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122)
122화
* * *
백리명은 진즉에 독립해 자기 혼자만의 처소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백리명의 처소로 향하며 깨달았다.
회귀 전과 현재를 모두 따져서 백리명의 처소를 방문하는 게 처음이었다.
장손 아니랄까 봐, 백리명의 처소는 위치부터 규모와 너비까지 무척 좋았다. 그리고 조금 놀랐다.
‘분위기가 왜 이렇게 엄중해?’
나를 본 하인들이 깜작 놀랐고 몇몇은 적대적인 시선을 보였다.
누군가는 조심스럽게 처소를 빠져나가기도 했다. 어디로 갈지는 자명했다
그때 처소 안에서 중년 여인이 걸어 나왔다.
나는 또 놀랐다.
의외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돌아가십시오.”
방씨 어멈. 할머니의 측근 시비였다.
또한 호위 무사이기도 했다.
웬만한 일이 아니면 절대 할머니 옆을 비우지 않는데······.
‘왜 여기 있는 거지?’
할머니의 측근 중에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어딨겠냐마는, 특히 방씨 어멈은 나를 볼 때마다 마치 벌레 보듯 경멸하는 시선이 인상깊은 여인이었다.
“도련님은 문병을 받을 만한 상태가 아닙니다.”
방씨 어멈이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정도로 상태가 안 좋다고?’
의문을 가졌다가 깨달았다.
문병도 받지 못할 정도로 상태가 안 좋았다면 백리가가 이리 조용할 리 없었다.
‘그냥 만나지 못하게 하려고 하는 거군.’
나는 곧장 깜짝 놀랐다는 듯 크게 소리쳤다.
“오라버니 상태가
그렇게 위중한가요!”
방씨 어멈이 깜짝 놀랐다가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목소리 낮추십시오!”
내가 왜? 나는 방씨 어멈 말을 무시하고 계속 소란을 피웠다.
소란이 커지자 백리명 처소의 하인뿐만이 아니라 다른 하인들도 슬쩍 기웃거렸다.
아마 한 시진 내로 소문이 쫙 퍼질 것이다. 내가 백리명 병문안을 왔다가 만나지도 못하고 돌아갔다고.
방씨 어멈은 내 입을 틀어막지 못해 분한 듯한 얼굴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방씨 어멈의 표정이 싹 변하더니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어쩔 수 없군요. 들어오십시오.”
······뭐지?
갑자기 이렇게 허락해 준다고? 이 정도에 넘어갈 사람이 아닌데······.
그 모습이 무척이나 수상쩍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돌아가겠다고 할 수도 없었다.
나는 경계하며 따라 들어갔다.
드르륵.
고약과 탕약 냄새가 섞인 방에 들어가서 깨달았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오늘 정오에 마주했던 하 의원이 백리명을 진찰하러 온 듯 보였다.
방씨 어멈이 처음으로 미소 비슷한 것을 지으며 말했다.
“이리 오신 김에 아기씨도 진찰을 받으시지요.”
“······.”
백리명이 그런 우리를 바라보다가 이상하다는 듯 말했다.
“어멈? 갑자기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연아, 오랜만이구나. 이리 와 앉아라.”
그러며 혼잣말하듯 다 들리게 빈정거렸다.
“어멈이 웬일이야? 연이도 못 들어오게 막을 것 같더니 무슨 바람이 불었대?”
“도련님, 언행을 조심하셔야지요.”
방씨 어멈은 마치 백리명이 숫제 투정 부린다는 듯한 취급이었다.
역시나. 방씨 어멈은 할머니가 붙인 감시관이었다.
앞으로 허튼짓, 그러니까 나와 친밀하게 지내는 것을 막으려는 것이다.
피식피식 웃던 백리명이 갑자기 왼 어깨를 짚으며 인상을 찡그렸다.
백리명의 왼손부터 팔꿈치까지 붕개다 감겨 있었다.
‘상처가 꽤 큰가 본데?’
나는 백리명이 가리킨 자리에 앉다가 그제야 눈치 챘다.
