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12)
12화
* * *
연꽃무늬를 새긴 넓은 탁자엔 세 아이와 두 어른이 있었다.
이야기를 꽃피워야 할 것 같은 자리엔 침묵만 이어졌다.
짧은 인사 후 아버지는 입을 딱 닫아 버렸고 이에 고모는 불편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고모 곁의 쌍둥이들도 조금 참는가 싶더니 결국 엉덩이와 어깨를 움찔거렸다.
쌍둥이들이 내게 말을 걸고 싶어 하는 걸 뻔히 알았지만 난 아버지를 따라 입을 다물고 있었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쌍둥이들의 의자가 들썩거리기 시작할 때쯤, 조용히 문이 열리고 장석량이 나타났다.
아버지와 고모가 의아한 얼굴을 했다.
공손히 인사한 장석량이 말했다.
“4공자님, 잠시 시간을 내주실 수 있겠습니까?”
자신에게 볼일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고모가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틀었다.
“곧 아버님이 오실 텐데요.”
“잠깐이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일어나던 아버지가 고모를 응시하곤 말했다.
“연아, 어디 가지 말고 얌전히 있거라. 무슨 일 있으면 아비한테 꼭 얘기하고.”
눈을 치켜든 고모가 입술을 씰룩거렸으나 열진 않았다.
난 걱정하지 말라는 듯 방긋 웃으며 말했다.
“네. 걱정하지 마시고 다녀오세요.”
아버지가 장석량을 따라 방을 나섰다.
목을 빼 밀고 내 아버지가 방을 나가는 걸 확인한 쌍둥이들이 서로 눈을 마주쳤다.
먼저 입을 연 건 소우악이었다.
백리표도 그 뒤를 따랐다.
“야. 너 폐품이라며?”
“단전 망가져서 무공 못 쓴다며? 진짜냐?”
부지불식간에 웃음이 터질 뻔했다.
내가 회귀한 후 소우악과 백리표와의 첫 만남은 바뀌었다. 만난 시가와 만난 자리, 만난 시간까지 모두 달랐다.
‘그런데도 어째 첫마디가 변함이 없지?’
고모는 쌍둥이들의 말을 말릴 생각이 없는지 차를 들이켰다.
난 킬킬거리며 웃는 쌍둥이들을 보며 태연히 물었다.
“누가 그렇게 말했는데?”
“그야 엄마가······ 아윽.”
갑자기 혀를 깨문 백리표가 소우악을 쏘아보았다.
소우악은 백리표를 보지않고 말했다.
“그걸 네가 알아서 뭐 하게? 사실이잖아, 네가 쓰레기인 건.”
“아버지한테 말씀드리려고.”
쌍둥이들이 화들짝 놀랐다.
쌍둥이들은 오냐오냐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자랐다.
하지만 내 아버지가 누군가?
쌍둥이들이 매번 휘두르는 백리세가의 자제라는 배경? 아니면 누나의 자식이라는 관계?
그런 것으로 태도가 바뀌거나 봐주는 사람이 아니었다.
쌍둥이들은 뒷배가 통하지 않는 엄한 내 아버지를 무서워했다.
쾅!
탁자를 내려치듯이 찻잔을 내려놓은 고모가 날 잡아먹을 것처럼 쏘아봤다.
“본데없이 고자질 짓이라니. 아주 길에서 자란 천박한 티는 다 내는구나.”
난 왜 화를 내시는지 모르겠다는 듯 말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다 얘기하라고 하셨는걸요.”
“네가 그러고도 무사할 줄 알아? 의강이 언제까지 집에만 있을 거라고 생각해?
에전이라면 저 말에 겁을 집어 먹었을 것이다.
하지만 난 어디서 개가 짖느냐는 듯 말했다.
“글쎄요. 이것도 아버지께 여쭤볼게요. 언제까지 계실지.”
고모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네가 아주 아비를 업고 기세등등······!”
