village life with herbal elixir RAW novel - chapter 106
내 덕이라니?
경훈이 결혼이 내덕이라고?
“경훈이에게 들었다. 자네가 준 환약 덕에 웃을 수 있게 됐다고. 심지어 여자 앞에서 말도 잘하게 됐다는데?”
경훈이는 아버지에게 별 소리를 다하는 구나.
“아. 별 것 없어요. 경훈이가 우울해 보여서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는 약초를 준 것 뿐이에요.”
“다 자네 덕일세.”
이장님이 내 손을 부여 잡으며 감사함을 표했다.
하긴, 사실 내 덕이 어느 정도 있긴 하지.
“저희 집에서 차나 한잔 하시죠.”
“그려!”
어르신들에게 인사를 올린 뒤 이장님을 모시고 집으로 향했다.
경훈이 얘기를 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장님께 따로 드리고 싶은 말이 있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이장님께서 에구구 앓는 소리를 내시며 툇마루에 걸터앉았다.
짙은 숨을 내쉬다가, 코끝이 찡한 듯 인상을 찌푸린다.
“이게 뭔 냄새여? 집에 밤나무 심어놨어?”
“예. 밤 좀 먹으려고요.”
“밤나무는 함부로 집에다 두는 것이 아닌데, 냄새 때문에 아주 골치 아파.”
“하하. 다행히 한 그루 밖에 없어서 그리 심하진 않아요.”
이장님께서 약초원을 둘러보며 탄성을 자아냈다.
그동안 나의 시골집을 잘 가꿔준 분인데, 불과 몇 달 동안 정말 많은 게 변했다.
“격세지감이 이럴 때 쓰는 말이지. 집이 몰라보게 달라졌구먼. 참…성실도 하지.”
“별 말씀을요. 차 내올게요.”
“그려.”
이장님께 어떤 차를 대접해드려 할지 고민이다.
문득, 지금의 상황과 알맞은 적당한 차가 떠올랐다.
진심의 차였다.
겨울을 이겨내는 설강화.
봄의 시작을 알리는 매화.
가을의 풍요로움 국화.
여름을 알리는 작약.
이 네 가지를 합하면 진심을 털어낸다.
‘진심의 차를 올려봐야겠어.’
사랑을 증폭하는 밤꽃 차완 달리 진심의 차는 여러 방면에서 두루 쓰인다.
이장님의 속마음이 궁금했다.
“차 한 잔 드세요. 꽃차예요.”
“고맙네.”
이장님께서 차 한 잔을 마신 뒤 짙은 숨을 내쉬었다.
곰곰이 생각에 잠긴 뒤 말문을 열었다.
“경훈이는 속이 깊어서 나를 모시고 살 작정이야.”
“아, 정말요?”
“내가 누누이 얘기를 해. 나는 나대로 알아서 잘 살 테니, 난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이야.”
“그랬더니요?”
“결코 그럴 수가 없단다.”
“아…”
“남들이 경훈이를 모질하다고해도. 그 놈같이 나를 챙겨주는 놈도 없었다. 우리 막내가 뭐 어때서? 그 놈은 결혼을 못 한 것이 아니야! 나를 생각해서 안 한 것이지.”
이장님이 경훈이 생각을 하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지난 일을 회상하며 진심을 토해냈다.
“영감들이 우리 막내 흉 볼 때마다 어찌나 가슴에 열불이 터지던지! 도일이 자네도 그려?”
“아뇨! 저는 경훈이가 얼마나 자랑스러운데요.”
“경훈이 같은 자식이 어딨다고!”
“맞아요!”
“요즘 시대에 누가 아버지를 모시고 살겠는가? 안 그래?”
“그…죠.”
그간 홀로 속앓이를 했을 이장님의 진심을 듣게 되니, 이장님이 경훈이를 아끼는 마음이 여실하게 느껴졌다.
“이제 근심은 넣어두시죠 이장님.”
“그려.”