백리명 옆에 심소청, 심 부인이 계셨다. 워낙 기척없고 조용하신 분이라 이제야 알아봤다.
우수에 찬 얼굴에 눈동자가 불안한 듯 이리저리 흔들렸다.
정말 무가에 어울리지 않는 심약한 여인이었다.
‘일부러 그런 사람을 고른 거겠지만.’
내가 백리 세가에 사는 기간에 심 부인을 뵌 적은 정말 손에 꼽을 정도였다. 참고로 심 부인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적도 거의 없었다.
그만큼 조용히 있는 듯 없는 듯 사신 분이었다.
“하 의원, 큰 도련님을 진찰하기 전에 아기씨부터 진찰하시지요.
부탁합니다.”
하 의원이 당황하는 듯하더니 이내 눈을 빛냈다.
백리명이 살짝 짜증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어멈, 자꾸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연이가 왜 여기서 진찰을 받아?”
“도련님은 듣지 못하셨겠군요.
오늘 정오에 하 의원이 아기씨를 진료하러 가셨는데, 아기씨가 거부하셔서 돌아오셨습니다.”
“그게 뭐?”
백리명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나는 백리명 옷자락을 살짝 잡았다.
“오라버니도 같이 오면서 다 보셨잖아요? 석 태의가 진찰하시는 거.”
잠시 고민하는 듯하던 백리명이 내 편을 들었다.
“······그랬지. 맞아. 아니, 어멈.
석 태의께서 오는 길에 진찰하고 처방도 다 해 주셨는데, 굳이 하 의원이 살필 필요가 뭐있어?”
방씨 어멈은 꼿꼿한 태도로 말했다.
“아기씨는 백리가인데 당연히 백리가 의원이 살펴야지 않겠습니까?”
백리명이 어이없다는 듯이 탄식하고 말했다.
“하······. 석 태의는 할아버지가 데려오신 의원인데 대체······.”
방씨 어멈이 눈을 내리깔고 꼿꼿하게 말했다.
“도련님, 백리연 아기씨께 하 의원을 보내신 건 대부인 입니다.”
백리명이 멈칫하며 되물었다.
“······할머니가 보내신 거라고?”
방씨 어멈은 태연히 말을 이었다.
“예. 대부인께서 가모로 백리세가의 혈족인 백리연 아기씨를 걱정하시는 건 당연하지 않습니까?”
백리명이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때 지금까지 조용히 있던 심 부인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명아, 어머님 말씀이니까······.”
할머니 뜻을 거스르지 말라는 것이었다. 백리명이 입술을 깨물며 나와 방씨 어멈을 번갈아 보았다.
이내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연아. 그냥 한번 받거라.
뭐······ 이렇게 거절할 일도 아니긴 하지 않느냐?”
방씨 어멈의 입가에 승리의 미소가 살짝 맺혔다.
나는 무릎에 주먹을 쥐고 천천히 고개를 떨궜다.
백리명이 한숨을 쉬며 달래듯 나를 불렀다.
“후우, 연아.”
나는 손수건으로 눈가를 살짝 문지르고 고개를 들었다.
백리명이 깜짝 놀라 나를 바라봤다.
“왜, 왜 그러느냐?”
벌건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다가 툭 떨어졌다.
“하 의원은······ 하 의원은 늘······ 저를 치료하러 올 때마다, 아버지가 쓸데없는 짓을 한다고······ 귀찮게 한다고 그랬어요.”
일부러 더 아이같은 어조로 말했다.
“저는 하 의원이······.”
나는 훌쩍이며 하 의원을 흘끔거렸다.
겁먹은 모습으로 보이길 바라며.
입을 쩍 벌린 하 의원은 당장 뒷목을 잡고 드러누울 듯한 표정이었다.
나는 우물거리며 말했다.
“뭘 , 자꾸 진찰하겠다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또, 또······ 쓸데없는 짓이라고 하실 거면서.”
나는 쥐고 있던 손수건으로 눈가를 닦았다가 눈물을 왈칵 쏟아냈다.