“의란아, 무슨 일이기에 밖에도 들리게 목소릴 높여?”
때마침 문이 열리고 큰아버지네가 들어왔다.
“오라버니! 왜 이렇게 늦었어요? 빨리 와요.”
고모는 천군만마를 얻은 것처럼 환영했다.
인사를 받은 큰아버지가 날 꾸짖었다.
“그리고 연이 너, 대체 누가 고모에게 그런 식으로 말대답을 하느냐?”
“하하, 아버지 연이에게 너무 뭐라 마세요. 아직 어리잖아요.”
백리명이 그런 큰아버지를 말렸다. 정말 쌍으로 난리였다.
백리명이 다정하게 웃으며 내게 말을 걸었다.
“그날 이후로 처음이네, 연아. 잘 지냈어?”
“네.”
고모와 쌍둥이들에게도 차례로 인사한 백리명이 여아의 손을 잡고 다가왔다.
“연아, 여기 내 동생인 백리리.
같은 집에 살면서 지금껏 인사도 못 했네. 리리야, 저쪽은 너랑 동갑 사촌인 백리연. 이야긴 들었지? 인사해.”
리리는 백리리를 부르는 애칭으로 이름은 그냥 ‘리’ 였다.
녹황색 저고리에 화사한 백목련을 수놓은 도홍색 치마를 곱게 차려입고, 찹쌀떡처럼 뽀얀 볼에 앙증맞은 만두머리를 한 백리리는 사랑받고 자란 티가 역력했다.
날 바라본 백리리가 새침하게 고개를 돌렸다. 백리명이 귀엽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하하. 리리가 원래 좀 낯을 많이 가려.”
큰아버지의 등장으로 날 섰던 분위기는 사라졌다.
고모는 지금껏 말하지 못한 걸 보상받듯 큰아버지와 말하기 바빴고, 쌍둥이들은 백리명과 떠들기 바빴다.
회심의 첫 공격이 무위로 돌아간 것에 자존심이 상했는지 쌍둥이들은 대화 내내 날 투명인간 취급했고, 백리리는 아무 생각도 없어 보였다.
난 혼자 탁자의 연꽃무늬의 꽃잎을 세며 시간을 죽였다.
문이 열리고 아버지가 할아버지와 함께 들어왔다.
‘무슨 일이지?’
밖에서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아버지 안색이 나갈 때에 비해 훨씬 안 좋았다.
의문을 뒤로하고 벌떡 일어나 친척들과 함께 할아버지께 인사했다.
거침없이 들어온 할아버지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모두 앉거라.”
* * *
음식은 끝도 없이 나왔다. 평소 단출한 아버지의 식사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눈이 휘둥그레질 만한 먹거리를 두고도 다들 할아버지 눈치 보나라 젓가락질을 하는 둥 마는 둥 했다.
오로지 나만 처음 보는 음식들을 향해 부단히 젓가락질할 뿐이었다.
아버지 또한 멀어 내 팔이 닿지않는 접시에 있던 음식들을 내 앞에 옮겨 주기 바빴다.
할아버지가 젓가락을 내려놓고 큰아버지를 보았다.
“명이 글공부는 어찌 시키고 있느냐?”
“예? 정현학당 선생님이 은퇴하신 후엔 집으로 글 선생을 불러 가르침을 청하고 있습니다.”
뜬금없는 질문에 당황했을 큰아버지가 곧장 대답했다.
할아버지는 백리리와 쌍둥이들에 대해서도 연달아 물었다. 백리 세가 내의 일들이었다.
가주인 할아버지가 당연히 알고 있을 일들을 새삼 물어보는 모습에 큰아버지부터 고모와 백리명까지 모두 영문 모를 표정을 지었다.
심지어 할아버지는 아버지에게까지 빠짐없이 질문했다.
그리고 의외인 듯 되물었다.
“네가 직접 연이를 가르치고 있다고?”
“네.”
“흐음.”
