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 special! Dunge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49
149
“이제야 겨우 너희들이 쉬이 발붙이지 못하는 곳을 허락받았다. 그런데 어찌 인간을 다시 우리의 숲에 들여놓으란 말이냐. 인간들은 둘만 붙여 놔도 바퀴벌레처럼 늘어나지. 잠시 한눈을 팔고 나면 어느새 바글바글 번식해 있는 것이 너희들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한 마리도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이지.”
일단, 여기가 이런 상태가 된 게 수백 년이란 건가.
그런데 시간이 뒤엉켜서 빠르게 흘렀다, 느리게 흘렀다 한다고 했으니, 바깥과 비교하기 어려운 정보라 쓸모가 없다.
엘프들이 인간을 미워하는 내용은 내게 중요할 게 없고.
규모, 위치, 숲이 이런 상태가 된 이유 같은 것들이 중요한데.
“그럼 여기서 나가면 되는 거지? 나가는 길만 알려 주면 깔끔하게 사라져 줄게. 그러면 서로 편하잖아. 내친김에 저 영감님도 같이 데리고 가 주지. 앓던 이를 내가 대신 빼 주겠다는 말이야.”
“한번 이곳에 발을 들인 이상 살아서 나갈 수 없다.”
이건 살려 보내지 않겠다는 협박일까, 엘프들도 이 숲에서 나가는 방법을 모르는 걸까.
아마 유리스에 한정한다면 후자일 가능성이 높겠지.
“자신 있나? 저 영감님 하나를 50년 동안 잡지 못했다고 들었는데. 나까지 가세하면 더 힘들 거야.”
내 말에 유리스가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백합과 닮은 얼굴에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웃음이지만, 더럽게 예쁜 종자들은 뭘 걸어 놔도 어울리는 법.
비릿한 미소마저 심장이 서늘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기고만장하지 마라. 저 빌어먹을 악귀가 지금까지 살아남은 건 비겁하게 숨어다니며 레인저들만을 상대했기 때문이야. 우리 영역으로 조금만 더 들어와서 제대로 걸렸다면 벌써 죽여 없앴을 거다.”
“그렇게 자신할 정도로 많고 강한가?”
유리스는 내 질문의 의도를 파악한 것 같았다.
비웃음이 한층 더 냉랭해진 것을 보니 말이다.
그녀는 소리까지 내어 웃더니, 차갑게 대꾸했다.
“인간 남자들은 전부 너처럼 비겁하고 추잡하게 구는 건가. 간지럽게 돌려서 물을 필요도 없다. 그 정도는 내가 대답해 줄 테니. 잘 들어라. 너는 여기서 나갈 수 없다. 저놈처럼 비루하게 숨어 지내며 연명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평안한 삶은 영원히 안녕이다. 나는 약하지만, 우리는 많고 강하다. 너희가 제대로 된 엘프들과 마주하는 순간이, 마지막이 될 것이다.”
유리스는 단 두 명에게 수십 명의 레인저가 전멸하는 현장에 있었다.
그것도 피해자의 입장으로.
그런데 그녀는 아주 자신감에 찬 모습이다.
자신이 죽더라도, 언젠가 처참하게 죽어서 따라올 우리를 기다리겠다는 태도다.
하긴, 수백 년이라고 했던가?
제대로 된 외세의 침략 없이 탄탄하게 기반을 다져 왔다면, 엘프들의 세력은 웬만한 국가 이상이겠지.
뒤틀린 성비나 번식력이 낮은 단점을 보완할 만큼 긴 수명을 갖고 있기도 하니까.
엘프들에게서 이 숲을 빼앗고,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찾으려면 꽤나 고생해야 할 것 같다.
그것도 예상보다 훨씬 길게.
생각을 마친 내 머릿속으로 반짝이는 아이디어 하나가 떠올랐다.
‘긴 싸움이 될 것 같으면… 이 방법도 괜찮겠는데.’
방법을 실행하기로 결정한 나는, 표정을 풀고 목소리를 최대한 부드럽게 바꿨다.
“고맙다.”
“……?”
“…켁, 켁, 너, 너… 미쳤냐?”
갑작스런 내 태도 변화에 유리스는 경계의 눈빛을 보냈지만, 가만히 구경하던 콜린은 넘기던 육포가 목에 걸린 듯 요란하게 기침을 해댔다.
“미치지 않았습니다. 상황이 이래서 어쩔 수 없었던 거지, 저는 밖에 있을 때 여자에게 손을 댄 적이 없습니다. 살기 위해서 한 행동일 뿐, 지금도 양심의 가책이 느껴지는군요.”
이렇게 말하는 내 머릿속으로, 아카데미 실기 시험 때 무릎으로 찍어 찼던 학우의 얼굴이 스쳤지만, 깔끔하게 머릿속에서 지웠다.
원래 거짓말을 할 때는 자신마저도 속여야 제대로 된 거짓말이 나오는 법.
그렇게 마음을 속이니까, 정말로 콜린이 미워졌다.
