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beggar count RAW novel - Chapter 157
158화
교황청의 주인이자, 이 세상 주신들의 대리인.
교황.
현 교황은 내가 알기론 주에른 4세다.
‘4세라. 교황 치곤 어리군.’
불현든 떠오른 쓸데없는 농담에 킥킥댔다.
“그럼.”
텔레인은 그런 내 속 맘은 꿈에도 모른 채 내게 고갤 까딱였다.
참회의 방 문을 열겠단 의미였다.
가볍게 고갤 끄덕이자 텔레인은 굳게 닫혀 있던 문을 두드렸다.
똑똑.
“텔레인입니다. 아이소테르에서 손님들이 오셨습니다.”
“아.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요? 어서 들어오세요.”
문 너머에서 맑고 청아한 목소리가 화답했다.
보통 사람들이 예상하는 교황의 이미지랑은 많이 다른 목소리였다.
이십대 중반의 우아한 여성이 내뱉을 것만 같은 목소리다.
끼이익…….
이윽고 텔레인이 문을 열었고.
홀로 찻주전자에 물을 채워 넣는 여인이 참회의 방에 서 있었다.
“교황…님께선……?”
프리아나가 홀로 서 있는 여인을 향해 물었다.
그러면서도 혹시나 하는 생각에 말끝을 흐렸다.
이 여인이 교황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아주 약간의 의심.
“…여기 계시지 않습니까.”
“앗…….”
“후후, 괜찮아요. 흔히 있는 일인 걸요.”
명색에 신의 대리인인 터라 교황은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다.
이따금 주 예배 기간에 모습을 보이긴 하지만, 그것도 두터운 가림막 뒤에 숨어 손만 흔드는 게 전부다.
덕분에 일반 대중들이 교황을 보는 일은 드물었다.
게다가 추기경들보다 높은 지위에 있다 보니 당연히 꼬부랑 할배겠거니 하는 게 일반 대중들의 생각이다.
하지만 지금 눈앞의 교황이란 자의 모습은, 꼬부랑 할배보단 아름다운 천사의 모습에 가까웠다.
‘그야 천사니까.’
날개는 달려 있지 않았지만, 움직이는 조각상에 가까운 외모는 계속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을 빼앗길 것만 같았다.
‘그야 천사니까.’
일단 겉모습은 아름다운 여인에 가깝긴 해도 천사다 보니 성별은 없었다.
지금 교황을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남자건 여자건 다 히테라교에 귀의하지 않을까 싶다.
신성 랭크 7부터 가능한 신성 마법.
천사 소환.
단순히 소환하는 게 아니라 천사를 자신의 권속마냥 부릴 수 있는 독특한 신성 마법이다.
그렇다는 건…….
“와…….”
디아는 아름다운 천사의 모습에 잠시 넋을 잃고 바라봤다.
엘프는 좀 고지식하게 아름답다면 천사는 따듯하게 아름답다 해야 하나?
붉게 상기된 피부하며 따스한 빛깔의 머리칼은 보기만 해도 가슴이 따듯해지는 것만 같았다.
“이안 임페라 백작. 맞죠?”
“…네.”
교황은 따스한 천사의 미소를 지으며 눈웃음 지었다.
그토록 차가워 보이던 텔레인도 교황의 미소엔 조금이나마 얼굴에 화색이 도는 듯했다.
‘흥.’
텔레인이 제4위계 신관이긴 해도 교황이란 시스템이 어떤 건진 잘 모르는 듯했다.
하기사 교황의 진짜 모습을 아는 건 제1위계 대신관들뿐이니까.
소설에선 교황이 왜 저런 천사의 모습을 하고 있는지 명백하게 나온다.
신관들의 입을 빌려 말해 보자면, 교황이 되는 순간부턴 신의 대리인이기에 하찮은 필멸자의 모습이 아닌, 천사의 모습으로 환골탈태한다는 거다.
‘개소리지.’
새액……. 새액…….
참회의 방 주위 어딘가에서 가쁜 숨소리가 들려왔다.
