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the fact that a new actor is a tycoon RAW novel - Chapter (37)
37막, 전야 (1)
37막, 전야 (1)
여의도에 위치한 KBC 방송국 본관.
그 내부의 부국장실을 찾은 독종의 출연배우 김한성은 편안하게 소파로 몸을 기댔다.
딱히 제가 상전이라 굴기보다는 그저 편안한 태도였다.
물론 잠시 후 등을 떼고 앉은 배우 김한성은 부국장에게 따지듯이 투덜거렸지만.
“참 나, 웃기시네. 삼촌이 언제 저를 신경 써줬다고···.”
그 말에 부국장 김용수가 제 머리를 턱 짚었다. 여기까지 와 채근하는 게 어찌나 지끈거리는지.
이제 막 부국장을 달고 제 입지를 안정시켰다.
그토록 기다리라고 얘기를 해놨는데 또 채근이라니.
한숨을 한 차례 삼킨 김용수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틀린 말은 조금도 없었다.
“당장 취임한지도 얼마 안됐었는데 무턱대고 밀어줬으면 됐을 거 같아?”
“······그러니까 제가 참고 이거라도 맡았죠.”
퍽 배려했다는 듯이 말하는 김한성이 다시 한 번 응석을 부렸다.
귀엽기보다는 참으로 징그럽게.
“언제까지 하나뿐인 조카 조연만 시키실 거예요, 삼촌?”
“후우, 주연 줘야지 그래. 줄 거야.”
물론 어렸을 때부터 봐온 그 모습조차도 징그러웠던 건 아니다.
다 큰 녀석이 아무리 징그러워졌어도 결국 피는 물보다 진한 법.
김용수는 눈앞의 조카 김한성을 얼마든지 전폭적으로 밀어줄 요량이었다.
단.
지금 맡은 독종의 배역, 권지혁 역.
“딱 그거만 하고 나면 줄게, 그러니까 최대한 잘해봐.”
어깨를 으쓱인 김한성이 짐짓 우쭐한 얼굴로 소파에 몸을 푹 뉘였다.
“뭐 그 차지윤 작가 거니까 일단 맡은 거지만··· 저야 늘 잘하죠.”
퍽 거만함이 묻어나는 어투에도 김용수는 별 다른 내색을 표하지 않았다.
지금의 주연배우와 비교해도 제 조카가 꿀릴 것 없다는 생각은 삼촌인 그도 마찬가지였으니까.
한편.
“···이건 뭐예요?”
탁자 한켠에 어떤 프로필과 신문이 눈에 띈 김한성이 몸을 들썩였다.
“그거 말이냐? 누가 이번에 이목 좀 끈 신인이라고 추천하더구나.”
삼촌의 말을 흘려들으며 집어든 프로필은 초라했다.
별 살펴볼 내용도 없는 프로필을 넘기고 바로 신문으로 시선을 옮겼다.
거기엔 제법 세간의 관심을 끈 신인배우에 대한 좋은 말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독립영화제에서 독립스타상을 수상했다는 신인배우.
그를 향한 칭찬과 앞날에 대한 축원을 한눈에 흘긴 김한성은 무심하게.
툭.
내려놓으며 중얼거렸다.
“난 또 뭐 별 거라고···. 듣도 보도 못한 놈이 운좋게 하나 물었나보네.”
제 잘난 맛에 살면서 대부분의 배우는 업신여기는 그다운 말이었다.
유달리 놀란 건 없었지만 김용수는 혹시나 하여 당부했다.
“다 좋은데··· 남 듣는 데에선 그런 말하지 마라.”
“예예, 나는 우리 삼촌만 딱 믿고 있을 테니까. 응?”
이름도 외워두지 않은 신인을 한껏 헐뜯던 김한성이 제멋대로 놓은 신문을 두고 일어섰다.
“사고만 치지 마라.”
“아무렴요.”
끽해야 몇 장면 나오고 마는 권지혁 역에 만족할 수는 없는 김한성이었지만 그래도 이 또한 차지윤과의 접점이 될 테니까.
그리고 비중은 적되 주목도가 썩 나쁜 배역도 아니니까.
그저 이대로 드라마가 잘 마무리된 뒤 부국장까지 오른 삼촌의 덕이나 좀 보면 그만일 터였다.
“그럼 들어가볼게요?”
“그래, 알았다.”
그 때만 해도 김한성은 몰랐다.
마약 스캔들로 촬영이 엎어지고 재촬영이 결정될 거라곤.
더불어 자신이 한껏 헐뜯은, 이름조차 머릿속에 담아두지 않은 이신우.
그와 배역 경쟁을 하게 될 거라곤.
드라마 독종의 권지혁 역을 두고.
* * *
영화제가 끝난 뒤 잠깐의 활동이 있었다.