이렇게 예쁜 엘프들 팔다리를 부러뜨리다니!
“너희는 내가 책임지고 풀어 주도록 하겠다.”
“우, 웃기지 마라! 무슨 꿍꿍이냐? 네가 맨손으로 대원들을 때려 죽이는 걸 내가 봤는데……!”
“그랬지. 무기를 사용하면 훨씬 더 쉬웠겠지만, 차마 검을 손에 쥘 수 없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믿어 달라는 것도, 용서하란 것도 아니다. 다만, 지금까지는 조금이라도 더 정보를 얻기 위해 연기를 하고 있었을 뿐이란 얘기를 하는 거다. 헤어지기 전에, 적어도 거짓말을 한 것은 사과를 해야 할 테니까. 악의가 있는 거짓이 아니라도, 거짓을 입에 담은 것은 바로잡고 싶다.”
“…….”
잘생긴 몸에 들어와서 다행이다.
눈을 살짝 아래로 깔고, 안타까운 표정만 지으면 효과가 대박이다.
“네 말대로 앞으로 숨어 지내게 될지도 모르지. 하지만 너희들을 죽인다고 그런 미래가 오지 않는 건 아니니까. 앞으로 적대하게 되겠지만, 적어도 나는 내 목숨을 구하기 위한 살생만을 하겠다. 그러니 너희는 살아라.”
“…….”
“야, 그것들 내가 데려온 건데? 내 건데?”
나는 콜린을 바라보면서도 말했다.
침중한 표정으로.
“이번만큼은 후배의 마음을 생각해서 양보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아니… 어차피 걔들 팔다리가 병신이라 돌려보내도 짐승이나 몬스터 밥이 될 뿐이야. 그러느니 그냥 내가 잘 써 주는 게 서로에게 의미도 있고…….”
“그건 제가 해결할 수 있습니다.”
“…젠장, 이번만이다? 이상하다… 저런 이미지가 아니었는데.”
언제든 새로 구하자면 구할 수 있는 장난감이라서일까.
콜린은 생각보다 쉽게 포기를 해 주었다.
그러면 장애물은 대부분 치웠고, 밑밥도 훌륭히 깔았으니… 목적을 위한 행동에 들어가자.
나는 지옥 주머니를 열어, 물량이 나오는 대로 열심히 사 모았던 것을 꺼냈다.
만년설 같은 하얀 가루, 마약이다.
그것도 아스모데우스의 아래에 있는 쾌락의 악마들이 열심히 정제한 현세에는 없는 마약.
“진통제다. 이걸 사용하면 다치기 전만큼은 아니어도 움직일 수는 있을 거다.”
“…독이 아니란 증거가 없다.”
“죽일 생각이었다면 벌써 죽였고, 괴롭힐 생각이었다면 보내 주지도 않았을 거야.”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하얀 가루를 그녀의 입 근처에 대 줬다.
유리스는 머뭇머뭇하면서도, 조심스레 혀를 그것에 가져다 댄다.
“흐읏?”
아주 미량을 섭취했을 뿐인데, 유리스의 얼굴이 붉어지며 허리가 휜다.
“읍읍!”
“웁웁!”
그 모습을 본 부하 둘이 꿈틀거리면서 분노했다.
“괜찮아. 진정되기까지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진정만 되면 부러진 다리로도 돌아갈 수 있게 될 테니까.”
내 말대로, 10분 정도가 지나자 유리스의 호흡이 정상적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하악… 하악… 도, 도대체 그게 뭐냐……? 이건… 정상적인 약이 아니야……!”
그러나 쾌락은 여전히 그녀의 몸을 괴롭히는 모양이다.
뱉어 내는 숨에 달짝지근함이 묻어 나온다.
참기 힘든 쾌락은 고통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법이다.
그런 만큼 하얀 가루를 바라보는 유리스의 시선에는 두려움마저 느껴졌다.
“더럽게 효과 좋은 진통제라고 생각하면 돼. 마음의 고통까지 잊게 해 주는.”
거짓말은 아니다.
후폭풍이 더럽게 강력할 뿐이지.
“어때? 움직일 수 있겠어?”
유리스는 그제야 자신의 팔과 다리를 슬쩍 움직였다.
그러더니 놀란 표정을 짓는다.
“아, 아프지 않아…….”
그런 그녀에게, 나는 커다란 자루를 넘겨 줬다.
“이렇게 많은 양이 필요하진 않아. 아니면 효과가 짧다거나…….”
“아니, 효과는 꽤 길게 유지될 거야. 나머지는 선물이다. 대수해에서 돌아다니다 보면 많이 다치겠지. 그때 사용하도록 해. 동료들에게도 나눠 주던가.”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정말 죄책감 때문이냐?”
“…모르겠어. 분명 나를 먼저 공격한 건 너희이고, 나는 살기 위해 싸웠을 뿐이지만… 이런 감정이 무엇인지 말이야.”
젠장, 이제는 정말 자아가 흔들릴 정도다.
나 혹시 정말 착한 사람이 아닐까?