그저 잡음이라 치부할 정도로 작은 소음이었지만, 그 실상을 아는 내겐 다르게 들렸다.
침묵의 방 너머, 통로조차 없는 굳게 닫힌 공간.
그 안에 진짜 교황이 숨어 있다.
주에른 1세부터 4세까지 이어질 정도로 오랜 세월 교황이란 자릴 지켜 온 남자.
이미 산송장이나 다름없는 상태로 생명 연장 장치로 겨우 생존해 있었다.
그게 진짜 교황.
죽고 싶어도 맘대로 죽지도 못한다.
신성 랭크 탓이다.
노화로 숨이 넘어가려는 순간마다 신성 랭크의 힘에 의해 다시 살아나니까.
그러다 일순간 삶에 회의를 느껴 신앙심을 잃는 순간.
‘다음 교황이 오르는 거지.’
그때부터 ‘주에른’이란 이름이 끝나고 ‘임페라 1세’ 같은 이름이 되는 거다.
여러모로 크게 뒤틀려 있는 종교다.
굳이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뭘까.
그것도 결국엔 신앙심 탓이다.
교황청을 움직이는 원동력이자 모든 힘의 시작과 끝.
자기보다 못한 이가 신의 대리인을 칭한다는 걸 참을 수가 없는 거다.
영원히 자신만을 바라봐 달라는 신을 향한 소유욕도 있고.
때문에 교황에 선출되는 이는 독보적인 신앙심을 갖고 있다.
여전히 본체는 죽지도 못하는 살덩이로 남은 채, 신의 대리인으로서 역할만을 충실히 하는 존재.
그게 히테라교의 교황이다.
간신히 남은 의식만으로 천사를 소환해 자신의 권속으로 부리는 교황.
놈들의 뒤틀린 신앙심에 절로 눈살이 찌푸려지는 것만 같았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임페라 백작?”
교황의 의식을 담은 천사가 고갤 갸웃거리며 물었다.
“…아닙니다. 교황께서 이토록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계실 줄은 몰랐던 터라.”
“후훗. 칭찬으로 받아들이죠.”
고맙다는 듯 눈웃음 짓는 주에른.
하지만 그런 녀석의 눈빛에 옅은 경계가 느껴졌다.
히테라교의 실체에 관한 건 제1위계 대신관들만 아는 기밀 중에 기밀.
이를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문제가 되기 충분했다.
“…….”
여기서 교황과 척을 져서 좋을 건 없기에 서둘러 말머릴 돌렸다.
“…오늘 이 자리에 아이소테르를 대신하여 온 건…….”
“물론 카잔 황제의 잔당들에게 대항하여 힘을 모으기 위해서겠지요.”
“…네.”
“하지만 그 얘긴 이미 아이소테르의 여왕님과 끝낸걸요?”
“아…….”
정곡을 찔린 난 순간 말문이 막혔다.
사실 교황청은 어디까지나 몰락의 요새로 가는 길에 잠깐 들리는 것뿐.
‘잠깐.’
아니 애초에 지들이 오라고 편지까지 보내 놓고 이건 뭔 소리지?
설마 편지 자체가 오베론이 만든 가짜 편지였나?
그럼 말 앞뒤가 안 맞아서 귀찮아질 텐데.
“…후훗!”
말문이 막혀 있던 내게 별안간 교황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 맘 다 압니다. 저희 쪽에 일부러 교황청에 들리고 싶단 서신까지 보내시고. 그러면서 그런 애매한 이유를 대시다니.”
“애매한 이유……?”
교황은 손을 휘적거리며 다 알고 있다는 듯 고갤 끄덕였다.
“아이소테르의 여왕님과 혼례 때문이죠?”
“아.”
“쑥스러워하시는 건 다 이해합니다. 다른 분들도 많이 그러셨으니까요.”
“으음.”
보아하니 교황청 측은 내가 서신을 보내 온 걸로 알고 있는 듯했다.
서신 내용 자체는 연합에 힘을 실어 달라는 내용이었지만, 진짜 의미는 따로 있는 서신.
