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go home RAW novel - Chapter 140
“휴우. 여기가 좋겠군.”
자루를 등에 멘 백무명이 무림맹 총단 인근 야산 어느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고도의 은잠술은 그 성격상 오래 펼칠 수 없으므로 지금 그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다만 은잠술 덕분에 초반에 적들의 추적을 따돌리는 효과는 있었다.
한편 그가 천마신교 낙양 분타가 아닌 이곳으로 온 것은 혹시나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자신도 알지 못하는 추적의 단서가 자루 안에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성녀의 침입이 있었기 때문에 비상 상황을 대비한 조처가 있었을 수도 있다. 그래도 일단은 주위 백장 이내 적의 움직임은 없구나.’
동굴 입구에 간단한 보호진을 설치한 백무명은 안쪽으로 들어갔다.
아직 자루 안에 들어있는 사람의 얼굴을 보지 못했으나, 나약한 숨소리를 통해 그 상태가 매우 좋지 못함을 알 수 있었다.
‘매 소저이든 아니든 치료가 매우 시급하다. 아무래도 고문을 가한 것 같군.’
동굴 안쪽에는 다행히도 장방형의 석실이 있었다.
그렇다고 누가 살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약초꾼이나 사냥꾼들이 기상 악화 등의 경우 잠시 머문 흔적이 있었다.
‘석실이 만들어진 것은 매우 오래된 것 같고, 최근에도 몇몇 사람이 이곳에서 비바람을 피한 흔적이 있군.’
백무명이 심호흡을 한번 한 후 천천히 자루의 매듭을 풀었다.
매영설의 초상화를 여러 번 봤고 또 가지고 있으므로 사람을 헷갈릴 우려는 없었다.
‘일단 사람부터 확인하고 추적향 여부까지 점검한다.’
스르르.
매듭이 풀리며 그 안에 있던 사람의 얼굴이 드러났다.
천하절색의 얼굴.
하지만 고문 때문인지 안색이 창백한 한 소녀.
바로 초상화에서 보던 매영설이었다.
‘다행이군. 내 예상대로 매 소저였다. 천마의 제자라 해서 그 얼굴은 솔직히 기대를 안 했는데 역시 초상화대로 성녀 못지않은 미녀로구나.’
백무명이 혈도가 찍혀 정신을 잃고 있는 매영설의 몸을 일으켰다.
앉은 자세로 만들어 그녀의 등에 있는 명문혈을 통해 내공을 넣어주기 위해서였다.
다만 매영설이 놀랄 경우를 대비해 아직 혈도를 풀어주지는 않았다.
백무명이 내공을 넣어주기 전 매영설의 맥부터 짚었다.
미약한 맥이 잡혔다.
백무명이 안색을 굳혔다.
맥이 약한 것은 예상했으니 심상치 않은 것이 그녀의 몸속에 들어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고독이군. 그것도 매우 고약한 고독이다.’
백무명이 굳은 안색으로 내공 치료를 시작했다.
치료 목표는 원기 회복과 고독 제거였다.
그중 원기 회복은 큰 문제가 없었으나 고독 제거는 백무명도 자신이 없었다.
‘난감하군. 고독도 보통 고독이 아니라 하루에 한 번 해약을 먹어야 목숨이 유지되는 최악의 고독이군. 게다가 해약을 먹어야 할 시간이 한시진도 채 남지 않았다. 이대로 해약 때문에 칠마종 놈들에게 돌아가야 한단 말인가.’
백무명이 초조한 표정을 지었다.
매영설의 초상화를 처음 봤을 때도 느꼈지만 실물을 보니 더욱더 마음이 조급해지는 그였다.
‘매 소저 역시 이전에 나와 친분이 있었던 느낌이 강하다. 정말 내가 이전에 마교와 관련이 있었던 것일까.’
백무명이 상념에 잠기면서도 계속 고독 제거에 몰두했다.
불안정했던 기혈은 이미 안정되었고 원기 역시 상당 부분 회복한 상태.
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한시진 내에 고독을 제거하지 못하면 온몸의 혈맥이 터져 즉사하게 될 가능성이 컸다.
‘정말 돌아가야 한단 말인가.’
백무명이 심각하게 고민했다.
지금 상태로는 아무리 내공 치료를 해도 고독을 제거할 가능성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매영설의 몸속에 있는 고독은 매우 특수한 것으로 내공을 먹고 사는 놈이었다.