“네가 이런다고 너를 용서할 생각은 없다. 물론 너를 죽이려 하는 우리를 용납하란 이야기도 아니다. 그저, 너희 인간과 우리는 양립할 수 없을 뿐이야. 결국 너희를 죽일 거다.”
“그럼 최대한 열심히 숨어 다니도록 노력해야겠군.”
나는 씨익 웃으며, 여전히 재갈이 물려 있는 나머지 둘을 풀어 줬다.
어차피 사지를 구속하지 않았기에, 밧줄을 풀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유리스에게 넘겨 준 것과 같은 크기의 주머니를 꺼내 각자에게 들려 줬다.
“…….”
“…….”
나머지 둘 또한 혼란스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자신들이 동족을 파멸시킬지도 모르는 가루를 잔뜩 들고 있는 것을 모르고.
“내가 준 선물이 언젠가 너희들과 너희 동료들 목숨을 한 번은 구해 주면 좋겠다. 이제 가. 저 영감님 마음 바뀌기 전에.”
“제기랄…….”
무슨 의미인지, 유리스는 그 말을 남기고 잰걸음으로 밖을 향해 뛰었다.
그녀들이 사라진 동굴에는 달달한 풀냄새가 남아 있었다.
“너… 저거 진통제 아니잖아?”
엘프들이 사라진 후에 콜린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죽음과 가까운 직종만큼 마약과 가까운 사람들도 드물고, 대표적인 게 모험가다.
바깥에서 모험가 생활을 하던 그가 몰라볼 수가 없지.
“맞습니다. 효과 좋은 마약이죠. 부러진 다리로 뜀박질이 가능해질 만큼 진한.”
“허… 순간 미친 새끼가 된 줄 알았더니, 알고 보니까 그냥 미친 새끼였군. 저런 건 왜 포대로 들고 다녀? 너 밖에서 약쟁이였냐? 아니지, 저 정도 양이면… 약을 만들던 놈이냐?”
“그게 중요합니까?”
“그럼 뭐가 중요해?”
“엘프들을 어떻게 밀어 버릴까가 중요하죠.”
“엘프들?”
마약은 알아봤으나, 내가 왜 마약을 그녀들에게 선물했는지는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다.
단순하긴.
“50년 동안 도망 다녔다고 했었던가요. 이제 그 생활 청산할 때 됐잖아요.”
“무슨 뜻이냐.”
“저랑 같이 엘프들 싹 밀어내고, 대수해를 접수하자 이 말입니다.”
“흥, 그년들이 과장을 좀 하긴 했지만, 엘프들 중에서는 나보다 강한 놈이 분명 있을 거다. 하물며 숫자부터가 더럽게 많을 텐데… 아니, 너 설마……?”
“이제 눈치챘습니까?”
“아니, 겨우 그 정도 양으로 될 거라고 생각한 네가 바보 아니냐?”
“더 뿌릴 겁니다. 엘프들이 약에 절여져서 서로 칼부림을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
“그리고 쪽수도 맞출 방법이 있습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여울에게 말을 걸었다.
-찾았어?
-적당한 곳을 찾았습니다.
좋아, 거점으로 활용한 만한 곳을 찾았다고 한다.
볼 것도 없이 여울이 있는 장소에 던전을 생성했다.
포인트를 아낌없이 때려 부어서.
그리고 포탈 생성을 시도했다.
‘바깥쪽 던전은 전부 조작이 불가능하지만, 안쪽에 만든 던전에 포탈을 만드는 건 가능하군’
그렇다면 일단 만들고 봐야겠다.
기능이 전부 작동하지는 않더라도, 제한적이나마 밖과 연결된 작은 구멍 정도 역할은 해 줄지도 모른다.
희망적인 관측으로 그칠 가능성도 있지만, 지금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 할 때다.
빠르게 용무를 마친 나는, 콜린을 바라봤다.
“은신처를 옮기죠. 여긴 위치가 노출됐을 테니까요.”
“X미 X팔, 손님 하나 주웠다고 생각했는데, 손놈이었구만. 온 지 하루도 안 돼서 남의 집을 두 채나 갈아먹다니.”
콜린은 툴툴거리며 일어나 엉덩이를 털었다.
나는 그런 그를 보며 해맑게 웃었다.
“엘프들 집을 뺏어서 호화 생활 누려야죠. 그걸 위해 조금 고생한다고 생각하십시오.”
“나는 뒤지고픈 마음 없다. 승산 없다 싶으면 혼자 도망갈 거야. 그리고 그딴 가루로 놈들을 붕괴시키겠다는 게 가진 전부라면 승산은 없다고 본다.”
“두고 보면 알겠죠.”
지옥의 마약, 헬카인이 그깟 가루라고?
중국이 세계 2위의 경제 대국 맛도 보고, 여기저기 깡패 행세를 하면서 어깨에 힘 줄 때도 마약하면 경기를 일으키는 이유.
청나라 시절 아편에 절여진 트라우마.
전쟁 이름마저 아편 전쟁이라 붙을 만큼 처절했던 그 상황을 내가 재현해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