이글렌과의 정식 혼례.
교황청 입장에선 타 왕국에서 히테라교의 예절을 따르겠다는 거니, 오히려 환영할 만한 이야기였다.
“오호. 그런 이유셨군요.”
텔레인은 눈썹을 으쓱하며 슬쩍 미소 지었다.
“하핫! 드디어 결심을 하셨군요! 축하드립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왠지 여왕님 표정이 밝아 보이시더니만. 그런 이유였군요!”
디아와 프리아나까지 나서서 날 축하하고 나섰다.
“…에휴.”
오로지 사실을 아는 이슬린만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뭐… 그렇죠. 하하…….”
난 멋쩍은 듯 뒤통수를 긁적였다.
좀 등 떠밀려 하는 느낌이 없진 않지만.
“제 입으로 직접 말하려니 아무래도 쑥스럽군요.”
“후후. 괜찮습니다. 어찌 보면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순간이니까요.”
“그, 그렇죠?”
“아마 세례를 받으시면 두 분의 결혼 생활에도 주신님께서 축복을 내려 주실 겁니다.”
“그럼…….”
텔레인은 교황을 향해 무언의 눈빛을 보냈다.
세례를 누가 진행할건지 묻는 듯했다.
“아이소테르의 귀인께서 오셨는데, 교황으로서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세례는 제가 직접 내려 드리지요.”
주에른은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그리곤 주변에 같이 온 이들을 보며 한마디 덧붙였다.
“혹시 다른 분들도 원하신다면 직접 세례를 내려 드릴 수 있습니다만.”
“오… 교황님께서 직접……?”
프리아나는 교황이 직접 세례를 내려 준단 말에 제법 감동한 듯했다.
보통 하위 신관들이 하는 게 대부분인 터라 흔치 않은 경험이긴 했다.
하지만 교황이 직접 내리는 세례는 좀 부담스러웠다.
세례는 주신들의 가호를 내려받는 신성 스킬.
신성 랭크 1부터 가능한 기초 스킬이지만, 교황급 되면 그 위력이 남달라진다.
신성 랭크 8부턴 단순히 가호를 내리는 게 아니라 일순간 주신들과 직접 대면 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럼 거절하기도 뭐한데.’
떡 본 김에 제사 본다고, 주신의 가호를 받는다고 나쁠 건 없기에 교황청에 들르기라도 하면 다들 세례를 받곤 한다.
이글렌도 이번에 신성 왕국에 들렀을 때 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교황이 내려주는 세례를 거절한다는 건…….
“…알겠습니다.”
“금방 끝나니 긴장 푸세요.”
주에른은 허공에서 법봉 하날 뽑아냈다. 교황청에서 가장 신성 랭크가 높은 녀석이다 보니 법봉 하나쯤 뽑아내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리곤 법봉을 바닥에 살짝 내려치자.
사라락!
바닥에 하얀 카펫이 나타났다.
“여기 무릎 꿇고 계시면 됩니다.”
“…네.”
께름칙한 속내를 간신히 숨긴 채 주에른의 말에 잠자코 따랐다.
녀석의 손엔 어느새 성수가 담긴 자그마한 물병이 들려 있었다.
“두 눈 감으시고.”
“…….”
기도도 안 되던 몸이라 세례가 제대로 먹힐지 모르겠다.
일단은 녀석의 말에 따라 두 눈을 꼭 감았다.
굳게 닫힌 눈꺼풀 너머로 녀석의 법봉이 빛나는 게 느껴졌다.
…촤아악!
“으읏.”
그러자 내 머리 위로 차가운 성수가 뿌려졌다.
“끝났습니다.”
“…네?”
뭐야? 이걸로 끝이라고?
교황이 내려 주는 세례라 무슨 기도나 복잡한 의식 같은 게 있을 줄 알았는데.
“…….”
난 머리가 흠뻑 젖은 채로 몸 구석구석을 살폈다.
그러고 보니 미묘하게 어깨 결리던 게 사라진 것 같기도 하고…….
…주륵!
“…어?”