대체적으로 방송 출연보다는 개인 인터뷰와 박광철, 혹은 유채린과 함께한 단체 인터뷰가 주를 이루고 있었지만 썩 즐거운 소란이었다.
물론 장기간 달려온 촬영과 그 여파를 감당하는 데에는 적지 않은 심력이 들어가야 했지만.
덕분에 오랜만에 즐기는 휴식이었다. 요즈음의 이신우가 누리는 휴식은.
“···.”
며칠은 여러 대본을 즐거이 읽어보며 집을 지켰다. 딱히 연습보다는 재미에 초점을 두고 읽었다.
“큭큭.”
코미디한 대본도 여러 차례 읽어보길, 좀이 쑤신 이신우는 대학로를 다시 한 번 거닐었다.
거기엔 그의 고향이었고 또 다시 고향이 되어버린 청춘 극단도 있었다.
유하준이 나간 탓에 거의 홀로 제 짐을 감당하게 된 송진혁이 기쁘게 그를 맞았다.
“형! 도와주러 온 거에요?”
“아닌데?”
구경하러 왔다는 말에 송진혁이 울상으로 팔을 붙잡았다.
“······아 좀, 조금만 봐주세요 형···.”
그 모습이 어찌나 간절해보이던지.
다음 주로 예정된 연극의 대본을 가볍게 들어보였다.
대본은 공교롭게도 , 그것도 그가 맡았던 사형수 역이었다.
왠지 유난히 도와달라고 어리광부리더라니. 부러 장난기가 동했다.
“너한테 이건 좀 벅찰 텐데.”
“···최대한 형 흉내라도 내보려고요.”
큭큭거리며 웃은 송진혁은 아무렇지 않게 농담을 넘기고 당사자로서 좀 가르쳐달라 부탁했다.
이신우는 기꺼이 조그마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사실 조금도 조그맣지 않았지만.
“나?”
그 때의 감각.
“내가 누구냐면···.”
모든 생을 포기하고 체념한 사형수의 서늘한 어조.
“내일 저 자에게 끌려가 죽게 될 사람.”
그 모습을 재연해준 다음에는 몇몇 포인트를 짚어주었다.
그걸 흡수하는 건 다시금 입을 떡 벌린 녀석의 몫일 테지만.
그 모습이 퍽 정겹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여 한 번 더 장난기가 일었다.
어깨를 마사지하듯이 꽉 주무르며.
“도움 되라고 보여줬더니 감탄하고 있으면 어떡해.”
“악! 누가 잘하래요?”
확신했다.
분명 잘해내리라고.
내가 기억하는, 그리고 이번 생에 봐온 송진혁이라면.
그런 막연한 기대를 품길, 청춘의 단원 중 몇몇이 연습실로 들어왔다.
그리고 나를 눈에 띄게 반겼다.
“아니, 이게 누구야!”
“무려 독립스타상 배우님 아니야?”
우스운 농담이나 몇 개 던진 그들과 짧은 회포를 나누자 진세연도 나타났다.
“···외부인이 여기까진 왜 들어왔어요?”
부러 차갑게 말하는 그녀였지만 정작 문자로는 축하의 말을 전하고 또 전했던 게 아직도 내 휴대폰에 남아있었다.
“축하해요, 길에서도 막 알아본다던데.”
그러고도 모자란 지 한 번 더 축하의 말을 건넸다. 아니, 인터뷰도 찾아본 모양이었다.
“제 인터뷰도 봤어요?”
“······그냥, 조금.”
반응이 조금은 아닌가본데.
이내 고개를 돌린 진세연과 나를 번갈아보던 송진혁이 뜬금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근데.”
물론 다소 뜬금없되 타당한 이야기였다.
“둘은 언제까지 존댓말하게요?”
“···.”
“···.”
일순간 조용해진 연습실을 채운 건 녀석의 비명이었다.
“악!”
“괜히 쓸데없는 소리 말고 따라와, 연기 더 봐줄 테니까.”
군소리를 내려던 녀석은 더 봐주겠다는 뒷말에 아무런 불평불만도 없이 나를 따라왔다.
속물 같은 녀석.
아마 소고기 한 번 사준다고 하면 간도 쓸개도 내줄 게 뻔했다.
‘······그렇게 욕심 많은 녀석이, 연기 하나 하겠다고.’
어쩐지 측은하면서도 기특한 마음은 연기 지도에 더욱 힘을 더해주었다.
물론 그게 진혁이 녀석에게 좋게 작용한 지는 잘 모르겠지만.
“혀, 형··· 잠깐만 쉬었다가···.”
“안 돼, 다시.”
저녁 늦게까지 진혁이 녀석의 비명을 들을 수 있던 건.
퍽이나 즐거운 휴식시간이 되어주었다.
* * *
유독 밝은 보름달을 등에 지고 걷길, 나의 그림자에 누군가의 발걸음이 포개어졌다.