그러므로 내공이 높아질수록 그 독성 또한 강해지고 있었다.
‘어쩌면 완전한 해약은 없을지도 모르겠군. 지독한 놈들.’
백무명이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바로 그때였다.
그의 검미가 뭔가를 느끼고 꿈틀거렸다.
‘놈들이다. 아무래도 고독 자체에 천리향 성격이 있는 것 같구나.’
백무명이 안색을 굳혔다.
그의 예상대로라면 고독을 제거하지 못하는 한 놈들의 추적을 따돌리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였다.
문제는 시간이었다.
한시진 안에 고독을 제거해야 매영설을 살릴 수 있는데, 지금 적의 추적으로 인해 그럴 시간도 확보하기 어려워졌다.
백무명이 일단 매영설을 그 자리에 두고, 동굴 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기감으로 볼 때 동굴 쪽으로 오고 있는 무사들의 수는 무려 천여 명이었다.
‘놈들이 오기 전까지 일각 남았다. 일단 싸움이 벌어지면 매 소저 치료는 더욱더 어려워진다. 그렇다고 다시 은잠술을 펼치는 것도 무리인 상황. 보호진의 위력을 더 강화하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니 어쩔 수 없이 그 방법밖에 없겠군.’
백무명이 결단을 내린 후 동굴 입구 주위에 장풍을 날렸다.
콰콰쾅.
폭음과 함께 동굴 입구가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이 정도면 고독에서 나는 천리향도 맡기 힘들 것이다. 지금으로선 이게 최선이다.’
백무명이 발길을 돌려 다시 매영설이 있는 석실로 돌아갔다.
그의 표정은 다소 비장해 보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한시진 안에 반드시 고독을 제거한다.’
* * *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
고독을 제거할 수 있는 시간인 한시진도 이제 거의 다 지나간 상황.
겨우 일각 정도의 시간만 남아 있었다.
그동안 동굴 밖에는 칠마종 무사들로 추정되는 자들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들 또한 무너진 동굴 안에 백무명과 매영설이 있을 거로는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하기야 한번 무너진 동굴을 그들이 어떤 수로 들어올 수 있겠는가.
그래서일까.
백무명의 관심은 오로지 매영설의 몸속에 있는 고독 제거에 있었다.
이미 최대한의 내공을 사용해봤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백무명이 마지막 기대를 그가 끼고 있는 반지, 즉 지존환에 걸었다.
‘반드시 무슨 수가 있을 것이다. 치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라도 좋다.’
백무명이 내공을 지존환에 불어넣자 순간 금빛 섬광이 터져 나왔다.
진작 시도해보지 않은 것이 아쉬울 정도로 즉각적인 반응을 보인 것이다.
이윽고 나타난 물건은 다름 아닌 구슬이었다.
금빛을 내는 구슬.
바로 사방주 중 하나인 청룡주였다.
백무명은 구슬을 보는 순간 그 정보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사방주 중 하나인 청룡주로군. 이 구슬을 내가 어떻게 가지고 있었는지는 생각나지 않으나 치료에 도움은 확실히 될 것 같군.’
백무명이 청룡주에 내공을 실어 매영설의 몸에 비췄다.
순간 청룡주에서 우러나오는 붉은빛이 짙어지며 매영설의 온몸을 감쌌다.
그러기를 얼마나 지났을까.
마지막 남은 일각이란 시간이 모두 지나갈 무렵.
매영설의 입에서 벌레 같은 것이 하나 나왔다.
지네와 비슷한 모양의 붉은 벌레였다.
‘고독이군.’
백무명이 삼매진화를 일으켜 고독을 태웠다.
고독이 한 줌 재로 변하자 그제야 백무명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매영설의 안색이 빠르게 회복되고 있었다.
청룡주를 품속에 넣은 백무명이 조심스럽게 매영설의 혈도를 풀었다.
“으으······.”
매영설이 신음과 함께 깨어났다.
“아! 당신은?”
정신을 차린 매영설이 깜짝 놀라며 경계의 눈빛을 보였다.
백무명이 미소지으며 포권을 했다.
“천마신교 낙양 분타 무사 백무명이라고 합니다. 교주님 제자이신 매 소저를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아, 정말 본교 무사이신가요?”
“네. 지금 막 고독을 제거했으니 몸 상태를 점검해보십시오.”
“아!”