‘으악! 아씨, 아, 매워!’
양파즙을 잔뜩 먹인 손수건이었다.
원래는 여리고 신실한 여동생 역할을 하기 위해서 가져온 것이다.
백리명의 상처를 보면서 훌쩍일 수 있으면 그때 쓰려고 가져온 손수건이었는데······.
그래. 뭐, 어쨌거나 잘 쓰면 됐지······.
눈물이 저절로 뚝뚝 떨어졌다.
“제가, 제가 내공 폐인이라고 무시하는 거잖아요.”
하 의원이 입을 뻐끔거렸다.
백리명이 왈칵 인상을 찡그렸다.
“······하 의원, 정말 그랬어요?”
“그러니까······ 저, 저는 그런 적 없습니다!”
“하! 그럼 연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거예요? 하 의원, 그렇게 안 봤는데 아주 우리 백리혈족을 얼마나 우습게 보면······!”
백리명이 이번에는 아주 열렬한 핏줄의 수호자가 됐다.
여기서까지 하 의원 편을 들면 나중에 내 얼굴 보기가 힘들거라 판단한 것이다.
정말 박쥐같은 태도였다.
하지만 저렇게 하 의원을 나무라고, 그 다음에 나를 달랠 것이다.
자기가 앞으로 조심하게 할 테니까 마음 풀고 받으라고.
그러면 나도 계속 거절할 수 없었다. 그때도 거절한다면 이제 아이의 철없는 투정으로 둔갑 될 것이다.
나는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며 말했다.
“좋아요.”
나는 입술을 꾹 깨물고 하 의원과 방씨 어멈을 바라보았다. 눈물이 그치질 않아서 초점도 잘 안 잡혔다.
“제 단전이 회복된 건지 궁금하신 거죠?”
방씨 어멈, 하 의원 둘 다 아니라고도, 맞다고도 말하지 못했다.
그 모습에 백리명이 이 둘을 저도 모르게 경멸하는 듯이 바라봤다.
금세 관리했지만.
“오라버니가 확인해 보는 건 괜찮아요.”
“뭐?”
백리명은 헛웃음을 토하던 그대로 귿었다. 그리고 당황한 듯 자신을 가리켰다.
“나, 나보고 확인하라고?”
“네.”
나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옷자락을 꽉 쥐었다가 조그맣게 말했다.
“오라버니는 믿을 수 있으니까요.”
“······.”
백리명이 약간 감동한 듯하면서도 당혹스러운 기색이었다.
‘미안, 거짓말이야.’
아, 거짓말까진 아니려나?
백리명의 기회주의적인 면모를 믿었으니까.
내게 밉보이기도 싫고 할머니를 거역하기도 싫은 백리명에게 내 제안은 아주 만족스러울 것이다.
그리고 어찌 되었든 자신을 믿는다는 달콤한 말을 싫어할 리가 없다. 그것도 아직 아이인데.
만족스러운 기색의 백리명이 자애로운 오라비인 척 내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다.
“그래. 내가 확인하지 뭐. 방씨 어멈. 이럼 됐지?”
굳은 표정의 방씨 어멈이 말했다.
“그러지 마시고, 도련님 대신 다른 의원······”
백리명이 방씨 어멈의 말을 자르며 버럭 소리쳤다.
“무슨 다른 의원이야? 적당히 해!”
잠시 멈칫했던 백리명이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아니면,
설마 지금 나를 못 믿는거야?”
“······아닙니다.”
방씨 어멈이 어쩔 수 없이 수그렸다.
나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그 모습을 지켜봤다.
백리명의 기회주의적인 태도를 나만 알 리가 없었다.
하지만 아직은 백리명을 믿고 있을 것이다. 그간에 같이 지낸 세월이 있으니까.
하지만······.
내가 내공을 다루는 모습을 보인다면······?
백리명은 내 회복을 숨겼다고 의심을 받을 것이었다.
백리명은 자신은 진실을 말했다고, 억울하다고 말하겠지만······.
그때는 과연 누가 믿어 줄까?