두 뺨을 타고 뜨거운 액체가 흘러내렸다.
따뜻한 걸 보면 성수는 아니었다.
“…눈물?”
왜 눈물이 나지? 이제 총각 딱지를 뗄 남자의 눈물 같은 건가?
“후후. 주신님을 뵙고 오셨군요.”
“…네?”
계속 영문 모를 상황이 이어지자 자연스레 눈살이 찌푸려졌다.
교황은 자애로운 얼굴로 설명을 이어 나갔다.
“주신님께선 어린 양들에게 가장 필요한 걸 보여 준답니다. 하지만 이는 신님의 영역에서만 가능한 일. 필멸자들의 영역에 다시 돌아왔으니 그 기억은 두고 와야겠지요.”
“그게 뭔…….”
“잘 느껴 보세요. 가슴 한켠을 꽉 막고 있던 무언가가 사라진 것 같지 않나요?”
“으음…….”
그렇게 말하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저, 저한테도 해 주실 수 있습니까?”
옆에서 세례를 신기한 눈빛으로 구경하던 프리아나가 말했다.
“물론이죠.”
주에른은 어안이 벙벙한 난 잠시 내버려두고 프리아나에게 세례를 내려 줬다.
법봉이 일순간 밝게 빛나자 녀석은 그대로 프리아나의 머리에 성수를 들이부었다.
…촤악!
“푸핫!”
제3자의 입장에서 봐도 별다른 게 없었다.
교황이 직접 세례를 내리는 건 소설에도 안 나왔던 터라 이게 제대로 한 건지 날 놀리는 건지도 잘 모르겠다.
“…….”
창백한 낯빛의 텔레인도 별 말 없이 가만히 있는 걸 보면 진짠 거 같긴 한데.
“…오! 어제 잠을 잘못 자서 그런지 허리가 계속 아팠는데. 멀쩡해졌습니다!”
“하핫. 그것 참 다행이군요.”
허리가 멀쩡해졌다며 좋아하는 프리아나.
하지만 나완 달리 눈물을 흘리거나 하진 않았다.
그럼 정말 주에른 말대로 내가 뭔갈 본 건가?
그것도 엄청 슬픈 걸?
“다른 분들도 하실 생각 있으신지요?”
“전 괜찮습니다.”
이슬린은 가볍게 거절 의사를 밝혔다.
교황도 거절하는데 억지로 권할 생각은 없는 듯 고갤 끄덕였다.
그리고 교황의 시선은 마지막 남은 한 남잘 향해 있었다.
디아 제니스.
주신들이 만들어 낸 인간의 자손이 아닌, 오베론이 만든 인조 생명체.
“전…….”
디아는 살짝 호기심이 일었는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만하면 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내가 갑작스럽게 끼어드는 바람에 디아는 다시금 입을 다물었다.
“하핫. 금방 끝나는 걸요? 그리 급하게 생각하지 않으셔도…….”
“아, 아닙니다. 저도 괜찮습니다. 생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흐음… 그래요?”
주에른은 입을 이죽이며 디아와 눈을 마주쳤다.
난 그런 디아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안 하는 게 좋을 것 같단 눈빛이었다.
“네, 그렇습니다.”
“그럼! 이 정도로 하죠. 오늘은 참으로 기쁜 날이군요. 신도가 두 분이나 늘었으니.”
주에른은 진심으로 기쁜 듯 밝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곤 텔레인이 건넨 손수건으로 손에 튄 성수를 닦아 냈다.
“오늘은 날이 늦었으니 이만 들어가서 쉬시지요. 참회의 방까지 올라오시느라 땀도 제법 흘리셨을 텐데.”
“…네.”
짧게 대답하자 주에른이 텔레인을 향해 눈짓했다.
“그럼. 절 따라오시지요.”
텔레인은 먼 길 온 우릴 위해 마련해 놓은 숙소로 안내했다.
참회의 방을 나서려는 내 뒤로 주에른이 한마디 덧붙였다.
“두 분의 결혼 생활에 축복만이 있길.”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