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102)
102화
* * *
귀가 준비는 느렸다.
내 생각엔 우리가 조금 더 머물기를 바라는 누군가가 손을 쓴 것 같았다.
아버지도 이를 모를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냥 혀를 한 번 차고는 “모르는 척하거라.” 말하고 넘어가 주었다.
남궁류청과의 작별은 이게 끝?
이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담백했는데, 오히려 야율이 미련이 넘쳤다.
영약을 들고 수향문으로 날아간 서하령은 내가 떠날 때까지 돌아오지 못했다. 내가 준 영약을 먹고 열심히 내공 수련 중이라고 했다.
영약을 먹는다고 바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영약의 힘을 천천히 녹이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때 제대로 내 몸에 영약을 녹여 내느냐, 녹이지 못하느냐로 영약의 흡수율이 달라졌다.
귀한 영약을 먹었는데 날리면 안 되지 않겠는가.
나는 혹시나 서하령의 수련에 방해가 될까, 떠난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매우 놀랄 일도 있었다.
장 부인께 서신을 하나 받았는데······ 감사 편지였다.
장철이 조금 정신을 차렸다고 한다!
더는 천 공자 일행과 어울리지 않고, 더는 패지도 않고, 더 놀라운 건 때렸던 다른 가문 공자에게 사과까지 했다는 것이다!
‘세상에. 그런 말도 안 되는 설교가 통하다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어쨌든 시간은 착실히 흘렀고, 질질 끌던 출발 준비도 끝났다.
그리고 남궁 세가에 들어왔을 때부터 계속 나와 함께 지냈던 시비, 금쇄도 함께 갔으면 한다는 말을 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고생일 텐데. 일단 아버지께 여쭤볼게요.”
나는 소부인을 향해 살짝 곤란함을 내비쳤다.
아버지께 거절해 달라고 해야지, 라고 생각할 때 소부인이 말했다.
“이미 백리 대협과 이야기도 다 끝났단다. 네 허락만 있으면 된단다.
내 너 혼자 보내기 너무 걱정되어서 그런다······.”
소매로 입가를 가리는 소부인의 눈초리가 처연하게 늘어졌다.
“알겠어요. 그렇게 걱정하신다면 어쩔 수 없죠!”
나는 바로 넘어갔다.
돌아가는 길은 영무표국이란 곳과 함께 하기로 했다.
표국은 현대로 치면 서신 전달과 물폼 운송, 호위, 경비등의 일을 하는 사업체라고 보면 되었다.
영무표국은 남궁 세가와 주로 거래하는 표국으로 운 좋게 백리세가 긍방을 지나가는 표행이 있었다.
떠나는 날, 남궁완 아저씨와 소부인이 배웅 나왔다.
“류청은······ 전날 인사했으니,
됐다더구나.”
소부인이 입술을 깨물다 힘없이 말했다. 마치 본인이 죄스러워 어쩔 수 없다는 느낌이었다.
“괜찮아요.”
나는 손을 내저었다.
남궁류청은 지금······삐졌다.
내가 남궁류청의 제안을 거절했기 때문이다!
출발이 질질 늘어지는 새 벌써 복숭아꽃이 만개했다. 그러자 남궁류청은 내게 천암사를 구경하고 떠나는 게 어떠냐고 권했다.
하지만 야율이 천산염제와 떠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눈물을 머금고 거절했다.
그러자······ 삐진 것이다!
하하, 귀엽지 않은가?
‘조금 미안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놀러 가자고 제안하는 건 처음이었을 텐데.
“됐다. 그런 치졸한 놈. 흥, 누굴 닮아 그리 속이 좁은지 모르겠구나.”
사정을 아는 남궁완 아저씨가 코웃음을 쳤다. 그러곤 내 어깨를 잡고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말했다.
“누군가 괴롭히는 사람이 있으면 언제든지 서신을 보내거라. 내 당장 달려갈 테니.”