“그리고 혹시 모르죠. 경훈이와 처될 사람이 이장님을 모시고 살겠다고 했을 수도 있고요.”
“누누이 얘기하지만! 그런 건 내가 바라지도 않아! 내가 왜 아들집에 얹혀사나! 나는 나대로 여기가 좋고 편햐!”
“헤헤. 알아요. 근데 아들 생각은 또 그렇지 않을 수도 있죠.”
“죽어도 안가!”
“넵!”
역시, 이장님의 의지가 단호했다.
“그런데, 경훈이 처 될 사람은 뭐하는 분이라고 해요?”
“나도 몰라. 아까 전화가 오더니 결혼할 것 같다고 하더라고. 그게 전부야.”
“그게 전부라고요?”
“그려.”
정해진 건 없었다.
앞뒤 잴 것 없이 결혼하자고 서로 달려든 것 같은데, 이런 경우를 종종 보곤 했다.
연애 일주일 만에 결혼한 사람도 있었으니까.
언젠가 구체적인 소식을 듣게 될 테니, 꼬치꼬치 캐묻고 싶진 않았다.
이장님도 이런 얘기를 해봐야 무엇 하냐며 서둘러 주제를 바꾸셨다.
마침, 나도 할 말이 있었으니 잘 됐다.
“저……이장님?”
“응?”
“제가 말씀 드릴게 있어요.”
“뭔지 말해보게.”
“이장님께서 제게 물려주신다고 했던 땅 있지 않습니까.”
“그려!”
“제가 하연 씨에게 좀 임대를 해주고 싶어서요. 땅이 이장님의 명의라 제가 마음대로 정할 수가 없어서…”
말끝을 흐리며 대답했다.
천 평의 땅을 내 마음대로 써도 상관은 없지만, 그래도 이장님께서 알긴 알아야 할 것 같았다.
천 평의 땅은 아직 이장님의 명의니까.
“허허허. 그걸 왜 내게 묻나?”
“예?”
“자네 땅이니까 그건 자네가 알아서 해야지.”
“아…네.”
“자네는 마음씨가 착해서 탈이야. 난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 자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그나저나 막내는 벌써 밭을 일구는 것 같던데?”
막내라 함은 하연이를 얘기했다.
벌서 밭을 일군다고?
“예? 지금요?”
“그려. 아까 지나는 길에 보니까 막내가 괭이질을 하고 있더라고. 막내 녀석이 농사일을 배우지 않고 무턱대고 달려드는 것 같은데 말이다.”
“예에? 거기서 괭이질을요?”
“그려.”
그 넓은 땅을 괭이질로?
천 평이라 함은 축구장의 반 정도 되는 넓이였다. 어안이 벙벙하여 말문이 막힐 지경이다.
단단히 미쳤다.
“아. 왜 그랬을까요. 천 평 땅을 혼자서는 농기계 없으면 힘들 텐데요.”
“고집이 이만 저만이 아니야. 혼자서 해낼 수 있다면서 이를 악물더라고. 한 번 해보라지. 원래 농사라는 게 맨땅에 헤딩하면서 배우는 것 아니겠어? 허허. 하여튼, 젊음이 좋다니까.”
“그렇긴 하지만…”
“막내 보니까 내 옛날 기억이 떠올라. 옛날에 기계가 있나? 몸으로 때우기만 했지.”
하긴, 40년 전만 해도 농촌에 경운기, 트랙터, 이앙기 등은 쉽게 찾아 볼 수가 없는 기계였다.
십시일반 품앗이를 하며 주민들과 몸으로 때워가며 농사를 지었다.
어린 나도 논밭에 가는 건 일상이었으니.
“가만 보면 하연이 걔도 참 의지만 앞서네요.”
“허허. 너무 염려 말아라. 마을 사람들이 다 도와주고 있으니까.”
“감사합니다. 이장님.”
때마침, 진심의 차도 다 마실 때였다.
이장님이 손을 털고 일어나셨다.
“이만 가보마.”
“네. 들어가시죠.”