매영설이 매우 기뻐하며 곧바로 몸 상태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고독에 당했다는 것은 해약 때문에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해약이란 것이 일시적이라 평생 해약을 복용해야 하며 영원히 고독을 없앨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절망하지 않았던가.
한데 그 무서운 고독을 제거해줬다니 백무명에 대한 신뢰가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감사해요. 정말 고독이 사라졌네요. 게다가 내공도 이전보다 더 늘어났어요. 혹시 제게 내공 치료도 하신 건가요?”
“그렇습니다. 워낙 원기 훼손이 심해 제가 도움을 좀 드렸습니다. 죄송합니다. 원래 내공 치료는 허락을 받고 해드려야 하는데······.”
“무슨 말씀이세요? 저에게는 생명의 은인이십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려요. 일단 지금까지의 상황을 간단히 설명 부탁드려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백무명이 차분하게 자신이 매영설을 구출하러 오게 된 과정을 설명했다.
설명을 위해 자신이 천마신교에 들어오게 된 과정도 이야기해줬다.
매영설은 백무명의 이야기가 다소 믿기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신뢰가 가는지 오히려 긴장이 풀린 표정이었다.
“그렇게 되었군요. 성녀께서 저 때문에 그런 고생을 하셨다니. 저는 종일 거의 정신을 잃고 있어 까마득하게 모르고 있었습니다. 한데 동굴 입구가 무너졌으니 이곳을 어떻게 나가지요?”
“제게 생각이 있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만 동굴 밖에 있는 칠마종 놈들이 사라질 때까지 조금 기다릴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설마 무너진 입구에 다시 통로를 만들려는 건가요?”
“네. 동굴 입구를 파괴할 때 그것을 고려해 힘 조절을 했습니다. 충분히 가능할 겁니다. 이제 남은 것은 시간이니 놈들이 물러날 때까지 푹 쉬는 게 좋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백 무사님 뜻대로 하겠습니다.”
매영설이 고개를 한번 숙인 후 운공요상에 들어갔다.
비록 백무명 덕분에 원기를 회복했지만 유지를 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절차였다.
백무명 역시 매영설을 구출하느라 진기 사용이 상당했기에 같은 자세로 가볍게 앉았다.
두 사람이 서로 마주하는 자세.
이는 운공을 하면서 서로 호법을 서는 자세로 동문 제자끼리 자주 하는 수련 방법이었다.
운공에 앞서 매영설이 물었다.
“혹시 교주님 소식은 알고 계시나요?”
“교주님 말씀입니까? 이전부터 십만대산에 잘 계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전부터라면 제가 실종되기 전부터인가요?”
“네.”
“아!”
매영설이 탄식했다.
현재 십만대산에서 교주로 행세하고 있는 사람이 생사신의란 사실은 실로 극비로 이를 아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그 때문에 자세히 묻지는 못하나 아무래도 실종된 백엽이 아직 돌아오지 못한 것은 확실해 보였다.
“혹시 교주님 신상에 특별한 문제는 없나요? 아니면 안 좋은 소문이라도?”
“으음, 소문을 말씀하시니 대답하지 않을 수가 없군요. 사실 최근 교주님이 가짜라는 헛소문이 돌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성녀께서 이와 관련한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명을 내리셨지요.”
“아!”
매영설이 다시 탄식했다.
‘아무래도 분타로 가서 성녀님과 의논해야겠구나. 필시 사부님 때문에 이곳 낙양에 오셨을 것이다. 하지만 나 역시 사부님께서 와룡곡에서 실종되었다는 사실만 알고 있으니 별 도움이 되지 못할 듯하구나. 아, 저것은?’
매영설이 뭔가를 보고 깜짝 놀랐다.
“왜 그러십니까?”
백무명의 물음에 매영설이 그의 손에 끼어 있는 반지를 가리켰다.
“그 반지 혹시 언제부터 끼고 있었나요?”
“글쎄요. 아무래도 오래된 것 같습니다. 한데 왜 그러십니까?”
“본인 반지가 맞나요?”
“네.”
백무명이 단호하게 말했다.
모호하게 대답하다가는 의심을 살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아, 그렇군요. 죄송해요. 사실 흔한 반지인데 금빛이 은은하게 나서 제가 착각을 한 것 같아요.”
“아, 네. 그럴 수 있지요. 마음을 편히 하십시오. 하루 정도 있다가 나가도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네.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