표정은 좀······ 당장 사람 죽이러 갈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눈빛에 걱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
마치 내가 백리 세가로 가는 것을 전쟁터, 혹은 마귀 소굴로 돌아간다고 여기는 듯한 느낌이었다.
“특히 그 쌍둥이 놈들. 또 그런 짓을 벌이면 당장 말하거라!”
“괜찮아요, 괜찮아.
쌍둥이들은 둘 다 할아버지 명으로 벌 받으러 갔다고요.”
“나도 들었다. 그래도 언젠가는 돌아오지 않겠느냐!”
“여보, 소저가 겁먹겠습니다.”
남궁완이 헛기침을 하며 내 어깨에서 손을 뗐다.
소부인의 말은 아주 적절한 순간이었다. 소부인의 말대로 나는 약간 겁먹은 상태였다. 나는 내게 커다란 그림자가 드리우는 것을 질색했다. 거기에 내 어깨를 잡고 다그치는 듯한 모습.
‘언제 괜찮아지려는지.’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최대한 태연하게 한 발 물러났다.
내 몸인데 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니. 답답해서 살짝 화도 났다.
그래도 예전보다 훨씬 나아졌다.
속으로 한숨을 내쉬고 나를 따라오기로 한 시비, 금쇄를 돌아보았다.
나는 금쇄가 들고 있던 상자를 건네받아 남궁완에게 넘겼다.
그러자 남궁완이 물었다.
“이게 무엇이냐?”
“열어 보시면 아실 거예요!”
손바닥 두 개 정도의 작은 나무함이었다.
상자를 연 남궁완이 미간을 좁혔다.
“이게 무엇이냐, 향낭?”
향낭에는 분홍색의 꽃이 수놓아져 있었다. 꽃 부문은 차마 말하기 힘든 수준이었지만, 가지와 입사귀 부분으로 갈수록 점차 일취월장했다.
“이걸 왜 주는 게냐?”
“와, 설마 잊어버리신 거예요?
안 되겠다. 돌려주세요!”
“아니, 준 걸 왜 가져가느냐!”
남궁완은 재빨리 내 손을 피해 등 뒤로 숨겼다. 다급한 손길엔 무공도 묻어 있었다.
곰곰이 생각하는 듯하더니, 이내 떠오른 듯 눈을 부릅떴다.
“아니, 이걸 대체 언제······? 나도 잊어버리고 있었거늘.”
이해했다. 산사태에 실종된 상태로 두 달이 지났었는데 향낭이고 나발이고 약속이 기억났겠는가?
나는 턱을 치켜들고 뽐내듯 말했다.
“약속했으니까요.”
벌써 아주 오래 된 일처럼 느껴졌다. 남궁완 아저씨를 백리 세가 외문에서 만나고, 선물을 주네 안 주네 실랑이 하던 일이.
‘그때는 이렇게 될 줄 전혀 몰랐는데.’
“연이 너는 정말······.”
아저씨가 마치 복받치는 감정을 억누르듯 이를 꽉 깨물었다.
참고로 저 향낭에는 비밀이 있었다. 그러니까 저 분홍 꽃의 3분의 2는······ 남궁류청이 놓은 것이다.
아저씨는 절대 다른 사람 손을 빌리면 안 된다고 하셨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손바닥이 찢어져 버린걸.’
내가 하지 않으려던 게 아니고······ 손을 한동안 움직일 수가 없어서······
어, 쩔, 수, 없, 이! 남궁류청을 시킨 것이다.
처음에는 남궁류청에게 시킬 게 없을까 고민하다 나온 반 장난이었다.
그런데 남궁류청이 나보다······ 수를 훨씬 잘 놓는 게 아닌가!
심지어 처음에 질색하던 남궁류청은 하다보니 승부욕이 드는지 점점 발전했다. 꼼꼼하고 빠르기까지!
젠장······ 이게 바로 하늘이 내린 천재인가? 천재는 바느질도 잘하냔 말이다!