이장님께서 나가려는 찰나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자네가 한 번 막내에게 가보게. 노인들보다는 자네 말을 더 신뢰하는 것 같으니.”
“네.”
이장님께서 떠난 뒤.
나는 헛웃음이 나왔다.
열심히 살아보고자 하는 하연 씨의 의지는 대견하지만, 너무 무리하는 게 아닌가 싶다.
천 평의 땅을 혼자?
* * *
‘진짜였네.’
이장님의 말대로 곡괭이를 들고서는 열심히 땅을 내려찍으며 밭에 골을 내고 있었다.
하연 씨 옆에는 성호가 작은 조약돌을 걸러낸다.
나는 그들의 모습을 묵묵히 지켜만 볼 수밖에 없었다.
저 모자의 모습이 놀이터에서 노는 어린 아이들과 같았기 때문이다.
‘굳이 나서야 할까.’
이장님과 어르신들이 왜 나서지 않았는지 어느 정도 알 것만 같았다.
저 모자의 품에서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성호는 무엇이 그리 좋은지 조약돌을 던져가며 헤헤 웃었고, 그런 하연 씨도 자신만의 밭이 생겼다는 기쁨에 힘든 내색 하나 없이 열심히 괭이질을 할 뿐이었다.
‘그냥…나서지 말자.’
저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나도 조금은 반성하게 된다.
하수오를 잔뜩 심어서 돈만 벌면 뭣하랴.
무슨 일이든 본인이 재밌어야 한다.
농사의 흥미를 직접 느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백날 도와줘봐야 별 의미가 없다.
게다가 저 모자에게는 함께 한 시간이 부족했다.
천천히 밭을 일구어 추억을 함께 쌓았으면 싶다.
등을 돌려 집으로 향하려는 찰나.
“아저씨!”
성호가 나를 발견한 듯 소리쳤다.
달려와 내게 푹 안긴다.
“성호야 재밌게 놀고 있었어?”
“네! 엄마랑 밭일해요!”
괭이질을 하던 하연 씨가 고개를 들어 씩 웃어 보인다. 그 모습이 귀향 당시 나의 풋풋한 모습 같아 흐뭇했다.
“힘들죠?”
“아뇨! 재밌어요!”
“이 넓은 곳을 어떻게 혼자서 할 생각을 했어요.”
“네? 아 그게 아니라. 저는 요기까지만 하려고 했어요.”
가까이서 밭을 보니 땅에는 작은 선이 그어져 있었다.
그 선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괜한 걱정을 했다.
천 평의 땅을 일구려는 게 아니었다.
한…20평 되려나?
놀이터 정도의 크기였다.
주위에는 파종 씨앗과 호미가 보였는데, 작게나마 무언가를 심으려 했나보다.
“하연 씨 제가 괜한 걱정을 했네요.”
“어르신들이 계속 보고 가셨어요. 혼자서 뭐하냐고요. 하하.”
“그러니까요. 저도 이 넓은 곳을 혼자서 하는 줄 알았다니까요.”
하연 씨가 머쓱하게 웃었다.
내 시선에는 한편에 놓인 파종씨앗과 호미가 보였다.
“이건 김장무 씨앗이네요?”
“네. 김장무를 심어 볼 생각이에요. 순임 할머니에게 무 심는 법을 배웠어요. 흐흐.”
“좋은 선택이네요. 김장무면 나중에 김장할 때도 필요하니까요.”
무더운 여름이 지나면 가을무를 심을 때다.
마침, 하연 씨가 밭을 잘 일구어놔서 씨앗만 잘 파종하면 될 것 같았다.
“도와드릴까요?”
“저야 감사하죠!”
“아저씨도 같이 놀아요!”
“그래. 성호야 같이 놀자.”
20평의 작은 땅에 무를 심고, 980평의 땅을 놀리는 이 기분.
무언가 반대가 된 것 같긴 하지만, 마음만큼은 넉넉했다.
‘재밌게 놀아볼까!’
대추나무 (2)
가을바람이 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