잠시 뜸을 들인 할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기 선생이라고 경성의 유명한 학자가 이번에 석 태의를 따라 여기로 내려왔다.”
그 말을 들은 순간 할아버지가 무슨 말을 꺼내실지 깨달았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나까지 이 자리에 불렀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 기 선생이 여기서 학당을 열 거라더구나. 내 생각엔 앞으로 애들을 거기 보내 가르침을 받게 하는 게 좋아 보인다. 다들 어찌 생각하느냐?”
나이가 있는 백리명은 오전에 수업을 받고, 나와 백리리, 그리고 한 살 많은 쌍둥이는 오후에 하는 수업에 참석하면 될 거라 하였다.
일단은 권유였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제안인 이상 확정이었다.
처음엔 다들 몰랐지만 기 선생은 정말 이름 높은 명사였다.
나이가 들어 편안히 노년을 보내기 위해서, 더 이상 복잡한 정세에 얽히지 않기 위해 경성을 떠났을 뿐이었다.
그리고 이곳에 온 기 선생은 학당을 열었다.
과거에 도전할 정도는 아니나 말귀는 알아들으며 품행이 바른 적당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소일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간 쌓은 인맥과 학자로서의 지식이 어디 가겠는가?
진지하게 과거에 임하는 이들이 조언을 위해 구름처럼 몰려왔고 자연스레 미래의 문관들과 교류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
곧이어 사람들은 이 학당이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깨달았다. 수업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이 줄을 서는 건 한순간이었다.
하지만 기 선생은 많은 학생을 받을 생각이 없었다.
자연스레 서로 어떻게든 학당의 학생이 되기 위해 한바탕 난리가 났다.
‘그 무렵 할아버지는 내게 관심이 없었고, 아버지는 내 치료법을 찾느라 학당엔 신경 쓸 겨를이 없었지.’
과거에 나는 이 학당에 가지 못했다.
반색하는 나와 달리 아버진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계속 이어진 할아버지의 말을 듣던 쌍둥이들의 얼굴이 노래졌다.
“수업을 두 시진(4시간)이나 한다고요?”
“검을 수련하기에도 모자란 데 시간이 너무 아까워요, 할아버지.”
반론에 할아버지가 눈썹을 치켜들었다. 하지만 그래도 어린 손자였기에 나오는 목소리는 나쁘지 않았다.
“처음만 두 시진이지 선생도 무가 사정을 잘 안다. 너희의 진도에 따라 차차 공부 시간을 줄일 것이다.”
무가는 무공이 먼저다.
하지만 백리 세가 정도로 이름이 높아진 가문이라면 무공은 당연하고 육예도 어느 정도 갖춰야 했다.
육예란 예학(예의범절), 악학(음악), 궁시(활쏘기), 마술(말타기 또는 마차 몰기), 서예 (붓글씨), 산학(수학) 이렇게 6가지 예를 말했다.
저걸 대성하길 바라는 게 아니다. 그저 기본은 할 줄 알기를 바라서였다.
‘가문 수준이 검만 휘두를 줄 아는 머리 빈 무가로 보이긴 싫을 테니까.’
다른 명문 대파들도 상황은 비슷했다.
심지어 거지들 단체인 개방조차 고위급으로 올라갈수록 세간에 보이는 이미지와는 다른 자들도 왕왕 있었다.
“2시진을 학당에서 공부한다고 하더라도 10시진이나 남지 않느냐? 충분하다. 너희들이 검 수련을 종일 하는 것도 아니잖느냐.”
“무슨 말씀이세요, 할아버지! 당연히 종일 수련하죠!”
“맞아요. 한시도 손에서 검을 놓은 적 없어요!”
“······.”
하지만 할아버지의 표정이 점차 굳었다. 과거 늘 처소에만 박혀 있던 나도 쌍둥이들이 검을 놓고 친구들과 천방지축으로 뛰노는 모습을 몇 번이나 보았다.
그런데 한시도 손에서 놓은 적 없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