하늘이 원망스럽긴 오랜만이었다.
그때 갑자기 아저씨가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의강이 널 조금만 덜 아꼈다면······.”
아꼈다면 뭐?
남궁완 아저씨는 말을 멈추고 한참을 그리 끌어안았다.
“여보. 마음은 이해한답니다만, 이제 놓아주시지요. 슬슬 출발해야지요.”
아저씨가 나를 한 번 더 꽉 끌어안고 풀어 줬다.
와, 뼈 부러지는 줄 알았네!
나는 몸을 일으키던 남궁완 아저씨를 붙잡고 귀에 소곤거렸다.
내 말이 끝나자 남궁완 아저씨의 표정이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기묘한 얼굴이 되었다.
그런 남궁완 아저씨를 뒤로하고 소부인이 다가와 나를 살포시 끌어안았다.
나비 날갯짓 같은 움직임에 은은하게 향기로운 꽃향기가 풍겼다. 그리고 손목에 무거운 무언가가 걸렸다.
소부인이 떨어지고 나서 나는 손목에 걸린 것을 확인했다. 그냥 보아도 무척 귀해 보이는 백옥 팔찌였다
회귀 전 아버지가 선물했던 귀한 물건들로 고급품을 알아보는 내 안목도 꽤 높아진 상태였다.
그리고 이 옥팔찌는 아버지가 주셨던 선물 중에서도 비견할 만한 걸 찾기 힘들 정도였다.
“어······.”
“내 혼수로 가져왔던 거란다.”
“네에?”
소부인이 부드럽게 내 머리와 뺨을 쓰다듬었다.
“딸이나 며느리에게 물려줄 생각이었는데, 네가 가졌으면 좋겠구나.”
나는 입만 뻐끔거리며 아버지를 보았다.
아버지, 빨리 뭐라고 해 봐요!
너무 귀하다고, 괜찮다고!
그런데 아버지가 옅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냥 받거라.”
“네에? 아버지!”
나는 팔짝 뛰었다.
아버지가 살짝 내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여기서······ 소부인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단다······.”
“······.”
나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헐렁거리는 백옥 팔찌를 빼 품에 소중하게 안았다.
“가, 가보로 여길게요.”
소부인이 옥구슬 흘러가는 듯한 음성으로 웃음을 터트렸다.
서로 줄 것도 다 주었고, 할 말도 끝냈으니 이제는 정말 출발할 시간이었다.
남궁완과 소부인이 두 세발 뒤로 물러났다. 남궁완 아저씨가 아버지를 보며 말했다.
“잘 가라.”
“그래.”
누가 보면 내일 다시 만나는 줄 알 정도로 아주 삼삼한 작별 인사였다.
그렇게 복숭아꽃이 만개한 날 남궁 세가를 뒤로했다.
나는 남궁 세가의 지붕조차 보이지 않을 대까지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말을 타고 계시던 아버지가 내 머리를 살짝 쓰다듬었다.
“이렇게 미련이 넘치면 남궁 세가에 남지 그랬느냐?”
아버지를 올려다본 나는 입을 비죽였다.
“그거랑 이거는 다르죠.”
“마음을 정했다면 돌아보지 말거라. 내게 호통치던 그 아이는 어디 갔느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억울한 모함에 항의했다.
“호통이라뇨? 그 정도는 아니었거든요!”
“내 귀에는 벼락처럼 들렸단다.”
그, 그렇게 놀라신 건가?
아버지의 담담한 옆모습을 보고 주먹을 쥐었다.
그래. 내가 떠나자고 해 놓고 이렇게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이면 어떡하는가? 아버지도 후회하시지 않겠는가?
정말 아버지다운 위로기도 했다.
“이제 들어가거라. 바람이 차다.
눈도 부시지 않느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머리를 집어넣었다. 마차에 함께 타고 있던 금쇄가 아직 시린 바람이 들어오는 창문을 꼼꼼히 닫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