“···.”
“···.”
집 앞에 다다르니 손님이 와있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이 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할 인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연락이 다시 올 순 있다고 여겼지만 설마 직접 찾아오리라고는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늦게까지 나다니는구나.”
이철호 회장.
비서실장을 대동하고 나타난 그가 퍽 느긋한 모습으로 내 걸음을 멈춰 세웠다.
“···.”
그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이철호 회장이 나의 집 앞에 도착하고선 꽤 오랜 시간이 흘렀을 거라고.
“···.”
대체 언제부터.
얼마나 기다린 건지.
고작 이 얼굴을 한 번 보겠다고.
『······좋다, 허락하마. 독립하거라』
아직도 눈을 감으면 그 서늘했던 말이 머릿속에 떠오르는데.
『넌 더 이상 금강의 사람이 아니다』
일말의 원망도 담기지 않은 순수한 궁금증이 돌았다.
정작 이철호 회장에게는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이제 저는 금강의 사람이 아니라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분명 그렇게 말했던 이철호였다.
물론 그로 인해 별 다른 감정이 든 건 아니었다.
비록 눈을 떴던 순간 나를 품었던 그 따스한 품이 잠깐 스치긴 했지만······.
오히려 후련했을 뿐이었지.
나의 아버지도 아니었으며 어차피 한 번 버려졌던 몸이었다,
나에게 부모란 원래부터 딱히 애틋한 류의 것이 아니었으니까.
헌데 다시 나타난 이철호 회장은.
참 그윽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 시선이 불편해 마냥 피할 수밖에 없었다.
“금강 그룹의 이름으로 온 게 아니다.”
이내 보름달을 문득 바라본 이철호 회장이 다시금 내게로 시선을 내렸다.
“인간 이철호의 이름으로 찾아온 것이지.”
다시 마주한 그 눈가에는 어쩐지 새벽의 우수(憂愁)가 벌써부터 젖어있는 것도 같았다.
“···.”
그 우수 앞에서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밤하늘을 수놓은 별조차도 고요하게 기다렸다.
누군가 한 사람이 말을 꺼내기만을.
그게 나는 아니었다.
“그냥.”
그 어떤 말보다도 무심하면서도 애틋한 어투로.
“잘 지내는지 보러 왔다.”
이윽고.
“그새 좀 야위었구나.”
덜컥.
심장 위로 무겁게 내려앉은 한 마디가 불편하게 가슴을 쥐락펴락하길.
“돈은 모두 모아놓았던데 어찌하려는 게냐.”
부러 두 눈을 똑바로 뜨고 그 시선을 응시했다. 별로 어려운 대답도 아니었다.
“···특별히 쓸데가 생기면 사용하고자 마련해두었습니다.”
잠시 후 고개를 끄덕거린 이철호 회장이 무어라 중얼거렸다.
“······비상금이라는 건가.”
그 눈빛에 꼭 여러 감정이 스치는 것도 같았다.
대견함인지 죄스러움인지 정체 모를 감정이 그의 안에서 꿈틀거리길.
“영화 잘 봤다.”
“···아.”
나도 모르게 탄식이 나왔다. 그러나 이철호 회장의 입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소감도 잘 보았고.”
“···.”
애써 탄식을 참고 있는 내게.
그것만으로도 안간힘을 쓰고 있는 내게.
이철호 회장이 문득 중얼거렸다.
머릿속으론 어떤 기억을 떠올리는 것처럼.
“그 때 이런 말을 남기고 떠났지 아마.”
덩달아 나의 뇌리로도 어떤 기억이 제 몸을 일으켰다.
『아버지』
『죄송했습니다』
아주 짧았던 한 마디.
그보다도 더 짧은 한 마디였다.
“···미안하구나.”
이철호 회장.
별안간 나타난 그가 내게 남기고 떠난 건.
“시간도 늦었는데 이만 들어가거라.”
입도 벙긋 못한 채 가만히 멈추어선 나를 두고 그는 홀연히 사라졌다.
“···.”
나는 한참이나.
오래도록 그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봤다.
꼭 잠잠한 폭풍처럼 다가온 그가 다시 돌아올 수도 있을 것만 같아서.
그러려면 그 폭풍에 대비해야만 할 것 같아서.
다행히 회장은 그대로 사라졌으나 그건 전야에 불과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다음 날.
눈을 뜨자마자.
『KBC 특편 드라마의 주연 배우 A씨, 마약 혐의로 불구속 입건···』
올해 가장 주목받던 드라마 에게 벌어진 악보는 뉴스란을 뒤흔들었다.
촬영이 거꾸러진 유망주의 소식을 접하며 느꼈다.
드디어.
긴히 연락을 건넬 시기가 도래했노라고.
여태 묵혀왔던 캐스팅 디렉터, 신세현 그의 전화번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